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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억 나지 않습니다. "엄마 사랑해" 어느 소녀가 마지막으로 보냈다는 문자가 저는 기억 나지 않습니다. 서로 구명조끼를 챙겨준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 나지 않습니다. 꼭 껴안은 채 나온 쌍둥이 아이들과, 이년뒤 그들을 따라간 엄마의 소식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진실을 밝히라고 곡기를 끊고 앉았던 그 아버지들의 모습도 기억 나지 않고, 내 새끼 살려 내라며 울부짓던 엄마들의 모습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는 자들이 모른다고 하고, 기억하는 자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고, 죽인 자들이 안 죽였다 하는 모습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살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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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았다 보고있었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려는 의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 수장^^ 4대강이 , 김기춘이 떠올랐다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괜시리 다이빙벨을 고집하지 않는 부모들이 원망스러워지면서 그만 볼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비는 억수로 내렸고 천둥 번개 또한 여느날과 달랐다 그래 얘들아 너희를 그렇게 보낸 사람들에게 뇌성을 쳐라! 절대 용서하지 말거라! 비만 오면 아이들의 눈물이라 생각했다 1주기 광화문 광장에서 날을 샜다 중고생들의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를 외치는 소리에 목이 메였다 그래 너희들이 있어 아직은 이나라가 희망이다 안위했다!그리고 지금 그들은 한결같이 위증에 위증을 하고 있다 길이 남을 역사가 두렵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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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6 그날 퇴근 후 가톨릭청년성서모임 그룹멤버들과 서울 충무로에 있는 한 극장에서 "선 오브 갓""이라는 영화를 봤었어요. 당시엔 sns도 안하고 근무시간에 인터넷도 잘 안하던 때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영화를 보고 느즈막히 집에 들어가서 tv로 세월호뉴스를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어떻게 저 큰 여객선이 저렇게 허망하게 가라앉나, 어떻게 저 많은 사람을 배에서 구하지 못했나, 어디 크게 폭격이라도 당해서 배가 조각나 순식간에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그땐 미쳐 몰랐죠. 그 후로 몇 달동안 세월호후유증으로 우울증같은 침울한 기분의 날들을 보내게 되리라는걸. 아니 그보단 이렇게 오랫동안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이렇게 많은 악인들이 똘똘 뭉쳐 세월호의 진실을 감추고 은폐하고 왜곡하며 거대한 악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3년이 가까워 오도록 9명의 생명을 찾지 못하고 인양조차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걸. 세 번의 세월호 청문회와 오늘 국정농단 청문회 중계를 보면서, 왜 그 많은 관련자들 중에 진실을 말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인가. 돈과 권력앞에 인간은 악해지고 비겁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물론 진실을 말함으로써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누구하나 그런 용기를 내지않으니 인간의 악함과 약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많이 서글퍼지더군요.Son of God! 이제 곧 아기 예수님이 오실텐테 정말 누군가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내려놓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밝혀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언젠가 세월호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는 날이 온다면, 그땐 우리나라가 좀 더 좋은 나라가 되어있을 겁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린 잊지말고 함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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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자마자 사고 소식을 듣고 동료들끼리 안타까워하며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수사로 뉴스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지요.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다같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좋아했는데 얼마지나 오보였음을 알고 그뒤론 티비앞에 어떤것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나다.히어로물 영화를 너무 많이 본탓인지뭔가 대단한 장비가 나오거나 아니면 헬기 수십대라든지 해경의 엄청난 투입, 주변에 있던 어선들의 도움으로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그 어떠한 것도 아니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냥 침몰하는 배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ㅠㅠ 정말 그 아이들에게 어떠한 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미안해 애들아 잊지 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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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 강사다. 2014년 4월 16일은 좀 멀리 떨어진 학교에 수업하러 가는 날이었다.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여객선 사고" 소식을 보았고, "전원구조"라는 자막에 이 정권이 잘 하는 일도 있구나, 다행이다 생각했다. 학교에 갔고, 정신없이 수업을 했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그 날 나의 낮 7시간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학교에 가는 시간 한시간 반-두시간, 수업 세 시간, 집에 돌아오는 시간 두 시간 정도. 뭐 그랬다.저녁 늦게 돌아와서 밥을 먹는데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반쯤 뒤집힌 배가 아직도 가라앉고 있었다. 전원구조는 오보였다고, 전원구조 아니라고 했다.안 구했구나, 나는 깨달았다. 안 구해주겠구나. 고등학생들이 라고 했는데. 수백 명이라던데. 저 배 안에 있을 텐데. 안 구해주겠구나. 그 공포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그래서 나는 분향소에 갔고 학생들의 얼굴이 너무 어려서 울었고 서명을 받았고 (처음에는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서명이다가 나중에 416특별법 서명으로 바뀌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여름을 보냈고 집회에 나갔고 나가고 있다.그 때 전원구조 오보를 낸 방송사들은 단 한 마디 해명도 사과도 없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내보낸 관련자들은 전원 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농성장에 와서 삭발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구해주지 않은 자들보다 더 나쁜 게 안 구해주고 다 구해줬다고 거짓말한 자들이다. 그 오보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를 위한 오보였는지, 그 오보의 최대 수혜자였을 대통령은 뭘 하고 있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구할 수 있었는데 일부러 구하지 않고 죽음을 지켜보기만 했던 7시간. 인간이 어디까지 끔찍하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 증명했던 7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담했던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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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고있던 그시간 우리고운아이들은 내가웃고있던 그시간 시퍼렇코 차가운 물속에서 생의 마직막시간을 못난어른들을기다리며 조금만 조금만 가만히가만히 기다리다보면.....아...나는할일이 많은데아직나는 꿈도꾸지못했는데...사랑하는 엄마 아빠 누나를부르다작은날개짓을 멈추었을...그시간..내가웃고있던 그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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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은 내언니의 생일입니다.. 그날도 우리는 웃고 떠드는 즐거운 날이였습니다..밤늦게 아직물속에 아이들이 있다는 기사를 보기전까지만요지금도 0146은 누구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아픈날이 되었습니다.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난날세월호 아이들에게 ,유가족에게 빚진날이 되었습다.어디에도 없는 세월호 세대가 탄생한날나부터 정의에 다가가기위해 행동하고 나의 아이도 공의와사랑을 꼭 알려주리라 디짐한날입니다지금도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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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다가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를 봤고..잠시 후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본 후 동료와 점심먹으며 큰배라 천천히 가라앉아 다 구해서 큰 사고는 아니네했다..바빠서 중간에 기사를 못봤는데 퇴근길에 많은 희생자와 함께 침몰해버린 배를 보며 밤새 잠을 잘 수없었다. 난 그날 옆 동료에게 했던 말까지 다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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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선체의 반정도가 보이던 몇시간 전만해도 전원 구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선체가 점점 더 보이지않는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도 구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선체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됐을 때도 구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건 우는 것 뿐이었고 그래도 정부를 믿는 것 뿐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날 차가운 바닷속에 사라져버린 사람들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어른들이 구조해줄 것이라는 아이들의 믿음을 잔인하게 짖밟아버린 이 나라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무섭습니다. 며칠을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지내다가 또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던 내 자신이 무섭고 나도 언제 어디서든 저들의 손에 놀아나 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당하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 날을 기억합니다.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먼저 가버린 그들을 기억합니다. 아직도 세월호에 있을 9명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기억합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7시간을 밝히고 그 모든 의혹들을 밝히고 죄를 지은 사람은 꼭 죗값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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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점심먹으러 좀 일찍 나갔어요. 12시엔 엘리베이터가 붐비기 때문에 11시 반이 좀 안돼서 나갔던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내에 뉴스가 나오는 모니터가 있는데 YTN 뉴스만 나와요. 거기에 뒤집어진 배가 나오면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엎어졌고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라는 자막이 크게 하단에 나오고 있었어요. 사람들이랑 별일이 다 생긴다며, 그래도 다 구조했다고 다행이라고 했어요.밥 먹고 와서 오후에 바쁘게 지나가서 기억이 별로 나지 않아요.오후 5시 넘어서쯤 포털에 구조가 100여명이고 400여명 실종으로 올라온 것 보고 아까는 전원구조라더니 하고 꽤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대체 뭘 믿어야 할지.보통 그 정도 대형 오보면 사과를 해야 할텐데 어느 언론도 사과는 하지.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그리고, 그 날이 엑소 콘서트 티켓 예매 오픈일이었는데, 8시쯤 퇴근해서 티켓 예매해보겠다고 낑낑대는 딸을 조금 도와주다 결국 실패하고 포털을 띄웠는데 구조와 실종 숫자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바로 TV를 켰는데 뉴스에서 세월호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 고래가 물을 뿜듯 배에서 솟구치는 물이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다음날 4월 17일 출근하며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데 기사중에 에어포켓 이야기가 나오길래 천안함이 생각났어요.천안함 때 에어포켓 이야기 하며 병사들 수장시키더니, 이 정부가 또 에어포켓 타령하면서 애들 죽이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저만의 기우이길 바랬지만, 결국은 그렇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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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여느날과 다름없이 11시반쯤 점심식사하러 지하식당에 갔어요. 식당 티비에서 세월호 사고소식과 전원구조 자막이 나왔어요. 다행이라고...섬이 가까이 있어서 빨리 구조가 되었나보다...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했고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동안은 늦지않았다고...어떻게든 아이들이 살아있을거고 구조될거라고 간절히 간절히 바라며 지냈던 생각이 납니다. 어두운 밤바다를 밝게 밝히며 구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정부발표, 언론보도를 보면서 정말 그런줄 알았죠. ㅜㅜ 그리고 세월호 사건을 통해 더이상 공중파 뉴스는 보지않게 되었고 정부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역지사지해보려해도 왜 구하지 않았는지, 구하려는 사람들조차 방해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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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저희 첫째 아이가 클때였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집에 방문해주셨고요. 텔레비전을 보고 전원구조란 소식에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구조될 거라 믿었고 해군에 근무하신 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민 인터뷰에서 아직 배안에 수백명의 사람이 있다는 증언에 뉴스 앵커도 그리고 저와 아버지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했습니다. 설마 수백명이 저기 갇혀있는데 구하지도 못할만큼 우리나라가 그렇게 미개하진 않으니까요 그 분의 상황파악이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그 시간 온 국민이 그렇게 정부를 믿었습니다. 정부는 무얼 했습니까? 그리고 요즘 국조 청문회에 나와서 그 날이 잘 기억 안난다 하시는 당신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맞습니까? 맞다면 무얼 숨기려고 그 날의 기억을 감추는 겁니까 분통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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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게 미안하고아직도 그 사고의 책임자들이 버젖이 잘 살고 있음에 피를 토할것 같은 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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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를 임신한 초기 ... 갑짝스러운 남편의 목소리 "수학여행가던배가침몰했데!!" "에이~거짓말 ~" 듣자마자 뉴스를 틀었을땐 .... 그리고 착찹한 심정으로 뉴스를 보던 저는 뱃속에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엉엉 울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차마 물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못볼꺼같아 TV에서 눈을 돌리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 지금도 ㅠㅠ"잊지않겠습니다""꼭기억하겠습니다""어둠은빛을이길수없다""거짓은참을이길수없다""진실은침몰허지않는다""우리는포기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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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스터디그룹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 안에 승객들이 있고 그 승객들의 대다수가 수학여해을 간 학생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이들이 정말 무섭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뉴스에도 나왔으니 당연히 곧 구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바다에 계속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치 못했습니다. 정말 너무 미안합니다. 미처 꽃 피우지 못하고 져버린 어린 아이들에게, 또 그 이후 관심에서 조금 밖에 있었던 다른 일반인 승객분들께도,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지금, 유가족분들께도.. 차마 힘내시라는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조차도 왠지 죄스러운 기분입니다. 우리는 4월 16일 그 날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진실은 밝혀져야만 합니다. 희생자들을 위해서, 유가족분들을 위해서, 또 우리를 위해서. 부디 많은 분들이 아픈 그 날을 결코 잊지 않아주시길, 꼭 그 아팠던 날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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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밤을 새가며 1명이라도 구출되길 바라면서 한 연3-4일을 세우던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민간인이 저도 이렇게 그날을 하나하나 기억하는데, 그사람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기억이 아나는지....딴 사소로운 일 한 것들은 잘도 기억하더만요......저같이 그날을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많습니다. 세월호 가족 친적 친구여러분...............끝까지 싸워요....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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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뉴스로 접했습니다. 일하면서 계속 뉴스를 찾아보고, 구조되는 인원이 있는지를 실시간 뉴스로 볼 수 있는지 찾아봤었습니다. 배가 침몰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허세가득한 한국 기득권자, 권력자들의 무능함에 울분이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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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접한 것은 막 저녁 식사를 시작하려던 즈음...그리고 잠시 후, 전원 구조라는 오보... 그 뒤를 이은 믿기 힘든 뉴스들... 잠을 설치고 새벽에 일어나 찾아본 뉴스는 절망이었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었고, 공포였습니다. 세윌호는 그날 그렇게 우리 모두의 마음 속으로 가라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그 아픔은 날이 가고 해가 갈 수록 더 선명해지고, 더 아파옵니다. 기억합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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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겆이를 하는데 부엌 작은 티브를 켜니 배가 기울어져 있습니다아이들이 타고 있다는 말에 놀라고 배는 점점 더 ㅠ무서워서 더는 티브를 못 보았습니다분노는 하였으나가슴이 저려 광화문을 지나는 길에 있는 세월호 부스를 애써 외면했습니다제가 가진 감정을 추스리기에 너무 큰 일이라이제는 분노만 생각만 하지 않을께요무언가 제역할이 있다면 참여 해볼께요아이들 명복을 빌며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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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겠죠... 아마도 라고 쓸만큼 별다른일 없는 평범한 날이었던거 같아요. 제 아이가 선천성 장애가 있어서 정치 사회 경제 등 뉴스를 잘 보지 않았었어요.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고 또 내 아이만 생각하며 잊고 지냈었네요. 이번 시국에 다시금 떠올리는 그날의 일들을 조금 더 관심 갖고 보다보니 당시 아이들의 그 상황들이 내 머리속에 그려지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내 아이였다면 이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살수가 없을거 같아요. 진실이 꼭 밝혀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