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원 구조 오보를 믿고 수업을 다녀와서 마주했던 침몰영상. 잊을수없습니다...
-
그 때는 사고라고 생각했습니다지금은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범죄라고 생각합니다
-
어느새 기억력이 흐릿한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 어떻게 그날을 잊을수가 있겠나요..미국시간으로는 4월15일 여기에선 시청할 수 있는 유일한 라이브 뉴스 YTN을 통해 처음엔전원구조라 해서 아이고 천만 다행이다 했다가금방 아니란 소식에 무너지던 가슴... 그날 이후로... 지금도 제 가슴은 여전히 무너집니다...평범한 민초가 이럴진대 어떻게 당시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기억이 안난단 소릴 입에 담을수가 있을까요....ㅜㅜ
-
학교에 가려고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봤습니다. 여객선이 침몰 중이다. 큰 배인 만큼 별 일 없을 것이라 믿으며 등교했습니다. 전원 구조 속보가 떴습니다. 믿고 안도했습니다. 점심 이후 나른한 교실, 국어학자료강독 수업을 듣던 중 무심코 스마트폰 인터넷을 켰는데 청천벽력같은 뉴스가 보였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교실 여느 때와 같은 자리 였지만, 그날의 공기는 달랐습니다. 쉬이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 데리고 2박3일 경주로 수학여행 떠난게 4월 14일입니다. 16일 아침에 선생님들과 커피한잔하고 학교로 잘 돌아가자고 얘기 나누고 학생들과 버스에 탔어요.그리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는데 세월호 기사가 올라오더라고요. 수학여행 끝나고 아이들과 돌아오는 교사입장에서 정말 남일같지않았어요..그일이 벌써 천일이 되었다는게 믿을 수가 없네요.
-
전 그날 생일이어서 휴무받고 엄마집 가서 쉬고있었어요 엄마한테 전원구조라는데? 라고 했더니 오보라고 해서 종일 뉴스만 봤네요 그맘때 많이 듣던 노래가 레미니신스랑 얼음들인데.. 그노랜 지금도 못 들어요ㅠㅠ너무 생각나서
-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언니에게 연락을 받았지침몰 했다고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원 구조했다는 연락이 왔고.속으로 어떻게 그렇게 됐지? 그게 가능하지? 생각했는데 어쨌든 다행이라고 답했어.그러고 점심 먹으러 갔는데 상황이 잘몰 됐더라.그 날은 절대 있을 수 없어.잊지 않을게.같이 공부하던 사람들과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이렇게 공부해도 되나라고 얘기도 나눴는데..미안했어하지만 잊지 않을게
-
300여명의 사람들을 전원구조했다는 기사. 믿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짧은시간에 다 구했다는게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와 제 직장 동료들은 언플이랑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 해경이 해군도 돌려보내고 배에 접근조차 하지않았죠. 특보 올라오는 내내 피가 말랐습니다. 그들과 아무 연관이 없는데도 말이죠. 그냥 우리의 공통점이라면 대한민국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는 점. 그 큰 배를 띄어보겟다고 배에 단 그 풍선은 뭔가요. 고작 풍선만한 몇 개로 물을 잔뜩 머금고 사람과 짐을 실은 배를 띄우겟다는 보이기용 구조작전.화가났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기업에서 배를 인양 해주겟노라고 왔지만 거절했고 다이빙벨조차 거부한 정권. 이제와서 돈이 많이 들어 못한다는 정권. 박근혜정권으로 흘러간돈 그 돈이면 인양할 수 있었겠죠.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아이들이 제물로 보였을까요. 왜 . 기회가 많았는데... 어둠과 차디찬 물속에 아이들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꿈을 이루지 못한채 보내야 했을까요. 무능한 박근혜 정권. 평생, 아니 대대로 값지 못할 천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는게 이것뿐이라 죄송합니다. 도움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저는 출근이 좀 늦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던중 세월호 침몰 학생들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네 하고 오후 출근을 했더니 아. 회사직원들 모두 경악을 하고 안타까워 일이 제대로 안잡히고 항상 웃어야 하는 저희 직업이지만 그날 저희는 웃지 못하고 그저 인터넷으로 왜 그런 오보가 나고 왜 제대로 구조를 못하는지 이야기 하면서 저희 직원중 군에서 심해 잠수사로 근무했던 직원에게 바다속 상황 경험을 물어보며 생존 가능성등에 대해서 들어보고 그저 안타까움에 너라도 가봐야하는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구조 소식을 기다리다 실망스런 소식만 계속 해서 접하며 오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납니다.도대체 국가의 지도자로서 그런 중요한 날 의 기억이 안난다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당신 가족의 아픈 일.그날도 기억 안나십니까?그날은 기억하면서 국민의 그날은 왜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십니까?
-
당시 공시생이었던 나는도서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세월호가 전복되었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뉴스를 보고 "다행이네"" 넘겼다.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저녁 먹을 때가 되서야전원구조는 오보였고, 수많은 사람들이물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안타까웠다.그 이후로 세월호 기사만 보면 정말 펑펑 울었다아마 단원고 아이들이 동생 또래이기 때문이겠지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나는 아직 결혼도 안했지만자식을, 형제를, 친구를 잃은 그 큰 슬픔이얼마나 깊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 날...신랑과 치킨먹다 뉴스 봤어요..낮에도 봤는데 어설프게 봐서 그게 그리 큰 사고인줄 몰랐는데...저녁에 보니 큰 사고 였어요...치킨을 먹으며 가게에 작은 티비로 보며 애들이 불쌍하다며 울었어요...그러다 치킨도 목에 걸리고 속성했어요...잘못될까 걱정도 했고...근데 그날 사고는 지금도 잊지 못하겠어요...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선명해요...그 이후는 배도 한동안 타기가 겁이 났었어요...세월호는 이름대로 세월이 되었네요....항상 마음속에서 잊지 못할거예요...세월호사건...
-
2014년 4월 16일, 당시 전 고3이였어요.사건 발생 후 조마조마한 마음에 계속 뉴스를 확인했는데 생존자의 수는 늘어날 생각을 안하고 사망자만 늘어갔죠.. 다들 제 동생같고 가족 같아서 한명 한명 잃어갈수록 너무 두렵고 가슴이 쓰렸어요. 2017년인 지금 제 나이는 22살이에요. 고등학교때의 모든 기억이 슬슬 어색해질 나이인거같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또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을 아이들이 떠올라요. 여전히 고등학생인 그 아이들이요. 살아있었다면 한창 꽃 피우고 있을 예쁜 아이들인데.. 하지만 전 그 아이들이 영원히 아프지 않을 또 다른 곳에서 예쁘고 풋풋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거라 믿고 있어요. 항상 행복하고 또 행복하길....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그 날의 기억 속에서
-
학교에서 수업하다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슬퍼했어요 미안해요 잊지않을게요 기억합니다
-
새벽기도 끝내고 거실 텔레비젼을 틀었는데, 수행여행가는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구조했다고 해서 안심하고 아침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티비를 틀었더니 오보였다며 학생들을 태운 배-세월호가 물속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하루종일 울면서 티비를 보며 살아있다는 학생들도 구해내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며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납니다.아 어쩔겨......
-
수업 중...다 구조 되었데요~~~서로 확인 ,안심하고. 열공하며 간식 먹고. 농담하고.......그런데....누군가...구조된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뉴스에 여기저기서. 핸폰을 열었다.오늘 아침 일처럼. 생생한. 천일 전...잊을 수 없는 그 날이 무려 천일이나 지났네요.역사로 남아. 기억될 그 날이 그들은 기억이 나지 않은다네요~~
-
저는 회사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고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세월호 침몰 속보가 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었기에 그저 전원 구조되길 바라며 SNS에 제발 살아돌아와달라고 짧게 글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교육도 집중하지 못할만큼의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은 지금까지도 선명합니다.... 티비에서 노란 리본과 희생된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정말... 정말.. 미안하고 괴롲습니다.
-
학교에서 핸드폰안낸 친구가 선생님께 다급하게 "선생님 배가 침몰했데요!!!!" 그때 선생님께서는 " 다 구조했다던데? 그나저나 너 어떻게 알았어 휴대폰 안냈지? 가지고와" 하시며 다들 하하호호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날이 가정의날이라 학교를 일찍마치고 집에 가면서 기사를 보는데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집에 뛰어가서 이게 어떻게 된건지 엄마께 여쭤보고 또한번 놀랐습니다..그날밤 이모는 지난주에 저의사촌오빠가 세월호로 수학여행을 갔다와서 매우 놀란상태였습니다.. 그날은 공부도 안하고 뉴스만 계속보았습니다. 잊혀지지가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집니다 . 제발 세월호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
-
중학교 3학년의 봄날이었습니다.평소처럼 학교에 다녀오니까 테이블을 tv 가까이에 붙이고 걱정스러운 듯 뉴스를 보는 엄마께서 계셨고, 나는 무슨 뉴스를 보냐 물었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온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무사히 다들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했고 나는 교복을 갈아입어야지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엄마 옆에 꼭 붙어서 뉴스를 봤습니다. 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고, 탑승했던 학생분들도 모두 내 또래인데, 다른 분들도 모두 무사하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그 때는 걱정스러운 마음만 하고 무사히 돌아오겠지 - 하는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 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1000일이 흘렀습니다. 그 날 학교에 다녀왔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만큼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이 지나도록 그 날의 기억은 도무지 잊혀지질 않습니다.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감히 아무 말도 드릴 수 없지만, 부디 그 곳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계속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부디 진실을 밝혀주세요.
-
나는 그 날. 누군가는 작년이나 재작년 또는 언젠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날의 난 호주에 있었다. 10개월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비행기를 타기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그저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며, 기사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날의 기억. 아직도 또렷한. 천 일 전의 그 날.
-
학교에서 뉴스를 보며 울었습니다. 친구들과 잘 나오지도 않는 티비를 보며 서로 울고있었고, 그날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선생님 교회의 언니오빠들이 안에 있다며 기도해 달라고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저희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답답한 정부의 대응에 화가났습니다. 대통령님 7시간동안 무얼하셨기에 이것보다 급한 일이 어디있다고 갑자기 보이지 않으셨는지 너무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