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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바라봤고 아이들을 끌어 올렸으며 아이들을 어깨에 태우며 헬기에 탈 수 있게 도왔다.아이들을 바라보고 그 어떤것도 할 수 없었다."아저씨 어떻게요?"라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그 자릴 벗어날 수 없었다.물이 차오르고 그 물이 날 밀어내고 마지막까지 손을 뻗어 안을 수 있었던건 혁규동생 지연양이었다..그리곤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아무도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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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선생님께서 배가 뒤집혔다고 알려주셧습니다 그래서 거기사람들은요? 라고 아이들이 물었을때 전원구조라는말에 다행스러웠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그후 다른선생님께서 오셧을때 그 구조된사람들은 어떻게됬어요?에 오보라는 소식을 전해듣고 슬퍼졌습니다. 생존자는 더이상 나오지않고 하나둘씩 시신이되어 숫자가 늘어날때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은게 죄인가? 하며 말이죠 그렇게 집에와서 티비를 보고 뉴스를 찾아보며 구조작업 대부분 어민분들께서 도와주셧다 라는 말에 너무 슬펐던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나오라고 지시하지... 처음부터 많은 119 구급정이 가서 유리를 부수고 꺼내주지... 저의 세월호 7시간은...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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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뉴스속보로 사고를 알게 된 순간,시간차를 두고 생존자가 뒤바뀌던 순간,그리고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되던 순간,그날 그 순간들을 똑똑히 기억합니다.세월호는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입니다.진실은 기필코 밝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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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살인적인 폭염이 쏟아져도매서운 추위에 눈보라 쳐도천둥이 치고 폭풍이 휘몰아 쳐도아이들은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의 가슴으로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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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였습니다. 1교시 강의가 있던 터라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가정제품을 파는 가게 앞 TV에서 속보가 뜨더라구요. 배가 침몰하는 모습과 그 주위로 향하는 다른 구조선들을 화면으로 보면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처음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건가 하구요.빨리 학교에 가야하는 터라 짧게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을 다 구해야 하는데.." 하는 착잡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근데... 뉴스속보가 계속 나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난건가...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제 눈을 계속 의심하던 그 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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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수업이 끝나고 3시 반쯤 핸드폰을 켜서야 사고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때 핸드폰 기종이 뭐였는지 내가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그 뉴스를 봤는지 무엇 하나도 절대 잊히지 않는데집에 와서도 티비 앞에서 뉴스만 봤고 동생이 학원갔다오고 엄마가 퇴근하시고 아빠가 퇴근하시고 텔레비전 앞 사람 수 말곤 달라지는 게 없었지올해는 내가 다시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데왜 아직 그들이 돌아오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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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와같았어요 저에겐 남에 일이었습니다.. 오늘 금요일엔돌아오렴 이라는 세월호 관련책을 읽었어요. 이책을 읽기전까진 대부분 깊은관심이 없는 사람과 똑같았죠 안타깝다 불쌍해라 무슨일이야? 이런 얄팍한 마음이요 책을읽으면서 끈어서 읽어야했어요 눈물이 나고 가슴이 메이고 소리내어 울지 않았는데 목이 메이고 심지어 두통까지..도서관에서 빌린책이에요 그런데 이책 발행날짜가 2015 년4월이에요 그런데 도서관은 좀처럼 경쟁율이 쌔서 2015에 이슈 였던 책은 예약하지 않고는 볼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책은 아무도 빌려가지 않은채로 2권이나 그대로 꽂혀있었던게 계속 가슴이 아파요 이런 우리가 바꿀수있을까요 ...우울한 얘기 를 써서 죄송해요 제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우리 힘내봐요 잠깐에 관심도 좋으니 이글을 많은 이들이 적어줬으면해서 주저리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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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재 친구의 생일이였다.축하해주려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갑자기 오늘 구학여행간 가족이 있냐고 물어보신다.. 별일아니겠지.. 뉴스를 보고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던것깉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흐르니 아는오빠가...떠나버렸다도 했다.. 눈물이 나오는것같디도하고 화가난,ㄴ것같기도하ㅏ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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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 낮엔 자고. . 밤엔 술마시던 날들이었어요. . . .거실에서 잠들어있었는데. . 저녁늦게 엄마가 밖에서 돌아오셔서황급히 티비켜시면서. . 지금 큰 사건이 터졌는데 넌 이러고 있냐고. . 욕을욕을. . . 하셨죠. . . . .자다 일어나서 어리둥절. . . 그러다 뉴스보면서. . . 어안이 벙벙했죠. .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 . 그냥. . .어휴 어떻게해 어떻게해. . 저걸 어쩌면 좋아. . 이 생각외엔 이게 사람으로서 할말인지 모르겠지만. . ㅠㅠ 내가 저 배에 타고있었어야했는데. . . 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 우울증에 걸려있었던. . . .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특별히 기억할 일이 없는 나지만, . . . . 그날은 잊지 못해요. 그날 엄마한테 꾸지람 섞인 욕 몇마디 들은 것, 그때의 사소한 감정까지도 재생되듯이 기억이 납니다. . . . .아무것도 안했어도 기억이 나는데. . . 왜 누군가는. . . 전혀 기억이 안나는걸까요???정말로 종교적인 문제로 일부러 낸 사고일까요? 그래서 고귀한 희생이라고 한걸까요? 7시간이 한국과 독일의 시차가 맞는걸까요? 하. . . . .어떻게 그날을 기억못할수가 있습니까. . 아무것도 안한 나도 기억나는 하루입니다.뉴스볼때 거실에서 엄마는 소파에 앉으시고, 나는 소파에 기대서 바닥에 앉은 자세로 티비를 봤다는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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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대학교 도서관 북카페.아침에 사람이 제일 많아요.주문받고 계산하고 커피내리고 주문 주문..;그러다 학생들 거의 빠지고같이 일하는 애들과 수다떨면서매장 청소했었죠.그때 학생들, 배에 타고있던 승객분들가라앉고 있었는데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허합니다.전혀 연고도 없는 제가 이러한데가족들은 얼마나 슬플지 상상이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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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그 날은. 아픈 날 입니다. 다른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깊숙히 아픈 날 입니다. 부디 힘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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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울립니다.물에 돌을 던져도 파장이 울립니다왜 세월호는점점 파장이 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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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먹고 살기 바쁜 삶을 살아가는 한 성인입니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남들보다 빠른 출근. 시간으로 먹고 사는 일이기에 오전에 뉴스, 핸드폰으로 인터넷기사, 잘 보지 못 합니다. 그날따라 차가 막히고 라디오에서 말도 안되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그래도 전부구조(?) 소식에 다행이구나.일 한탕 하고 돌아와서 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일도 손에 안잡히고하루 종일 뚫어져라.. 쳐다보는게 전부 였습니다. 아직도 또렷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어찌도와 줄 수 없다는게 너무도 미안하고 .. 그저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해서 뭐라 할 수 있는 말도 없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만약 가더라도만나서라도 "잊지 않았다" 말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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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녁에도 빠져있다고 했다. 그때 핸드폰으로 뉴스들을 보고 있고, 페이스북도 보고 있었는데 감기가 걸린 상태라서, 잠수사에 지원하자 했다가 짐만 될 것 같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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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내가 22살때의 얘기야. 난 피자가게에서 연인과 함께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뉴스속보로 너희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 그때 보이던 두 글자, 침몰. 심장이 너무 뛰었어. 무서웠거든, 너희가 못 나올까봐. 그리고 곧이어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지 못할 거짓말이 나왔어. 전원 구조. 너무 다행이라며 연인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땐 오보였다는 말과 함께 구조중이란 말도 나왔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쓰리고...다 나올 줄 알았는데, 모두 다 햇빛을 볼 줄 알았는데... 꼭 내 아이들같고 내 친구들같았어. 여전히 지금도..모두 보고 싶어. 선생님들, 아이들, 일반인분들... 지금은 선체의 일부가 보인다고 했어. 오늘만큼 해가 빨리 뜨길 기도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유가족분들, 국민들에게 오늘의 햇살 한조각이 얼마나 기다려질까... 어서 나와, 수학여행이 길었지? 이제 집에 가자. 가족들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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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저는학교를다니고잇던 고등학생이엇습니다. 그아이들과같은 고등학교2학년 어느날 반친구들이 걱정을하면서 티비를 켯습니다 티비에는 어느배가 침몰하고잇다 친구들이얘기하기를 거기에 저희또래친구들이 타고잇다 엿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면좋아 저희는 한번도 보지못한 그저 저희와같은 또래친구들이 위험에빠져잇다 그생각하나로 걱정을하고잇엇습니다 그날의우리는 기억합니다 . 정부가 거짓된뉴스를 내보내고 우리의친구들을 죽음으로몰아넣은 어른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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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유학중이던 저는 처음 사고소식에 뒤이어 전원구출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모두가 잊지못할 경험을 했겠구나 안도와 동시에 전원구출은 당연한 일이지 당연히 그랬어야지 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오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종일 한국 티비를 인터넷으로 보면서 이게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가를 의심하며 마음은 팽목항으로 달려가서 지냈습니다. 오늘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ㅜ 그날의 저는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바랬습니다ㅜ 대한민국 국민인것이 부끄러웠고 그것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제시작입니다. 지금부터 두 눈뜨고 잘지켜봐주세요. 얘들아.. 이제집에가자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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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사회복지기관에서 거주인분들 케어를 하면서 일을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일하고 있는 도중 친구의 연락으로 안산에있는 고등학생들과 일반인 승객분들이 타고있던여객선이 침몰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 텔레비전앞으로 달려가 뉴스특보를 보았습니다.탑승객 476명 가운데 거의구조가 되었다는겁니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안심을하고 뉴스에 귀기울이면서 하던일을 다시 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다음날 전원이 구조되기는켜녕 476명가운데 172명만 생존하고 300명이상의 사망자 발생했다고하는겁니다. 이제서야 저는 뉴스가 오보라는걸 알았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찢어질정도로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그리고 아직까지 9명의 실종자분들이 계시는데 꼭 찾아서 가족의품 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날의 기억 영원히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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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음악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교무실이 술렁했고 그날, 너무 편안하게 매점에 있던시간에 1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시간에 배가 완전히 기울어졌죠. 기억합니다.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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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단원고 언니 오빠들처럼 중학교 수학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길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차안에서 술렁거리던때 다시전해들은 전원구조라는 소식, 다행이라고 느끼던 찰나 다시들은 오보라는 소식 절대 잊을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나처럼 무사히 집에 도착할수있을거야 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는데 돌아오는건 사망자 소식과 실종자 소식 한번도 본적없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다른장소로 수학여행을 갔다왔지만 정말 미안했습니다. 왜 우리처럼 좋은 추억이 쌓일 수학여행때 하필...제대로 구조할수있었던 상황에 왜 그런 결과가 나온건지 아직도 화가납니다. 지금이라도 나머지 실종자분들이 부모님 곁으로 무사히 돌아오고 안전한 인양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죽는날까지 4월16일 잊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