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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둘째가 태어날날짜보다 늦어져서 산부인과에 갔다가 뉴스를 봤어요. 전원구조가 됐다길래 떨리는 맘 진정시키고 진료를 했죠. 그런데 집에 왔더니 오보라네요. 그래도 설마 구할수있겠지 하며 걱정스런 맘으로 티비만 바라보고 있었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간은 흘러가는데 구조소식은 없고.그후 삼일후 둘째가 태어났고 벌써 31개월이 됐어요. 아직도 둘째를 보면 그 뉴스장면이 떠올라요. 아마 이 기억은 오래오래 기억될듯. 잊을래도 잊을 수 없을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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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tv앞에 고정되어 아무 것도 못했지요.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지 못했더라면 덜 아팠을까요? 어떻게 이런 오보를 전할 수가.. 어떻게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보고있는데.. 그 많은 아이들을.. 우리 국민들을 처참히 포기하는 것인지.. 3살된 둘째 밥도 제대로 못챙기고.. 학교끝나고 집에 온 큰 아이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마음이 무너졌던 날입니다.일개 국민 중의 힌 명도 몇날 며칠을 마음이 아파.. 눈물 흘렸던 그 날을... 어찌 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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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저는 평범한 전업주부여서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청소와 집안일을하며 티비를 켰는데 속보라고 뜨면서 사고소식을 보도하고있더라구요..자막으로 전원구조라는 글씨도 보았고..그래서 안심했는데 오보라고ㅡㅜ그때부터 티비앞에서 떠나질 못하고 울면서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친정이 안산이라 더 남일같지 않았구요..친구의 친구 동생도 있다하고 엄마의 지인의 자녀도 잇다하고...자식을 둔 부모마음을 알기에 정말 가슴이 찢어질듯 아프고 자꾸 시간만 흘러가는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지금도 세월호 얘기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져요저 양심도 없는 썩어빠진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밖에 모르는 무능한 짐승만도 못한것들..반드시 죄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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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티비 속보를 보고 이야기하며 깨운 기억이 나요. 흐린 날씨에 어쩌니 했는데 전원구조라기에 다행이라며 인터넷을 했는데 점점 소식이 달라져서 당황했었고 황당했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일을 무언가 했는데 그 일 자체는 기억이 안 나지만 구조자 수가 늘기는 커녕 줄어드는 거에 밤새 같이 기도했었어요. 정말 에어포켓의 존재를 믿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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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고3이었어요. 핸드폰이 없다보니 아침부터 소식을 듣지는 못했는데, 애들이 쉬는시간에 수근거리던 분위기는 기억나요. 한 친구가(이름도 기억나네요 지원이) 배가 물에빠졌대~ 이랬었고, 밥먹고 돌아와서 5교시 수업이 일본어였어요. 그래서 일본어선생님보고 세월호 어떻게됐냐고 여쭤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다음날에 이유는 기억이 안나지만 학교를 오전수업만 마치고왔는데 집에있던 언니랑 내내 뉴스 구조작업 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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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에 살고 있습니다. 잠들기전, 사고가 났었고 전원구조 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그냥 작은배의 단순 해상사고려니..하는 생각과 함께요. 새벽에 일어나 습관처럼 핸드폰을 켜고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배와 함게 가라 앉다니.. 정신도 차리기 전에 아내와 함께 눈물부터 났던 그 날을 전 또렷이 기억합니다. 과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에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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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환자보고 있었죠.속보가 이어지면서 구조소식이 이어지면서 설마설마 했는데...2014년에 이런일이 벌어지리라곤...손석희님 말씀대로 김관홍 잠수사님 유언대로 뒷일을 잘 마무리해서 유족분들 마음에 진정한 위로와 평안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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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을 나갔죠. 직원이 사고 났었는데 전원 구조 됐다고 그러길래 신속한 구조 작업이 이뤄졌나보다 생각했죠. 저녁 무렵 주차하고 무심결에 티비를켜고서야 끝없는 비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30년 전 수학여행 코스가 지금도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2만원도 안되는 비행기값으로 제주를 가는 시대인데 어떻게 지금도 가는 편은 배편, 오는 편은 항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누가 이런 상품을 기획하고 지속하고 있는지부터 분노가 일었습니다. 왜 쓸데없이 비행기보다 비싼 연안여객 상품을 이렇게 고집스럽게 하고 있는지... 그 뒤로 몇달은 이 사회에, 우리의 무감각과 욕망에 분노하고 자책했었네요.우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사람으로 살고 싶기는 한걸까?...아이들의 죽음조차 갈등과 대립의 매개로 삼는 저 권력에 왜 무관심할까? ...슬프네요. 아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안하다. 너무 너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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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요항상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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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희에게 뒷일을, 사회를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너희를 구하던 이가, 남겨진 이들에게 뒷일을 부탁하였다.일상을 되찾고자 잊었던 지난 날을 후회하고그래서 나 스스로 "넌 무엇을 하였느냐." 라고 물었을 때 부끄럽지 않고자 한다.나 혼자 많은 것은 할 수 없겠지만, 촛불이 퍼져나가는 긴 징검다리의 작은 돌이 되리라.다시 타오르는 진실의 빛이 넘실대는 광장의 목소리에 내 마음 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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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뉴스를 접했을때 평소의 사건사고 뉴스처럼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면서 사건이 심각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얼마나 심각한일인지 제대로 느끼고 있지 못했습니다. 분주한 내 일상이 먼저였습니다. 제때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지 못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일이 우리의 일터와 일상에서 반복되지 않게 기억하고 일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구하고 죽였던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겠습니다. 각자의 앞가림을 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벅찬 삶일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더 사랑할 용기를 내겠습니다. 아이들이 죽음으로 우리게 알려준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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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에 대한 기억근처 학교에서 학점교류를 마치고 설입 나주곰탕에서 다른과 동기친구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TV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으나 전원구조됐다는 뉴스를 보고 안도한채 나머지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습니다수업을 마치고 동아리까지 마저 마친 후에 뒤풀이를 갔었는데 TV에서는 많은 이들이 실종되었으며 구조자들은 실종자에 비해 없다고 들었습니다.기숙사에 돌아가서 놓쳤던 뉴스를 보는데 눈물이 계속 흐르더군요. 한창 공부하고 곧 대학생이 되어 인생을 즐길 아이들인데, 아이들을 한참 가르치느라 재미를 붙인 사람들인데, 그리고 아직 인생을 다 즐기지못한 사람들인데 하는 마음에서요꼭 진상규명되어서 책임자들이 처벌 받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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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딴짓하다가 접한 첫기사. 고등학생 탑승 배가 침몰중이고 전원구조됨...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안산이어서 더 관심이 갔던 것 말고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는데 점심먹고 다시 접한 충격적 소식 그리고 분노 눈물.. 이 나라는 무얼 하나 그 어린 생명하나 못구하는. 윗 대가리들의 변명 정치인이 기념사진 찍겠다고 눈도장 찍으러가는 현장. 부모의 아픔이 느껴져서 너무나도 먹먹했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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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사무실 이사 다음날이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여직원이 집에 단원고 다니는 사람 있냐고 묻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고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세월호 관련 내용이 속속 올라왔습니다.....그 때 든 생각은 설마 먼 일 있을까?? 설령 잘못되더라도 몇명정도 위험할수는 있겠다 생각했고 다시 일에 몰두 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 쉬고 있을때 한 직원이 전원구조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저는 오 대박~~ 대한민국 왠일 살아있네 하면서 안심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보였고 사태의 심각성을 나중에 깨달은 저는 절망속으로 빠졌었습니다.....저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여 한동안 마니 괴로웠습니다..... 참사당일 아이들이 아파하고 죽어가는동안 전 바쁘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습니다....;안산에 20년 넘게 살았으면서 단원고가 어디있는지도 몰랐고 그런이름의 학교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참사당일 제 태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합동분향소, 단원고 아이들 교실, 안산하늘공원을 시간이 날때마다 찾아갔었고.....세월호 참사집회도 참가했었습니다....그리고 2년이 넘게 흐른 지금.....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이번 시국을 통해서 다시한번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늘 미안하고 미안합니다.....정말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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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종례를 하려던 참 선생님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곧 눈물을 글썽거리시고 저와 제 친구들은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 체 하교하였습니다. 그 날 저녁이 되어 퇴근 하신 엄마와 티비를 보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분들 역시 원래였다면 모두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계셨겠지요. 세월호에 타고 있던 분들 중에서도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겪게 되어 저의 부모님을 비롯한 자식을 두신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 아버지는 크게 놀라셨고 슬픔을 감출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저희 엄마 역시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편인데도 놀람과 슬픔이 역력한 표정이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잊지않을 것입니다. 그 분들이 보고싶습니다. 살면서 큰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을 그 분들이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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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까봐, 엄마와 같이 뉴스 보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다. 두려워서, 고작 눈물이 두려웠기에 뉴스는 하루가 지나서야 봤고 모두가 구조되지 않았기에 눈물을 더 흘렸다. 몇년이 지나건 7시간이 밝혀지고 인양이 된 후에도 우리들은 기억하고 노란리본을 가슴에 품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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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접한 시간은 학교 쉬는시간이었습니다. 친구가 페이스북을 보다가 수학여행, 여러가지 이유로 제주도에 가던 사람들이 탄 배가 넘어졌다는 기사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곧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구조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다 기억하고있습니다. 그날을 잊는다는게 상상이 안갑니다. 당신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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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때 고등학생 삼학년이였고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습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졋고 우리 모두는 걱정햇지만 금방 구해졋다 구햇다라는 기사가 떠 모두들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다 오보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슬프고 기다리기 힘들었는데 그들은 7시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할수가없엇고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희생된사람들은 무슨 잘못이 있다고...그 아이들과 희생된사람들이 잘못한게 있다하면 이 나라에서 태어난것 밖에 없을것입니다 우리는 알 권리가 있고 진실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영원히 기억할거며 잊지않을것입니다 이 일을 묻지 마십시오 묻으려할수록 우리는 더 파낼것입니다 숨기지마십시오 숨긴다고 모를 우리가 아닙니다 국민들이 주체인 이 나라에서 숨긴다고 숨길수 있을거라 생각합니까?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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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학교에 있어서 핸드폰을 못해가지고 엄마 일 도와드리면서 SNS 하다가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집도 아니여서 거기에 있는 티비로 뉴스를 보고 또 인터넷에 있는 기사들을 확인했던거 같습니다. 그러고 전원 구조 되었다고 해서 너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구조자보다 사망지가.더 많더라구요 그거 보고 계속 울었던게 기억이 나네요... 아직까지도 너무 속상하고 너무 마음이 아파요 몇 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