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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끈으로 서로를 묶은채로 죽은 아이들의 기사를 보고 퇴근길. 길옆에 차를 세운채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 이 글쓰며 다시 눈물이 나네요. 그 순간 아이들의 심정이 그 한맺힘이 너무 사무쳐.... 죽어가기까지 그 몸과 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절대로 잊을수도 없고 반드시 세월호도 진실도 인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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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라디오로 처음 뉴스를 들었습니다. 낮12시가 넘은시간 집에오자마자 뉴스를 틀어놓고 보니, 가라앉는 배안에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숨이 막혀오고 기가막혀 아무것도 할수없고 눈물만흘리고 있었습니다.아무것도 하지않고 지켜보고있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순간 화면에 사망자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어렵게탈출하여 멍하니 젖은몸으로 앉아있는 학생에게 사망한 친구의 이름을 물으며 어떤친구였느냐 묻는 기자의 모습에 기가막혀 채널을 돌렸습니다.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모습은 너무나 무능하고 잔인했던 기억을 잊을수 없습니다.우리아이는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나이로 삼일뒤 같은장소인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현관에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내아들은 괜찮다고 나는 아니라고 안심할수없는 관계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내아이를 안고있는 제가 너무 죄송한마음이었습니다. 아무일없이 부모의품에 안겨주길 단원고 아이들의 부모들은 얼마나얼마나 간절히 바랬겠습니까그 간절함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진실을 밝히는데 소홀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대통령은 진실을숨긴 세월호공범입니다. 끝까지 밝혀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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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 이런 아픔은 다시는 있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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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저는 GOP 경계작전 수행 후 소초로 돌아와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깨어나보니 비보가 와 있었습니다. 군에서도 단순한 여객선 침몰사고가 아닌 것을 깨닫고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가 아니라 세월호 침몰사고 라고 하라는 지시가 상부에서 하달되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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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태어난지 한달도 안된둘째를 안고 밤새 모유수유에 늦은아침으로 칭정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미역국에 밥를말며 뉴스를봤습니다. 전원구조. 됐다는소식에 아~다행이다. 하며 또 칭얼거리는 둘째 젖을물려 한숨자고 일어나니 친덩엄마의 빨간눈과 뉴스~세월호 뉴스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와중에 젖달라고 보채는 둘째젖을물리고 계속 눈물만 눈물만~~그날이 어찌 기억안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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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직장에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한 뒤 텔레비젼을 켜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지켜보며 마음 쫄였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해서 신경을 쓰며 어떻게 되었나? 아이들이 모두 구조가 되었나? 진심 두려움과 걱정으로 그 시간을 보낸것을 기억합니다.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시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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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아버님 고향이라 물에 빠진 사람이라도 구하겠다고 모두 출동해나갔는데 퇴선방송이 없어 나오질 않아 구하지도 못했다고 한탄하시는 말씀을 나중에 전해듣고 화가 났었죠 도망가는 선원들을 보고 얼어 붙은듯 앞이 아득했던 기억 반드시 진실을 밝혀서 왜 구조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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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을수 있을까요.....그날도 저에게 다른날과같이 아이를챙겨 등교시키고 뉴스를 틀어두고 집안일을하고 있었습니다.사고소식.....,전원구조.......다시 하교한아이와 숙제하다 구조소식이 오보라는걸 접하고는.....,그때부터 였던거같습니다..가슴에 큰바위가 얹어진듯 뭘해도 가슴이 막힌듯한기분.......무서워 티비를켜지도 핸드폰도 못켜다 접한 가슴무너지는 소식들......아이들아 미안해.....이나라의 어른이란것만으로도 너희에게 한없이 미안하고미안하다......잊지않을께 늘 가슴에담에 기억할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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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침대에서 뉴스를 보다가 놀라 친구들에게 카톡했어요 그러나 금방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보고서 다른 채널을 보았죠 그뒤에 세월호 침몰이라는말에 어찌나 허망하던지요 기억합니다 잊지 않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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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TV를 보다 정말 놀랐습니다.허망하게 침몰해버린 세월호....지금도 가슴아프고 눈물이 납니다.잊지 않을게요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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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물에 허무하게 가라앉은걸요..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얼마나 비통하고 가슴아팠는지 모릅니다..적어도 인간이라면 이정도는 다 느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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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뉴스롤 보면서 엄청울었습니다. 그날을 어찌 잊을수가 있을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가족에게 전화하고 문자하고. .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들 힘들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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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타깝네요 언니 오빠들이 살아있다면 취직이나 대학 등등 많은 곳에 취업을 했을탠데 아직 꽃도 못피고 돌아가셔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슴을 들이고 싶으네요 박근혜 대통령이 제발 정신을 차리시고 제발 시민들의 귀기울려서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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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유난히 일찍끝난 날이라 계속 아팠던 눈을 진료받으러 안과에 갔다. 진료를 다 받고 약국에서 약을 지으려고 하는데 상가에있던 모든 티비에서 뉴스가 나왔다. 배가 침몰했다고. 핸드폰을 켜보니 또래 언니오빠와 일반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중이란다. 침몰한것도 아니고 침몰중인데 구하겠지... 기사를 찾아보며 불길함을 애써 무시했는데 그날 저녁 아무도 구하지 못했단 뉴스를 봤다. 어쩐지 슬퍼져서 아픈 눈을 감싸고 침대에서 엉엉 울었다. 그 수많은 목숨이 가라앉는걸 전국민이 지켜봤는데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모른다고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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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같은 일상에 출근을 하고 비슷한 패턴의 업무를 보다가 급히 뜬 속보에 놀란 가슴을 안고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TV를 켰습니다. 전원 구출이라는 문구로 안심을 하며 또 어느때와 같이 일상의 업무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그 문구가 오보로 수정이 된 뒤 몇분간을 멍하니 뉴스만을 보고 있었지요.그렇게 몇일을 애타는 마음으로 그렇게 보내던 그 날들..저는 아직도 그 날을 기억을 하면 파노라마처럼 그려집니다. 어떻게 잊나요? 어떡하면 잊을수 있나요? 저는 도무지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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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여느때와 같이 흘러나오던 라디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봤지만 단 하나의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라디오에서 반복하는 말뿐 .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있느니만 못한 것들이었다.지하철역에서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들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이 놓여 눈물이 났다. 누구에게 감사한걸까 하지만 모두 살아 있단 소식에 감사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두 시간 남짓. 그동안 내가 믿은 것은 허상이었다. 누군가는 사람들을 배 밖으로 인도해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구해줄 것이고 누군가는 원인을 밝히고 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 믿었다. 그 누군가가 되지 못한 나는 마음을 다해 무사하길 바라며 기다렸다, 나의 바람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길 기다리면서. 그런데 나의 두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 시간처럼 이 날이 기억속에서 사라질까봐 두렵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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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뉴스와 티비 하나로 구조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아니라는 이야기 정말 분통터지는 이야기밖에 안하는 방송들 그러나 그사람들은 입을 닫고 있네요 우리는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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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늦잠을 자는 날. 중간에 깼을 때, 앵커는 전원구조라고 했어요. 사고 소식에 놀랐지만 모두 구조했다니 다행이다하고 다시 잠이 들었죠. 점심 무렵에 눈을 떴더니 배가 가라 앉고 있다네요. 아이들이 아직 그 배 안에 남아 있다네요. 꿈인 줄 알았어요. 아직 덜 깼나 했죠. 하지만 새빨간 속보 자막은 계속 아이들이 그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티비만 응시했습니다.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란 말을 들을 때도 꿈이다 싶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표자가 된다는 건, 그 나라의 기쁨과 슬픔 모두를 어깨에 짊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걸 모른다면, 외면하겠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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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학원 가서 수업 전 20분간삼각깁밥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어요.혼자 밥먹기 외로워서 핸드폰으로 뉴스보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너무 걱정 됐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 보고 다행스럽게 여겼네요. 그리고 수업끝나고 집에 갔더니 오보보고서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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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작시간을 훨씬 지나 문학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의 표정은 좋지않았고 반장이였던 나는 선생님을 일찍 부르지않아 화가 나신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그리고 그때 들었다 선생님의 지난 근무지는 단원고였다는 것을. 지금 그때로 돌아가도 선생님께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과거의 나도 친구들도 아무말도 하지못했다. 교실은 간간히 슬픔을 숨기는 소리만 들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