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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강에 동기들과 놀러나온 그 시간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안심하고신나게 놀았던 그 시간누군가는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서간절하게 살고싶어했을 그 시간가족들을 떠나보낸 누군가에게는 악몽같을 그 시간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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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전원구출이라는 기사가 사실인 줄만 알고 학교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고 국민들은 모두 속았던 것이였다. 7시간 동안 배가 기울어지는 것과 가라앉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낀 배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선원들의 방송을 듣고 구명조끼를 차며 기다리던 그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제대로된 안내방송만 있었다면 모두 살아서 돌아오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무섭고 배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까.... 얼마나 부모님, 형제, 자매, 친구들이 생각나고 보고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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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고, 사고 소식을 들은건 오전 수학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컴퓨터로 수업을 하셨는데, 인터넷에 접속하자 포털사이트 메인으로 배가 세로로 뒤집혀있는 사진이 걸려있어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마음이 철렁했더랬죠 . 사고난 배에 우리들의 동생이자 후배일,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었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대다수 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곧 이어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저런 종류의 사고는 이제 다 대처할 수 있는거구나." "수학여행가고있었던 애들한테 잊지못할 시간이 되었겠구나. 너무 놀랐겠다." 뭐 이런 말을 주고 받으며 수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전원구조는 오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명 한명을 더 구조해낼수 있을지 여부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며 친구들과 저는 말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오보를 믿었던 저희의 작은 희망이 너무나 미안해서, 차가운 물 속에서 아직도 고통받을 동생들을 멀쩡한 마음으로 생각해낼 수가 없어서, 나라와 선장은 왜 그런 대처를 했는지, 왜 전원 구조라는 그런 아주 잘못된 사실을 보도해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여러번 더 죽였어야만 했는지... 그날은 유독 침울한 날이었고, 많이 울어야만 했습니다. 제게 14년의 4월 16일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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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그 이른시간부터 술을 마셨어요... 왜 저런거지 하면서..우리 아이들이 더이상 피해받지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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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본 게 아침 9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 그때 학교에 있었는데 선생님이 티비로 자료를 틀어주실려다 뉴스에 속보뜬 걸 읽어주셨어요. 그리고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전원 구조 기사가 떠서 반 아이들,샘 저 또한 아무 일 아니였네 하고 넘겼는데 점심에 폰을 키고 나서부터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전원 구조 기사가 오보였다는 걸 알고 나서요. 시험기간이었는데 공부에 손도 대지 못하고 뉴스만 계속 봤어요. 다 돌아오리라 믿으면서.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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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 난 여느때와 다름 없이 학교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마 역사 수업이었나 그랬을거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우리랑 동갑인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려고 탄 배가 가라앉았고, 다행히 전원 구조 됐다는 기사가 떴다고 하셨다. 자세히 무슨내용인지는 몰랐지만 일단 전원 구조됐다길래 아이들은 그래도 다행이라며 평소와 똑같이 수업을 했다. 하지만 그 기사는 오보였다. 친구들과 며칠을 그런 얘기를 나눴다. 기사는 오보였지만 그래도 다들 무사히 구조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때까지만해도 난 이 병신같은 나라를 믿었지. 하지만 구조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배 안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했다는 소리에 다같이 분노하며 울분을 토했다. 각종 사이트에는 아이들이 찍은 동영상들이 올라왔지만 난 아직도 그 동영상들을 보지 못했다. 볼 수가 없더라.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어쩌면 지금 같은 대학에서 같이 웃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분향소에도 다녀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 또래 친구들중 실신할 정도로 울며 나오는 아이들도 있었고, 스님,수녀님 등 많은 분들이 아픔을 나누고 계셨다. 같이갔던 엄마도 펑펑 우셨다. 쓸 얘기가 이렇게나 많다. 학교에서 1주기 추모식도 했는데 비가 엄청나게 오더라. 2주기때도 비가 엄청왔지. 그게 누구 눈물일까. 지금 매우 말도안되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하도 말도 안되는 일이 많아서.. 이렇게 우리는 기억하는게 많다. 너희들이 아무리 부정해봤자 우리의 기억은 여전하다. 앞으로도 그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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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기억하는데 그사람들은 기억을 못하는지.. 심리학의 섬광효과란게 있는데 충격적인 사건에는 그 주변 상황이 잘 기억이 난다는데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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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영어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영어 선생님은 수업 중 "얘들아 수학여행 가던 고2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 되었다네? 그런데 전원구조 되었다니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가슴이 철렁했지만 전원구조라는 말에 한시름 놓고 나머지 수업도 들었습니다.그렇게 하루의 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다 마친 저는 집으로 갔습니다. 부모님은 뉴스를 보고 계셨고 저는 참혹한 상황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 기사는 오보였고 많은 학생들이 사망•실종 되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매일매일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아직까지 18살로 남아있는 단원고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2016년 4월 16일의 7시간을 절대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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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학교 친구들과 티비를 틀어 뉴스를 접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였습니다. 구조되었다고 해놓고.. 그건 오보였습니다.. 친구들과 정말 며칠동안 안타까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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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학교에서 교육하는 날이여서 도서관에 갔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여러명의 학생들이 어지럽게 놀고있었고 저도 그중의 한명이 되었죠. 놀면서 꼭 인터넷을 만지는 학생이 있듯이 그날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세월호 침몰" 이였고 확인해본결과 300여명의 학생들이 전원구조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그대로 믿고 더 이상 신경쓰지않았죠. 그런데 교육시간이 지체되고 한번더 확인한결과 30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떨어지고 상황은 더욱더 좋지않게흘러갔습니다. 뉴스에선 긴박한 상황이 흘러나오고 한낱 조그만한 학생이던 저는 가만히 지켜볼수밖에 없었죠 다음날 선생님께선 살아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란종이를주셨고 꼭 돌아올거라 믿었지만 끝내 돌아오지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떠난 아이들이 왜 죽어야만하는지에 대한 진실도 묻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하고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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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국어 선생님이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구조 됐다는 말씀 하셨고 반친구들과 그 말을 믿고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받고 나서야 전원구조 됐다는 기사가 오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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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는 수요일. 오늘만 버티면 한주가 꺽인다는 생각에 그럭저럭 회사일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배가 뒤집혔대!"뭐지... 여객선 사고인가? 구명조끼,구명보트는 제대로 있었을까?"전원구조됐대"다행이다. 작은 헤프닝이었구나.아니었습니다. 작은 헤프닝인줄 알았는데, 오보라고했습니다.밥을 먹으면서도 일을하면서도 뉴스에 온 신경이 쓰였고, 작은 헤프닝이길 바랬던 이 사건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300여명의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은 괴물이 되었습니다.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정부는? 과연 그때 무엇을 하였던 것일까요?기억을 못한다면 기록을 보면 될것이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국가 재난 상태에 아무것도 멋했던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될수 없을 것 입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지난 7시간을. 그리고 잊지 않을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 그리고 무능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던 권력자들의 민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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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구조 명수만 보도를 할까?왜 수많은 언론사 방송국 기자들이 있는데전송되는 화면은 모두 같을까?대체 왜 사람이 있는 배가 가라앉는 전과정을보고있어야 하는건지.완전히 건지지는 못하더라도 더이상 가라앉지 못하게 시간을 벌 방법은 없는건지답답함만 들었고저조차도 쉽게 할수 있는 생각에 대한 답변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도 대통령도 신경쓰지않아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그 배를 생생히 보고만 있었던 제가.. 그냥 안타깝고 화가나도 아무것도 못하는 제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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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 고3이었어요. 아침에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 있는 모니터로 뉴스를 보다가 수업을하고, 몇몇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몰래 뉴스를 보다가 전원 구조되었대 라는 말에 안심을 하였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지요.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제가 감히 생각할 수도 없겠죠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을 함께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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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수학여행의 마지막날이였다. 제주도에서 우도로 가는 배에서 내리자, 친구가 말했다."야, 수학여행가던 배 침몰했다는데? 근데 전원구조래""아 그래?"별 생각이 없었다. 뭐, 놀라긴 했겠지만 전원구조됐다니까. 우리는 즐겁게 남은 수학여행의 추억을 쌓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공항에 갔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집에 가면 기다리고있을 푹신한 침대를 생각하고있었다. 그때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전화기가 울렸고, 나에게도 문자가 왔다."어디야? 괜찮은거지?"비행기를 타러가는 길엔 큰 티비가 있었는데, 티비엔 기울어가는 큰 배와 함께 삼백몇명이 실종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아까 전원구조라고 하지않았어?""어떡해..."하지만 나는 이내 별일아니라는듯,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듯 집에가는 비행기를 탔고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와 동갑인 아이들이 떠나갔을땐 이 일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않았다. 그러나 그아이들이 치지않은 수능을 보고, 그 아이들도 가고싶었을 대학에 입학해 엠티를 가고, 그 아이들도 해보고싶었을 것들을 할수있게 됐을때 점점 그 일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 아이들도 나처럼 평범하게 과제가 많다며 투덜되고, 가끔은 자체 휴강의 맛도 즐기고, 알바로 용돈을 벌고, 시험이 끝나면 치맥하러가자고 웃으며 지냈을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그 아이들도 할수있었던 것들을 하다보면 문득 마음이 아파온다. 7시간, 그 시간은 나에게 이런 의미이다. 어쩌면 그 아이들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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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기간이었습니다. 민법 시험을 앞두고 전원구조 속보에 마음을 쓸어내렸지만 시험을 치고 나오니 비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명히 기억 납니다. 뉴스를 보며 시험기간 제대로 보지 못한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 잃은 부모 마음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파 엉엉 울었습니다. 내 아이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안심하고 이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촛불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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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저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신 분들을 위해, 짧은 글을 남깁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을 것이며, 잊을 수 없습니다. 저희의 촛불이 되어주세요. 절대 꺼트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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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어린 너희들을 깊은 그곳에.....남겨야만 했던 부끄러운 어른은 오늘 날 들어나는 진실에 분노하고 억울함에 목이 메인다.미안해.....이말밖에 할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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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집안일 끝내고 tv를 켰더니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가 떴지요. 구조가 거의 다 되었다고 자막이 뜨길래, 역시 대한민국 해경은 대단하다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조 소식이 잘못 되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tv 곁을 떠나지 못하고 구조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통령만 보지 못했던 그 시간에, 아니 외면하고 있었던 그 시간에 우리들은 하나같이 마음 모아 절박하게 구조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구요!!!!우리 아이들의 그 아픔을 우린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며, 자식을 품에 안고 그 숨결을 느껴보지도 못한 대통령은 반드시 그 잊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을 우리 국민 하나하나에게 해야만 합니다!!!우린 아직도 그 고통스러웠던 날을 , tv만 보며 기도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기력했던 시간을 생생히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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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눈물 흘리시는것을 보며 뒤늦게 진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무식하고 철없던 나도 하교후 온종일 뉴스를 보며 실종자 수가 점점 늘어갈 때마다 슬퍼했고 구조자 수가 간간히 늘어갈 때 마다 안도했었던 게 생각난다.2014년, 6학년이던 나는 어느덧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가 되었고 갓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우리 오빠는 어느새 수능을 치뤘다.하지만 2014년이 2016년이 되었을뿐 지금 상황은 2년전과 다름없이 상처 투성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