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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된 태아 우리 셋째이름도 지어주고 나올때를 간절히 기다렸던 아이세월호 형 누나들이 배속에서 몸부림칠 때이 아이는 제 뱃속에서 몸부림 치다 하늘나라로 갔지요..아직도 그 아이 주려고 준비한 배냇저고리를 가지고있어요.아 이 보내주러 가기전 병실에서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하늘나라고 보내준 후 돌아온 병실에서 구조된 사람 수가 변하지 않는 걸 보고 함께 오열한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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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중이던 그날 뉴스를 보며 다행이다 하고 생각을 하고난 후 다음날 보니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더 이상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며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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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회의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옆 사무실 tv에서 유람선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래도 자막으로 전원구조라고 나와서 대수롭게 생각 안했다점심을 먹고 한참 오후 업무중인데 카톡이 마구 시끄럽게 울려댔다친한 동생에게서 온 카톡이었다전원 구조는 오보에 수백명이 배속에 갇혔다고 그리고 부랴부랴 인터넷과 tv를 확인해보니 그 거대한 배가 옆으로 돌다못해 거의 거꾸로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지만 기억속에선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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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후 처음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접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심각해지는거에요, 저도 막 기도하고 그러고 ..근데 희생자들은 점점 늘어갔어요..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사건이에요.제대로 구할수 있었을텐데 , 그러면 다 살수있었을텐데 너무 슬퍼요진짜 그 사건 전날로 돌아가면 타지 말라고,죽는다고,다른 배 타라고 말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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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원이 끝나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낮에 새고난게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봣어요 엄마는 다 구조됏다고 뉴스에 떳더라 라고하셧던게 기억나요 그때엄마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셨고 나는 아 그럼다행이네 나보다 한살위래 다들 이라고 했어요다 구조됐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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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에 있었고TV를 보며 마늘을 까고있었다사고소식에 놀랐지만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고 안심했었지..잊지 않았어너의 기억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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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날짜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 저희는 통영으로 중학교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사고가 났고 구조 중 이라는 소식에 별거아니구나 라는 생각으로 신나게놀았고 그날 밤 숙소에 들어와보니 "전원구조"라는 속보에 안심하며 놀았던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며칠이 지난 후엔 그것이 거짓이였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이 일이 고작 중2였던 제가 한국언론을 믿지 못하는 계기가 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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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당시 숙제로 받은 수학 문제가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았고 찍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풀이도 없다면 선생님이 혼내시는 그것이 더 싫었고 저는 교무실에 갔습니다. 교무실에서 저는 그 수학 문제를 선생님께 모르겠다며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들으면서도 사실 딴생각을 했지요. 교무실에는 YTN으로 긴급 속보가 나오고 있었고 배가 침몰했단 소식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쳤고 저는 문제지를 받아 다시 교실로 다음 수업 준비를 위해 돌아갔습니다. 당시 그 뉴스를 듣고 모든 사람이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 뒤로 그 사람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그 뉴스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지요. 그리고 저는 그 사건 이후 생존주의자가 되었고 사고와 관련된 정보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의 그 뉴스는 아주 짧았고 10분이라는 그 순간도 짧은 편이었죠. 그렇지만 그 순간은 너무 날씨가 좋았기에, 그리고 많은 사람의 눈물이 있었기에 저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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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월호 참사 날은 저희 엄마 생신입니다 그날 저는 학교가 끝나자마 수학학원을 갔고 그 당시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진도 앞 바다에서 사고 났다고 했고 저는 아 뭔... 소리야 하고 다 시 문제를 풀었습니다 말해주었던 친구는 학교에서도 장난끼 많은 아이여서 그냥 넘겼던거 같습니다 . 그때 당시 저는 스마트폰이 아니여서 그 친구가 말한 바다에서 일어난 사고에 관한 기사를 바로 접할 수 있던 상황도 아니여서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후 저희 집은 엄마 생신파티를 하려고 했죠 하지만 엄마가 파티를 하지말자고 했고 그래서 저는 왜 그러냐고 했고 엄마는 진도 앞 바다에서 사고가 났다고 엄마가 너무 슬프다고 그런 기분이 아니다고 망하며 그제서야 저는 뉴스를 봤고 그 친구가 말한게 정말 큰 사고 였다는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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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야간 알바 끝내고 집에서 한창 자고있었어오후에 일어나서 아 뭐먹지 이러는데할머니가 배가 가라앉았다고 하네?솔직히 별일 아닌 줄 알았어세상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구해도 진작에 몽땅구했겠지 싶었는데 너무 안일했었네...저녁 알바시간이 되고 그 다음날이 되서야참상이 보이더라잊고지내서 미안하다 동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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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듣느라 점심을 조금 넘긴 시간에야 처음으로 휴대폰을 봤는데 가장 먼저 접했던 기사는 전원 구조였고, 모두 살아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뱉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전원 구조가 됐다, 하는 대화들을 나누던 사이 전원 구조는 오보라는 말을 접했고 하교를 한 시간에야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학교라 건너건너 아는 사람이 있었고 내가 아는 사람이 사망자 명단에 올라와 있을까 봐 쉬이 확인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때 다가왔던 충격이 너무 커서 4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2014년 4월 16일의 전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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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일학년이었다.핸드폰을 보지 않아서 방과후 수업시간에 처음 들었다.그 때는 자세히 몰라서 ‘그렇구나...’ 하고 넘기고집에 가서 기사를 봤다. 시험기간이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상에 앉아있었는데 기사를 본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날을 앞으로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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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니 그때 전 중학교 2학년 이였을꺼예요어제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고 수업듣고 평소와 똑같은 날이였죠 2교시 수업 시간에 컴퓨터를 보는데 배가 침몰 됬다고 해서 헐 어떡해 이라고 있는데 금방 몇시간 후에 전원 구조가 됬다고 기사가 올라오더라구요 다행이다 하고 집 가는데 그건 오보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 한 분들이 계시죠신이 너무 사랑했나봐요 이렇게 일찍 데려간걸 보니 여기는 지금 벚꽃도 피고 가끔가다 쌀쌀하기도 해요 거기는 많이 편안가요 가끔식 많이 보고싶어요 아프지 말고 웃으면서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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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2교시 영어수업이 일찍 끝나고 선생님이 뉴스 보시다가 알려주셨었어요 저는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던 상태라 빨리 모두가 구조되었다고해서 단순히 여행 망쳐서 아쉽겠다란 생각을 했었는데 뉴스가 정정되고 너무 충격적이고 가볍게 생각했던걸 너무 후회했네요 그날의 상황 분위기를 평생 잊지 못 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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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그것도 수도인 마닐라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서 한참 재밌게 놀다가 들어왔더니 뜬끔없는 배 침몰 소식이 있었다. 당시에 정말 놀라서 옆 방을 왔다갔다 하며 소식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같은 나이라는 걸 알고난 후엔 그 날 놀았던 것에 괜한 죄책감이 일기도 했었다. 그 때는 입시를 준비하느라 문제집까지 노는 곳에 들고가 풀었던 내가 어느새 대학교 2학년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네. 정말 잊지 못 할, 그런 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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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해. 난 학교였었고 배가 침몰됐고 모든 아이들이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지. 다행이다 싶었던 순간에도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수업시간에 계속해서 핸드폰을 봤어. 이상하게도 기사를 계속 바뀌었고 믿을 수 없는 기사들이 올라왔지. 난 그날 똑같은 시간을 보냈어. 학교가 끝나고 독서실을 갔어. 기사를 보느라 공부에 집중이 하나도 안됐어. 너무 무서웠어. 내 동생과 동갑이었던 너희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 앉았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어. 가슴이 너무 아팠어. 너희들이 구조되지 않았다는 것도. 아이를 지켜주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것도.. 내 한몸 아끼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대통령도. 그리고 그걸 그대로 받아 적은 언론도. 너무 무서웠어. 그리고 끔찍했어. 내가 믿었던 현실이 산산조각이 났어. 그날 독서실에서 돌아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난 아직도 기억해. 그날의 끔찍함을. 그리고 얼마나 내가 속고 살아왔는지를 너무나 큰 희생으로 알게 되었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두운 거실에 화장실 불만 키고 그 앞에 앉아 난 계속 울었어. 2014년 4월 16일에 나는 학교를 갔고 독서실을 갔고 그리고 울었어. 결국 난 너희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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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수없었던 나였다.지금도 난 아무것도 그 무엇도 할수없다그저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미안해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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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그 날을 잊지 않고 가슴속에 묻어 살겠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어 너무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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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늘 똑같은 날이었는데 이제는 시간을 돌리고 싶은 날이 되었네요. 몇 년 몇 십년이 지나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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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전이지만 이날 제가 소식을 접한 그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직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 3자인 저도 충격인데 유가족분들은 더더욱 힘드시겠죠...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유가족분들께 힘이 된다면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