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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초등학교 교사입니다.수업에, 공문에 정신 없이 오전시간을 보내고 늦게서야 세월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마침 수요일 교직원 배구가 있던 날. 대부분 구출되었다는 오보를 믿고 운동을 했었습니다. 중간에 "지금 아이들 대부분이 배 안에 있대요" 라는 말을 전해듣고는 순간 다들 체육관 바닥에 주저 앉았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 아이들 못구하겠느냐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는데 ㅠㅠ어딘가에는 아이들이 살아있겠지,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아무 대책도 없이 조명탄만 쏘아대며 공기를 불어넣는다는 생쑈를 하는 걸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어지지않습니다.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지금도 서서히 잠기고 있는 세월호 영상만 보면 가슴이 턱! 막히고 울화통이 터집니다. 그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가슴이 진정이 안됩니다. 오늘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한다는데나는 기껏 한다는게 국정역사교과서 발간에 찬성 의견을 냈던 교총을 탈퇴하는 일 밖에 못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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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평소처럼 아아들 가르치고 있었네요 처음엔 별일 아닌듯했고 시간이 지나며 공포와 분노가 울분이 넘쳐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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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쭉 틀어박혀 있느라 관련한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점심 먹으러 나와서 학교 식당 TV 에 틀어진 YTN 보도의 자막을 보고서야 알았어요. 짧은 줄이었고,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전부 스크린을 보면서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당시에는 저는 짧은 자막만으로 지나가며 보았을 따름이라 어떤 사고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너무 바쁜 날이었어서 "큰일이 났구나.. 잘 해결되어야 할텐데"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사실 4월의, 진도 앞바다에서, 원양어선도 아니고 여객선에 탄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있고, 그 사실이 뉴스에 실시간으로 보도가 되고 있으면 당연히 구조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나중에야 사고의 규모와, 말도 안되는 당시의 대처와, 그로 인해 끔찍한 피해를 입은 아이들에 대해 알았습니다. 또, 한참 더 나중에야 당시의 뉴스 보도를 접하고 피해 아동의 유해 발견 소식을 전하며 울컥해 말을 잇지 못하는 뉴스앵커를 보았습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슬퍼하고 비통해하는 수많은 사람들도요.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더 나은 삶을 이루어주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고, 주변의 보좌관들이 아닌가요? 대처할 틈이 전혀 없는 사고였다고 해도 그를 미리 방비하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고, 누구보다 먼저 슬퍼하고 뒷일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대통령이 아닌가요? 당신이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그에 대해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당신이 스스로의 본분을 다했더라면 너무나도 간단히 해명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그리고 눈에 너무자 선명히 보이는 비극에도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뱉는 "국민의 삶과 고난을 책임지겠다"는 말이 얼마나 가짜이고, 역겹고, 징그러운 것인지 나는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당신이 당신의 죄를 치루게 하고, 다시는 당신같은 징그러운 사람이 남들보다 편안히 살 수 있고 남들을 이끄는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회이기를 기원합니다. 만일 지금 현재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그런 사회가 오게 되기까지 나는 노력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열심히 회피하고 도망쳐 스스로의 더러운 모습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 보십시오.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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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저는 만삭에 몸이였습니다.첫아이가 태어나길 바라고있었어요.오늘내일 예정일이 다가오고있었죠. 세월호..4월은 제게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준 시간이네요 4월29일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4월. . . 절대로 잊지못할 시간입니다 아마 저희 아가가 커서도 세월호는 잊지못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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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하면서 뉴스를 시청했는데.... 침몰한 배에서 학생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오보였어요...누군가는 말하죠 그만하라고 지겹지도 않냐고...하지만 이건 지겨워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거죠.. 이런 식의 사후 처리라면 그 사고가 자기자신 가족에게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거죠...100년 1000년 후 까지 기억되어야 하고, 올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고가 나와 내가족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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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핸드폰으로 침몰 기사를 확인하고, 걱정하던 차에 누군가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안심했고요.목욕탕에 갔다 나오니 휴게실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전원 구조가 아니라 학생들이 안에 갇혀있다고 하더군요.그 이후로 뉴스 소식을 계속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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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과 같은 학교의 교실을 보면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평화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는 그냥 하루니까 하면서 지난 날이 다른곳에서는 같지 않았나봅니다. 친구들과 보낸 시간의 추억은 아쉽게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은 제가 죽기전까지 함께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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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핸드폰 와이파이가 말썽이어서, 아침 먹고 수리점으로 버스를 타고 갔어요. 버스타고 가는데 여객선 사고 소식이 들려왔고, 수리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가는데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티비를 켜보니.. 딱 보기에도 상황은 심각해 보였고, 아까의 다행스런 소식은 충격적인 오보였고,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렇다할 구조나 도움없이 배와 함께 수백명의 생명이 가라앉아 버렸다는 것...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길 수 있는 7시간이지만.. 그 7시간의 충격은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당신의 7시간은 어디에 있나요?? 무엇을 했길래 온 나라를 뒤덮은 충격적인 사건 속에서도 기억을 못하고, 해명을 못하나요?? 진실은 온갖 거짓을 이깁니다.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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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기억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너무나 놀랍거나 강렬한 기억은 더 생생하게 남는다는 것입니다. 14년 4월즈음 저는 매일같이 평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다른 날짜의 구체적인 기억은 뚜렷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강한 충격을 받아서 도저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7시부터 1시간반 가량 수영장에서 아침운동을 하고 나와 인근 시립도서관에 갔습니다.9시경 시립도서관 1층 휴게공간에서 무심코 핸드폰을 보고 사고소식을 들었습니다.지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걱정했었고 구조가 거의 되었다는 오보를 보고 안도했습니다.점심을 먹으러 집에와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생존 구조자 숫자가 아까와 다르고 실종자 숫자가 크게 늘어간 모습을 보았습니다.아직 사람이 그렇게 남아있는데 배는 계속 가라앉고... 너무나 무섭고 참담한데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그날 학원에 아르바이트를 가서 수업 틈틈히 핸드폰으로 계속 실시간 뉴스를 찾아봤습니다. 학생들과 이야기도 나눴고요.어찌보면 접점이 거의 없는 저마저도 기억이 뚜렷합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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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낳고 조리원에 있었습니다.방에서는 쉰다고 티비를 틀지 않았고복도에 나가니 라디오가 나오는데 배가 침몰한다고..... 하지만 전원구조되었다고...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지금이 어느시댄데..... 배가 침몰한다고 사람들이 죽냐고....먼 남태평양도 아니고 우리나라 바단데.....그렇게 큰일이 아닌것처럼 여겼습니다.추운데 물에 빠져서 사람들 감기 걸리겠다고.....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오는 뉴스는 듣고 있는데 듣고 있는지....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두눈 멀쩡히 뜨고.......그 많은 아이들....그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아니 죽였습니다.나는 그날 식당에서의 기억이 또렸한데....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놓고 기억 못한다는듯 이렇게 잡아땔수 있는지.....사람으로 할 수 있는 짓인지......우리는 잊지않고 있습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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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시즌이었습니다. 무거운 전공책에서 시험범위만 복사하기 위해 오전에 구내복사실을 들렀습니다. 제본을 맡기면서 텔레비전에서 나오고 있는 뉴스를 보았는데...경악스러운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침몰했지만 전원구조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수업을 듣고선 저녁 즈음에 학생회 회의를 갔는데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아직도 수많은 학생들과 승객들이 구조되지도 못하고...잠수부들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그리고 지금 여기 갇혀있는데 아직 살아있다고 구하러 와달라고 SNS나 카톡을 올려서 (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희망감을 안고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리고 2년 반이 지난 오늘도 생존자 숫자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지난 기억이지만 아직도 어제일처럼 선명한데 저 위에 계신 분들은 어찌 기억이 1도 안나시는지...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저 어른들을 보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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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직장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면서부터 알게된 세월호 침몰 소식.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나와서 안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 배가 기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무사히 전원 구출될 거라는 기대는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사이사이 일을 하면서도 계속 속보뉴스를 열어보고 , 또 실망하고, 눈물을 닦고... 그날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집에 돌아가서도 제가 한 일은 그저 계속 뉴스를 보면서 행여나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린 것 뿐입니다.그날의 제 마음과 저의 모습을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자신이 뭘 했는지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봅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295명이 숨지고, 아직 9명은 가족품에 돌아오지도 못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겠지요. 이제는 우리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날 뭘 했느냐고, 그날 당신이 책임질 일은 없었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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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세월호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들어 안심했지만 점점 사건이 발표와는 다르게 벌어지자 점점 안타까워지고 그러한 발표를 한 기관을 원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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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2 였고,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수학 여행을 앞두고 들떠 있었습니다.그런데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고, 계속 아이들 사이에 흉흉한 소리가 들려옵니다.야 안산에 어떤 학교 수학 여행 가다 배 침몰 됬다네.. 구조 됬다던데?... 아니래 오보래... 몇명 이야? 와...그래도 전 처음에는 다 구조될 줄만 알았습니다는.. 학원 끝나고 와서 10시, 헛된 희망이었던 것을 알았고 그날 밤 잠을 못 잤습니다.눈물이 났습니다. 그 이후 언론들의 날조 보도와 기득권 세력의 변명과 몰아가기를 보면서 슬픈 마음이 더더욱 사라지지 않더라고요.더 이상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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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기억이 안날거라고 생각했는데....오늘은 구내식당에 뭐가 나올까~맛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대화를 하면서 직원들이랑 같이 구내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 배가 가라앉고 있다라는 뉴스를 접했죠. 그리고 식당에선 계속 침몰되는 배가 영상에 나왔습니다. 해경이 구하고 있다고 믿었던 4월16일 12시였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봤을때 다행히라고 하면서 밥을 먹었는데 그게 또 오보라는 기사를 접하고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 왜 벙커에서 회의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가. 무슨일을 하더라도 구하라 라는 지시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무수히 많은 유가족들(그당시에는 유가족이 아니었던)이 무너지는 모습. 왜 그것밖에 영상에 나오지 않는지. 다른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주고 결국 본인이 주검이 되어 나온 차웅군. 그 기사를 보고 몇일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열어볼 용기가 나지않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잊지 않기위해 기억하기위해 진실을 찾기위해 용기를 내야 하는데...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그날 저는 구내식당에서 식사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일을하고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일상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일상을 잃어버리고 싸우고 있는 유가족분들과 함께 저도 같이 용기내서 진실을 찾는데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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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연차였는지 오후반 차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근무지가 교대였던 나는 녹두거리까지 점심약속때문에 넘어왓었다 뭘 먹을까 하다가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육쌈냉면집엘 갔고, 거기서 실시간으로 계속 바뀌는 뉴스를 보았다. 주말 동호회 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하하호호 떠들다가 뉴스를 보는 순간 다들 냉면 먹던 손가락질을 멈추고 멍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하루종일 뉴스 검색하고, 카톡으로 세월호 이야기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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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였고 속보 기사에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의 배가 위험하다. 라는 기사를 보았다. 헐....이러면서 배가 기울어진 사진까지 보았고 거기에 애들이 있는 것도 보았다. 구조준비를 순조로와 보였고 빨리 침몰할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상했다. 애들은 안나오고...배는 이상하게 빠르게 침몰하고 있었다.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속으로.."어휴 다행이다. 여튼 이 친구들 길이길이 기억될 추억담 하나 생겼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그 속보 바로 이후는 악몽이었다. 그저 이상하다. 왜? 왜? 이상하다..왜? 모하는걱지? 악몽은 절망과 분노가 되었다. 미친다....억장이 무너진다. 혼란과 함께 길고긴악몽의 시작이란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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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한것도 잠깐, 속속들이 밀어닥치는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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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중1 신입생 이 된 둘쨋딸의 반엄마들 첫모임날이었습니다. 다들 처음 만난 날이라 쭈뼛쭈뼛 하고 있을 때 어떤 엄마가 수학여행간 아이들이 타고 가던 배가 가라앉았다고... 모임이 모임인지라 엄마들은 더 걱정을 하고 있었고 다행히 한 엄마가 전한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안도하며 화기애애ㅠㅠ하게 점심을 먹고 헤어졌더랬죠...하지만 왠걸,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어느새 배는 뒤집혀져있고 한시라도 빨리 구조를 해야할 것 같은데 도무지 무슨 이유에선지 구조는 안이루어지고....아~~ 매번 그날을 떠올리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눈물만 흐릅니다.아무것도 못하고 TV만 들여다 보고 있는데 하교한 딸의 얼굴도 눈물범벅이...ㅜㅜ너무 이기적이란거 알았지만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온말 "살아있어줘서 고마워...ㅜㅜ" 이제 중3이 된 그딸과 손을 잡고 촛불을 듭니다. 미안해요~ 더 소리내주지 못해서~ 더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하지만 잊지 않았고 잊지 않을거고 작은 힘이지만 바꾸려고 노력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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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한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뉴스속보를 보고 놀랐었는데, 모두 구조했다는 자막을 보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시간이 흐르면서 깊은 충격과 좌절감에 빠졌었습니다. 그 날 벌어진 일이 무슨일이었는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계속 고민하면서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