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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초등학교 6학년이였습니다 저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었고 , 4월 16일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폰을 보다가 연락이 너무 많이 와있었습니다괜찮냐는 말과 , 세월호 터졌다고 집은 언제 도착하냐며 친구들과 가족들이 많이 걱정을 하였습니다그때까지도 심각한 상황인지 잘 인지하지못했습니다 초등학생이였어서 그랬나봅니다 그러다 저흰 비행기를 탄후 버스를 타고 내렸습니다 버스 앞엔 많은 부모님들이 데릴러 나오셨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데리러 오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집을 들어갔는데 집엔 뉴스가 켜져있었고 하나둘씩 사망자가 느는걸 보고나서야 상태성이 심각하다는걸 느꼈습니다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고 추모영상들을 보면 항상 남일같지 않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것 같습니다그 어린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습니다성인이 되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난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매일 마다 잊지않고 생각하겠습니다 제 하루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그리워 하겠습니다세월호가 벌써 6주년 입니다 왜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한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가 성인이 되고 아이가 생기고 할머니가 되고 죽는날이 되도 제게 세월호는 아주 생생하게 기억될것같습니다?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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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2014년 4월16일, 나는 13살이란 어린 나이에 제주도로의 수학여행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대구공항을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그저 즐거운 마음에,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도착한 제주도에서, 우리는 우도로 향했었고, 우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었다. 제주도를 향하던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 전원 무사 구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난 이소식에 그저 안심하고 즐거운 수학여행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3일간의 제주도 수학여행을 마친 뒤, 우리의 일상으로 되돌아왔다.되돌아와서 다시 접한 뉴스는, 전원 구조에 관한 내용과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같은 여행지를 같은 날 향했다는 작은 공감대 때문이었을까.다른 나이,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몇일 밤을 빌었다. 믿지도 않는 예수님에게 기독교인인척하며 그저 한명만이라도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그저 빌었다. 그렇게 하면 한명이라도 살아돌아올 것 같았고, 이유없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하지만 신은 도와주지 않았고, 내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은채 그저 무뎌져갔다. 그리고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13살, 그들보다 5살이나 어렸던 나는 이제 그들보다 한살 많은 19살이 되었다.정말 많이 성장하고 무수히 많은 시간을 지나보냈지만, 여전히 답답함을 해소할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도 같이 아파하고 같이 슬퍼지는가 보다.내가 직접 겪은 사고도 아니고, 내 주변인이 겪은 일도 아니지만, 13살의 나, 그리고 지금 19살의 나는 할 수 없었다는 것에, 할 수 없다는 것에 분노하고 아프다.그런데 그들은 아프지 않나보다. 내가 볼땐 그들은 ‘할 수 있는 자들’인데 말이다.그렇게 나는 오늘도 아프다. 그리고 계속 아파할 것이다. 나의 무능함에 그리고 답답함에.REMEMBER 2014.04.16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Daily_life.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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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부산 여행 중 뉴스로 기사를 접했습니다. "어쩌면 좋지"라는 생각부터 떠올랐고, 빨리 구조되어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랐습니다. 수학여행이라는 소중한 추억이 많은 사람에게 아픔이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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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 뉴스를 보고 걱정 됬습니다 정말 기대하고 신나는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갔을텐데 그런일이 생기다니 그일이 벌써 6년이 지났고 전 기억을못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기억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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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초등학생 ,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는데 어머니께서 안절부절 하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그 당시의 상황을 듣게 되는데 당연히 모두가 금방 구조 될 것 이라고 믿었지만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학생분들의 행방은 저 깊고 추운 바다속으로 불명하고 사라져만 갔습니다그리고 제가 그때는 그 분들의 존재와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이 크게 생각을 했는데 막상 제가 당신들의 나이가 되니 ..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 날 이후로 다신 만나보지 못하게 된 당신들의 행방을 제가 오래 오래 기억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낙원에 계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부디 그 곳에서는 한치의 아픔도 슬픔도 느끼지 않고 존재 하시길 바라며 또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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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처음엔 괜찮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점점 갈수록 세월호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6주년으로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그시간에 있던 학생들이 찍은 영상을 보고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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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세월" >차마 괜찮냐고 물어보지 못하겠어요.그 말 한마디가그동안의 슬픔을 가벼이 여길까봐그 길었던 고통을 무시할까봐무심코 물어본 말에 비해그 댓가가 너무 커서차마 괜찮냐고 물어보지 못하겠어요.대신 잊지 않겠다고,우리의 "세월"을 기억하겠다고 말씀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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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절대로 잊혀질수없는 아픈 상처입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고 아프지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편히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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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선 편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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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아프고 슬펐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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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차가운 바다에서 우리는 꿈을 되찾고자 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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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바다로 떠밀려 버린 수많은 꿈들을 기억합니다.누구보다 노력해 세상을 한발짝 정의롭고 정직하게 만들겠습니다.꼭 이루겠습니다.그 날의 언론과는 다른 언론이 되겠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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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뉴스를 보며 정말 많이 놀라던 기억이 나요 아직도.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가야 할 나이에 너무 안타깝습니다 영원히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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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전 초등학생이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티비를 보면서걱정했던 것을 기억합니다.비록 어린 나이에 그 사건을 알게 되었지만 함께 슬퍼할 수 있었죠. 저는 그 날 이후 절대로 이 사건을 잊을 수 없습니다.지금도 기억하듯이 절대 이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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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엄마와 함께 낮에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속보가 나왔고 가라앉고 있는 배 사진이 나왔어요. 아이들이 많이 실려있는 배라고 했는데, "모두 구출"이 되었다는 기사가 나와서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오보였다는 기사가 다시 나왔고, 그 이후로는 계속 울었던 것 같아요. 화가 정말 많이 났어요. 배가 점점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뉴스에 나오는데 그런 채로 시간만 흘렀어요. 슬펐고 믿기지 않아 얼떨떨했고, 무엇도 할 수 없어서 무력감이 컸던 날로 기억합니다.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6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침몰의 원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지요.... 고인이 된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구조를 위해 애쓰셨던 분들, 유가족 분들, 생존자와 생존자들의 가족 모두가 여전히 너무 큰 짐을 지고 살아가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그 고통 제가 다 알 수 없지만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고 증언하고 연대하겠습니다. 부디 건강 돌보시고, 따스함 나누는... 그런 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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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오늘,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엔 그저 상황이 빨리 진정 되겠지라며 무관심하게 제 할 일을 하고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통일이 아니란걸 초등학생인 저도 느낄 수 있었어요.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지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안 되네요... 고인분들께도 유가족분들께도 정말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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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우리 애기들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리곤 한다.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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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 집에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어렸기 때문에 TV로 보고 있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 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몇 백 명의 희생자들을 떠나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함께 안산에 다녀왔습니다. 아마 그곳에서 비로소 실감이 났던 거 같아요.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아파하고 있는지, 그 배 안에서 언니 오빠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요. 6년 동안 많은 일들을 잊었지만 그 날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말로 기억하겠습니다. 매일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며 생각이 날 때마다 애도하고 함께 아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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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기억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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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이 일을 절때 잊지 않겠습니다.10년이든 20년이든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겠습니다.항상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