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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월호 사고 소식을 처음 들은 건 학교 가는 셔틀 안이었어요.. 라디오에서 당시 사고 소식이 들렸죠.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탄 배에 사고가 났지만 잘 구조되었다는 소식 말이예요. 사고가 난 건 정말 안타깝지만 구조라도 잘 되어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가만히 있으라던 방송 내용, 아이들을 바다에 내버려둔 채 혼자 멀쩡히 살아나온 배의 선장, 구조를 제지당했다던 민간 잠수부의 증언...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죠. 몇백 명의 어린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그게 어떤 비리 때문이었다는 게, 해경이, 국가가 그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 구조하지 못하게 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2년 반이 흐른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하나둘씩 늘어나는 사망자 명단을 보면서, 눈물을 머금고 친구랑 주고받은 카톡 내용도 또렷이 기억나요. 친구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친구는, 자기 목숨을 내놓더라도 아이들을 구하러 갔을 거라고 했어요. 혼자 멀쩡히 살아나온 세월호 선장을 보면서, 너무 치욕스럽지 않냐며 자기는 죽더라도 자기가 믿는 명예로움을 지킬 것이라구요.하지만 알고 보니 문제는 선장 개인의 이기심만이 아니었어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고 소식과 쏟아져나오는 온갖 의혹들에 한동안 정말 무기력해졌어요.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감춰져 있는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광화문 광장에는 노란 리본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고, 팽목항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었죠. 당시 유가족들이 어떤 생활을 이어나갔는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는지, 경찰이 어떻게 그곳을 찾은 국민들을 막아섰는지... 정부에서 발표하는 내용과 현장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직접 전해주는 소식 사이의 괴리감도 절망감을 느끼기엔 충분했습니다.그런데 이젠 점점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네요.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당시 일어난 일들이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일을 기억하는 한, 2014년 4월의 일이 잊혀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기억이 안 난다는 사람들이 그날의 일을 기억해 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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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었고 논문쓰는 중이었습니다. 지쳐서 무기력하게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 대형티비에서 전원구조가 됐다는 자막을 봤어요. 다 구조됐구나하고 관심을 끄고 다른 일들을 했죠. 그리고 서너시간 후에 우연히 다시 휴대폰을 켰는데 오보였다고..그때부터.황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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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2때의 일이였다. 우리는 세월호 침몰 소식을 선생님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 전원구출 " 이라는 소식을 본 우리들은 잠시 안심했지만, 오보라는 소식을 다시 볼 수 있었다...인양을 하네 마네, 다이빙벨이 어떻다,..나는 어떤 기사도 믿지 못했다. 여론을 조작하는 기사들로 넘쳐나고, 그와중에 유가족들 앞에서 라면을 먹고잇는 높은 사람도 있었다.내가 정말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유가족들의 간절한 외침과 침통한 곡소리였을 뿐..해양경찰부는 수사를 통제했다.세월호 안에서 살려달라 문을 두드리던 친구들을 무시했다. 다이빙벨 근처를 돌며, 민간인 잠수부들의 구출 작업또한 방해했다.나는 절대 그날을 잊지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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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점심에나와 밥을먹는데티비에서 속보가나오더라고요그냥 배가침몰하고 전원구조됐다고나와서그런가보다하고 다시도서관들어갔는데저녁때나와서 다시보고 충격받았었어요그날 날씨도기억나고 분위기도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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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직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장거리 통학생인 저는 그 날 아침에 자체휴강을 고민하며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패션관련 교양을 들으러 학교에 나갔습니다. 1부 강의를 듣고 쉬는 시간, 강의실은 술렁거렸습니다. 세월호가 침몰 되었다는 뉴스...우리도 교수님도 불안해했지만 강의는 계속되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점심시간, 세월호 승객들이 전원구출 되었답니다. 다행입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공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모든 강의가 끝난 귀가길, 아까의 전원 구출이 오보랍니다. 심장이 철렁 합니다. 집에가는 2시간 내내 모든 뉴스를 뒤졌지만, 책임자는 보이지않습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사흘,나흘...여전히 책임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뉴스에 단원고 학생들이 보일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십니다. 그 뒤로 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책임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제 프로필사진은 노란 리본입니다. 2년전의 그 날 후 한번도 바뀐적이 없습니다. 보면서 항상 그 날의 금요일을 떠올리려 노력합니다. 제 프사가 바뀌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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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학교에서 잠을 청하고 평소와 같이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세월호 침몰" 뉴스..하지만 다음 뉴스 에선 전원구조 라는 안도의 얘기를 해주셨다 나의 일 은 아니지만 정말 마음 졸이고 걱정을 하였는데 한 줄기의 빛과 같은 말씀을 해주셔서 안심하고, 평소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뉴스를 보니 오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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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뉴스보다가 전원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믿었었어요. 그리고 아니라는 소식이 나왔을때 전 그래도 모두 구조될거라믿었었어요.이제는 진실이 밝혀질거라고 믿고있습니다.절대 잊지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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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출" 모든방송사가 앞다투어 보도할때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빠른 대처로 모두 구했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몇시간후 듣고 싶지 않은 보도들을 보면서 정신이 멍해졌습니다.이게 무슨 장난인지 그래도 대부분 구출되겠지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안일하게 생각했던 제가 후회됩니다. 끔찍한 일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나.그렇게 피부로 닿지 않는다고 외면했던 수많은 과거의 "나"도 있었겠죠이젠 외면하지 않고 지금의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끔찍하고 후회되는 시간을 보냈던 그 때의 "나"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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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이던 딸아이 가 학교에 가고 난후 집안일을 하다가 텔레비젼 뉴스에서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얼마 지나지않아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속보로 떴습니다. "다행이구나...나랑 비슷한 일이었나보다" 했습니다.남해안일주를 했던 대학교 졸업여행에서우리가 탔던 유람선이 남해 한려수도 한가운데서 엔진고장으로 멈췄었습니다.다들 수영을 하니 못하니 구명조끼다 부족하니 하면서 구조를 기다렸었지만우리에게 무슨 큰 일이 생길거라는 생각은 하지않았었습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다른 배들이 와서 한 팀씩 옮겨탈때도 우리 차례가 되기전 가라앉으면 어쩌나 걱정하지도 않았습니다.세월호도...그런 일이겠거니 안심했었습니다.텔레비젼을 끄고 집안일을 다 마치고 나서 잠깐 낮잠을 잤더랬습니다.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가 세월호 얘기를 하길래 "다 구조된거 아니었어?" 했었지요..."엄마, 아니래요.오보래요. 배가 가라앉았대요..."부랴부랴 켠 텔레비젼에서 배 밑바닥 한귀퉁이만을 보이고 있는 세월호를 보고 그때부터 내내 텔레비젼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나는 기억합니다. 내 아이도 기억합니다.내 눈앞에서 배가 가라앉고 해가 지고 조명탄을 쏘던 그 시간들을 어떻게 잊을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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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날 아침을 똑똑히 기억합니다.2년 전 새내기 시절, 학교 가기 위해 기숙사를 나왔는데 날이 너무 어둡고 칙칙했어요. 무의식적으로 "오늘 몸 조심해야겠다.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은 날씨네"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세월호 뉴스를 접했습니다. 처음에 뉴스를 보고 당연히 구조 되었겠거니 했지만 점차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년 전 일어난 사고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이네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오늘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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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관심도 없던 내가 바보 같았던 날이였습니다. 뒤늦게라도 관심을 가지게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기억을 되새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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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동원관에 가서 줄을 섰을 때 처음 뉴스를 봤어요. 큰 일이지만 동시에 잘 구조되겠지, 잘 해결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던 나를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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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있었고, 당시 친구가 알려줘서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참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승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오보에 잠시 안도했다가, 곧 그것이 오보임을 알고 점점 절망스러움이 엄습했어요. 설마.. 21세기에 배가 뒤집혔다고 사상자가 나오겠느냐, 분명히 구조될 것이다 하고 친구들끼리 이야기했는데 설마가 현실이 되더라구요. 학교가 끝나기 전까지도 많은 아이들은 정확히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있는지 알지못했고, 충격적이다 못해 믿을 수 없는 사건에 누구도 입을 잘 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단원고에 친구가 있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 친구들이 걱정하고 울먹이거 문자보내는 모습을 보니 입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학교를 마치고 기숙사에 와보니 룸메였던 친구가 "내 친구도 단원고 학생이고, 세월호를 타고있었다"며 울고있었고 그때 저희랑 같은 고2밖에 안된 학생들이 그런일을 겪게되었고 그걸 구해주지 못했다는 충격이 정말 컸습니다. 초중고 교육과정속에서 18년도 안되는 인생 대부분을 제대로 하고싶은것도 해보지 못하고 보냈을 학생들이 캄캄하고 차가운 공포속에서 구조를 기다렸을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직도 상상동할수없는 공포심이 느껴집니다. 저는 이제 대학교 1학년을 마무리해가는 중이고, 고등학생에서 벗어나 많은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때 세월호가 잘 구조되었더라면 단원고 희생자인 학생들 역시 나름대로 즐겁기도하고 고민도있고 슬픔과분노를 겪기도 할 스무살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면 여전히 세월호사건은 벗어날수없는 충격적인 기억이고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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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이었어요.기술과가정 수업시간에 컴퓨터실을 갔어요. 컴퓨터를 켜서 포털사이트를 들어갔는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기사를봤어요. 저와 친구들은 컴퓨터 앞으로 몰려서 어떡하냐는 걱정을 했고, 수업이 끝난 후 다시 기사를 보았을 땐 ""전원구조" 다행이라며 안심했어요. 그런데 , 한시간이 흐르고 두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자 전원구조는 거짓이었고, 제대로 된 구조 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며 슬프고 답답했어요. "왜 모두를 살릴 수 있음에도 발빠른 대처를 하지 못했을까?"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희생자들은 제3자가 아니라 나와 너 우리가 될 수 있었어요. 국가는 위급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되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잊지않고 기억해야합니다. 제 가방에는 항상 달려있는 노란리본이 달려있을거예요. 그리고 국가가 숨죽여 방관했던 7시간, 꼭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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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날 그런일이 벌어질지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도 모든건 그대로였고세상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오직 슬퍼하는 자만이 더 슬퍼하였더라그 슬픔이 눈물이 바다를 만들어 우리를 한때 잠기게 하였더라우리가 낮은곳에서 추워할동안 윗분들은 무얼하였나 인간같지 않은 자들에게 더이상의 배려와 타협은 없다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나는 아마도 그날은 우연이 아닌 사고가 아닌 누군가의 만들어진 조작된 사건이라 생각한다그들에게 말한다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라 너희들은 그날을 잊어서도 안되며 함부로 그날에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도 안된다평생 죽어가는 심정을 알긴하려나다시 말한다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라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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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학교에 적응해 가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여느때와 같이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해 수업을 듣고 쉬는시간엔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던 그 시간.몰래 핸드폰을 숨겨놓은 친구에게서 전해들었던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큰 사고에 깜짝 놀라 핸드폰이 있는 친구를 둘러 싸고 기사를 보았지만 전원구조라는 말에 다시 여느때처럼우리들의 이야기로 돌아와 수다를 떨었고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하지만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뉴스에는 온통 세월호 얘기로 가득했고 구석자리에는 아직 구하지 못한 학생들의 숫자가 처음과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적혀있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였고 저보다 고작 한살많은 언니오빠들이 그렇게 오랜시간을 물 속에서 갇혀있었다는게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밤새 핸드폰을 들여다 보며 소식을 찾아보았던 그날의 제가 생각납니다.그날 고등학교 1학년이였던 저는 어느 새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2년의 시간동안 저도 친구들도 계절도 풍경도 모두 바뀌었지만 정부는 그날의 거짓말을 했던 그 모습 그대로 그날의 7시간을 묻으려 하고 있습니다.하지만 그렇게나 긴 시간을 어두운 배 안에서 보낸 언니오빠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잊지 않을 것이며 의미없이 흘려보낸 7시간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하늘에서는 행복해야 할 언니오빠들을 위해 영원히 그 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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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게 기억난다. 나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생활과 윤리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그 소식"을 들었냐고 물어보셨다. 교실의 몇 명만이 알고 있었다. 여객선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들은 것이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금방 구조되겠지, 아무 일도 아니겠지, 수학여행 가서 그게 무슨 일이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나는 신경을 껐다. 그리고 뉴스가 정정되었다. 아니라고. 지금 학생들이 침몰해가는 배에 갇혀있다고. 죽어가고 있다고. 나는 얼어붙었다.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게 맞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랑 동갑인 애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제주도에서 선생님의 말에 툴툴거리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놀고 있어야 했다. 나는 사색이 되어서 엄마에게 연락했다. 동갑내기 외사촌이 안산에 살았다. 난 정말 그 순간이 영원같다고 생각했다. 그 애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사촌은 다른 학교 학생이었다. 안도하는 동시에, 이게 남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의 전신을 지배했다. 이건 나의 일이었다. 내가 사는 국가에서 나와 동갑인 친구들이 당한 인재였다. 학교가 조용했다. 어딜가나 그 얘기였다. 우리는 울었다. 한 사람이라도 구출되길 바랐다. 나는 기도했다. 그날이 2014년 4월 16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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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뒤흔들었던 세월호 수업 도중 뉴스를 보는 것에 선생님을 포함한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을 만큼 안타깝고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 만약 우리가 저 배안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과 왜 뉴스로 보도만 하고 구해주지 못하는가에 대한 원망으로 초조하게 기다렸던 7시간 그 길었던 7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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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시간이었다. 수업을 듣고 있었고, 배가 침몰 됐지만 모두 구조 됐다는 말을 들었다. 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밥을 먹으러 급식실에 갔다. 전원 구출은 무슨.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두눈으로 생중계되는 상황을 하릴없이 지켜봐야 했다. 현실이라는게 믿기지 않았다.저렇게 배가 가라앉는데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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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조금 지난 시간, 실험실에서 잠시 나와 매점에서 간식을 사먹었다. 학생식당 내의 TV에서 세월호라는 여객선이 침몰했고, 전원 구조 완료라는 뉴스를 보고 "큰일이 날 뻔 했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돌아갔다. 몇 시간 후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보도를 들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보도, 점점 늘어가는 사망, 실종자 수를 보며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7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7 시간 동안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