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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나오는 길에 소식을 알게 되고 학관에 와이티엔 뉴스 항상 틀어놓는 곳에 친구랑 앉아서 티비보면서 밥먹다가 전원구조라는거 보고 다행이다~ 하면서 점심먹었어요. 내가 티비보이는 자리 친구가 등뒤에 티비있는 자리였던 것 친구가 하늘색 옷을 입고 있던 것도 기억이 나요. 전원구조가 오보인거 알고는 도서관에서 계속 디엠비뉴스 듣고 네이버 뉴스 찾아보고 폰만 보다가 집에 왔어요. 종교도 없는데 기도하다가 자고 다음날 아침먹으며 뉴스틀어놓고 무섭고 안타까워서 계속 눈물났어요. 학교왔는데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계속 울음이 나왔어요. 다 기억나요. 그래서 더 화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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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말 어제 일 같이 기억이 나네요 그날도 다른날과 다름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있었습니다. 식사를 먼저 마친 저는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기 시작했고 포털사이트 1면에 세월호 기사가 정말 도배가 되어 있더군요 처음엔 별 일 아니겠거니 잠시후 전원구조라는 기사에 우와 우리나라도 대단해졌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올라온 정정기사들은 정말 절망적이고 안타까울뿐이였습니다. 퇴근 후 귀가하여 어머니와 뉴스를 보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그리고 구조된 아이들과 아직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님.. 정말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납니다.. 하지만 왜 그 분은 기억을 못하시는지 당쵀 7시간동안 무얼 하신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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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수업 중이었습니다. 무슨 수업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중간 뒤쪽에 앉아 교수님 몰래 핸드폰을 하고 있었죠.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참 다행이구나 생각했어요. 근데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다시 기사를 보니 오보였더라구요. 기사를 보고 있는데 한 선배가 말해줬어요. 우리 선배이자 불과 저와는 나이 차이가 3살 밖에 안나는 여선배가 세월호에 타고 있다고 연락이 지금 안된다고. 저희는 사범대이고 그 선배는 아주 똑똑해서 항상 과수석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복수전공을 해서 그 전공으로 한 번에 임용시험에 합격한 분이었죠. 단원고에 첫 발령 받은 해였나? 발령 받은지 2년째 되는 해였나 그랬을거예요. 결국 그 선배는 아이들과 함께 별이 되셨습니다. 학교에서 추모제도 하고 비석도 세웠어요. 다른 분들도 많이 마음 아파하셨겠지만 저는 좀 더 관련있는 관계인지라 더욱 크게 느껴졌어요. 그 선배가 조금만 덜 똑똑했다면... 그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고 갔다면... 아직도 세월호 기사나 소식을 접하면 울컥합니다. 다들 오랫동안 기억해주세요. 저도 이 안타까운 사건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예쁜 별들이 되어 행복하세요. 아직 찾지 못한 다른 친구들도 얼른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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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근무중이라 첨엔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구조라하여 평소와같이 동료랑 농담도하고 여느때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오보였고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여 구내식당에 있는 티비로 다같이 뉴스를 지켜봤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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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개인적으로는 아무일도 없는 평범한 날이었습니다만은 어떻게 잊어버릴수가 있을까요아침에 애들둘을 학교를 보내고 차한잔하고있는데 아이친구엄마한테서 카톡이 왔더라구요 그래서 하루종일 티비를 켜놓고 있었습니다....보다가 울다가 보다가 울다가 했던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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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잔 날이었습니다. 다른 때보다 조금 늦게, 9시가 조금 지나서 집을 나서려고 운동화를 신던 중이었고, 어머니는 제게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시고는 거실 TV를 켜셨습니다. 화면 가득 푸른 바다와 기울어진 거대한 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가방을 메고, 보온물병을 한 손에 든 채로 현관에 멍하니 서서 TV를 봤었습니다. 엄마는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하셨고,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 아직 물이 많이 차가울텐데, 구명조끼랑 구명정은 충분히 실려있기나 할까 저 사람들을 어쩌면 좋으냐 걱정하셨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저는 선박사고라는 낯선 상황에 놀라긴 했지만, 잘 수습될 수 있을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걱정하지말라고, 어딘지 모를 망망대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육지 가까운데고, 방송사헬기가 이렇게 생중계를 할만큼 위치도 정확하니 금방 구조할 수 있을거라고, 밤이 아니라 아침이라서,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금방 구할거라고 바보같은 말로 엄마를 안심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캠프간 애들이 죽고, 리조트가 무너지더니, 배가 뒤집힌다고. 대통령 잘못 뽑아놓으니 나라에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며 배가 저렇게 큰데 주변에 구조하는 사람도 너무 없고 구명정 떠있는 것도 없는 게 이상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게 서로 무슨 상관이냐고, 기우제 지내던 고대국가도 아닌데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말라고 금방 구한다고 어머니를 타박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속보로 나오길래 안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끔찍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고, 저는 다시는 그 날 이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아침 집에서의 짧은 대화, 점심시간 식당에서의 공기, 물 속으로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과, 계속해서 정정되던 탑승자 수 구조자 수에 당황해하는 것 같던 뉴스앵커의 목소리,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시래기된장국과 계란말이, 호박나물, 볶음김치 식판까지 모든게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당신은 그날의 일이 기억나지 않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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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등원시킨후, 뉴스로 접했습니다...그 이후론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능한나라, 힘없는 국민, 구조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말들 또한 되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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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메가박스에서 영화보러 들어가기 전 시간이 비어, 바로 건물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세월호 관련 뉴스를 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원 구조였었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더 영화같은 소식들이 티비를 통해 들려왓습니다. 그날은 결코 잊혀지지않는 생생한 하루였으며 믿음을 잃은 결정적인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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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워크샵으로 남이섬가는 길이었어요 ㅜㅜ 첨에 침몰소식이 속보로 떠서 놀랐다가 전원구조가 다시 떠서 안도했었는데! 그날 남이섬 들어가는 배타며 직원들과 얘기한것들도 기억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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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사고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제목을 보고서 넘어갔습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다가 본 뉴스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믿기지않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지금도 그 사건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진실이 꼭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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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둘째가 태어날날짜보다 늦어져서 산부인과에 갔다가 뉴스를 봤어요. 전원구조가 됐다길래 떨리는 맘 진정시키고 진료를 했죠. 그런데 집에 왔더니 오보라네요. 그래도 설마 구할수있겠지 하며 걱정스런 맘으로 티비만 바라보고 있었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간은 흘러가는데 구조소식은 없고.그후 삼일후 둘째가 태어났고 벌써 31개월이 됐어요. 아직도 둘째를 보면 그 뉴스장면이 떠올라요. 아마 이 기억은 오래오래 기억될듯. 잊을래도 잊을 수 없을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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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tv앞에 고정되어 아무 것도 못했지요.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지 못했더라면 덜 아팠을까요? 어떻게 이런 오보를 전할 수가.. 어떻게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보고있는데.. 그 많은 아이들을.. 우리 국민들을 처참히 포기하는 것인지.. 3살된 둘째 밥도 제대로 못챙기고.. 학교끝나고 집에 온 큰 아이한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마음이 무너졌던 날입니다.일개 국민 중의 힌 명도 몇날 며칠을 마음이 아파.. 눈물 흘렸던 그 날을... 어찌 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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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저는 평범한 전업주부여서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청소와 집안일을하며 티비를 켰는데 속보라고 뜨면서 사고소식을 보도하고있더라구요..자막으로 전원구조라는 글씨도 보았고..그래서 안심했는데 오보라고ㅡㅜ그때부터 티비앞에서 떠나질 못하고 울면서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친정이 안산이라 더 남일같지 않았구요..친구의 친구 동생도 있다하고 엄마의 지인의 자녀도 잇다하고...자식을 둔 부모마음을 알기에 정말 가슴이 찢어질듯 아프고 자꾸 시간만 흘러가는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지금도 세월호 얘기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져요저 양심도 없는 썩어빠진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밖에 모르는 무능한 짐승만도 못한것들..반드시 죄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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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티비 속보를 보고 이야기하며 깨운 기억이 나요. 흐린 날씨에 어쩌니 했는데 전원구조라기에 다행이라며 인터넷을 했는데 점점 소식이 달라져서 당황했었고 황당했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일을 무언가 했는데 그 일 자체는 기억이 안 나지만 구조자 수가 늘기는 커녕 줄어드는 거에 밤새 같이 기도했었어요. 정말 에어포켓의 존재를 믿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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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고3이었어요. 핸드폰이 없다보니 아침부터 소식을 듣지는 못했는데, 애들이 쉬는시간에 수근거리던 분위기는 기억나요. 한 친구가(이름도 기억나네요 지원이) 배가 물에빠졌대~ 이랬었고, 밥먹고 돌아와서 5교시 수업이 일본어였어요. 그래서 일본어선생님보고 세월호 어떻게됐냐고 여쭤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다음날에 이유는 기억이 안나지만 학교를 오전수업만 마치고왔는데 집에있던 언니랑 내내 뉴스 구조작업 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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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에 살고 있습니다. 잠들기전, 사고가 났었고 전원구조 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그냥 작은배의 단순 해상사고려니..하는 생각과 함께요. 새벽에 일어나 습관처럼 핸드폰을 켜고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배와 함게 가라 앉다니.. 정신도 차리기 전에 아내와 함께 눈물부터 났던 그 날을 전 또렷이 기억합니다. 과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에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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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환자보고 있었죠.속보가 이어지면서 구조소식이 이어지면서 설마설마 했는데...2014년에 이런일이 벌어지리라곤...손석희님 말씀대로 김관홍 잠수사님 유언대로 뒷일을 잘 마무리해서 유족분들 마음에 진정한 위로와 평안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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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을 나갔죠. 직원이 사고 났었는데 전원 구조 됐다고 그러길래 신속한 구조 작업이 이뤄졌나보다 생각했죠. 저녁 무렵 주차하고 무심결에 티비를켜고서야 끝없는 비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30년 전 수학여행 코스가 지금도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2만원도 안되는 비행기값으로 제주를 가는 시대인데 어떻게 지금도 가는 편은 배편, 오는 편은 항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누가 이런 상품을 기획하고 지속하고 있는지부터 분노가 일었습니다. 왜 쓸데없이 비행기보다 비싼 연안여객 상품을 이렇게 고집스럽게 하고 있는지... 그 뒤로 몇달은 이 사회에, 우리의 무감각과 욕망에 분노하고 자책했었네요.우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사람으로 살고 싶기는 한걸까?...아이들의 죽음조차 갈등과 대립의 매개로 삼는 저 권력에 왜 무관심할까? ...슬프네요. 아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안하다. 너무 너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