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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하는 분과 필요한 물건을 사러 동대문에 가는 지하철 안이었습니다... 평상시와 같이 다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죠. 그러다 속보에 뜬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됬지만 전원 구조됬다고... 읽으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또 다시 속보가 전해집니다. 전원 구조는 오보라고... 지하철 안은 다들 핸드폰을 보며 어떻하냐... 어떻하냐...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목이 메이는... 기억하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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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3학년 여고생입니다.세월호 사건이 터진 날 저는 학교에 있었고 국어 수업 도중 접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상록구에 살고 상록구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아는 선배가 전혀 없었지만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서인지 같은 고등학생이여서인지 이유모를 먹먹함과 답답함에 숙연해졌습니다.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으며 기사를 봤을 땐 전원 구조였지만 점심시간 후 오후시간에는 전원구조가 오보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그 날은 시험기간이였기에 어김없이 학원에 갔고,학원에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고 계속 기사만 찾아본 기억이 나네요.2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난 긴 시간이 지났지만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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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에 있으라고 해서 있다가 무참히 이슬이 된아이들의 마지막을 상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픔니다. 그 배경에 최순실에 빠져 제 정신 못차리는 대통령과 국정을 마비시킨 문고리3인방과 최순실이 임명한 내각의 혼이 비정상인 상태가 있었다고생각하니 .....말로 표현이 안됩니다. 거기에 특조위를 중지시킬 음모까지...철저한 응징이 없다면 어찌 국가가 제데로 서며,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어찌 고개를 들고 살리오. 얘들아 !!! 미안하다. 엄마 아빠들을 용서하지 마라. 기필코 너희들의 한을 풀고 용서를 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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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도 끝도 없이 큰 배가 기운 뉴스가 나왔고 전원 구조라는 말에 안도하여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에 있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침묵하며 기울어가는 배의 모습을 봤다.일초일초 흐르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가 됐다.내 오후가, 하루가 무너졌고, 그 후로 며칠, 아니 몇 년이 무너졌다.지금도 믿고 싶지 않다. 그 참사를, 그것이 계획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을, 기어코 그 더러운 주둥아리를 안 여는 박근혜 7시간의 진실을.정의가 있는 곳에서 살고싶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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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그날 제가 그배를타지 않았지만 유튜브를 보고 TV를보며 단원고 언니오빠들과 그배에타고계셨던 승객분들이 선장이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르다 침물 하기전까지 희망을 놓치 안고 끝까지 버티다 세월호가 침몰해 언니오빠, 그리고 승객 분들은 전부 사망자로 돌아왔습니다....................고통스럽게 죽에간 세월호에탄 언니오빠 승객분들 ..........절때로 잊지않겠습니다절대로........절대로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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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뉴스에 세월호라는 뉴스 속보가 떴다. 나는 그 뉴스를 보고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여러명의 사람이 그렇게 죽는것은 참으로 아프고 슬픈 일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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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핸드폰을 보고있었는데 속보로 학생들이 탄 배에 문제가 생겼다는 기사를 보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속보로 전원구출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되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보라는 말을 듣곺정말 화가났었습니다.세월호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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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며 어서 빨리 구조가 되기를 바랐고,후에 알려지게 된 오보에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며, 관계자는 진실만을 밝히고 합당한 죄를 받아야 합니다.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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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스치듯 뉴스를 처음 접했습니다. 놀라긴 했습니다만 자료화면 상으로 짐작하기에 무리없이 전원 구조가 됐을 줄 , 아직 안됐더라도 될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사고 발생 직후 신고가 됐고 구조원? 들이 출동했기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무리없이 식사를 하고 일과를 끝마치고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었을 때, 예상과는 너무 다른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고, 이후로는 어머 어떡해 ㅠ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결국 맨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남 일이라고 너무 가볍게 생각한 꼴이 되어버렸고, 그 순간을 그렇게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던 저의 태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내 속 편하고자 일부러 외면해온 태도를 반성합니다. 언제까지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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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하다가 처음으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솔직히, 막연하게 "다들 잘 구조되겠지. 많이 안 다쳤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핸드폰으로 속보를 계속 확인하면서 점점 걱정이 깊어져갔습니다. 그러나 늦은 밤 텅 빈 집에 돌아와 TV를 켜고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뒤늦게 깨달은 후에는 정말 황망했습니다. 늘어만 가는 사망자 명단, 뉴스 화면에 끊임없이 비추어지는 피해자, 가족 및 관계자들의 모습. 피해자들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저도 그 날 저녁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는데, 인연이 있던 분들은 오죽 아프셨을까요. 희생자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주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의 추모와 슬픔, 분노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이 꼭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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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나 집단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우리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에서 출발하였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스스로의 얼굴에 계속 침을 밷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누군가는 그 기억을 계속 잊고 기억하고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역사는 기억에서 시작된다. 무언가를 잊지않고 살려야한다. 한번 잊어버리면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망각은 그만큼 무섭다. 나의 아이와 나의 미래가 내 손에 의해서 난도질 당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전에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 국민이 끝없이 파헤쳐야하고, 계속 기억해야하고, 관련범법자들의 죄가 다 드러나고, 처벌될 때까지 끊임없이 광화문으로 다 같인 나오고 투쟁하고 싸워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살인자가 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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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명단을 띄어 주셨는데 생존자와 아직 안에 있는 분들의 수, 그리고 사망자.. 수를 보며 제발 좀더 생존자 수가 늘어나기만을 바라였습니다. 그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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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사진을 찍던 날이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아 조금 걱정했지만 이런 날일수록 사진은 잘 나온다는 동기들의 말에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었다. 아침 첫번째 촬영을 마치고 다음 촬영을 기다리며 "수학여행가던 여객선 침몰" 이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다."어 여객선 침몰했대. 300명 넘게 있다는데?아, 아니다. 다 구조됐대. 다행이다. 하긴 우리나라 정도면 당연히 구조할 수 있지."그리고 그저그런 사건의 하나로 스쳐지나가는 줄 알았다. 촬영은 오후가 다지나갈 무렵 끝나고 친구와 있는데 문득 본 뉴스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그 배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조금 어지러움을 느꼈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집의 TV에서는 아침의 그 바다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었고 뒤집혀있던 배는 어딘가로 떠나가듯 영영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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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전시를 준비하기위해홍대의 어느카페에 있었어요.아침부터 전시준비로 바쁜와중핸드폰으로 사건을 접했답니다.처음엔 이게뭐지했다가 전원구조소식에 안도그리고그게오보인걸알았을때그배에 단원고가 있다는게 그때서야 눈에들어왔어요.안산에 살았던지라 그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도 더럿있었고, 그배에 제가 알고있는 아이도 있다는걸 알았지요. 그날부터 며칠간 참 많이울었네요 장례식장도 수차례찾았고...제전시에 갈 용기가 안났어요.바로알지못하고제 일에 바빴던 제모습이 자꾸 떠올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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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마트가다 전원구조 뉴스를 듣고관계자들 진짜 식겁했겠구나..그래도 전원구조라 참 다행이다하며 쇼핑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집에 왔는데 오보였단걸 알았습니다.그 뒤는 계속 실시간 검색하고 울면서 밤샜네요. 나도 자식키우는 에민데 철 모르고 누워있는 둘째녀석이랑 한창 개구진 첫째를 보며나 또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조심히 나오라 했을것이고 그럴 때 한놈은 구명조끼 입고 기다렸을것이고. 한놈은 말안듣고 뛰쳐나왔겠구나 싶어서..이 이쁘고 소중한 것을 그리 속절없이 보냈으니그 청춘은 어찌하고 남은 부모마음이 어쩌랴 싶어눈물이 멈추지 않아서아직 너무 어린 내새끼 입에 겨우 밥을 먹이고 씻기면서 계속 우니까 5살 큰애가 왜 우냐고 묻길래 형아랑 누나들이 바다에 많이 빠져서 엄마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고 했더니왜 도와주러 안가냐고 엄마 울지 말라고 고사리손으로 눈물 닦아주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던 7시간..그 생생한 아픔을 나는 영원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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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날짜입니다... 학교 수업 도중 이 소식을 듣고 놀랐지만 곧 모두 구조 했다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그 후 이 소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에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tv앞에 앉아서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았고 생애 처음으로 뉴스를 듣고 울컥했습니다. 지금도 세월호에 대한 생각만 하면 울컥합니다.누군가가 기억하고 있지않는 7시간.. 하지만 우리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7시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것 입니다. 단원고 학생 언니 오빠님들과 그 외에 세월호에 타고 있던 분들.. 또 누군가로 인해 차갑게 식어가는 분들을 구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신 이런 세상속의 착한 분들.. 우리는 기억합니다.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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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한걸 처음 들은건 화학강의 시간이었어요.교수님께서 수업시작하시면서 세월호 침몰했는데 전원구조라며 다행이라고 말씀하셨지요.그날 풀강의풀강의였는데 들어오는 교수님들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해서 말씀하셔서 아주 잘 기억하고 있어요.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매일매일 세월호 관련 뉴스를 접했어요.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네요.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할 7시간..진실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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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임신8개월의 몸으로 중고등학교 친구의 신혼집에 놀러를 가려고 준비를 하고있었죠. TV에서 여객선침몰 뉴스특보를 해주는데 전원구조라고 뜨더군요. 다행이네 하며 친구를 만나 뉴스얘기를 잠깐하고 서로의 일상얘기를 하고 오후에 집에와서 다시 TV를 켰더니 하......정말 옷도 갈아입지않고 한참동안 뉴스만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부모가 되어보니 더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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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아직 그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5교시 영어수업이었는데,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컴퓨터로 수업을 하시다가 우연히 네이버 실시간검색어 1위가 "진도 여객선" 인걸 보고는 놀라서 클릭하셨는데 300명 전원 구조라고 기사가 나서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몇분 후 기사가 다시났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뒤숭숭했습니다. 실감이 안났어요. 며칠동안 계속 뉴스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어떻게 저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지, 어이가 없기도 하고 300명이라는 숫자가 와닿지 않았어요. 집에서 뉴스를 보다가도 너무너무 슬퍼서 눈물이 막 흘렀던 기억이 납니다. 배가 점점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서 참 답답하고 무능한 정부의 대책에 눈물이 났어요. 가슴이 꽉 막히는듯 했습니다.하룻밤 새 사망자가 몇십명씩 늘어나있는것도 너무 끔찍했고 사고가 일어난 후 몇주동안은 집도, 학교도, 온 나라도 침울했어요.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누군가에게는 사건의 진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7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보다 더 한 시간이었을겁니다. 제발, 저희의 선배들을 위해서라도, 차마 못 다 핀 꽃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힘을 모아주세요. 어느때보다도 더 국민들의 단합이 중요한 상황입니다.진실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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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날. 점심 먹으러 집에 와서 혼자 티비 보는데 뉴스 왼쪽 위 귀퉁이에 생존자랑 실종자 숫자가 집계되고 있던게 생각납니다 그날은 공부를 더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끝난 사고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사고를 계속 중계받는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날뿐 아니라 그주 내내 정신적으로 많이 버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