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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7시간 동안 차가운 물속에서 살려 달라고가족들에게 핸드폰 문자 날리는 모습에가보지도 못하는 나는 발만 동동 구르며나라에서 어떻게 해주겠지 그냥 저대로 차가운바닷속으로 아이들을 보내진 않겠지 설마 끈을놓진 않겠지 하며 내내~기도하는 마음으로 뉴스매체만 목을 놓고 바라보며 가슴으로 얼마나울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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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근무였어요. 운행중 항상 라디오를 켜놓는데 단체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탄 유람선이 암초같은데 부딪어 좌초됐다는 뉴스를 들었죠.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던시기라 정부가 언론을 통해 국민의 관심사를 다른 이슈로 돌리려하나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한시간이 지났을 즈음 한명씩 차근차근 다른배로 옮겨타고 있다고 방송이 나왔었거든요. 전원구조 될것이다 라고 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300명이 넘는.? 학생말고도 승선 승객도 꽤 될텐데? 라고 궁금증이 생겼고 실시간 구조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휴게실에 와서도 다들 티비를 보고 있었어요.근처 해군함대를 출동시키겠다.그런데 해군한명이 출동중 머리를 다쳐 사망했다? 그래서 출동 못한다? 그러다 주변 어선들이 모여들어 각자 나눠탑승시켰고 그인원들이 육지에 하차시킨 인원의 합을 계산하기 쉽지 않다고 했고 그 유람선 안에 아직 많은 인원이 있을거라했죠 배는 뒤집혀 가라앉고 배가 왜 뒤집히지? 궁금했고 에어포켓 얘기가 나왔죠. 반나절이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어두워지기전에 구출해야할텐데...저녁에 퇴근해서도 뉴스에 귀기울였고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사고로 마음이 참 답답했죠. 어느새 구조소식보다 유병언이라는 세글자에 세월호는 묻히기 시작했죠 무엇보다 그날 이후 아이들과 외식이 확연히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물속에 갇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맛난 음식이 넘어가지 않을거란걸 다들 알고있기 때문이었겠죠. 그후로 불경기가 지속되는 이유를 세월호때문이다 라고 치부해버리는 몇몇이들이 너무도 미웠습니다.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나고 마음이 너무 마음아픈데 치유의 시간은 더디기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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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ᆢ울고불고 내자식잃은것과 똑같은 아픔으로 가슴을 저미던 그 때 ᆢ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있었을까요 ᆢ분통 터지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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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짧은 제 생에 가장 강렬한 기억입니다. 하교하는 길목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했고 구조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당연하게도 모두 구조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몇명은 조금 다칠 수 있겠지만 다들 살아 올라올 것이라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고 그 기다림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과외 수업을 하며 선생님과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저녁에는 제 방의 문에 기대 울며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다 18살. 지금도 18살 사랑스러운 나이로 남아있는 단원고 학생들이 그 당시에 떠올라 제 선배들이 생각나 펑펑 운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더불어 아무 이유없이 단지 세월호에 서 목숨을 잃은 일반인 분들이 떠올라 저는 그 날 종일 눈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3년이 지난 지금도 2014년 4월 16일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기억할 것이고 또 기억해낼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세월호를 잊지 않을 것이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인양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라는 다짐을 한지 3년이 지났고 저는 여전히 기억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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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때초등학교5학년이였습니다.학교에서 아침에선생님들이뉴스를보여주셔서세월호사건이일어났다는것을알게되었습니다.학교에서친구들과걱정을하면서학교를마치고학원에갔습니다.학원선생님도Tv로뉴스를보고계셨는데 같이공부하는친구들이다도착하지않아서선생님과친구1명과같이뉴스를봤습니다.전원구조라고 밑에는뜨고있었고 배가침몰하는데 완전히침몰되지않고반쯤침몰하는것이뉴스에보였습니다. 전원구조라고해서안심하고있었는데학원이끝나고나서다시뉴스를보니전원구조가아니라고뉴스가나왔습니다.저의세월호7시간의기억은여기까지지만 어딘가에숨겨진기억은많이존재할거라고생각합니다.절대세월호희생자님들의아픔을잊지않겠습니다.평생기억하고 진실을밝힐수있게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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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바라봤고 아이들을 끌어 올렸으며 아이들을 어깨에 태우며 헬기에 탈 수 있게 도왔다.아이들을 바라보고 그 어떤것도 할 수 없었다."아저씨 어떻게요?"라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그 자릴 벗어날 수 없었다.물이 차오르고 그 물이 날 밀어내고 마지막까지 손을 뻗어 안을 수 있었던건 혁규동생 지연양이었다..그리곤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아무도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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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선생님께서 배가 뒤집혔다고 알려주셧습니다 그래서 거기사람들은요? 라고 아이들이 물었을때 전원구조라는말에 다행스러웠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그후 다른선생님께서 오셧을때 그 구조된사람들은 어떻게됬어요?에 오보라는 소식을 전해듣고 슬퍼졌습니다. 생존자는 더이상 나오지않고 하나둘씩 시신이되어 숫자가 늘어날때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은게 죄인가? 하며 말이죠 그렇게 집에와서 티비를 보고 뉴스를 찾아보며 구조작업 대부분 어민분들께서 도와주셧다 라는 말에 너무 슬펐던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나오라고 지시하지... 처음부터 많은 119 구급정이 가서 유리를 부수고 꺼내주지... 저의 세월호 7시간은...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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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뉴스속보로 사고를 알게 된 순간,시간차를 두고 생존자가 뒤바뀌던 순간,그리고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되던 순간,그날 그 순간들을 똑똑히 기억합니다.세월호는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입니다.진실은 기필코 밝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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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살인적인 폭염이 쏟아져도매서운 추위에 눈보라 쳐도천둥이 치고 폭풍이 휘몰아 쳐도아이들은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의 가슴으로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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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1학기 때 였습니다. 1교시 강의가 있던 터라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가정제품을 파는 가게 앞 TV에서 속보가 뜨더라구요. 배가 침몰하는 모습과 그 주위로 향하는 다른 구조선들을 화면으로 보면서 발길을 멈췄습니다. 처음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건가 하구요.빨리 학교에 가야하는 터라 짧게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을 다 구해야 하는데.." 하는 착잡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근데... 뉴스속보가 계속 나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난건가...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제 눈을 계속 의심하던 그 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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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수업이 끝나고 3시 반쯤 핸드폰을 켜서야 사고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때 핸드폰 기종이 뭐였는지 내가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그 뉴스를 봤는지 무엇 하나도 절대 잊히지 않는데집에 와서도 티비 앞에서 뉴스만 봤고 동생이 학원갔다오고 엄마가 퇴근하시고 아빠가 퇴근하시고 텔레비전 앞 사람 수 말곤 달라지는 게 없었지올해는 내가 다시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데왜 아직 그들이 돌아오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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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와같았어요 저에겐 남에 일이었습니다.. 오늘 금요일엔돌아오렴 이라는 세월호 관련책을 읽었어요. 이책을 읽기전까진 대부분 깊은관심이 없는 사람과 똑같았죠 안타깝다 불쌍해라 무슨일이야? 이런 얄팍한 마음이요 책을읽으면서 끈어서 읽어야했어요 눈물이 나고 가슴이 메이고 소리내어 울지 않았는데 목이 메이고 심지어 두통까지..도서관에서 빌린책이에요 그런데 이책 발행날짜가 2015 년4월이에요 그런데 도서관은 좀처럼 경쟁율이 쌔서 2015에 이슈 였던 책은 예약하지 않고는 볼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책은 아무도 빌려가지 않은채로 2권이나 그대로 꽂혀있었던게 계속 가슴이 아파요 이런 우리가 바꿀수있을까요 ...우울한 얘기 를 써서 죄송해요 제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우리 힘내봐요 잠깐에 관심도 좋으니 이글을 많은 이들이 적어줬으면해서 주저리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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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재 친구의 생일이였다.축하해주려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갑자기 오늘 구학여행간 가족이 있냐고 물어보신다.. 별일아니겠지.. 뉴스를 보고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던것깉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흐르니 아는오빠가...떠나버렸다도 했다.. 눈물이 나오는것같디도하고 화가난,ㄴ것같기도하ㅏ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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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 낮엔 자고. . 밤엔 술마시던 날들이었어요. . . .거실에서 잠들어있었는데. . 저녁늦게 엄마가 밖에서 돌아오셔서황급히 티비켜시면서. . 지금 큰 사건이 터졌는데 넌 이러고 있냐고. . 욕을욕을. . . 하셨죠. . . . .자다 일어나서 어리둥절. . . 그러다 뉴스보면서. . . 어안이 벙벙했죠. .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 . 그냥. . .어휴 어떻게해 어떻게해. . 저걸 어쩌면 좋아. . 이 생각외엔 이게 사람으로서 할말인지 모르겠지만. . ㅠㅠ 내가 저 배에 타고있었어야했는데. . . 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 우울증에 걸려있었던. . . .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특별히 기억할 일이 없는 나지만, . . . . 그날은 잊지 못해요. 그날 엄마한테 꾸지람 섞인 욕 몇마디 들은 것, 그때의 사소한 감정까지도 재생되듯이 기억이 납니다. . . . .아무것도 안했어도 기억이 나는데. . . 왜 누군가는. . . 전혀 기억이 안나는걸까요???정말로 종교적인 문제로 일부러 낸 사고일까요? 그래서 고귀한 희생이라고 한걸까요? 7시간이 한국과 독일의 시차가 맞는걸까요? 하. . . . .어떻게 그날을 기억못할수가 있습니까. . 아무것도 안한 나도 기억나는 하루입니다.뉴스볼때 거실에서 엄마는 소파에 앉으시고, 나는 소파에 기대서 바닥에 앉은 자세로 티비를 봤다는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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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대학교 도서관 북카페.아침에 사람이 제일 많아요.주문받고 계산하고 커피내리고 주문 주문..;그러다 학생들 거의 빠지고같이 일하는 애들과 수다떨면서매장 청소했었죠.그때 학생들, 배에 타고있던 승객분들가라앉고 있었는데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허합니다.전혀 연고도 없는 제가 이러한데가족들은 얼마나 슬플지 상상이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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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그 날은. 아픈 날 입니다. 다른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깊숙히 아픈 날 입니다. 부디 힘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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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울립니다.물에 돌을 던져도 파장이 울립니다왜 세월호는점점 파장이 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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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먹고 살기 바쁜 삶을 살아가는 한 성인입니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남들보다 빠른 출근. 시간으로 먹고 사는 일이기에 오전에 뉴스, 핸드폰으로 인터넷기사, 잘 보지 못 합니다. 그날따라 차가 막히고 라디오에서 말도 안되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지요...그래도 전부구조(?) 소식에 다행이구나.일 한탕 하고 돌아와서 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일도 손에 안잡히고하루 종일 뚫어져라.. 쳐다보는게 전부 였습니다. 아직도 또렷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어찌도와 줄 수 없다는게 너무도 미안하고 .. 그저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해서 뭐라 할 수 있는 말도 없습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만약 가더라도만나서라도 "잊지 않았다" 말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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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녁에도 빠져있다고 했다. 그때 핸드폰으로 뉴스들을 보고 있고, 페이스북도 보고 있었는데 감기가 걸린 상태라서, 잠수사에 지원하자 했다가 짐만 될 것 같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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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내가 22살때의 얘기야. 난 피자가게에서 연인과 함께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뉴스속보로 너희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 그때 보이던 두 글자, 침몰. 심장이 너무 뛰었어. 무서웠거든, 너희가 못 나올까봐. 그리고 곧이어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지 못할 거짓말이 나왔어. 전원 구조. 너무 다행이라며 연인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땐 오보였다는 말과 함께 구조중이란 말도 나왔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쓰리고...다 나올 줄 알았는데, 모두 다 햇빛을 볼 줄 알았는데... 꼭 내 아이들같고 내 친구들같았어. 여전히 지금도..모두 보고 싶어. 선생님들, 아이들, 일반인분들... 지금은 선체의 일부가 보인다고 했어. 오늘만큼 해가 빨리 뜨길 기도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유가족분들, 국민들에게 오늘의 햇살 한조각이 얼마나 기다려질까... 어서 나와, 수학여행이 길었지? 이제 집에 가자. 가족들 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