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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잠시동안만 그대들을 떠올렸습니다.괜찮겠지라고 생각했었던 그 시간마저 죄책감이 듭니다.여러분의 고통이 꼭 해결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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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주도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여느 때처럼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1교시 후 쉬는 시간에 놀러나갔던 반 아이가 뛰어왔습니다. "선생님, 제주도로 오던 배가 사고났데요"급히 핸드폰을 켜 확인하니 세월호라는 이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수학여행단 전원구조. 라는 기사들이 쌓였습니다.세월호의 소식을 듣고 놀란 아이들에게 교실 앞 화면에 "전원구조" 라는 속보를 보여주었습니다. "얘들아, 이래서 항상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해야하는 거야. 질서! 질서를 지키면 다 되는 거야.".....아직도 그 뉴스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한명 한명에게 잔소리를 하던 제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말하는 대로 해라. 질서를 지켜라.그 아이들이 들었던 말을 제가 뱉었습니다. 같은 말을 뱉어서 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습니다. 미안합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에게도더 미안해질 수 없기에 잊지 않겠습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2014년 4월 16일은 부끄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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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가는 한 명의 대학생이었습니다.헌법이 있기에 모두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고, 언론과 정치와 경제는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어른들은 학교에서 배운 정의를 사회에서 실현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하지만 아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저의 시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4월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 안의 304명의 승객은 구조되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갔습니다. 처음엔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에 다행이라고 했던 것도 잠시, 진실은 달랐습니다. 기울어져 가는 배 안의 아이들과 승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배와 함께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제대로 된 구조도 없었고 대처도 없었고 그 어떠한 체계도 없었습니다.가라앉은 배와 함께, 세월호를 보는 국민의 마음도 가라앉았습니다. 가라앉은 진실에 국민은 더더욱 마음이 미어집니다. 캐면 캘수록 나오는 의혹과 질문들에 더욱 분통합니다. 이를 어찌 쉽게 한낮의 사고로 여기고 잊을 수가 있나요.나, 너,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에 처음 나오는 단어입니다. 우리 모두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 안전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그 시작이 세월호 인양과 진실 규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너진 대한민국을 우리 함께 세워나갑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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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건 오전 9시 경이었지만, 제가 그 소식을 접한 건 제출했던 휴대폰을 받고 난 뒤, 방과후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입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기울어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일반인 포함, 우리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처음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구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했고 모두 무사히 돌아오길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구조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으면서 야간자율학습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 엄마의 차 안에서 뉴스를 보았는데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저녁 뉴스를 확인하고 우측 상단에 표시된 생존자 수, 실종자 수, 사망자 수를 보며 마음 졸였습니다. 전 세월호 참사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시리면서 눈물이 납니다. 제 또래 친구들이 그 차가운 뱃속에서 물에 잠기며 공포에 떨었을 생각을 하니,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멋진 캠퍼스 생활 또는 멋진 사회인으로서 자기 인생을 펼쳐나갔을 생각을 하니, 그들을 구하지 않은 이 썩어빠진 나라의 소위 엘리트라는 인간들을 보니, 정말 통탄스럽고 분노가 식질 않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매일매일 가슴 속으로 떠올릴 거고, 기도할 겁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절대절대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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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고3, 수험생이었습니다. 늘 그랬듯, 평범하게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 때 선생님을 통해 전해 들은 안타까운 사고. 처음엔 금방 다 구조되겠지, 뭐 별 일 있겠어. 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사망자 수, 실종자 수가 늘어가는 걸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서 모두 다 웃으며 살아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 날의 그 감정은 정말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비통하고, 떠난 학생들과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져서 아직까지도 답답한 눈물이 납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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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군대에서 새벽 근무를 서고 아침에 복귀해서 식사를 한 후 였습니다. 뉴스에서 나오는 너무나도 슬프고 말도 안되는 소식에 부대원 모두가 절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도 저들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덮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입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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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검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직원식당에 가 줄을 서려던 참이었다. 그때는 아직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보도되지 않았던 때지만 막연히 다 구해지겠거니, 안일한 희망을 지닌 채 천장 부근에 달린 대형 텔레비전을 바라보다 말았다. 오후 쯤 되어 급박하게 변하던 소식들... 단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길 바라던 마음이 산산조각나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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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배가 침몰한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는 안심하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게 오보였고 학생들과 사람들이 가라앉는 뱃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1분 1초가 지나가는 게 너무나 무서웠고 제발 모든 사람들이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틈만 나면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련의 사건사고들은 처참하기만 했습니다.기울어진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아이들을 생각나서 일상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2014년은 끔찍한 한 해로 기억되었지요. 이 무겁게 내리 누르는 절망감, 무력감, 비통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에 저는 한 동안 잊고 살아보려 발버둥 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직시하고 2014년 4월 16일 7시간의 진실을 위해 맞서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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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아니, 그때까진 그런 줄로만 알았다. 평소처럼 버스를 탔고, 평소처럼 강의실에 앉았다. 아침에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전원이 구출됐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그저 다행이네, 하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간 순간, 사망자가 순식간에 늘어났다. 어? 다 구출됐다며! 라고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생존자 수의 카운터는 어느순간 멈춰버렸다. 한명이라도 더 구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만나는 순간까지도 함께 기도했다. 다음날 아침 머리를 말리면서, 내가 수퍼맨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 바다로 가서 차가운 물에 있을 아이들을 구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슬펐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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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출이란 오보를 믿고 공시준비하러 도서관에 갔다. 스터디 준비하다 너무 졸려서 본 핸드폰엔 믿기힘든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부터 며칠동안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과 피해자분들에 대한 죄책감과 공시준비 자체에 회의감을 느껴서. 2014년에 있던 수만가지 기억들은 모두 날아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하게 기억나는 4월 16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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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있던 2014년은 제가 고등학교3학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뉴스를 접한 후 믿기 어려워 계속 걱정하다가 집에 도착 하자마자 뉴스를 틀어 진행상황을 보았습니다. 전원구조 라는 자막이 있었지만 걱정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 노심초사 뉴스를 보고 잠들고 일어나자마자, 학교에서 휴대폰으로, 학교 끝나고 집에 가자마자 뉴스를 틀어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 저는 21살입니다. 지금 박근혜 일이 터지고서야 다시 세월호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저도 잠깐 잊었슴을 고백합니다. 현재 우리가 함께 있어주어야 할 분들이 세월호 유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효 유가족분들 께서 현재 무얼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어떤 운동이나 집회를 하고 계신다면 함께하고 싶습니다. 내 할일 바쁘다고 , 누군가 하겠지 하고 넘어가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무언가라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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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빛을이길수없다거짓은참을이길수없다진실은침몰하지않는다우리는포기하지않는다사랑합니다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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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어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세.월.호 라는 단어만으로 유가족뿐만이 아닌 많은 우리들이 눈물을 삼키며 가슴속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진실을 밝히는것이 우리 모두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는 행위쯤이 될것입니다.평생 잊을수 없는 기억이 응어리로 남아 괴로워서 꺼내보려하지 않는 일은 지옥과도 같은 형벌입니다.보낸이들 위해..남아있는 우리를 위해..진실을 밝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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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전혀 모르다가... 아르바이트를 위해 63빌딩으로 가는 셔틀버스에서 뉴스를 보았어요. 전원 구조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점심 때 컵라면을 먹으며 동료와 얘기를 나눴어요. 다행이라고요. 퇴근하는 셔틀버스에서야 다시 그게 오보라는 걸 알았어요. 가족들과 새벽까지 뉴스를 보다가 잠들고...17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켰어요. 혹시나 좋은 소식이 있을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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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6학년 녀석들과 에버랜드로 현장학습을 갔었습니다. 하필 삼성에버랜드냐 하며 투덜대는 마음과 어쨌든 아이들이 신나하니 좋군 그랬던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도, 튤립도 형형색색으로 물든던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세월호 침몰 이라는 뉴스를 발견했어요. 놀랐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보다 공공기관이 잘되어있는 나라니까, 다 구해내겠지. 했어요. 집에 돌아와서 튼 티비에서는 마침 전원구조되었다고 방송하고 있었어요.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랬지요. 그것이 모두 오보라고, 평온한 바다에 뒤집혀있는 저 배 안에 아이들이 들어 있다고 하는 소리에 제 안에 있던 모든 감정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어요. 슬퍼야하는데 눈물도 안나고, 분노해야하는데 어떤 화도 나지 않았어요. 그냥, 설마, 그럴리가. 아니기를. 다시 뉴스가 뜨겠지. 그런 마음 뿐이었어요. 구조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모두 저런 표정으로 나타날거야 그렇게만 빌었더랬어요. 나는 그저 방영된 영상을 본 것만으로도 그 고요한 바다위의 배, 유가족의 얼굴, 구조된 학생들의 모습들 모두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날을 잊었다고, 아무 기억이 안난다고 감히 말하는 사람들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사람사는 세상에서 권력을 쥘 수 있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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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용서 할 수 없습니다.20140416..그날 티비를 보면서 슬 픔을 넘어 분노를 느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용서하지 않겠습니다.7시간의 진실은 꼭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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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속보부터, 전원 구조되었다는 오보까지. 그리고 이후 배가 침몰해가는 과정을 출근하는 것조차 미루고 지켜보았습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무기력함,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들을 믿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을 아이들, 사람들, 단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 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그리고 21세기에서도 이러한 재난에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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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리지 못했는가.왜 대처하지 못했는가.왜 기억하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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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날 아침은 몇일 뒤 수련회를 가게된다는 기대감에 어깨춤을 추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몇교시가 지나고 도덕선생님께서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되는 사고가 났는데 다 구조가 되어간다는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어리석은 마음에 "설마 우리 수련회 못가는건 아니겠지?" 라며 "왜 하필 오늘이야 짜증나" 라고 하였죠. 그렇게 하교한 뒤 습관적으로 TV를 틀었고 세월호 뉴스가 하루종일 전파되었습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죠. 팽목항과 체육관, 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던 배는 모두 침몰되고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피폐해지고 슬픔이 모든것을 뒤덮었습니다.1학년이었던 저는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게되는 3학년이 되었고, 세월호 사고또한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세월호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박대통령의 7시간 또한 밝혀져야합니다. 우리는 4월 16일을 기억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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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얼핏 본 기사, 걱정됐으나 곧 전원구조 했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그럼 그렇지. 배에 탄 사람들 많이 놀라겠다" 하고 넘어갔죠. 그리고 점심 식사 시간.. 김치찌개를 먹겠다며 찾아간 집의 TV 화면을 보고 잠시 멈칫했네요. "저게 뭐지? 아까 다 구조했다던데, 자료 화면인가?"저 화면이 실시간일 리가 없다며 메뉴를 주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들여다보니 아니더군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눈으로 배가 가라앉는 걸 보고 있는 것이더군요. 그럴 리가요.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고, 화성에서 살 화성인을 모집한다는 세상인데요. 배가 사고 난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두 눈 뜨고 지켜보면서 못 구할 리 있습니까. 다급해보였지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지켜보는 내내...제대로 사람을 구했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전국민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손도 쓰지 못하고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지금도 그 순간순간의 기막힘을,그리고 믿을 수 없었던 기분을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사무실에서 사고 소식을 공유하며 뭐하냐며 발을 구르다가 점차 말이 줄어들고급기야 서로 고개 돌려가며 눈물만 글썽인 채 눈 마주치치 못하고 각자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던 직장동료들. 그 날 사무실에 떠돌던 기막힌 적막감.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금도 세월호는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수없이 떠도는 세월호 의혹 영상을 끝까지 제대로 보지를 못하겠습니다. 미칠 것 같아서...그날은 그렇게 평생 제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