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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기 3개월째 어디를봐도어디를가도 세월호만나온그날 배가물속에 가라앉을때 뱃속우리아기도 알았는지 배가당기든 아프고 감사하게도우리아기는 건강히잘태어났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차가운물속에 너무나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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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친구의 생일이였습니다. 학교에서 휴대폰을 걷어서 오전에는 배가 침몰한지 몰랐는데 , 방과후 친구의 생일을 같이 축하해주던 친구가 " 야 배 침몰했데" 라고 말했습니다.그때 네이버에 정말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가 있었고 전원구조라고 하여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저녁에 엄마랑 밥먹다가 뉴스보고 엄마는 우시고 저는 제발 무사히 구조되길 기도했던것이 생각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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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기기 8개월쯤. 한국에있는 가족들과 함께 지낼쯤이였죠. 뉴스를 보며 기기막혀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당장 전화에 실시간 뉴스속보에... 벌써 3년이라니... 아직도 끔찍한 말도 안되는 사건을.. 어찌 잊을까요꿈이라고 믿고 싶습니다...제 맘이 이리 찢어 지는것을.. 부모님들 마음은 감히 헤라리지 못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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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동안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막상 대학에 오니 길을 잃은 기분이 들던 22살의 나. 한 발자국도 못 나아갈 것 같은 기분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지는 괴로움에 잠시 쉬어가기 위해 휴학을 했다. 봄날의 어느 아침 늦잠에서 일어나 늘 하던 것처럼 TV를 켰을 때 내가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 가려고 탔던 배가 반쯤 기울어져 있는 걸 봤다. 현실감이 없었다. 자막에는 전원구조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단순사고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배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뒷목의 서늘함이 쉽게 가시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TV를 등지고 부엌에서 대충 먹을 아침을 차리고 먹으면서 나는 그 뉴스를 내 머릿 속 한켠으로 밀어두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했다. 12시쯤 되었을 때 웹툰을 보려고 네이버를 켜다가 아까 느꼈던 서늘함이 이번에는 등 뒤로 이어졌다. 다시 뉴스를 켜봤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워서 TV를 더는 보고싶지 않았지만 끌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꿈에서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광경을 그냥 그렇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봄인데.. 봄 같지가 않았다. 너무 추웠다. 내가 아는 이가 그 배에 타고 있던 것도 아닌데 나는 내 동생이 내 아버지 어머니가 내 선생님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고통은 유가족에 비할 수 없겠지.. 나는 그 날 안전하게 집에서 고통의 7시간을 보냈다. 그 날 나는 안전했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나라가 정말로, 완전히 안전하다고 믿을 수는 없게 되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학교 가는 길에 탄 지하철에서도,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면서도 문득문득 불안했고 여전히 불안하다. 우리는 정말 안전할까. 우리에게는 그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수 있나. 정말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잠시아마 망설였다면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2의 세월호가 있어서는 안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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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교사이다. 아침에 전원 구조 오보를 듣고 선생님들과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곧이어 오보라는 것이 알려지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은 "어떡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오후 공강시간에 교무실에서 실시간 속보를 틀어두었을 정도로 선생님들에겐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수학여행 참사... 정말 비극이 아닐 수없다. 그런데 그 시간에 피부시술을 받았다니! 평소 공무원 행동에 대한 철저함과 윤리성을 특히나 강조하는 이번 정부다. 비단 그 시간에만 시술받은 건 아니겠지... 항상 업무시간에 그걸 받아온 거겠지. 정말 치가 떨린다. 처참하게 죽어라. 천벌을 받는다해도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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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슬펐어요 아이엄마로써마음너무아파서뉴스조차들을수가없었어요이더운베트남에서차가운물속에가라앉은아이들생각하니온몸에한기가느껴질정도였던기억이나요너무슬프니까가슴이찌릿한느낌으로,,,그날아무것도못했던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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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저는 중학교 2학년이였습니다. 지난주 있던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저이지만 4월 16일은 그날의 날씨까지 정확히 기억납니다. 가끔씩 살랑살랑 불던 봄바람이 봄을 확인시켜주며 기분을 좋게했습니다. 일주일뒤에 잡월드로 현장체험학습이 있었고 그날 종례시간에 선생님께서 잡월드에서 할 체험을 컴퓨터로 신청하라 하셨습니다. 인기가 많은 체험은 접수가 일찍 끝나기에 종례가 끝나자마자 학교 도서관에 내려가 컴퓨터를 켰는데 포털에는 세월호 관련 기사가 올라오고 있더군요. 그때의 시간이 3시 30분쯤이였습니다. 학교에서는 핸드폰을 소지할수 없도록 했기에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고 싶지만 컴퓨터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너무 많고 어린나이에 얼마나 큰 일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그저 넘겼습니다. 집에 오는길에 핸드폰으로 계속 뉴스와 기사을 읽었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채 하교를 했습니다. 평소에도 시사에 관심이 많았고 무슨일이 생기면 주변친구들에게 그일의 대한 핵심을 소개하고 알려주는것을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집앞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했고 결국 둘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채로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행했습니다. 이렇듯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납니다. 집에와서 티비를 틀면 왼쪽 위편에 나오던 실종자와 사망자 수.. 실종자 수가 줄길 바라고 있었는데, 실종자 수가 줄면 사망자 수가 늘어나더군요. 엄마와 저는 그날 저녁도 먹지 않고 티비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뉴스를 봤습니다. 이렇듯 하나하나 기억납니다 잊을수 없는 기억입니다. 그날 나의 어깨를 치고가던 바람의 느낌 마저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을수 없습니다. 그날이 매우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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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tv에 서 눈을 못떼며 애들 구조 돠기만 가도했는데다른건 모르겠으나애들 구하지않고방치한거무슨 변명을 해도 절대 용서 안됩니다.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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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복도에서 휴대폰으로. 기사를접하고 낌짝놀라서 친구들하고 사고났다고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나는데 나랑동갑인 친구들이 사고가났어서 더 충격이였다 하지만 곧 괜찮다는 얘기들을 듣곤 마음을 놓고있었는데 그게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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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아홉시경 운동을 위해 찾은 헬스클럽 런닝머신 TV에서 사고 속보를 보았습니다. 당연히 구조될 거라 생각했고 역시나 운동을 하면서 살펴보니 전원 구조라 했지요. 하지만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라온 기사의 속보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원 구조 아니고 못 나온 사람 많다는, 핸드폰 압수하고 못 쓰게 한다는 단원고 학생의 댓글. 걱정하며 그 댓글을 캡쳐해두었는데 그게 설마 진실이리라고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 사진은 아직도 제 갤럭시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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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셀러리맨의 분주한 화요일 아침...출근하자마자 접한 세월호 침몰 뉴스에 놀라고 잠시 후 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했습니다.그러나 곧 이어 터져나온 정정 뉴스는 차라리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았었습니다. 지금도 세월호 노란 리본을 보노라면 눈물이 솟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화가 납니다.2014년 4월 16일... 모니터 화면에 뒤집혀 있는세월호를 보면서 그저 안타까워할 수 밖에 없었던 무력하고 가슴 아픈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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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학교 학원 집 이런날이였다 근데 기사가 떴다 배가 침몰했다고 아직 구조중이라고 많은 학생들이 아직 물 속에 있다고 그 기사를보고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하지못했다 아직도 그 이야기만들으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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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 구조 라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그리고 점점 달라지는 기사를 보고 마음 졸렸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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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사고가 났다고 하더군요. 뉴스를 보고 있었죠.그런데 전원 구조라고 하더라구요. 아..다행이다. 별일없겠구나....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은 부모님들곁에 있겠지하고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아침에 눈을 뜨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다시 보기위해 컴퓨터를 켰지요. 그 시간 이후로 저의 시간도 저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 한국에선 왜 하지 않았을까. 미국 뉴스에서도 나오던 생존시간, 바다온도..구조를 어떻게 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한국방송에선 나오지도 않더군요. 같은시간에 보험금과 보상금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세월호는 죽을때까지 잊을수도 잊지도 못할 이야기구나. 나의 죄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절대로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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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지하도를 지나가는데 어느 가게에서 튼 티비에 여고생들이 나와 얘기를 하고 있고, 자막에 전원구조 이렇게 뜨기에 별일 없겠지 하고 지나갔다. 일을 보고 점심을 먹고 나니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내 생각이나 마음 속 생각도 아직 기억나는데....어떻게 그 날이 기억나지 않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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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가 많은 인원을 태우고 제주도를 향하다 돌연 침몰! 하지만...전원구조라는 뉴스를 접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건만... 그것은 오보! 생방송 카메라에 쌍욕을 하던 이상호기자... 그제서야 세상이 달리보이더라. 그 후 같은 뉴스도 여러 채널을 돌려 재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제 아무리 팩트여도 일단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기래기들은 멀리 떠나고 정직하고 올바르며 정의감 있는 뉴스는 언제쯤 모든 채널에서 공통분모로 적용될까? 그 날이 조속히 와 세월호 같은 일이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았으면 소망한다. 또 이러한 나쁜 인간들이 다시는 세상에 활보하지 않았으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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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때문에 해외로 나온 저는 시차로 인해 점심 이후에 알았습니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인 아이들이였기 때문에 현실이 너무 와 닿았고 바닷속에 있을 아이들과 살아나온 아이들의 죄책감,그 상황 속에서 아이들의 의연함과 침착함이 타국에서 매일 눈물 흐르게 했습니다.사실 지금도 그러구요....사건 직 후 아들한테 전화해 많이 생각난다고...잘 지냐구....통화하면서 터지는 울음을 참아가며 했던 생각이 납니다전 4월 16일 그 날을 엄마된 심정에서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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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시간, 한창 공부해야할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던 나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후 수업을 듣고있었다. 개인적으로 흥미가 없던 윤리와 사상 수업이었던지라 맨뒷자리에 앉아서 책 밑에 휴대폰을 숨겨놓고 몰래 페이스북을 하거나, 네이버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이것저것 뉴스를 탐독하던 중, 나와 동갑내기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보았고 얼마가지않아 전원구조라고 뜨길래 별일 아닌줄 알았다. 하지만 그 뉴스는 오보라고 정정되었고,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온갖 지상파와 종편 뉴스에서는 떠들썩하게 가라앉는 세월호를 다루고있었다. 이것이 내 그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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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있습니다. 쌍둥이 제 딸들이 그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나 사회에 나와서나 그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그래서 애들에게 말합니다. 두 몫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팽목항으로 내려가던 그 길이 진실로 가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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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3이었다. 학교에서 폰을 걷어가서 몰랐지만 국어시간에 알게되었다. 구조자 명단이 계속해서 바뀌었고, 안산에서 전학 온 친구는 수업시간에도 계속 폰을 확인했다. 아는 이름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울면서 계속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날의 분위기, 하굣길에 본 저녁 뉴스, 집에 온 날 안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눈물 흘리셨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하루가 생생한데 왜 그날을 덮으려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