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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 날 저는 18살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습니다. 쉬는 시간 선생님들이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들이 하늘의 별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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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사는 남매 엄마입니다. 그당시 저는 첫아이의 임신을 너무나 기다리고 있을 당시였고 두줄이 안나와서 속끓이던 날의 연속이었고 그날은 임신확정의 테스터기를 들고는 너무 행복해하며 TV를 켰고.. 믿을수 없는 뉴스 속보에 테스터기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곤 바로 무릎 꿇은채로 엉엉울며 기도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생명이 내게 온날 어찌 이런 시련을 주냐며.. 진짜 마음이 아파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7개월이 지났고 어쩜 가끔 기억해내며 지났고.. 또 다시 잊음이 얼마나 큰잘못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때 온 아기는 세상에 너무 일찍 나왔고 심폐소생술로 살려냈고 그후로도 계속된 생사고비 그리고 NICU에서 하늘로 소풍을 가버리는 아기들을 보며... 그렇게 겨우 살려낸 우리아이는 7개월이 되어서 집에 오게됐고 26개월이 된 그아기와 얼마전 광화문집회에 다녀왔습니다. 빛이 어둠을..참이 거짓을.. 이김을.. 진실이 절대 침몰하지 않음을.. 보여주기위해.. 아이가 뉴스에 세월호 장면이 나옴.. 배..배.. 이럴때면.. 네가 오던날 수많은 천사들이 하늘에 갔다고.. 그러니 더 귀한 그 생명..좋은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매일 기억하면서 산다는 거짓말은 안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날을 기억하고.. 잊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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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큰 계단식 강의실에서 교직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이 끝나고 두 번째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교수님께서 세월호에 대해 말을 꺼내셨습니다. 금방 전해진 속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걱정하는 우리의 표정을 보며 당연히 구조가 다 될 거라며, 지금이 어떤 시댄데 걱정하냐며 농담 섞인 말을 던지시던 교수님 얼굴도 생각이 납니다. 저 친구들은 오히려 수학여행 때 저렇게 뉴스 나오고 구명조끼 입어본 게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남아서 나중에 자기들끼리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거라며. 걱정 하지 말고 수업 계속 하자면서. 그러던 교수님이 그 다음 주 똑같은 수업 시간에 펑펑 우셨습니다. 자기가 태어나서 지금껏 뱉은 말을 이렇게나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얼마나 슬픈지, 어른으로서 말로 다 못 할 미안함, 국민이라서 가지는 분노. 모든 것들이 담긴 눈물을 보며 저희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저도, 친구들도, 학교도, 온 나라 전체가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4월 16일 당일 뿐만 아니라 그 봄을 지나던 내내 우리가 어땠는지 똑똑히 기억이 납니다. 누구처럼 작년, 재작년 언제쯤이었는지-하고 막연히 떠올릴 만큼 작은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하늘로 보낸 학생들, 선생님들, 죄 없는 사람들 말고도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바닷속에서 천 일을 견뎠습니다. 나쁜 어른들이 더 깊이 묻어버리기 전에 함께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온전한 인양 후에 왜, 어째서 죽어야만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정확하게 낱낱이 밝히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엄중한 처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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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수요일 이였어요.. 수요일에는 학원이 좀 멀어서 부모님들께서 차례로 데려다 주셔요.그날은 저희 엄마 차례였는데 평소에 뉴스를 많이 보시던 엄마께서는 수학여행에 갔던 아이들의 배가 침몰되었지만, 모두 안전히 구출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갔다오니 구출된 사람들하고 실종자수가 바뀌어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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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평범한 여중생. 학교, 학원에서 공부를마치고 늦은 저녁, 셔틀을타고 집을가던중 차 라디오방송에서 생존자 수를 흥분된목소리로 외치고있었다. 그렇다, 난 그날 하루종일 그일이 일어난지도 몰랐다. 지금 많은 시간이흘렀지만 기억난다. 난 진짜 몰랐다. 친구가 없어서 그랬던지, 바뻤던지, 하지만 그 작은 라디오방송 하나로 그 사고를 알게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 사고가 이렇게 큰 사고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버스에서내려 집현관문을 열자, 부모님은 티비앞에서 눈물을흘리고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않았다. 남의일이라고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실종자 수가 늘어나는걸 볼수록 점점 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고 매일밤마다 티비앞에서 자기전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1000일이 된 오늘, 난 아직도 그 라디오방송을 기억한다. 내 부모님의 눈물을 기억한다.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의 눈물을 기억한다. 대한민국의 눈물을 기억한다. 기억한다. 잊지않는다. 죽는날까지. 이건 잊혀져서는 안된다. 기록이남아야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한다. 기억해야한다. 잊어버리지말아야만한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더라도 지겹지않다. 기억해야한다.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추모합니다. 304명의 작은날개. 하늘로 떠올랐지만 그것들이 절대 잊혀지게되서는안된다. 헛된 일이 되어버리면 안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이건 막아야한다. 다시한번 추모한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대통령은 모르더라도 우리는 압니다. 따라서 추모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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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중2인 어느 평범한 학생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당시 4월16일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세월호 얘기를 해주셨고 다행히 전원구조가 되었다고 말씀하섰습니다 하지만 그정보는 잘못된 정보였으며 한동안 반톡방에서는 세월호의 얘기밖에 나오지않았습니다 중학생도 그날 뭐했는지 그사고가 3년전에 일어났고 피해학교가 단원고라는것을 알고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그것도 모른다는것에 화가나서 지난 8차,9차때 나간 촛불집회가 끝이였는데 이번11차 집회까지 나가게 만드신 말이였습니다 그날일 못잊죠 벌써 1000일입니다 하지만 나오지 못한9명의 미수습자들이 가족의 품에 돌아갔으면 좋겠고 언제 일어난지 모른다..라는건 유가족분들과 희생되신 선생님 언니오빠들등 그날 세월호에서 돌아가신 모든이들을 두번 죽이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니 안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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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못한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내가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그저 티비로 바라보며 그들의 비하면 너무도 가벼운 안타까움 그리고 아무것도 해줄수 없고 단지 노란리본만 기억할 수 있는 나라서 차마 유가족들에게 힘내라고도 못하겠다어떻게 힘낼 수 있는가 괜찮다라고도 못하겠다어찌 괜찮을까 그저 우리의 할일은 기억하는 것 노란리본을 그 안타까움과 10대의 아름다움 사람의 이기심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 최대한 같이 슬퍼하는 것 가늠하지 못할 그아픔을 아파할 것 그것 밖에...그리고 바다를 향해 진실을 비추는 등대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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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이라는 핑계로 그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가한 날, 그리고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날, 눈 앞에서 지나가는 고래 한 마리와 그 위에 있던 학생들을 보며 다시금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학년인 그들과 여러 사람이 제주도로 오던 배 안에서 사고가 나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를 학교에서 보았을 때, 저는 당연히 야자가 끝나면 구조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부둥켜 안는 사진이 담긴 기사를 볼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늑장과 잘못된 대응 그리고 원인불명의 여러 이유가 모여 세월호는 여러 생명을 바다 속에 가둬버린 더러운 정치로 얼룩진 사건이 되었습니다. 때론 부모님과 싸우고, 화해하고, 고마움을 느끼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학 입시와 수능을 보았을 그들이 왜 정치로 얼룩진 더러운 정부의 대책으로 인해 바다 속에 잠겨져 있어야합니까. 왜 저는 여기 이렇게 앉아 그들을 기억하며 안타까워 해야합니까.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일 아닙니까. 국민을 지키고, 위하라고 만든 정부 아닙니까. 바다에 가라앉으며 구조를 기다리던 그들은 이제 바다 속에서 가족의 품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슬픔과 이유를 저는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참된 주인인 국민마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것이 2014년인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닭대가리 대통령과 같아져선 안됩니다. 저는, 우리는, 국민은 세월호의 아픔과 슬픔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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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5학번을 꿈꾸며 공부하던 고3이었습니다. 학교애서 세월호의 침몰 사건을 접했고 집에 돌아왔을때 나의 일도 아니고 나의 친분이 있는 사람의 일도 아닌데 우리가족은 모두 울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울었습니다. 10월, 대학 면접에서 세월호 관련 질문이 나왔습니다. 또 울었습니다. 저는 세월호 당일과 그 다음날의 일들 무얼했는지 기억합니다. 과학선생님이 우셨고 미술선생님이 화를 내셨고 문학 선생님이 분노하셨고 저희반이 침울했습니다. 저는 교탁 바로 앞자리었고, 제 책상밑 서랍에는 한쪽은 ebs교재와 한쪽에는 핸드폰과 이어폰이 있었습니다. 교무실에는 문학선생님과 영어선생님, 수학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자리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꼭 정치하시는 분들은 기억을 못할까요. 청와대에 있으신 분들은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이건 말도 안됩니다. 진실을 외치고 있습니다. 거짓은 언제까지나 진실을 가릴수 없습니다. 청문회에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00일이 지나도 10000일이 지나도 잊지않겠습니다. 못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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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오전9시50분경 부터 뉴스를 보았습니다. 세월호 침몰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타고 있었고 점점 더 깊이 침몰해가는 뉴스를 티비를 통해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전원 구조 소식에 아 다행이다 하면서도 계속 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전원구조가 아니랍니다 . 생각보다 상황이 안좋구나 실시간으로 세월호가 점점 가라 앉는 뉴스를 통해 보면서 안타까움에 침울해하며 뉴스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습니다 전원구조가 되길 바라면서요 어떻게 저런일이 있을수 있나 그날에 충격은 아직도 마음이 아립니다 . 오후가 지나도 저녁이 지나도 그리고 몇일을 아이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눈뜨면 뉴스부터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뚜렷한 기억이 왜 기억이 안나는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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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는 학교에 가려고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인터넷으로 뉴스 기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국가에서 알아서 잘 구조하겠지라고 생각했고 수업을 들으며 틈틈히 사건 기사를 계속 보았습니다. 전원 구조 됐다는 기사를 봤고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오보였고 결국에는 많은 동생들과 일반인 분들이 차디찬 물 속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차디찬 물 속에서 눈을 감으신 304명의 영혼들을... 그리고 그들을 그분들을 그렇게 만든 악마들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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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저도 모자란 인간이었던지라...아직도 힘들게 버티시는 피해자 가족분들이 계시는데도 가끔 잊어버리기도했습니다..또 특별법에 관해 갑론을박이 심했을때 정부가 몰아가는 상황에 잠시진짜로?하고 의심을해보기도했던것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피해학생들과 동갑입니다. 당시 학교 컴퓨터실에서 포털사이트 실검을 확인하는데 진도가 1위 더군요. 평소처럼 심각한일이 아닌줄알았고 더군다나 전원구조라는 소식이 한참 보도되던때라 다행이다 하고 넘겼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교방과후수업때 전원구조가 아니라는말을 듣고 사실 실감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고 하루 이틀 사망자가 늘어갈수록 친구들에 대한 감정때문에 슬프기도하지만 제대로행동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반친구들은 구호물품을 모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당시에 모두가 같이 공감해주던 국민들과 유가족분들을 멀리 하게하며 이상한 소문들과 얘기들을 무성하게 진.짜.선.동을 한 무능한 정부가 요즘 이슈죠. 세월호 천일과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세월호 다큐와 세월호 가족협의회에서 만드신 영상들과 생존학생들의 다큐까지 빠짐없이 챙겨보고 나서야..정말 말도안되는 것으로 정부가 국민들과 유가족들을 두번 죽이는구나 라고 생각들었습니다. 여기엔 당시에 기억을 쓰는 곳이지만 유가족분들이 혹시 보실까 두서없게 저런 말들을 늘어놔봅니다. 며칠전 촛불집회에서 유가족분이 촛불이 꺼질까 두렵다하셨는데 걱정하지마십시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전과다르게 진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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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학교의 등교시간은 8시 20분이었기에 그후로는 핸드폰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여느때와 같이 하기 싫은 수업을 했죠... 1,2교시 수업이 끝나고 3교시가 되어 과목을 담당하시던 여자쌤이 들어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그래도 다행인게 전원이 구조됬다더라"하시면서요. 그리고는 안전사고 예방에 유의하라하시고는 수업을 마치셨습니다. 그렇게 오전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난 후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세월호소식이 오보였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저희는 당황해 선생님께 물었을때 선생님은 세월호 인원 모두가 구조된게 아니라고 얘기하셨습니다. 학교 분위기는 어두워 졌고 선생님들도 수업대신 계속해서 뉴스를 틀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세월호 사건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지만, 저는 기억하고 우리는 기억하며, 오보였지만 모두 구조됬다했을때 가슴을 쓸어내렸고, 그게 오보임이 밝혀졌을때 눈물을 흘렸으며, 나중에 그 진상을 알게 되었을 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국민들도 기억하는데, 한 나라의 대표가 304명 국민들이, 또 저와 같은 학생들이 죽어가는데 기억이 안난다니.......그 기억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나봅니다.그리고 국가에게, 정부에게 국민은 아무것도 아니었나봅니다.국가도 정부도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는 기억하고 우리는 추모합니다.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사람들을 그리고 아직 추운바다에 있을 사람들을...우리는 다만 진실이 궁금할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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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처음접한곳이 학교에서였는데 누가 말한줄은 몰라도 몇교시후에 어느순간 다 구출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애들이랑 신이나서 봐보라고 일이 커질리가 없다면서 장난쳤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와 뉴스를 보니 사실과 전혀다르더군요 전 그래도 곧 구출되겠지 한두명도 아니고 몇백명인데 나라에서 반드시 뭔갈하겠지 이대로 끝나면 말도안돼잖아?하고 몇백명이 그안에서 선밖에 없는곳으로 갈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전 그저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무능한정부 도대체 어떤 심오하고 복잡한일이 있기에 몇백명중에 한명도 못살린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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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신우신염 때문에 병원 임상병리실에서 각종 검사차 대기중 이였는데 tv에서 세월호 소식이 들려왔다.아~어쩌나 .제발~여기저기서 웅성 거렸고 검사를 마친후에 대기실에 사람들이 모여서 tv를 보는데 다 구했다고 보도가 되었다.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같이 환호성을 질렀고 그럼 그렇지~우리나란데..하면서 병원을 나와그날 그 병원 장례식장에 직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인터넷을 보니 오보였다고.ㅠ.ㅠ그때부터 나는 암담함에 눈물을 쏟았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내 아이도 고2..수학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기에..남의 일일수가 없었고..지금도 이 순간도 나는 여전히그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들이다.아프고 슬프고..그아이들을 그냥 방치했던 그들이 너무 저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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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7시간 동안 차가운 물속에서 살려 달라고가족들에게 핸드폰 문자 날리는 모습에가보지도 못하는 나는 발만 동동 구르며나라에서 어떻게 해주겠지 그냥 저대로 차가운바닷속으로 아이들을 보내진 않겠지 설마 끈을놓진 않겠지 하며 내내~기도하는 마음으로 뉴스매체만 목을 놓고 바라보며 가슴으로 얼마나울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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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근무였어요. 운행중 항상 라디오를 켜놓는데 단체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탄 유람선이 암초같은데 부딪어 좌초됐다는 뉴스를 들었죠.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던시기라 정부가 언론을 통해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이슈로 돌리려하나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한시간이 지났을 즈음 한명씩 차근차근 다른배로 옮겨타고 있다고 방송이 나왔었거든요. 전원구조 될것이다 라고 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300명이 넘는.? 학생말고도 승선 승객도 꽤 될텐데? 라고 궁금증이 생겼고 실시간 구조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휴게실에 와서도 다들 티비를 보고 있었어요.근처 해군함대를 출동시키겠다.그런데 해군한명이 출동중 머리를 다쳐 사망했다? 그래서 출동 못한다? 그러다 주변 어선들이 모여들어 각자 나눠탑승시켰고 그인원들이 육지에 하차시킨 인원의 합을 계산하기 쉽지 않다고 했고 그 유람선 안에 아직 많은 인원이 있을거라했죠 배는 뒤집혀 가라앉고 배가 왜 뒤집히지? 궁금했고 에어포켓 얘기가 나왔죠. 반나절이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어두워지기전에 구출해야할텐데...저녁에 퇴근해서도 뉴스에 귀기울였고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사고로 마음이 참 답답했죠. 어느새 구조소식보다 유병언이라는 세글자에 세월호는 묻히기 시작했죠 무엇보다 그날 이후 아이들과 외식이 확연히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물속에 갇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맛난 음식이 넘어가지 않을거란걸 다들 알고있기 때문이었겠죠. 그후로 불경기가 지속되는 이유를 세월호때문이다 라고 치부해버리는 몇몇이들이 너무도 미웠습니다.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나고 마음이 너무 마음아픈데 치유의 시간은 더디기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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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ᆢ울고불고 내자식잃은것과 똑같은 아픔으로 가슴을 저미던 그 때 ᆢ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있었을까요 ᆢ분통 터지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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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짧은 제 생에 가장 강렬한 기억입니다. 하교하는 길목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했고 구조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당연하게도 모두 구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몇명은 조금 다칠 수 있겠지만 다들 살아 올라올 것이라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고 그 기다림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과외 수업을 하며 선생님과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저녁에는 제 방의 문에 기대 울며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다 18살. 지금도 18살 사랑스러운 나이로 남아있는 단원고 학생들이 그 당시에 떠올라 제 선배들이 생각나 펑펑 운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더불어 아무 이유없이 단지 세월호에 서 목숨을 잃은 일반인 분들이 떠올라 저는 그 날 종일 눈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3년이 지난 지금도 2014년 4월 16일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기억할 것이고 또 기억해낼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세월호를 잊지 않을 것이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인양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라는 다짐을 한지 3년이 지났고 저는 여전히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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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때초등학교5학년이였습니다.학교에서 아침에선생님들이뉴스를보여주셔서세월호사건이일어났다는것을알게되었습니다.학교에서친구들과걱정을하면서학교를마치고학원에갔습니다.학원선생님도Tv로뉴스를보고계셨는데 같이공부하는친구들이다도착하지않아서선생님과친구1명과같이뉴스를봤습니다.전원구조라고 밑에는뜨고있었고 배가침몰하는데 완전히침몰되지않고반쯤침몰하는것이뉴스에보였습니다. 전원구조라고해서안심하고있었는데학원이끝나고나서다시뉴스를보니전원구조가아니라고뉴스가나왔습니다.저의세월호7시간의기억은여기까지지만 어딘가에숨겨진기억은많이존재할거라고생각합니다.절대세월호희생자님들의아픔을잊지않겠습니다.평생기억하고 진실을밝힐수있게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