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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에서 컴퓨터로 업무보던중에 뉴스를 검색하니 배가 좌초되었다고 나왔습니다.주변에 구조배가 나타나서 금방 구조하겠거니 생각하니 무슨 속보로까지 나올일인가 하고 호들갑떤다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그런데 상황이 전원구조되었네 아니네 하는뉴스를 보니 이거 은근 심각해지네 생각했던그 시간나도 4월 16일 그 특정한 날 너무 사건이 커서 다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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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티브를 보면서 배가 가라 앉는 모습을 보기만 했었어 요 왜 빨리 구조 작업을 못하는 지 의아해 하면서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보다보니 실감도 안나고 티브에서 하는 소리가 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선두만 나와 있는 장면을 보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 그리고 사람들과 차를 마시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하고 말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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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은 바빴나봐요. 뉴스나 인터넷을 열어본 기억이 없어도. 오후에 서울 연희동에서 후배와 식사후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갑자기 후배가 스마트폰을 보던중 "이건 또 뭐에요..." 하는데.... 그냥 정말 단순한 사곤줄 알았어요. 좀 있으면 구조하겠지. 아직 4월인데 물에 빠지면 춥겠다.. 정도? 그런데 저녁 뉴스에서도... 그 다음날 뉴스에도... 어쩜 이럴수가 있을까요?그날... 차를 마신 카페까지 기억이 나는데, 왜 그들은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걸까요?말도 안되죠. 전국민이 뉴스만 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하던 날인데, 어떻게 그날일이 기억이 안날까요? 천벌을 받을거에요. 지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감옥에 갈지언정,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자식들에겐 떳떳한 부모가 되야 하지 않을까요? 기억합니다. 유가족 여러분...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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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회사원의 평범한 하루.. 일을 하며 슬쩍슬쩍 들어가보는 포탈 뉴스에서 오전 10시경 기사를 처음 접했디. (우리 회사는 10시 출근이다) 그래도 설마설마 했던 기억.. 점심시간 근처 식당에서 틀어놓은 티비 뉴스를 보며 아직도 몇백명이 저안에 있다니 하고 동료들과 경악반 걱정반이었던 기억.. 그래도..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저렇게 보이는걸 설마 3백여명을 그렇게 다 놓쳐버릴줄은 몰랐다. 이후 며칠간 직장 동료들과 세월호 이야기를 많이 했고, 멀쩡하게 수학여행 보낸 아이들이 저렇게 어이없이 눈앞에서 가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기막히고 어이없어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들 정도였다. 그 이후 세월호는 나에게 깊은 우울감과 허무감같은 인생 열심히 살자는 마음에 박힌 큰 가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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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영어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전자 모니터를 켜시고는 생중계 영상을 보시더라구요. 저희도 아무 말 없이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배는 물에 잠겨 갔고.. 더 이상 보기 힘드셨는지 선생님께선 그렇게 수업을 중단하고 나가셨습니다.하지만 그 때까지도 저는 사람들이 많이 구조되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학생 전원이 구조되어 인근 섬에 있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너무 많이 울고 계셨습니다. 엄마도 저처럼 모두 구조됐다고 믿고 계셨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죠. 그 때의 충격이 너무나 커서, 그 날 이후로 몇날며칠을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 학생인 저도 당시의 상황이 또렷한데, 당시 푸른 지붕의 닭은 무엇을 하고있었는지.. 당신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그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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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날 학교에서 과학축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스를 맡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오후까지 정신이 없었어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제주도로 수학여행가는 배가 침몰해서 학생들이 갇혀있고 구조중이라고 했어요. 전부 구조됐다고 하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녁에 일 끝나고 한숨돌리고 있는데 그게 오보였다고 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두 손을 모으고 실시간으로 배가 가라앉는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지나쳐가는 학생에게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는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교사기 때문에 이입했습니다. 너무 잘 압니다 그게 어떤 건지. 나 같아도 얼른 이거 입고 올라가라고 했을거예요. 나는 또 찾으면 되니까 일단 너부터 입어라. 그 이후 공개되는 카톡메시지, 배 안의 학생들이 촬영해서 보낸 동영상을 울며 봤어요. 다음날 1교시가 시작되자마자 학생들에게 구명조끼 입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밀폐된 장소에 들어갈땐 대피로부터 기억하라고 가르쳤어요. 자발적으로 뛰어내린 학생들은 물 위에 떠 있었고 지역 어부들이 배를 끌고 나가 구했습니다. 해경은 뒤로 돌아 선원들을 구했어요. 헬기는 하늘만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투입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모두들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습니다.내내 하고 다니던 노란 팔찌를 이번 여름에 벗어두었다가 다시 팔에 끼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왜 내가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아직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늘 부끄러움은 우리가 느껴야 할까요. 진실이 제자리를 찾을때까지 잊지 않고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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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그날 저는 그날 노래방에 있었습니다. 오후 내내 긴 회의를 했고 회의가 잘 되어 노래방에 갔습니다. 기분 좋게 노래하고 나서 집에 돌아갈 때에 비로소,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밤 늦게까지 뉴스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꿈에 물에 둥둥 시신이 떠다니는 가운데 제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 상황이 심각하구나 했지만, 설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구조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랴 하면서 TV를 켰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건 현실이었습니다. 여러번 빈소를 찾았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제 일상에서 차츰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잊혀져 갔습니다. 제 직장은 그 이후 안전대책 비슷한 것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모든 것은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공기관에 근무하는데, 모든 것은 정말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이번에만은 정말로 우리 역사를 자꾸 뒤로 끌어 당기는 그런 힘들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혁명의 역사를 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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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엔 TV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뉴스도 잘 안 봅니다. 다만 신문을 보지요. 그래서 전 그날 오전 내내 몰랐습니다. 오후에 집에 온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면서 차 안에서 켜 놓은 라디오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운전하면서 들었기도 했지만 뉴스 내용이 너무나 황당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며칠을 울면서 신문을 보고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때는 휴직 중이었지만 저도 아이들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가곤 하는 교사이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어찌 우리 아이들을 키울까하는 절망감도 생겼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화가나고 몇날 몇일을 울면서 보냈습니다. 그랬지만 일상을 보내면서 기억 나지 않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월호의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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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에 사는 아이둘 엄마입니다..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던때 제가 사는 곳은 늦은오후 였습니다.밖에서 볼일 후 저녁먹을 설렁탕을 투고하러 한국식당에 갔다가 한국티브를 켜놓은 식당티비로 기울어져 있는 배를 놀라며 지켜봤습니다.집에와 남편과 저녁 먹으며 수학여행가는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한다는 뉴스가 나온다며 얘기하고 인터네으로 YTN 뉴스를 찾아 늦게까지 시청하며 마음을 조렸습니다.그날일은 작은것 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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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수업을 마친 중간놀이 시간...학년 회의실에서 동료선생님의 수학여행 간 학생들이 탄 배가 뒤집혔다는 뉴스를 전달받고...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다시 3교시 수업 진행...꼭 밝혀져야 합니다.세월호의 진실은...국민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인정받는 그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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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6. 울 황태자 한달여의 병원 생활 후 퇴원 한지 하루가 지난날 수술 통증에 신음하는 아이로 정신없이 보내는라 .아이의 신음과 T.V화면으로 속절없이 잠겨 가는 .....노무현 대통령님 돌아가신후로 첨으로 통곡하며 집안일을 했다.황태자가 인식을 하고 인상을 찡그려서 눈물을 거뒀지만 가슴에 차오르는 먹먹함에 아직 난 그날에 머물러 있다.박근혜 대통령이 어이가 없어 욕이 절로 나왔다. 눈 앞에 일어나는 일이 꿈이 아닐까했다.아직 안산에 가보지 못했다.부끄러워 갈 수가 없다.절대 잊지 않겠다고,아니.잊혀지지가 않는다.눈 감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겠지만 조금은 덜 아프게 기억하고 싶슴니다.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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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5일 밤시간에 뉴스를 접하고 휴대전화를 손에 붙들고 잠들지 못했습니다. 눈이 따가와 질 때까지 속보를 계속 읽으면서 더 아파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면서 밤을 새웠습니다. 살기 위해 숨을 쉬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배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잠들 수 없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도 젊은 이들도 모두 살아있기를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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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출근을 하고 조금 뒤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지만 전원구조라는 오보에 어느정도 안심을 하고 조금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그날은 평소 도시락을 챙기던 저답지 않게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었는데, 아무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아.. 생각보다 심각한 일은 아닌가보다 하고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러나 곧 그 기대는 깨져버렸고,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늘지 않는 생존자 숫자에 하염없이 절망하며 분노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바다도 배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바다에서의사고는 이렇게 속수무책에 아무도 손을 쓸수 없는 것인가 한동안 속상해 했었고, 속속들이 드러나는 깨름칙한 상황들에 의구심을 가지고 여태 지켜보고 있는 모든 과정들이 제 기억엔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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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4년 4월 16일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런 일이 있는 날에는 인터넷 뉴스나 방송으로 지켜봤을 텐데 분명한 기억이 없어 페이스북을 한참 뒤져 봤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은 항공우주학회 발표 전날로 함께 논문을 썼던 동기들과 학회장 근처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엠티가는 학생들 마냥 신나게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분명 그 동안 뉴스로 소식을 접했었을텐데 다음날 학회 발표 준비로 신경쓰지 못한게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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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 오전 수업을 가서 수업을 듣다가 친구가 수많은 인원의 배가 침몰했다고 했는데 에이 무슨 소리야 하고 네이버 메인에 접속하여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너무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저에게 그날은 어떤 특별한 날도 아닌 일상과 다를 바 없던 날인데도 그 시간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들은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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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대학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료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몰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나오지 못 할줄은.. 그리고 시간이 조금지나 제가 근무하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 동생이 그 배에 타고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살아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있는 지역의 고등학교가 그 세월호를 탈뻔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가끔 상상합니다. 그날 거기에 내가 있었다면 다들 밖으로 나오라고 했을텐데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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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이라 자다가 일어나서 평소처럼 티비를 틀었어요. 틀자마자 본게 세월호 뉴스였구요. 첨엔 너무 놀랐어요. 그래도 전원 구조라길래 어휴 다행이다..하고 채널을 돌렸고 한참있다가 다시 또 채널 돌리는데 아직도 그 뉴스더라구요. 그때서야 심각한걸 알았어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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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 듣고 있었어요 어른들도 친구들도 그 누구도,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별 일 없는 줄 알고 그 날 밤에 치킨을 먹으면서 티비를 켰는데 방송사 뉴스마다 다 뒤집어져서 세월호 보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생존자 서너 명 밖에 안 뜬 거 보고 충격이 너무 커서 그대로 화장살 가서 토하면서 속 다 게우고 울면서 뉴스 봤어요 그리고 그 날 꿈에서 물에 퉁퉁 분 시체들이 제 발목을 잡고 살려달라 했었어요 진짜 세월호 일어 나고 전후로 이틀 정도는 먹는 것마다 다 토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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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직장에 갓 입사해 연수로 정신없던 4월, 출근 전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다 뉴스를 보고 멍해졌던 그날.. 이제 한국에서 함께 촛불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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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교시 진로 시간이였습니다. 휴대폰은 조회시간에 제출했기 때문에 "세월호라고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뒤집혔지만, 모두 안전하다" 이 말을 1시쯤 진로 선생님의 말씀으로 처음 접했던걸로 기억합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니 엄마가 뉴스를 보고계셨습니다. 그때도 어김없이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모두 구출됐다는 말, 그 시간동안 두려움에 있었을 언니, 오빠들과 여전히 이어지는 괴로움을 저는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