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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처음 사고 소식과 함께 아이들을 모두 구조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웃었어요. 조금 무서웠겠지만, 내후년엔 아마 추억이 되어 있을거야 라며 안심했었는데, 자꾸 뉴스가 나오더군요. 오보였다고, 아직 구조하지 못했다고,일을 해야하는데,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왜 배가 저기 있는데,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는거지? 왜 누구 한명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없는거지? 배가 끄트머리만 남을때까지 TV를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왜 한사람도 구하지 못한거죠? 왜 아직도 그 날의 진실을 우리는 모르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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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으레 그랬듯 스누라이프 확인. 사고 소식을 담은 게시물에, 본인은 배 안에 있는 사람인데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고 전원 구조되고 있다는 동물명 개구리의 댓글이 달린 걸 읽고 안심. 전원 구조 보도. 택시를 타고 등교하던 중 라디오에서 사고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는 걸 들으며, 다 구조되었다는데 소식이 느리네 생각했던 기억. 11시부터 12시반까지 강원택 선생님의 정당론 수업. 1시부터 4시까지 백창재 선생님의 지구화 시대의 정치 수업.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뉴스. 스누라이프를 다시 확인해 보니 개구리의 댓글은 삭제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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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 무서워 도피성 휴학을 하고 하는거라곤 토익공부밖에 없던 시기.그 날도 이른 아침 눈은 떴으나 거실에 누운채로 빈둥거리고 있었다. 눈과 손은 핸드폰을 향해있으면서 습관적으로 켜놓은 티비에서는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좌초됐다는 뉴스가 나왔다.그래서 얼른 친구들한테 단톡으로 "야 제주도서 배 기울었단다."라고 알렸고 얼마 뒤 사상최악의 보도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다시 친구들에게 "근데 다 구했대~"라고 알리고는 화제는 또 바꼈다. 어제 뭘 먹었는지 오늘 아침에 밥 먹고 약은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한 내가 왜인지 그날만은 그 시간에 뉴스를 보던 나의 모습이 마치 유체이탈된것 마냥 제3자의 입장에서 보듯이 뚜렷하게 기억이난다. 누워있던 자세하며 그 날의 날씨도. 그리고 전원구조 기사가 오보였다는 뉴스 이후로는 눈떠서 잠들기전까지 줄곧 뉴스만 보고 눈물만 흘렸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에. 한낱 백수였던 나도 하루하루가 똑같았던 나도 그 날만은 이리도 또렷하게 기억이나는데 당신이 생각 안나면 안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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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와서 첫 중간고사로 민주시민과 헌법을 보고 나와 정치학원론 수업을 들으면서 세월호 실시간 뉴스를 봤던 것이 기억납니다. 중간에 전원구조 자막을 보고 핸드폰을 끄고 수업에 집중하다가 다시 핸드폰을 봤을때 느꼈던 참담함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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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같이 사무실에서 일하고있었어요여객선 사고났다고하고선 좀이따 전원구조 소식듣고선 아무일 없겠거니하고 일을 계속하고 있었죠잠시후 뉴스 속보로 전원구조 오보라고하면서 구조현장을 계속 비춰줬더랬죠.....눈앞이 캄캄하고 점심시간에도 식당에서 모든 임직원들이 티비에만 집중했어요......아니 나같은놈도 다기억하는데 하물며 나랏일하는 사람들이 모른다 기억안난다하면 끝납니까애들 어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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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근처 산에 운동을 갔습니다. 내려오던길에 산 아래 수제비집에 들러 점심을 먹으며 보도를 저음 보게되었죠. 그래도 전원구조 라는 내용과 설마 저정도면 금방 구조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식당을 나섰습니다.그런데 집에 와서 보도를 보니 사태가 심각했습니다. 화면은 계속 반독되는 화면만 나오고 구조됐다는 숫자는 줄어들고...그때 뭔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몇일동안 뉴스는 jtbc를 보고 현장 상황은 팩트tv와 이상호기자의 실시간 화면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과 언론의 무제를 실감했습니다.이젠 바꿔야합니다. 대통령 하나가 아니라 그를 따르고 그에게 부역했던 사람들 모두 응당 책임을 져야합니다. 현상황을 모면하려 괴변을 하고있는 기득권자들에게도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스스로 자복하지 않으면 반드시 응징해야합니다.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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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오보 소식을 듣고 뉴스에서 점차 침몰해가는 배를 보며 현실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설마 설마 구조 되겠지 되겠지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시간이 흘러가도 아무런 진전도 없고 되려 구조하다 돌아가시는 분들이나, 기레기니 뭐니 하는 말들과 서로 책임 묻기 바쁜 모습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분열되어있나 싶었습니다. 하늘에 빌고 빌었습니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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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포장해가려고 주문하고 앉아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다들 켜져있는 tv를 보면서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행이라면서 진짜 큰 사고 될뻔했다는 말을 주고 받던걸 들으면서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때 그 분위기랑 모습이 마치 사진처럼 아직까지 박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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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학교 보내고 작은 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집에 있는데 윗집 아이 엄마가 놀러왔어요. 차 마시고 얘기도 하다 핸드폰도 보다 시간 보내고 있는데 상대 엄마가 사고 났다고 핸드폰을 보며 얘기해줬어요. 그리고 좀 있다가 전원구조 됐다며 다행이다 하고 헤어졌어요. 하교한 아이 데리고 와서 어떻게 됐나 하고 TV를 켜고..그 이후 아무것도 못하고 그렇게 눈물만 훔치면서 지켜만 보고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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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뉴스만 하염없이 봤어요.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바람에 뒹구는 낙엽만 봐도 즐거웠을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두고두고 곱씹을 추억이 생기겠구나 했었는데오보라고 밝혀지며 머릿속이 텅 비어갔습니다.제발 전원 다 구해지길 바라며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뉴스만 봤어요!왜 기억이 안 납니까!!!!!육지와 저렇게 가까운데 왜 안 구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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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고등학교 3학년 영어시간이었다.자습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그날따라 유난히 공부가 하기 싫어 태블릿PC로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세월호라는 선박이 침몰중이라더라. 세월호와 같은 회사 선박을 타고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나와 친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깜짝 놀랐었다.곧이어 천만다행으로 그 배애 탄 단원고 학생 전원이 구조되었다더라는 소식에 놀란 맘을 잠재우고 다시 맘을 다잡고 공부를 하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원고 학생의 첫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시끄럽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반이 조용해진 것도 아마 그 때부터였을거다.아직까지도 난 수능날의 기억보다도 그 날의 기억이 더 생생하다.잊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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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은 도무지 기억 나지 않지만 그날만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짧은 시간 학원을 다니며 용돈벌이 하던 때였습니다. 출근 전 뉴스를 트니 배가 가라 앉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안심하고 출근하니 아침에 제가 본 뉴스는 사실이 아니었더군요. 학원의 같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걱정하고 몇날며칠을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간절한 바램이 담긴 소식은 들을 수 없었고,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을 지켰어야 할 정부는 없었다는 사실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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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뭘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날정도로 굉장히 평범했던 하루였어요.밥 먹으면서 뉴스봤었던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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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들어오신 선생님께서 인터넷뉴스를 보고왔다며 세월호 사건 애기를 해주었는데 그때까진 전원 구조됐다고 기사가 떴다고 하셨음 다행이다라며 생각하고 수업을 계속 들음 자리도 기억남 가운데 분단 4번째줄 맨 왼쪽자리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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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3학년때의 일입니다. 저희 반 친구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고 학교 컴퓨터와 연결된 티비로 YTN의 뉴스를 보고있었습니다. 수업시간이 시작됐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선 수업 진도를 나가야하니 나중에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반은 한 목소리로 선생님께 10분 더 보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매 수업시간마다 같은 상황을 반복했으며 전원 구조라는 사실에 기뻐하고 오보라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학생들 마저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공부시간을 쪼개 세월호에 탑승하신 국민들이 무사하 구조되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대통령의 7시간 진실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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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헌혈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들었고, 처음에는 큰 일 아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떠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친척도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친구의 친척 또한 결국엔 더나가버렸습니다. 어쩌면 주위의 사람에게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기에 우는 친구를 보며 속으로 울었습니다. 어쩌면 후에 볼 수 있었던, 먼저 떠나가버린 친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울었습니다. 그 친구들을 사진 속으로만 봤을 때 꽃밖에 전해 줄 수 없었던 저의 무력함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다음 생에는 꼭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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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시험 기간이었습니다.잠시 쉬기 위해 들었던 핸드폰,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기사.눈물이 흘렀습니다.나의 가족도, 친구도, 사랑도 아닌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인데, 왜 이리 마음이 아팠을까요.저는 어제도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그들의 하늘은 부디 따뜻하길 기도하고 왔습니다.22,992시간을 잊지 않았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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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이여서 학교에서 공부를하다가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것을 보고 대수롭지않게 넘겼습니다.그런데 집에와서 뉴스를 보니 200여명의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했음을 알고 구조되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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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 친구들과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다가올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평소와 같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고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침몰 뉴스는 금방 구조될 줄 알았기에 안타깝기만 한 하나의 뉴스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티비를 켜보니 모든 뉴스들은 세월호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고 금방 구조되어야 할 친구들의 소식은 잠잠하기만 했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슬퍼서 그 날은 공부를 모두 제쳐두고 뉴스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나이인 제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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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에서 늦은 잠을 자다사고소식을 접하고 놀랐다전원구조소식이 나온후안심하고 다시 잠오보였다는걸 알고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우린 이미 알고있었다구조는 이미 불가능이라는걸그뒤에어포켓쑈등을 지켜보면쌍욕이 나왔지만유가족들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