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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는 저의 그 때, 그 울면서 그대들을 위해 기도하며 했던 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여전히 제게 그 7시간은 생생합니다.2014년 4월 16일, 당시 고 1이던 전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기 이전 반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친구가 뉴스를 보고 헐 뭐야 라며 말했고,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단원고였습니다.기사를 찾아보니,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 침몰 관련한 기사가 수두룩 했고,점심시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인원 구출" 이라는 식의 기사를 써 나가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그렇게 안도한 채 친구들과 반에 들어오자,언제부턴가, 기사 내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모든 인원을 구출했다던 내용에서,많은 인원이 실종상태라는 내용으로 말입니다.무슨 일인가 했습니다.분명 전 꿈을 꾼게 아닌데, 분명 모두를 구출했다 했는데,왜 뉴스에선 저리 많은 인원을 실종으로 분류하며,오전에서 오후로 넘어 갈 때의 뉴스의 내용과는 왜 그리 다른지.그렇게, 제 7시간은 여전히 또렷합니다.당시 18살이었던 단원고 학생들은,그 당시엔 저보다 1살 많던 언니, 오빠들이어서,얼마나 많은 꿈을 꾸며 하루를 살아갈 지 상상도 안 가는데,벌써 저 피지도 못 한 꽃들을 져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전 그 당시 기억을 전혀 있지 못 합니다.앞으로도 더 잊지 않을 것 입니다.여러분을 위해서, 청춘을 위해서.그를 위해 이렇게 글을 씁니다.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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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저 단순한 사고인줄만 알았습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우리는 모두 울었습니다. 선생님도 울고 학생도 울고 학부모도 울고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겁니다. 내가 밥을 먹고 수업을 받을동안 수학여행을 간다던 언니오빠들은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자기먼저 살겠다던 이기적인 어른들이 그들을 밟고 올라가 언니오빠는 가라앉았습니다. 그 이기적인 어른들위에 서 아마도 입막고 귀막고 눈막은 어른 몇분때문이겠지요. 우리는 이어른들에게 그때 무얼했냐 물어보지만 여전히 입과 기억은 닫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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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천천히 다가왔습니다.아침 회사 사무실에서 흘끗 본 속보에 침몰한 여객선에 아이들이 있다는 뉴스는 그저 약간의 놀람 뿐이었지요.그래도 연안여객선인데... 설마... 이래저래 일에 치이다가 오후에야 다시 본 뉴스는... 지금도 우리 딸이 놀릴 정도로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납니다. 나이 50에도 말입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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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사건이 터졌던 해의 저의나이는 중학교3학년이였습니다.학교에서 오후9시까지 야자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제친구어머니께서는 오늘 사람이많이죽었다라고하시면서 슬픈표정을 짓고계셨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왜그런말을 하셨는지몰랐습니다. 집에돌아와보네 저희부모님께서는 티비앞에서 뉴스를보시며 눈물을흘리고계셨습니다. 정말일어나서는안될 일이 일어나고야 만것이죠 저는 그때 언니오빠들이 받았던 느꼈던 고통이 어떠할지는 전혀느낄수는없지만 언니오빠들의 마지막모습을보고 슬프고 또 슬펐습니다.아직까지도 세월호이야기만 티비나 기사에서보면 눈물이납니다. 다시는 이런일들이일어나서는안되길 간절히바랍니다. 사람들기억속에 점점 잊혀져만가는 세월호사건이 벌써2년전에일일이란것에 놀랍기도했지만 그 2년이란 짧고도 긴시간동안 전 단한번도 세월호사건을 잊지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잊지못할것이고 죽기직전까지도 아니 죽어서도 잊지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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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내 동기들이었을 수도 있는 내 친구들.그날은 전국에 있는 모든 고2들이 영어듣기시험을 치는 날이었어. 시험 끝나고 몰래 숨겨놨던 휴대폰으로 네이버를 하다가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접했어.솔직히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어. 곧 전원구조라고 했고, 반 친구들과 나는 안도했어 그런데.너희들은 차가운 물 속에 여전히 갇혀있었고, 우리가 저녁을 먹고 야자를 하고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 갇혀있었어. 감히 나는 상상도 못할 두려움이겠지만 나와 내친구들은 너무 무서워서 잠도 오지 않았어...기숙사 복도를 걷는데 창문으로 푸르스름한 새벽 빛이 들어와 마치 배 안에 갇힌듯한 느낌이 들었어. 나도 너무 무서운데 너희는 얼마나 춥고 아팠니.벌써 3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나는 벌써 곧 대학교 2학년이 되는데, 아직도 멈춘 시간 속에 살아가는 너희와 함께 살아 갈게. 절대 잊지 않을게.누군가들은 7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국민들이 기억해. 천국에서 끝까지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어. 너무 미안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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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날은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위해친구들과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공부를 하다가 뒤쪽 테이블에서"배가 침몰했대 근데 학생들이 많이 타있대"라는 소리를 듣고 놀란마음에 바로 휴대폰을 들고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메인에 뜨는건 배가 침몰했다는 제목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놀란마음에 각자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들을 확인해보았습니다. 조금있다가 전원구조가 속보로 뜨고 저희는 안도해서"다행이다 다 살았네"라며 다시 공부를 하려고 펜을 잡았습니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그때 또 뒤에서 전원구조가 오보였고 아직 구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때부터 공부를 하지 못하고 카페에 앉아 하루종일 기사를 보고, 저보다 동생들인 단원고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일반인 희생자 분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그날일을 생각하면 어제 일처럼 제 감정들이 생생한데 어떻게 정치인분들은 다 모르겠다고 하고 어느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지 정말 억울합니다. 가족이 아닌 저도 아직도 세월호만 생각하면 슬프고 눈물부터 나오는데 가족분들은 그 심정이 어떠실지 헤아릴수가 없습니다. 부디 어느 누구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4월 16일을 잊지 않고, 아이들의 희생과 일반인 희생자 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유가족분들의 슬픔을 잊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저도 반드시 늘 기억하고 슬퍼하며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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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학교에선 휴대폰을 내고 컴퓨터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던터라, 점심을 먹고 나서야 수학선생님께 세월호 사고 이야기를 듣게되었습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오전부터 기울기 시작한 배에서 아직까지 나오지 못했단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고, 슬퍼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고가 잘 해결되기만을 기도했습니다. 집에 가는 50번 버스에서, 배가 완전히 기울어져 일부만을 남기고 바닷속에 잠겼단 소식을 보았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4월 16일 그 날의 세월호 사고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세월호 사고를 지금도 아파하고 기억하고있는데, 어찌 이 나라의 정치인, 의료진, 참모 등만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요. 당신들 역시 국민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아파하고잇는 세월호의 7시간, 국민들의 7시간, 우리들의 7시간의 기억들을 꺼내어 그 때의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더 이상 "기억나지않는다" 한 마디로 뒤에 숨어버리는 건 통하지않습니다. 지금, 하루 빨리 다시 앞에 나와 그 날의 진실을 말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직까지 잊지못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사고입니다. 저 역시 잊지않고 진실을 밝혀내는 데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돕는 국민이 되겠습니다.진실은 밝혀집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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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사로 접했을 때 너무나 깜짝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생각도 안 났습니다. 근데 시간이 점점 지나니까 자각을 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 속에 있는데, 정부는 감감 무소식이지, 저는 계속 기사를 접하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근데 그 감감 무소식이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밝혀지고 있는데, 왜이렇게 슬플까요.. 7시간 묵묵부답인 이유가 고작 시술이라니 너무나 분노가 차오릅니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전보다 기사를 조금 접하고 문자도 뜸해지고 요즘 제가 너무 무심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심해지지 않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벌써 이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많이 추우신 건 아니신지요. 부디 거기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첫눈이 왔어요. 이 첫눈을 맞이하면 참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당신들이 있는 곳은 따뜻한 곳이였습 좋겠습니다. 따듯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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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생때 옆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그 옆 고등학생들이 타고간 배는 바로 세월호였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가기 전 저희 동네 고등학교가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다왔다는 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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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 때 동네 병원에와서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있었어요. 이것 저것 신경쓰는게 많아서있지 자꾸 속이 불편했었거든요.검사를 받기위해 기다리는 동안 병원 로비의 tv에서 세월호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얼마 후전원 구조됐다는 보도를 보았고, 그것을 그대로 믿었었죠. 당연히 구했겠지. 우리나라 정도 되는 곳이 당연히 구했겠지라는 생각을 했었지요.그것이 오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설마... 좀 늦어지지만 전부다 구출하겠지 했었죠.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노란리본을 달고 있고, 그 때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아직까지 모르고 있습니다.그들이 기억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해서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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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도 잘 안봤던 나는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무조건 뉴스부터 봤고 학교에서도 모두 쉬는시간마다 스크린으로 뉴스를 보고있었다. 시간이 멈췄던 대한민국.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었을 그들이 떠나고 나는 너무 슬프고 화가났다. 구조 중이라고 떠들어댔던 진도 앞바다에서는 사실 구조 시늉만 하고 있었다. 결국 민간잠수부들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들어가 제대로 된 구조를 했고 모두 몸과 마음이 다쳤다. 그때는 몰랐던 아니 알수가 없었던 대통령의 부재. 이제는 알았으니 더 이상 모른척 할수가 없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고통스러워했을 그 7시간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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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된지 얼마 지나지않아 전원구출 이란 기사를 보았고 그 오보를 믿고 평소대로 지냈던 나 정말 죄송하고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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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작업 시작전 습관적으로 확인한 포탈뉴스를 보다 접한 세월호 사고..티비가 없어서 노트북으로 생방송을 켜고 옆에 컴으로 일을 하려하는데 도통 일에 손에 안잡혀 모니터만 쳐다보다 전원구조속보를 보고 안도하며 그대로 틀어놓은 뉴스가 시시각각변할 수록 어이없고 가슴아파서 눈물만 흘릴뿐...작업해줘야하는데 아무것도 할수 없어 그저 눈물만 흘릴뿐..종일 굶었지만 배고픈줄도 모르고 뉴스만 보면서 가슴을 쳤던 하루.옆에있는 내아이가 더 아팠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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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친구들과 같은 고2였습니다.학교에선 학교가 끝날때까지 핸드폰을 맡아두었다가, 학교가 끝나면 돌려줬기때문에 사고가 났는지 조차 몰랐습니다.핸드폰을 돌려받고, 동아리 활동을 하기 위해 석식실에서 배식을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보았습니다.인터넷을 들어가자 보이는건 사고기사였습니다.그 친구들과 저는 같은 해에 태어났기때문에 관심이 갔고, 걱정도 됐습니다.또한 그때 당시에 저희도 수련회 일정이 잡혀있었기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친구들하고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며 식사를 하였습니다.식사가 거의 다 끝날때쯤 보이는건 전원구조기사.전원 구조가 됐다는 기사를 보고 친구들과 저는 안도 하며,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습니다.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뉴스를 가득 채우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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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7시간이 아닌 몇날며칠을 기도했습니다.미안해서 울고 할 수있는게 없어서 울고,슬퍼서 울고 불쌍해서 울고..진짜 힘들었네요.왜 기억이 안난다고 회피하십니까?당신들은 무능력한게 맞습니다.남은 국민들이라도 잘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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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학교에서 여느때와다름없이 친구들과 얘기를나누고있었습니다.친구중 한명이 사고소식을 알려주었고 하루종일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구조되길바라고있었습니다. 티비에서 사고에대학 소식이나올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기억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201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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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잊지않을게요 한창 행복할 웃음으로 가득할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7시간의 진실 꼭 밝힐게요 이 진실은 결코 침몰되지않을 것 입니다 방에 걸어논 노란리본보며 항상 기억하겠습니다당시 고등학교 3학년 이였는데 21살이된 지금 까지 진실을 밝히지못한게 부끄럽습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게 부끄럽네요 .. 하늘나라에 있는 학생들뿐만아니라 미래의 어른이 될 아이들을 위해서 포기하지 않을것입니다 오늘새벽도 참 슬픈 밤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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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은 대학원 중간고사 기간의 마지막날이었습니다.시험이 오후여서, 오전중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잠시 딴짓하는 도중 핸드폰을 들었는데 "세월호 침몰중.." 이라는 뉴스 기사가 나왔어요.그때는 시험이 임박해 있었고, 구체적인 인원도 아직 나오지 않았던 이른 아침이라 "잘 구조되겠지.. 부디 인명피해가 없기를.."이라고 기도하며 마저 공부하고 시험을 보러 갔었습니다.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300여명이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날 하루종일 망연자실해서 뉴스를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그 다음날은 책을 사러 책방에 갔는데, 책방 아주머니도 "이게 무슨 일이냐.. 얼마나 무서울까 바닷물도 추울텐데"라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당시에 26살 대학원생이었던 저도 막연히 정부의 재난구조시스템을 믿으며, 잘 구조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18살 어린 아이들은 얼마나 정부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들을 간절히 믿고 기다렸을까요.학생들이 아닌 다른 일반인 희생자분들도, 우리나라의 한 일원으로 얼마나 열심히 살아오셨을까요. 스스로 열심히 일구셨던 나라를 믿으셨겠지요.희생자분들께 너무나 죄송하고 또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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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던 저는 그 때,강원도 수학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버스 안이었습니다.한창 떠들고 놀던 도중 한 친구가 벌떡 일어나 "야 제주도 수학여행가던 배 사고났대!" 라고 외쳤고, 모두 깜짝놀라 휴대폰을 들고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계셨던 담임선생님께서도 그 소식을 들으시곤 저희에게부모님이 혹시 걱정하실지도 모르니 우린 괜찮다고 미리 연락 드려라, 그리고 그 배는 전원구조라고 하니 걱정하지 말아라.라며 말씀하셨고 버스 안에 있던 친구들 모두 "아 그럼 다행이네~" 하는 마음으로 다시 왁자지껄 신나게 놀며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티비에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전원구조는 커녕 들리는 이야기라고는 300명 실종.. 등등의 속보 뿐이었습니다.저는 기억합니다.그 시간, 그 날,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후로도 한동안 밤새워 뉴스만 쳐다보며 눈물 흘렸던 일, 직접 만들어 달았던 노란 리본, 정부의 무능력한 대응까지모두 기억합니다.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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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오전 수업만 들었어요대학 입학 후 친구들과 처음으로 한강에 놀러가기로 한 날이었거든요인터넷 뉴스 한번 볼 새도 없이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갔어요서로 마주보며 웃는 건 무척 쉬웠어요미세먼지가 짙은 날이었는데도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펼치고 식사를 하고게임을 하고 커다란 비눗방울을 부는 사람을 구경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고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보았어요팔에 차고 있던 묵주가 끊어졌어요왜 이게 갑자기 끊어졌지 풀밭 사이로 떨어진 구슬들을 친구들과 한 알씩 줍고다른 친구에게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했어요너 봤어? 어떡해 이렇게 큰 일인 줄 몰랐어무슨 말이야?답장이 오기 전에 그때서야 뉴스를 보았어요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아이들이 거기 있대요버스에서 보았던 그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요멍했어요 그때부터강물은 여전히 잠잠했어요사람들은 계속 웃고 있었어요4월의 저녁은 유난히 바람이 차가웠고집에 돌아가는 동안 이 바람보다 더 차가운 물속에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울음이 났어요집에 오자마자 묵은 먼지를 씻고주워온 묵주 구슬을 한 알씩 꿰었어요선물 받은 묵주 팔찌였거든요 기도의 방법도 모르면서왜 사람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지숨쉬는 건 누구의 몫인지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라 또 울었어요기억해요 일곱 시간을 그 하루를죄책감을 안고 함께 가라앉던 모두를 떠올려 주세요행동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