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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로 병원을 갔습니다. 뉴스속보를 보고 침몰중인 배를 보았습니다. 대부분 구조 되었다는 .. 그리고 몇 시간뒤에 동생이 시댁조카가 그 배에 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펑펑 울면서 .. 너무 무서웠습니다. 하루종일 속보만 보면서 마음 아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평생 잊을수 없는 날이 될겁니다. 진실은 꼭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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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무심히 접했던 뉴스화면, 모두가 구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오후에 들려온 소식은 많은 아이들이 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그 뒤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미안함....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하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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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소식을 들었습니다.미국의 9.11 테러가 마치 꿈처럼 느껴지듯 그날도 그랬습니다.이후 몇 시간을 TV 앞에 앉아서 구조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바다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명도 보이질 않아서 경악했습니다.구조하려는 배도 몇 척 보이지 않아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그날...우리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그날의 참담했던 심정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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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쌀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식당에 배달을 하는중에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뉴스를 보게됩니다 잠시 티브를 시청하던중에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안심하고 다시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근데 오후에 300여명 그것두 어린 학생들이 배에서 못 빠져 나와다는 뉴스를 접하고 도대체 해경은 무엇을 했는지 대한민국 정부는 또 무엇을 했는지 참으로 개탄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저두 세월호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자식을 둔 입장이라 더욱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다 납니다 구조할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오히려 지긍은 세월호 인양도 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도대체 어느나라 정부인지 묻고싶네요 반드시 7시간은 규명 되어야합니댜 저두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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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은 둘째딸 생일이라 평생을 잊지 못하는 날입니다14년 그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 일하던중 속보를 통해 사고를 접했습니다.아무잘못없는 제딸아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4월의 차가운 바닷속에서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지고 그날은 밥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않고답답한 마음에 종일 눈물을 삼켰던 날입니다.그런데도 그날의 관련자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니 분통이 터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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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상황이 너무 무섭고 안타깝고 미칠 것 같았다. 아직도 그 아이들, 그 배 안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 울컥거린다. 미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 잊지 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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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세월호에 갇힌 승객들을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를 보고는 안심했고. 우리나라의 국가력에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분뒤 그 이야기는 눈가리고 아웅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차갑던 바다속으로 생명들이 사라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보고만 있었습니다. 이나라의 주인은 우리인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한탄스러웠습니다. 저는 잊지 못합니다, 아니 잊지 않습니다 그날은 국가의 신뢰가 떨어진 날이기에 생명들이 무의미 하게 사라진 날이기에우리가 다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진실은 바다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게 아니라 잠시 안개속에 가려진 것 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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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집에서 텔레비젼을 보면서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자식을 낳고 보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져서 아이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소중하게 키운 아이들 일텐데 이 아이를 잃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몇 주 뒤 우울증이 와서 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 우울하고 힘든 일은 가급적이면 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자주 울고 우울해져서 안되겠다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차마 잊지는 않았지만 잊으려고 노력해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제 아무리 힘들어도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매일 #1111 문자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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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학습 날이어서 아이들 데리고 낙동강 에코센터 갔던 날입니다.. 점심 먹으면서 뉴스 보고 깜짝 놀랐다가 금방 전원구조라고 뜨는거 보고는 안심하고 체험학습 계속... 저녁 뉴스 보고 참담했습니다...너무 아파서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진실이기에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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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중간 15분의 짬이 나서 학교식당에 갔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식당 한켠 TV에서 세월호 침몰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뉴스를 보고 있는데 탑승객 전원 구조 자막이 뜹니다. 다행이다...뉴스를 보다 다시 강의를 갑니다. 쉬는 시간에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는데...오보였답니다 . 아이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고 ...아직 살아있다고...구조를 기다린다고...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세월호에 대해 알려줍니다. 학생들이 아무 말도 못합니다. 장난인 줄 아나봅니다. 장난이 아니라고 사실이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아무것도 못해주는 어른이라 미안하다고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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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기 전 인터넷으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보고 어머 어떻게해 그래도 해경들이 와서 구해주겠지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점심먹으면서 티비에서 전원구조라는 오보 소식을 듣고 안심하고 김밥과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먹고 난후 얼마 안있다가 이 소식이 오보라고 하는 비보를 딛고 너무나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팠습니다.구할 수 있었는데 가만히 있어라는 그 말한마디에 사람들은 세월호와함께 가라앉았습니다.너무나 슬픈 것은 내가 그 가슴아팠던 사건을 삶이 고달프다보니 잊고 살았다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꼭 진실은 밝혀질때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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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흐렸다..흐린 날씨처럼 그 날의 기억을 평생 가슴에 뭍고 살아가야하는 사고가 운명처럼 다가왔음을..속보가 뜨고 단 한 사람의 희생자없이 구조하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뜨고 ..전원구조 했구나~ 안도하고 집안일을 했던 것 같다..그리고..2014년 4월16일 이후부터 오늘까지 단 하루도 잊은 날이 없다.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정부!무능한 정부!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진심인 우리들..구하지 못한..수장시킨..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우리는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한다.그리고 그 세월호참사 책임자들..마지막 한 명까지 죄값을 받게해야한다.2014년 4월16일..이 후부터 우리는 세월호 엄마고 아빠고 가족이었습니다..그렇게 아파하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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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구름이 땅으로 내려 앉을듯한 흐린 날이었습니다. 5살 아이의 봄소풍 날이었지요. 아이를 보내고 연구실로 가던 버스안에서 사고뉴스를 봤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실시간 뉴스를 보며 부디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랬어요. 얼마뒤 전원구조 속보가 떴는데, 구조된 학생의 인터뷰는 그 바램을 무너뜨렸습니다. 어린 남학생이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흐느끼며 "친구들이 다 배안에 있는데. . ."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나는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무기력하게 책상에 앉아서 아이들이,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봄소풍에서 돌아온 내 아이가 셔틀에서 내리던 오후 네시반. 나는 아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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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 둘째를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자유를 얻은듯한 느낌이었지만 수유텀이 있어서 그 시간을 만끽할 수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일이 목욕탕 가서 묵은 때를 벗기는 것.목욕은 하고 나와 젖은 머리를 말리며 뉴스를 보니 배가 침몰해있고 전원구조라는 최악의 오보가 되고 만 그러나 그때만해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자막을 보았다.그리고 집에 돌아와 티비를 켜니 오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배에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그 후 계속 기사검색과 인터넷카페에 드나들며 골든타임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구조할 수 있기를 빌며 또 빌었다. 나 역시 휴직중이지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고등학교 교사이므로 내 일 같았고 내 제자들 같았다.그렇게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그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내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자 한다.그 첫번째가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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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근처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2014년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제가 근무하던 중학교도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었고, 버스 기사님이 사고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학부모님들로부터 수많은 전화를 받았고, 교장선생님은 아예 한 시간마다 보고를 하라는 지시도 하셨습니다. 학생들 중에 세월호 희생자의 친인척들이 꽤 있었고, 희생된 선생님들 중 두 명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날의 모든 상황이 아침부터 똑똑히 기억납니다. 그 아픔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똑똑히 기억납니다. 청문회 증인들의 증언이 그래서 더 아픕니다. 그래서 더 분노합니다. 진실은 밝혀질 겁니다. 그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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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세월호가 나오면 그 안에서 공포에 떨고.. 차오르는 물에 공포심을 느꼈을 애들을 생각하면...가슴이 먹먹해지고 미어집니다...우리는 그 아이들을, 그 슬픔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차갑게 세상을 떠나갔던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고위 관료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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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안전점검일을 하는 사람입니다.그날도 다른날과 같이 수용가를 방문하여 점검하고 동료와 같이 식사를 하려 동태집에 들렀는데 뉴스에 세월호 사고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모두 구조되었다고 하기에 천만다행이다라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러 갔었는데 ...지금도 세월호 동영상이 나오면 볼수가 없습니다. 마치 내애가 그속에 있는것 같아 금새 눈앞이 흐려지는게 보기가 너무 가슴아픕니다.그렇게 허무하게 속수무책으로 어린 생명을 보낼수 밖에 없었는지...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그렇게 밖에 대처할수 없었는지 원인을 밝혀 어처구니 없게 가버린 생명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꼭 밝혀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어떻게 잊을수 있나요 그날을 생때같은 애들이 그렇게 간날을...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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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배가 가라앉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빠른 대처로 전원이 구조되었고 모두 안전하다는 뉴스를 전해 주셨다.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남의 일 처럼 시큰둥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철학 수업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전원 구조라는 희망적인 소식은 나를 안심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주도로 들어 온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던 옆 학교 친구들은 수학여행이 미뤄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전원 구조라는 소식은 전부 오보였고 세월호 승객들은 모두 방치된 채 죽음을 맞았다. 정부 당국의 잘못된 상황 판단과 부족한 상황 대응력이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당시의 무능함은 승객들을 죽음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남은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책임 회피로까지 이어졌다. 정부가 세월호 승객과 유족들의 반대편에 선다면 나는 기꺼이 유족들 옆에 서겠다. 나의 친구, 엄마 친구의 아들, 친구의 이모, 동생 친구의 형이 세월호에 탈 수도 있던 그 상황은 내가 아주 우연히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않았음을 알려준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유족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겠지만, 세월호 안의 승객들을 나의 삼촌, 이모로 학생들을 나의 친구로 생각하고 슬픔에 동참하겠다. 우리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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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론 수업을 수강하고, 집으로 돌아와 김세은 교수님에 대한 감상을 썼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일기를 적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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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이도 내친척도 아닌 얼굴한번본적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셀수없는날들을 슬퍼하고 분노하고 무기력했음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