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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연차였는지 오후반 차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근무지가 교대였던 나는 녹두거리까지 점심약속때문에 넘어왓었다 뭘 먹을까 하다가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육쌈냉면집엘 갔고, 거기서 실시간으로 계속 바뀌는 뉴스를 보았다. 주말 동호회 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하하호호 떠들다가 뉴스를 보는 순간 다들 냉면 먹던 손가락질을 멈추고 멍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하루종일 뉴스 검색하고, 카톡으로 세월호 이야기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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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였고 속보 기사에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의 배가 위험하다. 라는 기사를 보았다. 헐....이러면서 배가 기울어진 사진까지 보았고 거기에 애들이 있는 것도 보았다. 구조준비를 순조로와 보였고 빨리 침몰할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상했다. 애들은 안나오고...배는 이상하게 빠르게 침몰하고 있었다.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속으로.."어휴 다행이다. 여튼 이 친구들 길이길이 기억될 추억담 하나 생겼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그 속보 바로 이후는 악몽이었다. 그저 이상하다. 왜? 왜? 이상하다..왜? 모하는걱지? 악몽은 절망과 분노가 되었다. 미친다....억장이 무너진다. 혼란과 함께 길고긴악몽의 시작이란걸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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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한것도 잠깐, 속속들이 밀어닥치는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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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중1 신입생 이 된 둘쨋딸의 반엄마들 첫모임날이었습니다. 다들 처음 만난 날이라 쭈뼛쭈뼛 하고 있을 때 어떤 엄마가 수학여행간 아이들이 타고 가던 배가 가라앉았다고... 모임이 모임인지라 엄마들은 더 걱정을 하고 있었고 다행히 한 엄마가 전한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안도하며 화기애애ㅠㅠ하게 점심을 먹고 헤어졌더랬죠...하지만 왠걸,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어느새 배는 뒤집혀져있고 한시라도 빨리 구조를 해야할 것 같은데 도무지 무슨 이유에선지 구조는 안이루어지고....아~~ 매번 그날을 떠올리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눈물만 흐릅니다.아무것도 못하고 TV만 들여다 보고 있는데 하교한 딸의 얼굴도 눈물범벅이...ㅜㅜ너무 이기적이란거 알았지만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온말 "살아있어줘서 고마워...ㅜㅜ" 이제 중3이 된 그딸과 손을 잡고 촛불을 듭니다. 미안해요~ 더 소리내주지 못해서~ 더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하지만 잊지 않았고 잊지 않을거고 작은 힘이지만 바꾸려고 노력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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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한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뉴스속보를 보고 놀랐었는데, 모두 구조했다는 자막을 보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시간이 흐르면서 깊은 충격과 좌절감에 빠졌었습니다. 그 날 벌어진 일이 무슨일이었는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계속 고민하면서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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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엄마입니다.2014년 4월 16일 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이를 베이비시터분께 맡기고여의도로 출근하여 업무를 보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뉴스를 접하고사무실이 술렁거렸고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혼란을 가라앉히고 편안한 마음으로업무에 집중했던 것이기억납니다.베이비시터분과 카톡으로전원 구조되었다고 기뻐했던 것도 생생히 기억납니다.그러나 그 안도감도 잠깐오보였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아직도 차가운 물 속에 있다고...침몰해 버린 배 안에 있다고...믿을 수 없는 영상과 뉴스를 접하며발을 동동 구르고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기도를 하고 또 기도를 하고그 날은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도남편과 함께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밤 늦게도록 뉴스를 보았습니다.지금도 그 날을 떠올리며사무실 모니터 앞에 앉아눈물이 핑 도는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내 피 같고 살 같은 내새끼들어른으로서, 엄마로서 차가운 바다속으로 가라앉는 우리 아이들을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무력했던 시간들이 치욕스러웠습니다. "어른이어서 미안해""이런 나라를 만들어서 미안해""이런 나라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2014년 그 잔인했던 봄날 이후,지금도 가끔씩되새기는 말입니다.저는 그 날 죽을 때까지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고평생 그 상처를 곱씹으며 살게 되겠죠.이런 나라를 내 새끼들에게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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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뉴스기사를 집에서 접했고,시간마다 변경되는 생존자수와 사망자수를 보며, 큰 좌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마음속으로 간절히 한명이라도, 한명이라도구조되길 기도했던 그런 날이었어요.큰 아픔의 날, 그 날 우린 잊지 말아야 합니다.현 정부는 진실을 밝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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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으로 그날은 주 별 가장 빠르게 출근을 하여 근무를 하는 날이었습니다.아무런 생각없이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지만,사고 소식을 듣고 오전 내내 회의를 하면서 같은 생각만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뉴스에 귀를 기울이고,가족과의 연락을 통해서 진행 중인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모든 이가 안도하던 그 때, 누군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기분입니다.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하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저에게도 아이가 있지만, 제 아이가 그곳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미어지는 데 실제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느꼈을 감정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 였을 거라 생각합니다.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아이들의 주검 앞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이야기 하지 못합니다.어른들의 역할이 무엇일까...가만이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그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주변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진실의 규명이 유일하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그때까지 그 날을 잊지 않고 충혈된 눈으로 지켜보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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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출근 후 포탈 속보에 배가 침몰했고, 수십/수백명이 배 안에 갇혀있고 얼마 후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봤습니다.그렇게 큰 배가 침몰하는데, 사람이 빠져 나올수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다가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접하고 그럼그렇지 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그것이 오보였다는게 어이가 없고, 더구나 고2 그 어리고 어린 아이들이라는것이 더욱 분노를 치밀게 했습니다.이후조치들을 보면 기가차서 말이 안나옵니다.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들러리들 세워 팽목항 에서 연출된 연설을 하는 것 보고 토나올뻔 했던 기억도 나고....아무튼 이번에 전부 진실을 밝히고엄히 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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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발생한 직후, 모두 구조되기를 바랐고 구조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후 일에 열중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저를 절망에 빠지게 한 소식이 전해졌고, 그렇게 저를 포함한 대부분(모두는 아닌거 같습니다)은 상실의 슬픔으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소중한 생명들이 떠났던 그때가 시간이 흐른다고 무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슬퍼하던 그때에 당신들은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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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좋아하는 사람이랑 헤어졌어요. 나를 내버려두라는 말에 "앞으로 그렇게 해줄게" 하고 펑펑 울고 있었는데 세월호 사건을 알게 되었네요. 그 후의 기억은 나도 물속에 잠긴채 깨어나는 몽중몽을 계속 꾸고, 어린 동생을 위해 구명조끼를 벗어준 아이 생각에 울고불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실연당했다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네요. 아직도 끔찍해요. 정말 심장에 추를 단 느낌. 무기력하고 몸과 마음이 무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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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고기도하고 전전긍긍하며 있었습니다.끝까지 기다리고 기다렸지만정부의 허가는 너무나도 늦게 났고,아직도 고 어린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모릅니다.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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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습니다.시골사는 아줌마들끼리 아이들 유치원에 보내고 콧바람 쐬러 가자며 들떠서 나섰던 날이였으니까요. 운전 중이였는데 무리 중 한명이 배가 가라앉았다고 그런데 다 구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큰일이지만 참 다행이다라고 안심하며 시내로 나갔고 점심먹고 옷구경도 하며 모처럼 즐거운 하루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두 구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소름끼치고 참담한 심정이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날을 얘기합니다. 절대 잊을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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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우연히 네이버에 들어가 실시간 검색어를 봤는데 온통 세월호 얘기였고 TV를 켜니까 오른쪽 위에 부상자 사망자 실종자가 늘어나는걸 보고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심지어 나는 누군가를 통해 세월호가 배 인걸 알게됬고 고등학생들이 제주도에 수련회 갈려고 탔다는 소식도 들었다. 영상을 보니까 마음이 다찢어진다.. 남은 마지막 실종자 늦게라도 찾아서 가족들 곁에 갔으면 좋겠다.. 실종자가족분등 요즘 날씨가 더 추워지고 있는데 꼭 찾을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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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10분 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켜고 다음 포털 뉴스에서 처음 본 소식이 배가 가라앉고 있다였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며 학동역 외환은행에 가서 업무를 보며 실시간 뉴스로 확인을 했습니다.빨리 구조대가 가야 하는데 그런 소식이 없네......느낌이 빨리 구조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직감이라는게 있었던 것 같아요.그리고 업무를 하는 동안 제발 제발 간절히 기도를 했고 점심을 먹으러 김치찌개 집을 갔는데TV에서 전원 구조 속보가 떴습니다.인터넷 뉴스에서도 마찬가지고요.그럴리가 없는데......마치 슈퍼맨처럼 누군가가 구해낸 듯한 뉴스가 떠서 정말 천만 다행이가 싶어 더 이상 뉴스도 보지 않고 편안하게 점심 식사를 마쳤습니다.이사님은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사람 하나 죽는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며 그런 사고나면 금방 구조되서 죽는거 쉽지 않아......라고 하셨지요.평소 콘크리트 지지층인 이사님의 말씀에 믿음은 없었지만 정말로 믿고 싶었습니다.그러다 퇴근을 하는데 그 날 유난히 피곤해서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안에서 들리는 라디오의 뉴스는 편안하게 점심 먹으며 잊고 있던 저를 미안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뭐라고? ㅠㅠㅠㅠㅠㅠㅠ어떻게 해.아이들 어떻게 해......ㅠㅠ그날부터 매일 뉴스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제발 제발 한명이라고 살아 돌아오기를....제대로된 뉴스 보도라도 볼 수 있게 되기를...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가 예상했던 우리나라의 모습 그 이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참담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무섭고이해 할 수 없는 일들..........그 날 전원구조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임을 강조하시던 이사님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꽤나 많은 주변인들이 지겹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저는 서서히 침묵해 갔습니다.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 다짐하며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데국민을 대표한다는 대통령 및 그녀의 수하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과연........가능한 일일까요?글쎄요..... 그들은 이미 사람임을 포기한 그저 괴물에 불과한 집단들 같습니다.아이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저희 끝까지 잊지 말고 함께 진실을 규명해 나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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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진 입장에서 그것도 세월호 학생들과 비슷한 연배의 아들의 가진 아빠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네요.. 당사자가 아닌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쓰라린데 당사자인 부모님들은 오죽할까요...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히 구할것이라는 국가에 대한 믿음을 가차없이 저버리고 게다가 뻔뻔하기까지 한 저 윗분들은 반드시 죄값을 치뤄야 합니다..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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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이지만 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 모 포털 싸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요. 세월호 침몰. 갑자기 심장이 덜컹 가라앉았습니다. 그 배의 인원 대다수가 저와 같은 학생이라는것에 대해서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 중, 전원구조 성공이라는 뉴스가 올라오기 시작하여 저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구조 중은 무슨 구조를 시작하지도 않았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들과 가족들은 행복을 바랬던 것 뿐인데. 그렇게 불행해야 했을까요. 몇명의 구조자와 나머지 시신들. 우리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관계자들은 따뜻한 곳에 앉아 전화로 해결할 뿐이었고요. 배를 들어올린다기에 또 한번 안심을 하고 국민들은 잘되길 빌었으나 그것 또한 루머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그저 날짜 핑계를 대며 돈을 아끼려고 했을뿐이었습니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나라에게서 생명을 보장 받을수 있을까요. 이건 세월호 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문제 입니다.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국민의 손으로 밝히겠습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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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5일, 고단한 일상에 지쳐있던 저는 모처럼 시간을 내서 혼자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부산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호텔에서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내고, 4월 16일 오전- 서울로 돌아오는 KTX 객실 안에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실시간 영상을 보았습니다. 거꾸로 뒤집힌 채 서서히 바다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주위를 돌기만 하는 해경 구조대... 그 날 이후, 바다는 제게 더 이상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차안에서도 내내, 그리고 몇 시간 뒤 도착한 서울역에서도, 모든 시민들은 보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를. 그런데 그 시간, 박근혜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깨어있기는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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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 놀이동산에 갔습니다. 소풍날이었어요. 하지만 친구가 다른 반이라서 선생님이 정해주신 대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제 핸드폰이 꺼져버려서 선생님이 바꾼 집합장소를 몰랐습니다. 원래 통보된 집합장소로 갔지만 저처럼 연락이 안됀 남학생 한명뿐이었습니다. 친하지 않던 같은 반 학생들은 저를 기다리느라 제일 늦게 나왔다며 질타하였고, 소심해서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지하철에서 친구 손을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집합장소를 바꾼 이유가 "뉴스를 보고 학생들이 너무 걱정되어 바꿨다" 였습니다. 그게 어떻게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아이들과 선생님을 향한 원망은 때때로 기억납니다. 2017년, 제가 고2가 됩니다. 그때의 언니, 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됩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희생자가 아닌 피해자, 피해자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도움을 외치고 있을때, 가해자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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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뉴스를 봤던 건 학교를 가는 버스 안이었습니다. 그때는 생존자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시 뉴스를 봤던 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습니다. 그 때 생존자 구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많이 당황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배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봤던 뉴스처럼 생존자가 전원 구조되기를 바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