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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뉴스에 세월호라는 뉴스 속보가 떴다. 나는 그 뉴스를 보고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여러명의 사람이 그렇게 죽는것은 참으로 아프고 슬픈 일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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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핸드폰을 보고있었는데 속보로 학생들이 탄 배에 문제가 생겼다는 기사를 보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속보로 전원구출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되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보라는 말을 듣곺정말 화가났었습니다.세월호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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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며 어서 빨리 구조가 되기를 바랐고,후에 알려지게 된 오보에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며, 관계자는 진실만을 밝히고 합당한 죄를 받아야 합니다.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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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스치듯 뉴스를 처음 접했습니다. 놀라긴 했습니다만 자료화면 상으로 짐작하기에 무리없이 전원 구조가 됐을 줄 , 아직 안됐더라도 될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사고 발생 직후 신고가 됐고 구조원? 들이 출동했기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무리없이 식사를 하고 일과를 끝마치고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었을 때, 예상과는 너무 다른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고, 이후로는 어머 어떡해 ㅠ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결국 맨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남 일이라고 너무 가볍게 생각한 꼴이 되어버렸고, 그 순간을 그렇게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던 저의 태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내 속 편하고자 일부러 외면해온 태도를 반성합니다. 언제까지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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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하다가 처음으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솔직히, 막연하게 "다들 잘 구조되겠지. 많이 안 다쳤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핸드폰으로 속보를 계속 확인하면서 점점 걱정이 깊어져갔습니다. 그러나 늦은 밤 텅 빈 집에 돌아와 TV를 켜고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뒤늦게 깨달은 후에는 정말 황망했습니다. 늘어만 가는 사망자 명단, 뉴스 화면에 끊임없이 비추어지는 피해자, 가족 및 관계자들의 모습. 피해자들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저도 그 날 저녁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는데, 인연이 있던 분들은 오죽 아프셨을까요. 희생자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주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의 추모와 슬픔, 분노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이 꼭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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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나 집단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우리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에서 출발하였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스스로의 얼굴에 계속 침을 밷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누군가는 그 기억을 계속 잊고 기억하고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역사는 기억에서 시작된다. 무언가를 잊지않고 살려야한다. 한번 잊어버리면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망각은 그만큼 무섭다. 나의 아이와 나의 미래가 내 손에 의해서 난도질 당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전에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 국민이 끝없이 파헤쳐야하고, 계속 기억해야하고, 관련범법자들의 죄가 다 드러나고, 처벌될 때까지 끊임없이 광화문으로 다 같인 나오고 투쟁하고 싸워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살인자가 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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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명단을 띄어 주셨는데 생존자와 아직 안에 있는 분들의 수, 그리고 사망자.. 수를 보며 제발 좀더 생존자 수가 늘어나기만을 바라였습니다. 그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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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사진을 찍던 날이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아 조금 걱정했지만 이런 날일수록 사진은 잘 나온다는 동기들의 말에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었다. 아침 첫번째 촬영을 마치고 다음 촬영을 기다리며 "수학여행가던 여객선 침몰" 이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다."어 여객선 침몰했대. 300명 넘게 있다는데?아, 아니다. 다 구조됐대. 다행이다. 하긴 우리나라 정도면 당연히 구조할 수 있지."그리고 그저그런 사건의 하나로 스쳐지나가는 줄 알았다. 촬영은 오후가 다지나갈 무렵 끝나고 친구와 있는데 문득 본 뉴스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그 배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조금 어지러움을 느꼈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집의 TV에서는 아침의 그 바다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었고 뒤집혀있던 배는 어딘가로 떠나가듯 영영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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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전시를 준비하기위해홍대의 어느카페에 있었어요.아침부터 전시준비로 바쁜와중핸드폰으로 사건을 접했답니다.처음엔 이게뭐지했다가 전원구조소식에 안도그리고그게오보인걸알았을때그배에 단원고가 있다는게 그때서야 눈에들어왔어요.안산에 살았던지라 그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도 더럿있었고, 그배에 제가 알고있는 아이도 있다는걸 알았지요. 그날부터 며칠간 참 많이울었네요 장례식장도 수차례찾았고...제전시에 갈 용기가 안났어요.바로알지못하고제 일에 바빴던 제모습이 자꾸 떠올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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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마트가다 전원구조 뉴스를 듣고관계자들 진짜 식겁했겠구나..그래도 전원구조라 참 다행이다하며 쇼핑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집에 왔는데 오보였단걸 알았습니다.그 뒤는 계속 실시간 검색하고 울면서 밤샜네요. 나도 자식키우는 에민데 철 모르고 누워있는 둘째녀석이랑 한창 개구진 첫째를 보며나 또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조심히 나오라 했을것이고 그럴 때 한놈은 구명조끼 입고 기다렸을것이고. 한놈은 말안듣고 뛰쳐나왔겠구나 싶어서..이 이쁘고 소중한 것을 그리 속절없이 보냈으니그 청춘은 어찌하고 남은 부모마음이 어쩌랴 싶어눈물이 멈추지 않아서아직 너무 어린 내새끼 입에 겨우 밥을 먹이고 씻기면서 계속 우니까 5살 큰애가 왜 우냐고 묻길래 형아랑 누나들이 바다에 많이 빠져서 엄마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고 했더니왜 도와주러 안가냐고 엄마 울지 말라고 고사리손으로 눈물 닦아주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던 7시간..그 생생한 아픔을 나는 영원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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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날짜입니다... 학교 수업 도중 이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곧 모두 구조 했다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그 후 이 소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에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tv앞에 앉아서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았고 생애 처음으로 뉴스를 듣고 울컥했습니다. 지금도 세월호에 대한 생각만 하면 울컥합니다.누군가가 기억하고 있지않는 7시간.. 하지만 우리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7시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것 입니다. 단원고 학생 언니 오빠님들과 그 외에 세월호에 타고 있던 분들.. 또 누군가로 인해 차갑게 식어가는 분들을 구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신 이런 세상속의 착한 분들.. 우리는 기억합니다.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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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한걸 처음 들은건 화학강의 시간이었어요.교수님께서 수업시작하시면서 세월호 침몰했는데 전원구조라며 다행이라고 말씀하셨지요.그날 풀강의풀강의였는데 들어오는 교수님들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해서 말씀하셔서 아주 잘 기억하고 있어요.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매일매일 세월호 관련 뉴스를 접했어요.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네요.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할 7시간..진실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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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임신8개월의 몸으로 중고등학교 친구의 신혼집에 놀러를 가려고 준비를 하고있었죠. TV에서 여객선침몰 뉴스특보를 해주는데 전원구조라고 뜨더군요. 다행이네 하며 친구를 만나 뉴스얘기를 잠깐하고 서로의 일상얘기를 하고 오후에 집에와서 다시 TV를 켰더니 하......정말 옷도 갈아입지않고 한참동안 뉴스만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더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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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아직 그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5교시 영어수업이었는데,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컴퓨터로 수업을 하시다가 우연히 네이버 실시간검색어 1위가 "진도 여객선" 인걸 보고는 놀라서 클릭하셨는데 300명 전원 구조라고 기사가 나서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몇분 후 기사가 다시났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뒤숭숭했습니다. 실감이 안났어요. 며칠동안 계속 뉴스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어떻게 저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지, 어이가 없기도 하고 300명이라는 숫자가 와닿지 않았어요.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도 너무너무 슬퍼서 눈물이 막 흘렀던 기억이 납니다. 배가 점점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서 참 답답하고 무능한 정부의 대책에 눈물이 났어요. 가슴이 꽉 막히는듯 했습니다.하룻밤 새 사망자가 몇십명씩 늘어나있는것도 너무 끔찍했고 사고가 일어난 후 몇주동안은 집도, 학교도, 온 나라도 침울했어요.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누군가에게는 사건의 진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7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보다 더 한 시간이었을겁니다. 제발, 저희의 선배들을 위해서라도, 차마 못 다 핀 꽃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힘을 모아주세요. 어느때보다도 더 국민들의 단합이 중요한 상황입니다.진실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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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날. 점심 먹으러 집에 와서 혼자 티비 보는데 뉴스 왼쪽 위 귀퉁이에 생존자랑 실종자 숫자가 집계되고 있던게 생각납니다 그날은 공부를 더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끝난 사고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사고를 계속 중계받는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날뿐 아니라 그주 내내 정신적으로 많이 버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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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100일이 지난 아이와 있었어요. 아이 개월수가 어렸고 첫째였다보니, 정신없이 지내느라 뉴스를 제때 챙겨보진 못했어요. 그러다 세월호 뉴스를 봤고, 전원 구조 소식을 봤어요. 그리고 "그럼 그렇지, 요즘 세상에..." 하고 안심하며 넘겼죠. 그게 오보였다는 게 밝혀지고, 실시간으로 뜨는 뉴스를 보며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엄마가 된 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지만 엄마로서, 부모로서 감정이입이 너무 심하게 돼서 한동안 우울증 비슷한 증세까지 있었어요. 모든 게 힘들었어요.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할 때도 그 이야기가 빠지질 않았어요. 내 아이가 그렇게 된다면? 내 우주, 내 세상, 내 사랑, 부모가 아니면 알기 힘든 아이의 그 존재감. 아이를 잃은 부모는 뭐라고 불릴까요. 그 슬픔이 감당이나 되는 일일까요.. 온통 우울하고 슬펐던 기억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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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 고2, 그 배 안의 친구들과 같은 학년이었습니다. 같은 안산의 고잔고에 재학중이었어요.그 날은 2교시에 영어 듣기 평가가 있는 날이었어요. 아침부터 핸드폰을 내고 수업을 듣는데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단원고에 수학여행갔던 애들이 탄 배가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 핸드폰을 걷어가서 누구도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고 모두 "아, 뭐 그냥 조그마한 사고가 났나보다"라며 신경쓰지 않았어요. 듣기 평가를 본 후 핸드폰을 받아서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데... 예상과는 너무 다른 사고가 나 있었어요.4월 16일로부터 2주후에 기말을 보고 3주 후에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어서 모두가 들떠있었어요. 우리 학년 인원수가 많아서 청해진해운의 다른 배를 타고 똑같이 제주도로 갔다 올 계획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세월호에는 고잔고가 첫 부임이셨던 "이해봉" 선생님도 계셨어요. 1학년때 역사 선생님이었는데, 솔직히 그 선생님 수업시간에 많이 졸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해요. 그 선생님은 제가 2학년 될 때 단원고로 전근가셨어요. 즉, 전근가시고 바로 돌아가신거에요. 그 선생님 그래도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자기가 산 애플사의 전자기기들을 자랑하기도 하고, 겨울방학동안 유럽 여행 갔다 오신 얘기를 하기도 하고 아내자랑도 하는 정말 거리감이 없는 좋은 분이었는데... 기사를 보니 나오셨다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다시 들어갔다가 돌아가셨더라구요...그립습니다, 이해봉 선생님.돌아가신 모든 분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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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오후회색 하늘회색 건물 지붕의회색 비둘기2014년4월16일 저의 일기입니다. 온통 회색 투성이었던 그날 저의 7시간 입니다. 아이들도 회색하늘 아래 회색바다 아래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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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저는 그 날도 느지막히 일어나서 밥 먹으며 처음 소식을 접했던 게 기억납니다. TV화면에서는 배가 전복되었는데 다행히 전원구조되었다는 속보가 떴고, 안심하며 대체 배가 왜 뒤집어졌나...궁금해하면서 계속 뉴스를 봤습니다.그런데... 오보였다는 말에, 오보라는 게 오보인 거 아냐?! 하며 설마...하는 맘으로 초초한 하루를 보냈던 기억입니다.전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인데, 그 날은 뉴스 보느라 책상에 앉아서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정신이 다 없었습니다.설마 설마...그래도 곧 구조가 되겠지 되겠지 했는데, 그 날 이후 한 두 달은 우울증 걸린 사람마냥 기분이 계속 안 좋았습니다.지금도 전 세월호 유족들만 보면 저절로 눈물이 주르륵 쏟아져요. 저에겐 너무도 아팠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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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캐나다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던 그날... 이곳은 저녁시간이였습니다.아이들과 퇴근 해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 하고 있었습니다.그날 저녁 메뉴인 된장찌개도 기억이 나는데...그날의 일들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그분들을 이해 할...수 가 없습니다.-_-;;멀리서 침몰해가는듯...한 지금의 위기의 한국이 너무 걱정되지만...곧 이 위기를 이기고 다시 일어설 우리의 한국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