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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그날도 하루하루가 피곤한 고3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수업을 듣는 것은 항상 피곤하고 졸린 일이었어요. 그러다 국어 선생님께서 수업 도중 뉴스를 보여주셨는데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의 배가 뒤집혔는데 다행히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저와 반 아이들은 모두 박수치며 다행이라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다음 과목 선생님께서 다시 뉴스를 보여주셨는데 오보라는 뉴스였어요. 저는 진심으로 충격 받았습니다. 한두명의 목숨도 소중한 마당에 수백명의 목숨갖고 장난치나?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윽고 시간이 지나도 생존자는 늘어나지 않았고, 사망자만 늘어나고 실종자는 여전히 제자리 숫자더군요. 저는 배 안에 있을 그 아이들이 부디 안전하기를 내일에서라도 온전히 구출되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헛된 희망이었죠. 7시간이 지나가도록 생존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날 저희반 친구들과 저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저보다 한살어린 그 친구들이 아직 배안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 찢어지더라구요... 당시 저희학교 선생님 몇분과 반 친구들은 울기도 했어요. 제 동생이 그곳에 있다면 저는 울다가 실신하기를 반복했을 것 같은데 방송에 단원고 학부모님들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울컥하더라구요..,힘없던 아이들과 일반인 희생자분들...우리는 그 분들께 삿대질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끝은 온전히 그들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야 하는 것임이 마땅함에도 우리는 엉뚱한 곳을 향했죠. 저에게 2014년 4월 16일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배안에서 나오지 못한 9명의 희생자 분들을 포함한 희생자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MEMBER20144016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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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겁게 놀고 있었던 그 순간, 너희들은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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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수업하느라 뉴스를 접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큰 선박사고가 났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이따 봐야지 하는데 대부분 구조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11시 넘었을 시점이다. 구조가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했는데 ... 우리학교는 그즈음 주말을 이용해 교사 여행 을 계획하던 터라 담당자에게 계속 추진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업무 담당자가 지금 추진하긴 그러지 않냐고 난색을 표했다. 나는 의아했지만 예정된 수업을 마쳤다. 수업 후 3시 쯤 회의에 가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 듣고 뉴스 검색을 하였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한 것도 수치스럽고 죄스럽다. 그날 회의에서 모든 교사 여행계획 백지화결정 , 육지 수학여행 은 학교 공식 일정이라 두고 보기로 했지만 거의 취소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후 누구나 뉴스 검색에 매달리고 함께 경악하고, 울분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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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2014년 4월 16일이었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침뉴스를 보시며 큰 일이라고 말씀하셨고 궁금해서 하던 준비를 멈추고 티비앞으로 가보았다 뉴스를 보니 자연재해상황때나 보던 구조자 와 피해자의 수가 왼쪽 상단에 써져있었다 처음엔 다 구조되었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고 내가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을 때는 아직도 언니오빠들은 그 차가운 물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내 친척 오빠도 수학여행을 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다행이도 오빠는 가지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큰 소식을 뒤로하고 학교로 가고있었다 내가탄 등교버스는 라디오가 매일 켜져있었는데 그 라디오에서 긴급속보라며 세월호 상황에 대해 전문가 분석이나 상황을 알려 주고있었다 난 학교에 가는 동안 휴대폰을 하면서 갔는데 인터넷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두고 여러 추측과 생각들이 난무했다 선장이 도망갔다 , 1반은 전부 생존했다 부터 사망자는 4명뿐이라는 소문까지 이런 정확하지않은 사실들이 퍼져나갔고 그럴때 마다 나는 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다들 무사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 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1위는 세월호였다 아직도 생생히 생각난다 그리고 학교에가서는 친구의 사촌오빠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그 오빠와 카톡한 내용을 봤고 친구는 매우 슬퍼했다 나도 깜짝 놀라고 다들 숙연한 분위기였다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오빠는 구조되었고 그 카톡 스크린샷은 뉴스나 기사에 사용되었다 나는 바로 옆에서 그런일이 생겨도 슬펐는데 세월호 당사자나 유가족의 부모님들은 얼마나 슬플지 가늠이 안된다 그리고 또 실망한 일은 세월호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일부 몇명의 사람들. 정말나중에 후회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사람이라는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난 평소보다 많이 뉴스를 봤고 뉴스에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국가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난 그 영향을 받아 국가를 원망했다 근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의 행적이 최근에 밝혀지면서 내생각은 어쩌면 옳은 것인지도 몰랐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이런 대참사에 우리 국민과 국가는 제대로된 대책과 피해를 줄일 방법에 대해 많이 노력하고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나와 몇살 차이가 안나는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슬펐다 다시 생각할때마다 숙연해지고 안타까웠다 내년이 되면 나도 언니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되는데 같은 나이라는것만으로도 많은 감정이 생겨난다 나는 이 일에 함창부에서 천개의 바람이라는 노래와 촛불로 애도를 했다 작은 방법이지만 우리나라 국민이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나는 인터넷과 여러 방법으로 작은실천을 했다 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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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일이 있었던 날은 내가 고1때 일때였다.오전 수업시간 선생님께서는 "얘들아! 수학여행가던 배가 사고가 났다는데 다들 구출됬대!!"라고 하셨고 다행히 다들 그려려니 다행이다 하고 있었다..하지만 오후 에 나오던 뉴스는 내가 들었던것과는전혀 다른것 이었다. 전원 구출이라고 들었던 오전의 뉴스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그날 저녁 모두에게나 인연이있을 내 이웃, 내 선배, 동생,내 딸아들인 사람들이 물속에 같혀 구출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국민 모두가 울었다. 우린 모두 구출될거라 믿었지만... 모두가 살아돌아올꺼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거지같은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또한 사건의 진실과 해명,또한 아이들이나 가족들이 같혀있을 배를 인양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청에도 묵묵 부답이었다. 또한 극우 회원들은 가슴이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썩어 문들어진 유가족들을 욕하고 비하하고 조롱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비리와 억압,부정으로 똘똘뭉친 정권이 내려가서야 세월호가 인양됬다. 그것도 엄청 신속히.... 마치..동화나 영화속의 한장면 같았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이 나타나는것 처럼 부정적인 정권이 내려나고 빛처럼 진실의 세월호가 떠올려졌다. 이제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4월16일 18세의 아름다운 청춘들과 누군가의 가족들을 이유없이 수장시킨 그들의 죄가 밝혀질것이다. 꼭 밝혀져 그들이 그 댓가를 꼭 치르길 바란다. 세월호 인양날 하늘에 자연히 구름으로 노란리본이 나타났다 또한 단원고3학년들의 졸업식날 비둘기떼가 날아와 하늘에 머물렀다가는 신비한 현상이 나타났었다.하늘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으며 악한자들을 용서치 않는다 모든것은 한만큼 되돌려 받는다. 그들이 꼭 무거운 댓가를 치르길 비란다. 또한 실종자들을 꼭 찾고 유가족들또한 이제 그 아픈 상처가 아물길 바란다.현재 내나이 이제 갓 스물...지금쯤 대학에 들어가 2학년으로 올라갔을 단원고학생들... 그리고 다음 학년의 새로운 학생들을 가르쳤을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구하셨던 단원고 선생님들 또 다른 이들의 가족이셨던 분들...당신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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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춤을 연습하고 7시쯤이였습니다 집에 가려고 지하철역에 가는중 휴대폰을 보니 세월호 사고가 나있었습니다 그당시 유행했던 카카오스토리에는 모든 사람들이 세월호에 계셨던 모든사람들이 안전하길 바라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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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월호 소식을 들었을 때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전원 구조 소식을 보고 역시 괜찮을 줄 알았어 생각하며 내 할일 했으니까. 근데 몇 시간 후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데. 믿지 못했어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까.. 다 살 수 있었을 텐데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너희들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겠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 나는 그동안 대학도 졸업하고 취업도 했어. 이렇게 생각하면 긴 시간인데. 세월호 사건만 생각하면 바로 어제 같은 느낌이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기쁨들과 슬픔들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그게 가장 안타까워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차갑게 물속에 있을 수 밖에 없을까. 너희들의 고통 절대 잊지않을께. 많은 분들의 안타까운 죽음 절대 잊지 않을께. 부디 다들 좋은 곳으로 갔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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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수업에 들어오신 수학선생님을 통해 처음 사고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행히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말에 나는 안도하였다 하지만 그날저녁 뉴스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왜 그런 거짓보도를 했을까 왜 서둘러 구하러가지 않았을까 왜 민간인들만 구하러갔는가 왜 구한 민간인들이 욕으먹어야 했는가 나는 아직도 이해할수가 없었고 차가운 물속에서 두려워했을이들을 생각하면 감히 그 고통을 해아릴수도 없다 얼마나 무서웠을까...더욱 소름끼치는 사실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탄핵되자마자 세월호가 세상으로 올라왔다는것이다 왜 그들은 3년이나 물속에서 있어야만 했는가 세월호 안에 갇힌 이들의 마지막 발버둥이 남아있는 그 몸마저도 너무나 슬프고 말도안되는 변명과 억지만 부리고있는 이들때문에 더욱 억울하다 벌써 3년 내가 처음 참사소식을 접했을땐 중1이었지만 어느세 고1이 되었다 하지만 엊그제 일어난일인듯 생생하기만하다 영원이 잊지한고 기억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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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강의를 듣다가 쉬는 시간에 생각 없이 네이버를 켰습니다. 지금은 듣기만 해도 아픈 이름인 세월호가 검색어 1위였고 속보라는 빨간 글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무심코 누른 속보에 처음에는 갸우뚱 했습니다. 똑같은 속보인데, 몇 분 차이 나지 않는 기사인데 어떤 기사에는 전원 구조라는 내용이, 또 어떤 기사에는 구조가 어렵다는 내용이..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히 찾아봤고 3분도 되지 않는 시간을 찾은 후에 구조에 어려움이 있다는 기사가 팩트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수학여행을 가는 그 예쁜 꽃들이 타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그 아름다운 꽃들이 타고 있는, 여행을 하러 가는 그 사랑스러운 꽃들이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구조를 할 수 없다니요. 그 후로도 기사는 끊임없이 올라왔고 희망적인 내용의 기사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그 예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꽃들은 모두 가족들을 찾아갔고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되었네요.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 한 그 꽃들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마음이 참 아픕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 꽃들을 위해서라도 잊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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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안산지역 사람으로서 아니 같은 동갑 동네친구로서 너무 가슴이아프고 먹먹해. 그날 이사가기전 우리집 바로앞 단원고.. 내가 다니려고했던 단원고등학교 라니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않아 내 주변에서 일어났다는게 이런 끔직한 일이 그날 난 옆학교에서 모의고사 시험을 치고있었어 핸드폰을 몰래 안내고 인터넷을하고있었는데 배가 기울어졋다는 기사 내가 제일먼저 봤었지. 별일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그게아니더라.. 희생자가 나올수록 동네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들까지 다급해졋지 우리 부모님한테도 나괜찮냐고 내가 단원고다니는줄알고 연락도 많이왔었어 내가 그자리에 있었다면 가만히 그렇게 잇을수밖에없엇을까 그게 나한테 일어날수도잇엇단 생각이드니까 더 힘들더라.. 집앞에 각종 방송국차들이 넘치고 경찰차까지 동네가 엄청 시끄러웠어 너무 놀랬었지 그날이 지나고 희생자가 더욱넘쳐나고 집앞이 단원고 엿음에도 난 가질못햇어 무서웟어 마주하기가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친구들아 하지만 잊지않을게 평생. 세월호, 안산, 단원고.. 97년생 내친구들 생각만해도 울분이 터진다 제발 위에서 편히 쉴수있었음좋겟다.. 그러고있지? 절대 그리 쉽게 잊혀지지않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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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제 생일보다 6일 지난 날이었어요. 수학여행은 시험 끝난 5월에 가기로 되어있어서 시험준비만 하고있을때였죠.동갑친구들이 빠져나오지 못했을 당시에 핸드폰을 반납했던 저는 아무것도 모른채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사실은 야자전 석식먹을 때 쯤 겨우 알게되었어요. 금방 구해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해지지않았다는것, 정부는 아무대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음날 되어서야 알았어요. 뉴스도 핸드폰도 보지않고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그 7시간동안 신경쓰지않았던 제가 마치 박근혜정부와 같았던것같아서 너무 비참했어요. 미안해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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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않습니다.그 날 아이들은 무섭게 떨고있었겠죠 ..저는 뉴스로 상황을 지켜보는 것 밖에 할수가 없었습니다.정말 가슴 아픈 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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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벽을 바라보며옆방의 비명소리가 잠잠해질때어둠속에서 가슴이 쿵쿵 빛나는 별을 보았네무릎을 가슴에 붙이고어머니의 품안아팠지 우리강아지.무지개 넘어가는길물새가 그리도 섧게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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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4년 4월 20일 전역한 해군 예비역 병장입니다. 소속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저는 2012년 5월 21일에 입대하여 2014년 4월 16일날 배에서 내린 해군 수병입니다. 그날은 3박 4일간 진행하는 전역자 교육을 위해 모든 전역 예정자들을 육상생활관으로 이동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아침 점호를 끝내고 배에서 내린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전역복을 입고 전역신고를 하려고 준비하면서 뉴스를 보려고 Tv를 틀었습니다. 그런데 뉴스속보가 나오며 여객선이 침몰중이라고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탑승인원도 계속 왔다갔다 했었고 탑승자 전원 구조라는 오보도 나온것을 봤습니다. 헬기 중계상황에서는 미군 군함과 우리 해군이 투입 준비중이라고만 나오고 실제 투입은 되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대비하여 훈련하는 해난구조대도 투입되지 않았고 미군 함정 역시 대기만 하고있었습니다. 나중에 정정된 보도에서는 전원 구조가 오보였고 벌써 가라앉아버린 배 안에는 아직 남아있는 인원이 있었다는겁니다. 배가 기울고 바로 가라앉아버리지 않았는데 그 많던 시간을 허비하였고, 팽창형 구명정은 하나도 펴져있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제가 거기 타고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영상을 보면서 하나하나 데리고 나오고싶었습니다.. 전역한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그때 내가 거기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해군이 왜 투입되지 않았는지, 해경이 왜 막았는지, 외압이 있었는지 조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해군에 아직 인도되지 않았던 통영함을 출항시키려했던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불명예적인 전역을 당했던 이유도 조사해 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고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희생되었던 그날은 저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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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얼마나 무섭고 서럽고 고통스러워했을까.남일이라고 생각하기엔 뻔뻔한 대한민국 잊 어 서 는 안 될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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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 나오는 정치쇼든 돌고도는 루머와 갖은 의혹이든 다 둘째치고, 지금의 세월호참사로 고통받는 유가족들이 내 가족이고 내 친구고 나였다면.. 내 일 이라면.....가늠 할 수조차 없는 슬픔에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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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는 항상 세월호 특집 뉴스로 고정해놓고 보고있었어요 구조자는 몇명이늘엇는지 사망자는 몇명이 늘었는지 확인하면서말이죠 어느 순간주터 구조자는 늘지않고 사망자만 더 늘더라구요. 정말 사망자수를 줄이고 그 줄인수만큼 구조자수 생존자수에 갖다 붙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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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고3이였던 저는 교실에서 자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라디오로 뉴스를 듣거나 DMB를 보는걸 좋아했어요. 그 날도 평소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습을 하는데 뉴스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사고가 났다는 속보가 나오길래 무슨일인가 하고 스마트폰을 키고 자세히 찾아봤어요. 그런데 전원 구조 된 상태라고 하길래 혼자 "다행이다 전원구조 할 만큼 우리나라 해상 구조 시스템이 뛰어나구나" 생각 하고 있었죠..친구들 한테도 아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전원구조 된 상태래~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계속 자습을 이어가는데 라디오에서 민간어선 선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하는걸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선장님의 말로는 전원구조 말도 안된다. 자신이 구한 학생들은 배안에 많은 친구들이 남아있다고 울부짖었다고 했습니다. 엇갈리는 진술에 라디오 진행자도 많이 당황한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전원구조라는 속보는 오보였다고 정정하는 기사들이 올라오는 겁니다. 이때부터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느끼게 됐죠. 하루종일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오후 부터는 친구들과 제발 다 구조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모두 인터넷 뉴스화면의 새로고침 버튼만 눌렀습니다... 좋은 소식이 하나라도 더 나오길 바라며... 그 날의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민간 어선 선장님의 인터뷰도... 생존자들의 인터뷰도....배에탔던 친구와 연락이 끊겨서 진도로 다같이 내려왔다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어떻게 잊겠습니까...힘없는 학생이라서...너무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부디 하늘에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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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보다 한살 어린나는 이날 엄마와 함께 뉴스 기사를보며 함께 울었습니다 지금 이면 사회에나와 꽃을피웠을 언니오빠들이 더 좋은 더 밝은 미래에서 부모님과 친구들과 다시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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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시간 2~3교시쯤 잠시 핸드폰을 보다가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처음에는 이렇게 희생자가 나올줄 몰랐고 오보를 보고 당연히 다들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 뒷자리에 앉은 친구와 어떡하나 하고 있었습니다.오후수업때 선생님께서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기울어가는 배에 갇혀있다고 말씀하셨고 그제서야 아 큰일난거구나 했습니다.집에 와서 희생자만 늘어가는 뉴스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