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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아침에 뉴스를 보며 설마설마 하던 마음.구조된 한 분이 아직 남은 애들이 많은데 어떡하냐고 다 못구하면 어떡하냐고 인터뷰 하셨던 음성. 그리고 전원구조라는 속보. 그 속보를 보고 장보러 마트에 가고.마트에서 친정엄마와 통화했습니다.아이학교 근처냐고 왜 이름이 비슷하냐고.담장하나 사이라고.그래도 다 구해서 다행이라고 하며 안도했던 통화.집에 와서 오보임이 밝혀지고 온종일 뉴스를 틀어놓고 어떡하냐고 발만 동동구르고. 아이가 아는 선배가 구출되었는 지 검색하고 검색하고...잘 사는 동네 애들. 높은 사람애가 하나라도 저기 탔으면 이렇게 늑장을 부렸겠냐고 했던 식구들과의 대화도 어제처럼 오늘처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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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어머니무릅인공관절수술후재활훈련을하기위해대학병원재활의학과에 어머니와 함께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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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배가 좌초됐다는 속보를 보고금방 구조하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얼마후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안심.집안일 하다가 다시 티비보는데 생존자수가 줄어들고 자꾸 탑승인원 카운트 숫자가 바뀜.어선들이 바다에 빠진 사람 구하는 영상 나오는데 해경이나 구조대는 안보임.점점 티비앞을 떠나지 못함.티비속 영상은 정지화면처럼 바뀌지 않고 생존자수도 변함이 없어 조바심남.왜 구조를 안하는지 너무 답답함.안에 있는 사람들 걱정에 절로 손이 모아짐.점점 선체가 뒤집히면서 절망함.눈물만 나오고 욕이 나옴.그 시간동안 왜 안구했지? 왜 못구했지?왜? 왜? 왜?하루종일 의문이 생기고 답답하고 열받고 너무 울어서 머리가 지끈지끈.왜 아이들이 그렇게 잠겨야만 했는지두 아이의 엄마로써 너무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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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지요.저희아버지도 해양경찰 저도 해양경찰 전경 출신이라 배가 넘어가려는 영상을 보고 구하기는 다 틀렸다.. 심지어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보고도 그럴수 없을텐데..못구할텐데..라는 이야기도 했었던것 같아요.그러다 속보가 바뀌고..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이 물에 잠기는 장면을 라이브로 볼 수 밖에없었습니다.뭔가 마음이 싱숭생숭.. 내가 저 배에 탓었더라면..? 우리 학교 아이들이 탓다면..내가 저곳에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까?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지는 불쾌감과 분노 억울함 감정이입등.. 어른으로써 해줄수 있는게 없었던 안타까움.. 해경이란 곳에 속해있어서 알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마음과아이들을 생각하는 안타까움이 뒤섞이며 하루종일 한쪽이 애려왔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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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이 회사로 출근해메신저를 켜놓고 일을 하고 있었어요메신저에서 뜨는 속보알림으로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오전에 처음 접했습니다.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인터넷의 기사들을 빠르게 훑어내려갔지만 이외의 별다른 소식이 없었고, 밀려드는 업무와 전화에 쫓겨 잠시 잊은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바쁜 시간이 지나 한숨 돌릴쯤, 메신저의 뉴스알림이 다시 뜹니다. 전원 구조.업무에 밀려 잊고있었던 사고소식,, 그제서야 다시 떠올랐고 사고소식을 잊어버렸다는 죄책감을 [전원 구조]라는 알림창이 씻어주는 듯 했습니다. 직장 동료와 다행이라며 얘기를 나누었고, 모두들 그대로 믿었습니다.그리고 얼마 후 다시 알림메시지가 뜹니다. 참으로 어리둥절 했습니다. 전원 구조라며 우리는 안심했는데, 실종자의 수가 세자리입니다. 나는 왜 그래도 믿었을까요? 구조해줄꺼라고, 구출해낼꺼라고..나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그리고 계속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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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집안일을 마치고 소설을 읽고 있다가 어머님한테서 전화를 받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인데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보고 전화하셨다기에 다른 곳에 갔고 이미 일정 마치고 오는 날이라고 말씀드리고 뒤늦게 인터넷으로 뉴스를 찾아 보았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아프고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자기 자식 키우는 사람들이 모진 말을 내뱉을 때마다 놀랍니다. 사익을 위해 그런 언행을 한다면 반드시 그 악업은 스스로에게 돌아갈 겁니다. 다들 잊는다 해도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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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공원에 놀러가려고 준비하던 중세월호 사고소식Tv를 보면서 안타까워 눈물도 나오고어떻게 어떻게~ 안타까워 하던중그렇게 안산단원고 전원구조 라는 속보에맘을 진정 시켜 다행이다 며집을 나섰더랬죠몸이 불편하신 엄마를 위한 나들이상동공원에 가서 그날의 봄을 누리며가까운곳에서 점심도 먹고기분좋게 집에 왔는데ᆢᆢ전원구조가 오보였다니~~ ㅠ그날도 지금도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우리의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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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뉴스를 보면서 사태가 심상치않구나 싶었었다. 뉴스를 보지않던 내가 나도모르게 그날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세월호 뉴스를 보며 신경이 많이 쓰였던 날이다. 그러다 전원구조기사를 접하고는 한시름 놓았었는데 왠일인지 오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끔찍한 현실이 눈앞에서 일어나버렸었다. 그러고는 몇일을 마음에서 찝찝함이 사라지지않고 내자식 내동생 내가족이 저리로 간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당시 적어놓은 다이어리를 읽어보니 떠난 그들과 남아버린 가족들을 생각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있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마지막엔 희망의 불씨가 이제 꺼진거라면 부디 그들의 육신이라도 가족품에 가져다주길 빌고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고있고 9명의 슬픔이 아직 바다속에 있다. 이젠 그 진실이 무엇인지 최고권력자가 그7시간 도대체 무얼했기에 이런 끔찍한 인재가 발생했는지 낱낱이 밝혀야헌다. 이젠 지치지않을거다. 이젠 그 진실이 나올때까지 나온후에도 그들이 왜 그렇게 가야만했는지 밝힐거다. 모두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련다. 여태까지 기억하기 미안해서, 잊고있어서 정말 미안하다.... 이젠 기억할게.... 밝혀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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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겨서 정신이 없던 하루로 기억합니다.카톡 한 번 못 열어보고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이렇다더라. 하는 얘기와 함께 오보로 났던 "전원 구조"라는 말을 듣고 그래도 다행이네. 했던 기억이 있어요밤늦게 퇴근해서 뉴스를 보는데 오보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아직 피지도 못한 꽃들이 있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어떻게 이런 하루가 기억이 안날 수가 있죠 나는,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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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당시 초등학교근무중이었고 선생님들과 회식중이었습니다 식사중에 사고소식이 식당 티비로 방송되었고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면서 처음에는 모두 구조 될거란 생각에 크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제자신이 속상합니다. 집에 돌아와 다시 뉴스를 접하고 뭔가 크게 잘못된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잃어버린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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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중간고사 끝내고 학교앞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당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당구장 내 티비를 통해 뉴스를 접했는데 그 당시에는 전원 구조 되었다고 보도 되었습니다. 안심하고 당구를 계속 쳤지만, 몇시간 이후에 실종자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금세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저는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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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저의 꿈꾸던 직장의 면접이 있던 날이었거든요.기쁜 마음으로 면접일정을 받고 제 뜻깊은 시작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며 TV를 보던 중 세월호의 소식을 접했습니다."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며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그렇게 기쁜 마음은 얼마 후 물거품이 됐고 무거운 마음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대로 운전하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몇번이고 번복되는 기사들과, 아무런 대책도 없는 우리 정부를 보며 무슨 정신으로 면접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저는 그 직장에 다행히 합격하여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면접날 하루종일 발 동동 구르며 마음이 몇번이고 쿵 내려앉았던 기억이 납니다.아직도 그 안에 있을 아이들과 지금의 우리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반드시 진실은 밝혀져야합니다.간곡히 바라고 기도합니다.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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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시점에 수업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세월호사건이 터진 당일날 난 재수학원에서 수업중이였고, 난 아직도 저 말을 여전히 기억한다.점수 받는거 하나에 매몰되어서, 당시 재수학원에 비치되어있던 신문도 읽지 않았었지만, 난 아직도 오전10시 2교시 영어 수업을 너무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휴대폰 없이, TV 없이 모든 정보가 차단되던 감옥과도 같은 생활을 지속하던 나조차도 세월호사건이 터진지 30분여 지나서 그 사실을 인지했다. 이렇게 충격적인 기억은 내 인생에서 두 번 뿐이다. 911테러랑, 그리고 세월호.아마 그 이후로 그 충격때문에 거진 2주 정도는 힘들었던 것같다. 일단 안읽던 비치된 신문도 매 교시마다 전부 다 읽었었다. 사실 일부라도 더 살기를 바랐는데, 결국 실종자중 생존자가 하나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였을 뿐이였다.내 친구도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지만,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집단으로 몰살되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고통스러웠었다. 심지어 그 학생들은 내 동생이랑 같은 나이였다. (지금와서 보니까 내 동기랑 같은 나이기도 하다.) 동생이 저 상황이라면? 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행여나 그 때의 상황을 그들의 시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견딜 수 없었다.그런데 요즘에, 사회에 있던 사람이, 그것도 그 사회를 통치하던 사람의 측근들이, 그 날에 진료가 있었는지도, 뭘 했는지도 기억을 못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난 정말 그 사람들이 무슨 일종의 정신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충격적이지 않았던 걸까?아니면 나보다도 임팩트가 커서, 그 때의 기억이 삭제되어 버린걸까?"수업을 하기가 힘들단다."난 여전히 그 강사의 어투까지 기억이 나고, 그 사건이 그 당시 기숙학원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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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영어학원을 갔다가 고장난 핸드폰을 수리하러 역삼역 서비스센터에 방문하였다. 기다리면서 텔레비젼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사고에 관련된 방송이 계속해서 심각하게 나오고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그 순간 나는 탑승자 전원이 무사히 구출되기를 기도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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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얼마후 전원구조 보도 소식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오락가락 발표, 혼선, 뉴스 소식도 제각각현장을 보여주는 영상에선 배안에 갖힌아이들이 보이고 정작 구조에 나서야 할해경해군119등보다 지역 어민들배가 더 많이 보인 그날의 현장 모습이 아직도 생생.구조다운 구조의 모습은 보이지않는 가운데서서히 기울어지며 결국 물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를 뉴스를 통해 바라보며 한숨과 한탄만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간.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그 아비규환의 배 안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혹여나 구조의 손길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외마디 비명속에 세월호와 함께 차디찬 맹골수도 바다 속으로 잠기는 그 순간.그 어디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구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정 국가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 할 수 있는가.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뻔뻔히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뭐 같은 인간들그리고 침몰후 나타나 이상한 발언만 쏟아내는 이상한 대통령.그 의혹들이 하나둘 이제야 밝혀지는 가운데 세월호 유가족들과 특조위를 향해 인간말종 같은 발언들을 쏟아냈었던 작자들.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ㅇㅣ제 304개 하늘의 별이 된 그들을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관련된 모든 정부기관 그리고 동조자 방조자 망발을 한 모두에게 엄한 처벌만이 다시는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 이런 참혹한 인재가 발생하지 않을것이다.우리는 기억하고 행동해야 합니다.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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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왠일이야, 뭐야, 말이돼, 대한민국이 눈앞에서 물에 빠진 아이들을 못 구해?? 부모님들 어째ㅜㅜㅜ 뭐 이런 걱정과 의구심, 설마하는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내다 퇴근후에는 거의 티브앞에서 계속 붙어 있었던거 같아요. 눈물을 주체 못하며ㅜㅜㅜ 이거 뭐야 뭐지ㅜㅜㅜ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나라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가 왜 미개국이고 우리가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사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피지도 못한 여린 꽃들은 우리의 가슴에서 눈물로 피어났고 우리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죄인으로 이렇게 남아서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네요ㅜㅜ 빚을 갚을 수나 있을까요?나눌수나 있을까요? 세월호의 아이들로 인해 왜 우리가 올바른 유권자가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을 알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바보처럼 함부로 취급 되어져서는 안되는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배우고 있습니다.우리는 소리 높혀야하고 우리는 외쳐야합니다 . 그들에게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하챦은 존재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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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였습니다 밥을 먹다가 한참을 식당에서 떠나지 못하고 앉아 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아이들을 만날때가지 기억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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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전역을 2달 앞두고 있을 때 아침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사무실 tv를 켰습니다. 바깥 하늘은 무거운 회색 빛이었습니다.처음에는 배가 침몰중이라지만, 구조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기에 다들 무사히 구출되나보다 싶었습니다.해경의 빠른 조치가 이루어지고 다들 구할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오후에 전원구조 오보라는 소식이 떴고, 사망자가 한 두명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완전히 뒤집혔는데도 실종자 수가 100명 단위인 것을 보았을 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생활관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 뉴스만 틀어놓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사고랑 전혀 상관이 없었던 저도 그 날을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뻔뻔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하거나 말도 안 되는 거짓으로 변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만 빼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 섬광 기억이 발동한다는게 말이 되는지...양심을 팔아먹은 이들은 끝내 이길 수 없다는걸 보여줍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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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가진 부모로서 세월호를 생각하면마음이 찢어집니다..죽을때까지 세월호를 잊지못할꺼 같습니다,또한 그날같은일은 반복되지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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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년에 공시생이였어요하루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 저곳 커뮤니티에서 최근 화제가 되는 이슈거리를 잠깐 보는게 하루의 시작이였습니다그러던 중 세월호 속보를 보게 되었지요약 백단위의 승객들과 함께 좌초 중이라는 뉴스였는데 그냥 단순 헤프닝이겠거니 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이슈거리들을 보고 있었는데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갔습니다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보고 안도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 보도 되었다는 정정기사에 망연자실 하였죠.. 간절히 아이들과 승객들이 무사히 구조되길 바랬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늘어나는 사망자와 실종자 수한동안 심각한 좌절감과 이 사태에 대한 분노로 지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