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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었던 나는 그때 체육시간이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수업이 빨리 끝나길 바라며 누워있었다. 핸드폰을 하다가 네이버에 들어갔는데 큰 배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고 친구들에게 말을 했고 모두 놀라 황급히 일어났다. 하지만 곧 있다가 배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 기사에서는 배와 비행기, 구조대의 이름, 수까지 모두 자세히 적혀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 모두 구출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우선이었고 안도감을 가지고 나머지 수업을 들으러 갔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정부는 그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아니 구하지 않았다.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 때 내가 친구들에게 했던 말 한마디로 평생 세월호에서 무서웠을 친구들에게 큰 빚을 졌다. 나는 친구들에게 기사를 보여주며 "이거봐 이렇게 많이 출동했대, 사람들 못구하는게 이상하다. 다 구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내가 미안해... 절대 잊지 않을게. 절대 지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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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수업 동기들이 사고에 관하여 얘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전원 구조일 것이라 했다.수업에 끝난 후에야 그것이 오보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 근처 카페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 휴대폰을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공부를 하거나 펜을 끄적거리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유리창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초조한 마음이었으나 부끄럽게도 방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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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사내 까페에 동기들과 커피를 사러 갔다가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여객선이 침몰했는데 전원을 구조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뒤 뉴스에는 2명 사망이라고 떴던 것 같습니다. 동기들과 "시키는대로 했으면 안 죽었을텐데, 꼭 말 안 듣고 멋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대화를 했습니다. 수백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했는데 인원 파악이 어쩜 그리 빨리 되어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떴는지 의아해하지도 않았으며, 끝까지 시키는대로 그대로만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간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전원 구조도, 2명 사망도 아닌, 아이들이 있는 배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잠겨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습니다. 뉴스에서는 같은 내용만 수백번 반복되었습니다.그 날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소중한 촛불을 계속 켜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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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쉬는 날이라 미용실에 갔다가 미용실에서 틀어놓은 티비 뉴스에서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곧 이어진 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했다가 곧이은 정정 보도에 미용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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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기념일이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맛있는식사를하고있었는데 세월호 사고에서 전원구조완료라는 속보를보고 큰일날뻔했는데 다행이라고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보라는소식을듣고 너무놀라고 무서웠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삼풍백화점처럼 큰사고가났다는생각뿐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요.. 며칠간 기적이일어나길빌고빌었는데 어느새 2년이라는시간이흘렀습니다. 생각하지않으면 잊혀지더라고요 심지어 세월호 참사에 정치를들먹이기도하구요. 정말이건아닌것같습니다 우리는 모두기억해야하고 진상조사도해야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작게나마 도움드리고 기억하며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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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삽니다. 한국에서 날아온 가족과 함께 영국여행을 떠나기 전 날이었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습관처럼 태블릿을 열어 본 언니가 배 침몰 소식을 알렸습니다. 시차가 있는 지라 그 때는 이미 한국시간으로 오후였죠. 사건사고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저는 "이미 다 죽었겠네"라고 무관심하게 한 마디 하고는 제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행하는 내내 수시로 한국상황을 체크하고 그랬던 걸 보면 저도 내심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광화문 세월호천막에 갔었는데 감히 위로의 말씀조차 드릴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영정 앞에서 눈물만 훔치다 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가족 여러분들 힘내세요. 도움이 못 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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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있었어요. 배가 침몰했지만 구조대가 갔으니까 모두 곧 구조될거라고 생각했어요 회사 동료들이랑 배이름이 이상하다는 말도 했고 전원 구조 라고 다행이라고 가슴쓸어내렸죠. 그게 오보라는 게 밝혀지고 그래도 구조대가 있으니까 그래도 잠수부도 있으니까 배가 완전히 침몰할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다들 돌아올 수 있을거라고 믿고 기도하고 그렇게 하루가 갔어요. 평범한 하루 , 지겹고 지겨워 금새라도 잊을뻔했던 하루였지만 끝내돌아오지 못한 이들때문에 아직 또렷히도 기억나는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잊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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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집에와서 공부를 했습니다. 보통이었다면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우리가족이었지만 엄마는 뉴스를 보시고 계셔서 따라서 보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보며 저도 울고 가족들도 울었습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생각합시다. 그 침울하던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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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아침 작업하다 TV로 보았습니다.처음에 걱정하다가 전원구조라는 보도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네요.그리고 차를 타고 라디오를 들으며여성시대에서 유가족과 전화통화하는 방송을 들으며 운동하러 갔던 기억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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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나고 조금은 여유롭게 동료와 점심식사중 뉴스보도를 보았습니다 선박사고가 났지만 전원구조라고 뜨길래 그래도 다행이네 왠일로 정부가 일을 잘 했네하고 안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걸로 기억합니다...아직도 가족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분들도 조속히 가족품으로 돌아와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진실이 인양되고 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될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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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과 동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일상, 2교시인 체육을 마치고 반에 올라오니 학교 전체가 떠들썩했다하지만 곧 나오는 전원 구출.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그리고 많은 꽃들을 잃었다아마 지금쯤 나와 같은 대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학식을 먹으며 꽃다운 20살을 즐겼어야 한다 그 후 이년이 지났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하며 살아간다그들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무능한 어른들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미안해 정말 미안해 거긴 꽤나 지낼만 한거지? 우리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나중에 볼 수 있다면그땐 웃으면서 보자. 미안해 그리고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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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날이 아닌 바로 오늘 일어났던 일 만큼이나 생생합니다.온몸이 TV앞에서 얼음이 되어 이건 사실이 아닐꺼야라며 그 앞에서 움직일 수 없었고,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려내렸었던 그날...우리는 그날을 절대 잊으면 안됩니다.세월호의 7시간 의혹 꼭 밝혀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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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죽어가는 과정을 생중계하진 않을꺼란 생각에 큰걱정없이 tv를 틀어놓고 청소하고 있었다. 남들 모르게 가라앉은것도 아니고.. 전국민이 배에 배에사고가 난것을 알고 있을정도인데 그곳에 구조대원이 없지 않았을테니까...그러나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고말았다. 밤에 누워있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물속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물속에 잠긴 아이들의 멍멍함과 답답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그날밤 잠을 자지 못했다.박근혜 비선농단이니 뇌물이니 난 다 눈감아줄 수 있지만 세월호때문에 절대 용서할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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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시간 우체국 tv로 봤어요~~배는 기울었는데...아이들이 갑판위에서 구명보트 건너타는 영상을 보고 다 구하겠구나~~안심했었는데...저녁에 지인과 식사를 하는데 배가 침몰했다고해..너무나 어이없고 허망해....믿기지도 않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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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아이를 안고 제발 전원구조가 맞기를... 가슴 조리며 기도했습니다..절대 잊을 수가없습니다..아이들의 표정을..두려움을 떨처버리고자 서로를 위로하던 아이들 의 목소리를...채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를..절대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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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전원구조.고등학생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희안한 경험을 했겠네. 전원 구조라니 다행이다 - 라고 생각하며 점심을 넘겼다. 그리고 오후 2시쯤 다시 본 핸드폰에는 믿을수 없는 소식이 있었다. 전원구조는 오보고, 아이들이 아직도 뒤집힌 배 안에 있다고. 경악해서 뉴스를 틀었고, 4시에도 6시에도 7시에도 9시에도, 아이를 돌보는 틈틈히 뉴스를 보며 아주 작더라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도했다.그날밤은 늦은시간까지 뉴스를 확인하다가 잠이 들었고. 잠든 꿈 속에서 차가운 바닷속을 보았다. 악몽. 무서운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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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똑똑히 생각이 나네요.집에서 엄마와 둘이서 사고가 났다는 걸 뉴스를 통해 보게 된 그 날,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싶었던 마음은 속속 변해가는 얘기들에 불안감과 공포로 변해갔고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를 했더랬죠.도통 잠들지 못하고 유튜브 생방송으로 상황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무기력하고 화가 났었고 가족분들의 모습에 또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타인도 이런데 가족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한 거 같지만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여전히 의문에 쌓여 있습니다그 당시의 정부와 언론의 역할, 배를 버리고 탈출한 사람들숨겨진 7시간, 그리고 대체 왜 구하지 않았는가주위에선 그만 하라 그만 잊으라 지겹다 가만히 있어라 하지만그럴 수 없음에 또다시 촛불을 들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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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국에서 일어난 믿기 힘든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출근시간이었어요. 기차안, 많은 승객들틈에서 기사를 찾아서 읽다가 종착역인 런던 워털루역에 도착했을때, 기차 문이 열리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주체못해 플랏폼 벤치에서 머리를 두팔에 묻고 오래 울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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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떠올리니 벌써 눈물부터 나오네요. 제가 이런데 유가족들은 그날 이후를 어떻게 사시고 계신지, 버티고 살아내시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주시는 유가족님들께 그저 감사하다고, 우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날도 아침 8시 전부터 학교 교실에 들어가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1교시 후 첫 쉬는 시간인 10시 넘어 알았어요. 다시 수업이 시작되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에 눈물이 쏟아져 그 다음엔 뉴스를 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수업과 아이들을 맡아야하는 상황을 놓칠까봐 였지요. 그러고 오후에 다시 뉴스를 접하고는 정말 하늘이 노랗더군요... 그날을 평생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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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아침 세차를 하기 위해 집근처 손세차장에 가 있었습니다. 세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는데 그 때 세월호 소식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때 시간이 오전 열시에서 열시반 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원구조했다는 소식이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집에서 세월호가 침몰했고 그 안에는 구조되지 못한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 300여명이 있었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아이 옆에 누워 함께 배에 갇힌 학생들 생각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꼭 구조되기를 간절히 빌었던 기억이 납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몇 번을 상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디 견디고 살아있기를 바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시간이 너무 지나가버렸기에 정말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울었습니다. 캄캄하고 추운 바닷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고 "어떡하냐, 어떡하냐", 이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구조방관한 자들,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