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 당연히 아이들을 구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뉴스를 보다가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열심히 운동에 집중해보려 했지만 결국은 구할 수 없으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에 울음을 터뜨리고 기구위에서 내려와야했죠. 그 후 얼마동안 밥을 잘 넘길 수가 없어서 체중이 많이 줄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단원고가 있던 안산시 와동쪽은 제가 과외를 가르치려 많이 다녔던 곳입니다. 운명을 달리한 아이들이 다 제 제자들인 것 같아 지금까지도 세월호 생각만 하면 가슴에 돌덩어리가 들어앉은 것 처럼 무겁고 힘이드네요. 우리 아이들,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겠죠?
-
오전에 포털사이트에 <전원구조>가 계속 올려져있길래, 당연한 걸! 왜 메인에 계속 띄워져있나 했었습니다. 이 상황도 아이들이 모두 보고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합니다 영어듣기시험을 보고있었고 선생님 한분이 들어와 배가 뒤집혔다고 하셨습니다 전원 구조가 됐다는 말에 급식을 먹을때까지 큰 걱정 하지 않았어요 핸드폰을 내지않고 가지고있던 친구 폰으로 네이버 1위에 단원고가 떴다면서 신기해했습니다 오보인것을 알고 난 이후에 핸드폰을 받고 친구들 폰으로 전화를 수없이 걸었습니다 신호음이 가서 친구들이 금방이라도 전화를 받을것만 같았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어요 야자를 하면서 친구들과 계속 울었습니다 살아있을거라 믿었고 집에 와서도 뉴스를 보며 울면서 기도 하다 잠들었어요 친구들의 장례식에 가 펑펑 울던 그때가 너무도 선명합니다 아직도 등교길에서 보던, 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시시콜콜한 연락을 주고받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가자며 약속했던, 제주도에서 감귤초콜렛을 사온다던 친구들의 모습을 잊을수 없습니다 여전히 18살에 멈춰있는 나의 그립고 소중한 친구들과 추억을 나눌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친구들은 그 날에 멈춰있지만 멈춰있지않습니다 모두가 잊지않고 기억하기 때문에 멈춰있지않습니다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평생 친구들을 기억하며 살아갈거에요
-
저는 그 날 학교가 일찍끝나서 집에 왔었습니다.전원구조라는 뉴스에아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독서실에 갔다왔습니다.하지만 저녁에 집에 와서 이것이 오보였다는 사실에 설마설마 하고 뉴스만 계속 밤새도록 보면서 울었습니다.저는 이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이 날을 기억 못하면 사람이 아니죠. 저는 정부의 무책임한 말과 행동에 어이가 없고감추려고만 했던 이들에게 분노를 느낍니다.사람이 할 짓입니까?저는 절대 안 잊을겁니다.산소주입한다고 말하는 정부를 믿고 밤새서 생중계로 현장을 보며 기도했었는데....진짜 최악입니다.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는 박근혜는 한번도 공식상에서 세월호 뱃지를 단 적이 없었고 당일날에도 7시간만에 나타나서 하는소리도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꼭 세월호의 진실을 밝힐겁니다.자꾸 안내려오는 이유중에 버티면 15년동안 문서를 공개안할수있다고해서 그러는거다라는 말도 있던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요구하는한 당신은 눈닫고 귀닫으며 진실을 묻을수없습니다.어둠을 빛을 이길수없고 진실은 침몰하지않거든요. 명심하세요.
-
4학년 마지막 중간고사 공부를 연구실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연구실을 쓰는 선배들이 뉴스 속보라며 배가 침몰 했다고 합니다.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을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배에 올랐을 사람들이 걱정이 됐습니다. 안타깝고 속이 답답했습니다. 각자 할일을 하다가도 속보가 떴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뉴스를 찾아봤습니다.가슴을 졸이다 "전원 구조" 됐다는 뉴스에 안심이 됐습니다. 그 시간동안 얼마나 무서웠을지...다행이라고 안도하며 귀가해 틀었던 티비 속에선 "전원 구조"가 오보라고 합니다.숨이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또래의 동생이 있어 더더욱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지만 누군가의 부모, 자녀, 형제, 자매였음에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잔인하지 않습니까? 나는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있는데, 그들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 말에 탈출하지도 못하고 망망대해 위에서 상상도 못할 공포를 느끼고 있을 상황이?현실이 아프고 먹먹해 눈물이 났지만 바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뜻대로 무사히 그들이 돌아와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새벽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 다다음날에도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지금 이 시국에 세월호와 관련된 이들은 사라진 7시간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합니다.기억나지 않는게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는게 아닙니까? 죄없는 무고한 희생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생각합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
아직도 우리모두의.가슴에 고통으로 남아있는 그날의.기억..빠른시간내 세월호와 미수습자들과 함께 세상으로 꺼내어 가족은 물론 국민가슴모두의.트라우마를 치유해야합니다..적어도 그때까진 지치지않토록 ...
-
두살배기 아들과 놀아주며 일상의 단조로움으오 지쳐하고 있었습니다.세월호를 뉴스로 지켜보며.. 사고가 났다 ,모두 구조되었다, 오보였다, 아이들이 갇혀있다, 가라 앉고 있다, 가라 앉았지만 공기가 남았으니 아이들이 살아있을거다, 아이들의 시신이 인양되는 과정까지...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았습니다. 내 아이가 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
수업이 일찍 끝나고 선생님께서 먼저 나가셨을때 몰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이로부터의 외침 "야! 수학여행간 학생들이탄 배가 침몰했데" 다같이 뉴스기사를 읽기위해 머리를 들이밀었던기억, 그리고 누군가는 눈물을 훌쩍이며 나는 그런이들을 다독였던 기억 , 다행이 모두 구출되었단 소식에 반아이들이 함께 안도하며 웃었던 기억. 모두가 그렇게 다 구출되었단 오보에 모두 다시 책을 피고 다음시간을 위해 준비하고 수업을 듣던 그시간. 우리의 안도와는 다르게 희생자분들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떨어야 했던 그시간. 그시간이 너무 야속하다.
-
자식을 가슴에 묻고 가족을 가슴에 묻은 아픔.그날이후 그 아픔은 고스란히 아직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현 정부의 오만한 태도와 아픈 국민의 마음마저 등 돌리게 만들었던 사람들.대신 사과 드리고 싶습니다.그리고 그런 정부의 무능함으로 희생된 아이들과 가족들을 영원히 기억 할 것입니다.또다시 이렇듯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유가족 여러분들!! 힘내세요.
-
나의 2014년 4월 16일은 어김없이 학교를 갔다.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엔 연이어 속보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막 20살이었던 나는 해가 들어오지 않는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불을 끄고 자라하는 상황에서 잠을 못이루고 네이버만 들락날락 거렸다. 비가 왔는데, 어두운 강의실에서 빗소리만 듣고 있었다. 먹먹했던 그날이 생생하다.
-
그날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마무리하는 경주 수학여행길에 오른 날이였다.. 직장맘인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의 옷을 다림질해주고 도시락을 싸주었고.. 여늬 엄마들처럼 학교까지 배웅을 해주며 걱정반 설레임반으로 아이가 탄 버스를 보내고 부랴부랴 출근을 했었다. 회의하고 커피한잔하고 여행간 아들이 궁금할 즈음 인터넷 뉴스를 보는 순간...하.. 세월호 기사를 보았다... 놀랐을 아이들 생각에 순간 머리가 쭈뼛 섰지만 잠시후 전원구조란말에.. 안도의 한숨을.. 동료들과도 다행이다 라는 말을 연발...그런데.. 그런데.. 다시 아니란다... 나는 그때부터 안절부절 ... 벌벌 떨리는 손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운전을 하며 집으로 와버렸다..학교에선 안심 문자가 오고 아이도 전화를 걸었지만.. 경주로 가서 데리고 오고픈 맘이 앞서고..눈물만 나고.. 아직도 그날의 내감정이 뚜렷함에 지금도 다시 눈물이 난다..그때부터 희망과 신뢰는 이나라에 없었다..밥도 미안함에 편히 먹을수 없었고.. 잠도 편히 잘수 없었다.. 오직 내가 할수 있는건 가슴 아픈 기도와 밤잠 못자며 봤던 뉴스뿐...그 아픈 시간이 아직도 문신마냥 내가슴에 저며 있는데... 이나라의 원수라는 사람이 입을 쳐닿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줄이야..당신이 생각하는 국민을 위함이 과연 무엇일찌 나는 진정 그 머리통속 구경좀 하고 싶습니다!!
-
운전중 라디오로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무사히 구조될거야라고 믿었습니다... 하루종일 방송을 보고 듣고 울기만했습니다 ..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우는 것밖에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마르지 않는 눈물, 간절한 기도로 손등에 찍힌 손톱자국....
-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전해들은 소식이었습니다 배고파 간 식당에 밥이 맛이없었고 퇴근후 집에서 본 티비는 제대로 보이질않았습니다눈물이 앞을가려..새벽까지 보다가 뒤척대며 잠든기억이..
-
회사,에서 커피 가지러 갔을 때,, 라운지에 있는 TV 를 통해 배의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시긴에는 배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전원구조라고 자막표시가 있어... "너무 다행이다"" 란 생각을 하며 한참을 보다가 자리로 돌아와 직원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저는 기억력이 정말 좋지않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사건은 날짜는 기억못하더라도 그 날 일이 어떤식으로 진행되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합니다.그렇게 당한 모든 분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 누구보다 공감되고 , 국민을 위해 일해야하는 사람들과 언론인들의 우왕좌왕 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입니다.당신들은 살인을 저지른겁니다.대통령부터 대통령의 지시가 없다고 소중한 생명들을 충분히 구출할 수 있었던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해경들......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박근혜가 이미 사고를 계획했던 것이 아닌가 ?????
-
일하다가 잠시들린 구멍가게에 텔레비젼에서 흘러나오는 참담한 소식... 전원 생존 이란말에 구멍가게 주인도 물건 사러간 나도 안도의숨을 내쉬며.. 다행이다 하고 문밖을 나섰다.이때만 해도 참 큰일 날뻔 했구나 라는 생각에가슴한켠을 쓸어 내렸었다.. 하지만... 하지만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이게 무슨 날벼락 이란 말인가..~ㅇ ㅏ... 너무도 비극적인 슬픔이 되고 말아버렸다구조시간을 이렇게 소비힐수 있단 말인가..왜.. 왜 아직 피지도 않은 그 어린꽃들을 차디찬 바다속으로 보내야만 했는지... 다시한번 기억합니다
-
2014년4월16일. 저도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뒷편에서 담배를 한대 피려고 할때 처음 사고소식을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원구조라고 나왔기에 단원고학생들에게 색다른 수학여행 체험이 되었겠구나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1시간쯤 지나 전원구조가 오보로 나오면서 저는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담배만 피웠습니다. 배가 갑자기 뒤집힌것도 아니고 천천히 기울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못빠져나온것인지 답답한 마음 뿐이였습니다.그리고 오후에 대학 선배로 부터 걸려온 전화한통화...단원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자 저와 친하게 지냈던 대학 후배 유니나 선생님도 배에 타고 있었다고 하더군요...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수업시간에도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도 멍하니 뉴스만 바라보았습니다.제발 꿈이길...내일에는 전원구조되었다고 나오길..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4월16일의 기억과 감정...그렇기에 모른체하는 정부와 관계자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꼭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들은 실을 가라앉히려 하지만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것입니다.
-
아침 시간이라 그냥 작은 사고라고 생각했다.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지나는 배들이 도움을 줄 테고일하는 시간이라, 계속 뉴스만 볼 수도 없었고전원구조라는 희망스런 메시지도 있었고헉 ...시간이 지날수록 가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생존인원 집계오류? 재난상황에서...도데체 이나라의 재난대비는 하는 실망이 올 쯤그안에 아이들이 그것도 3백이 넘는 아이들이있었다는 걸...헉그 뒤의 뉴스들은 정말 가관 이었다.대통령의 돌발 발언 부터...그 얼마전에 티비 드라마에서 보았던 서혜림 대통령이 있었다면 이랬을까? 2년이 넘어 3년으로 가고 있는 지금변하기는 커넝 더 깊은 수렁으로 가고 있다.제길~ 이제 라도 다 털어내고 사죄를 하길 빌어본다.
-
그날 남편과 차로 이동중에 핸폰을 보다가 뉴스 속보가 뜬것을 봤어요. 청와대 기억이 안난다는 것들은 뭔가요?
-
정확히 기억합니다. 대구지하철사고를 강의재료로 분석해본 적이 있어서 제 생각엔 무조건 밖으로 다들 나오는게 맞다 생각되어서 "일단 무조건 나오라 그래"라 소리치며 눈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님 지인들이 여러분 탑승하셨다는 소릴 듣고 인맥이 좋은 몇사람과 통화하며 일단 밖으로 최대한 나오라 방송이라도 할 방법 없겠냐 상의하기도 했지만, 힘없는 범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에 좌절감을 느꼈지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갑판 출구가 물에 잠기자 "아, 이젠 정말 구조가 힘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속에서 울음이 터지더군요. 그 안에 있을 사람들을 위해 기도밖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에 인명을 구할 생각도 하지않는 비인간을 대통령이 되도록 방치한 기성세대로서 정말 고인들에게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