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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들에게 닿을지는 모르지만 나름의 속죄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의 용서를 구해봅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당신들은 여기서 살 수는 없겠죠. 저는 계속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지금은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하나 각자의 생명으로 환하게 빛이 났을 그들을 말이죠. 비단 단원고 학생들 뿐만 아니라 용기 있는 선택을 하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현실과 타협을 하는 경우가 없기는 힘들죠. 하지만 그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소중한 생명 대신 다른이들의 생명을 더욱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 분들 같은 존재를 우리는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긴 하지만 매번 타협을 하고 무너집니다. 죄송합니다. 수많은 별들 중이지만 그 별 하나하나가 그저 그런 별일까요? 누군가에게는 의미있고 뜻 깊은 별 저도 그런 별을 잃지 말고 소중히 아끼겠습니다. 할 말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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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을 하다가 뉴스를 접하고 설마? 가슴이 철렁.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그러나 결국 오보. 하루 종일 몇 명이 구조됐는지, 어떻게 우리가 아이들을 놓쳤는지 생중계 되는 모습을 보고.. 몇 달을 새벽잠을 설쳤던 기억. 아직도 미안하고 아직도 먹먹합니다. 절대 잊지 않습니다. 잊을수가 없습니다. 잊어서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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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일못하고 제발 구해달라고 악을쓰고 내가 할수있는게 없다는 무기력함에 분노하고 그아이들과 동갑인 내아들이 대상이 아닌거에 안도하는 내자신에 실망하며 보낸 끔찍한 평생 잊지못할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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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4월 16일 보통날 처럼 회사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있는데 [속보] 세월호 침몰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전원구조라는 기사에 안심을 하며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오보였다는 사실에 충격이였고, 어떤 방법이든 구조를 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해경에게 분노가 치밀었고, 화가났다.. 그리고이젠 그여자의 7시간이 너무 궁금해 졌다.아이들이 사람들이 물속에 가라앉는 그 동안 너는 무얼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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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사무실에 앉아 근무 중이었는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속 뉴스만 확인하다 점심을 먹으러 지하 식당에 내려갔는데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오보였고 나는 그 날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꾸역꾸역 습관같은 야근 시간을 채우고 집에 와선 오랫동안 가 본 적 없는 학교 커뮤니티라든지 생전 처음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지 무엇이 사실인지를 알고자 울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보통의 수요일이었어야 했는데 나는 새벽 내내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정부는 신경쓸 새 없이 마음이 혼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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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 참사를 컴퓨터로 알았습니다. 방과후에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켰는데, 저를 마주한건 세월호 참사 소식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 형, 누나들이었으면 어땠을지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학원을 가야했기에 울음을 그쳐야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습니다.당신은 정말 기억을 못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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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피폭당한 그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신 그날...세월호 비극이 발생한 그날...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그중 가장 잊을 수 없는게 잠깐이나마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 스러웠던 "전원구조"속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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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연중무휴인 면세점에서 일하면서 주말, 기념일, 명절. 날짜와 요일조차도 잊어버리고 그냥 출근하면 일하는 구나....쉬면 쉬는 날이구나.....늘 같은 일상이었 는데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아침에 A조 출근, 점심 먹으러 가면서 힐끔 본 뉴스화면에 뱃머리만 남은 장면에도 큰 관심 없이 지나친 내가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몇년동안 똑같은 패턴의 공항면세점 근무로 어제 근무에 있었던 일인지....엊그제 근무때 있었던 일인지 조차 자주 헷갈리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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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 셋을 가진 해외거주하는 엄마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고 영상을 보고. 몇 일밤을 울었습니다. 소중한 아이들을 잃으신. 부모님들의 슬픔과 아픔을 헤아리는 것 조차 제겐 사치란 생각이 들정도였습니다. 살 려낼 수 있었던 꽃들. 엄마의 마음으로 너무 미안합니다. 자녀를 잃으신 부모님들에게 용기를 잃지 마시고 진상이 규명돼는 날 함께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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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수학여행을 간 선배들이 배를 타는 도중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다행히 전원구조가 됬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을 하며 학교에 갔는데, 오후에 다시 보도를 보고 정말로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준비한 선배들이 이렇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것입니다. 분명 아침에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들었는데, 갑자기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니, 순간 꿈을 꾸는 줄 알았습니다. 어서 빨리 7시간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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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중에 뉴스를 통해 처음 접한 소식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뉴스에 띄워진 인명구조 현황에는 믿기 힘들정도의 숫자의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음을 알려주고 있었고 하루하루 늘어가는 피해자 현황에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예쁘게 클 나이의 친구들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상하고 다친 마음들이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가족 여러분들께 위로가 되는 날이 속히 찾아오길 기도하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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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날을 기억합니다. 너무도 또렷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수학여행이란 단어때문에 컴퓨터로들여다본 뉴스에서 배 하나가 뒤집혀진 화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 인터넷 검색어에서 "수학여행"이란 글자가 보였습니다 무슨일인가 하고 봤더니 커다란여객선이 뒤집혀져있는 데 수학여행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에있는 우리 딸아이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아이가 떠오르고 배안에 있을 아이들이 떠오르고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그날부터 저는 일주일넘게 눈물흘리며 TV를 봐야만 했습니다............모든 엄마들이 그러했을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그러했을것입니다. 그날은 대한민국국민 모두가 기억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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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평범한 생활 중이었습니다. 통신기기가 없어 아무런 상황도 모르던 중, 마침 교무실이 저희 교실에 바로 옆이어서 선생님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몇 친구들과 달려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TV 속보를 보며 탄식과 걱정의 말을 하셨고 그렇게 저와 친구들은 학교에서 제일 처음 세월호 사건을 접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속보를 보고서 수학여행을 하던 학생들이 있다는 말에, 다른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수학여행을 간 상태였는데 중간에 배를 탄다는 말을 들었었거든요. 그래서 덜컥 겁이 나 휴대폰을 안낸 친구를 수소문해 전화하고 괜찮냐 묻고 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 모두 수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몇명은 울기도 했고 계속 구조자는 없는가 대체 선장은 무엇을 했는가 왜 사고가 났는가 일상이 불가하였습니다. 이미 2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잊혀지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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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나는 그 날은 고등학교 수련회를 갔다가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날이었는데 휴대폰을 받자마자 너무 놀라서 친구들이랑 모여서 인터넷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부모님한테도 연락이 와있었고 집에 와서는 가족들이랑 계속 뉴스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요. 누구에게는 기억나지 않는 7시간이 수십수만명의 사람들한테는 평생 잊지 못할 다른 의미의 7시라는게 너무 화가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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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취업준비생이었고, 같은 회사를 지원한 사람 몇과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그 날의 스터디는 신촌역 근처 카리부 커피에서 10시에 있었다.자리에 막 앉았을 때 나보다 한 살 위인 언니가 제주도 가던 유람선에서 사고 났대요, 라는 말을 했다. 그리곤 그런데 다행이 모두 구조되었대요 하고 덧붙였다. 그 날 우리는 오늘은 좀 추운 거 같아요, 이제 여름이 오려나 봐요, 라는 날씨 인사 대신 그 뉴스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나는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생기네요. 하고 말했고, 우리는 타이타닉 사고 같은 이야기로 잡담을 나누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터디가 끝난 뒤에 내가 집으로 바로 갔는지, 어디서 밥을 먹었는지 ,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으며, 단원고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를 보고 울었고, 나 아직 살아있다며 단원고 학생인앙 거짓 문자를 보낸 아이 때문에 아 누군가 살아 있겠구나 하고 희망을 품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지리하게 반복되는 취준생의 나날 중 하루였을 뿐이다. 그 날의 기억은 남은 게 없다. 세월호를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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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강이라 집에서 자고있는데 아빠가 배사고가 났다고 자세히 알아보고 연락해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전원구조 라는 속보에 안심하고 아빠에게 전화해 소식을 전했습니다 얼마뒤 오보라는걸 알게됐고계속 뉴스속보를 보면서 신한테 기도 했습니다살아서 돌아오라고전 그날 자면서 두고있던 고개 방향조차 기억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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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시험 전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다가 핸드폰으로 사고 기사를 봤고 바로 전원 구조 기사까지 확인하고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그리고 도서관 지하 1층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잠깐 나와서 엄마랑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그러시더라구여 기사 봤냐고사촌 동생이 다니는 옆 학교 애들이라며 전원구조 떴드라 다행이다.그러고서 전화를 끊었습니다.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하지만 그 뒤로 뉴스만 보면 울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부터, 생존자가 또 나왔는지 확인하는게 우선이었습니다.이렇게 아직도 선명한 기억을 어떻게 국민을 위해 일한다던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하시나요 전국민을 슬픔으로 빠트렸던 그 사건을 그 날을 많이 늦었습니다 희생자 분들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가족들에게 죄송하지도 않습니까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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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저는 직장인이지만, 그 당시에는 과제에 묻혀 학교에서 밤을 새던 3학년 대학생이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 밤을 새고 다음 날 아침까지 과실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고 아침에 동기들과 함께 세월호 소식을 들었었습니다. 모두가 충격에 빠졌었지만 잠시 후 "전원구출"이라는 속보가 떴고 과실에 있던 동기들과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저녁이 될때까지도 아이들과 희생자들은 구출되지 못했고 한동안 세월호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부터 쏟다냈습니다. 아직까지도 세월호 관련 이야기와 희생자 가족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슬퍼지고 눈물이 나옵니다. 이제는 밝혀져야 합니다. 7시간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왜 감춰야하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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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날이 흐렸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나는 친구들과 말없이 스마트폰을 만지며 의미 없는 손짓만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 기사를 발견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고, 그러나 전원이 구조되었다고. "날이 흐린데 어쩌냐, 그래도 모두 구조되어 다행이다." 그렇게 안심한 뒤 핸드폰을 다시 만졌다. 수업이 가까워졌다. 기사가 떴다.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고. 그 차가운 바다에 몇백 명이 아직도 갇혀 있다고. 강의실은 어수선해졌고, 약속처럼 다음 수업은 시작됐다. 교수님이 빨갛고 부어 있는 눈을 하고 강단에 서셨다. 교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그 목소리가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혹시, 안산에서 온 학생 있니?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이 그 배에 탔으면, 혹시 그래서 가 봐야 하면 지금 나가도 괜찮아."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직감한 건 교수님의 그 말씀을 들은 순간부터였다. 수업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뉴스를 확인했다.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나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나의 가족이었으며, 친구였으며, 동시에 나였다. 나와 똑같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심정이 참담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자꾸만 눈물이 배어나와 여러번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지옥 같은 4월을 보냈고, 그 이후로도 쭉 지옥 같았다. 지금도 나는, 지옥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지옥을 초래한 사람들은 왜 기억할 수 없다고 하는가. 나는 그날의 공기, 온도마저 선명히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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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4.16,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가던 세월호가 침몰했고 전원 구조 되었다는 뉴스의 문구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티비를 끈채 알바를 하러 갔다. 그리고 몇시간 지나지않아 그건 오보였고, 생존자의 숫자는 줄어들고 사망자의 숫자는 늘어갔으며 오열하며 울부 짖는 가족들의 모습이 어디를 틀어도, 어느곳을 들어가도 보였다.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전히 4월 16일은 기억되고있다. 단 한 사람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