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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전원구조.고등학생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희안한 경험을 했겠네. 전원 구조라니 다행이다 - 라고 생각하며 점심을 넘겼다. 그리고 오후 2시쯤 다시 본 핸드폰에는 믿을수 없는 소식이 있었다. 전원구조는 오보고, 아이들이 아직도 뒤집힌 배 안에 있다고. 경악해서 뉴스를 틀었고, 4시에도 6시에도 7시에도 9시에도, 아이를 돌보는 틈틈히 뉴스를 보며 아주 작더라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도했다.그날밤은 늦은시간까지 뉴스를 확인하다가 잠이 들었고. 잠든 꿈 속에서 차가운 바닷속을 보았다. 악몽. 무서운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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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똑똑히 생각이 나네요.집에서 엄마와 둘이서 사고가 났다는 걸 뉴스를 통해 보게 된 그 날,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싶었던 마음은 속속 변해가는 얘기들에 불안감과 공포로 변해갔고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를 했더랬죠.도통 잠들지 못하고 유튜브 생방송으로 상황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무기력하고 화가 났었고 가족분들의 모습에 또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타인도 이런데 가족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한 거 같지만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여전히 의문에 쌓여 있습니다그 당시의 정부와 언론의 역할, 배를 버리고 탈출한 사람들숨겨진 7시간, 그리고 대체 왜 구하지 않았는가주위에선 그만 하라 그만 잊으라 지겹다 가만히 있어라 하지만그럴 수 없음에 또다시 촛불을 들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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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국에서 일어난 믿기 힘든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출근시간이었어요. 기차안, 많은 승객들틈에서 기사를 찾아서 읽다가 종착역인 런던 워털루역에 도착했을때, 기차 문이 열리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주체못해 플랏폼 벤치에서 머리를 두팔에 묻고 오래 울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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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떠올리니 벌써 눈물부터 나오네요. 제가 이런데 유가족들은 그날 이후를 어떻게 사시고 계신지, 버티고 살아내시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주시는 유가족님들께 그저 감사하다고, 우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날도 아침 8시 전부터 학교 교실에 들어가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1교시 후 첫 쉬는 시간인 10시 넘어 알았어요. 다시 수업이 시작되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에 눈물이 쏟아져 그 다음엔 뉴스를 보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수업과 아이들을 맡아야하는 상황을 놓칠까봐 였지요. 그러고 오후에 다시 뉴스를 접하고는 정말 하늘이 노랗더군요... 그날을 평생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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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아침 세차를 하기 위해 집근처 손세차장에 가 있었습니다. 세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는데 그 때 세월호 소식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때 시간이 오전 열시에서 열시반 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원구조했다는 소식이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집에서 세월호가 침몰했고 그 안에는 구조되지 못한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 300여명이 있었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아이 옆에 누워 함께 배에 갇힌 학생들 생각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꼭 구조되기를 간절히 빌었던 기억이 납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몇 번을 상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디 견디고 살아있기를 바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시간이 너무 지나가버렸기에 정말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울었습니다. 캄캄하고 추운 바닷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고 "어떡하냐, 어떡하냐", 이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구조방관한 자들,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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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가 무얼했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진 않지만 오직 한가지... 그 당시 어떠한 상태였는가는 분명 기억합니다아무것도 할수 없었고 무기력함에 뉴스보며 울던 기억밖에 안납니다국가와 국민의 존재의미를 생각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답을 못팢긴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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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TV앞에서 국가가 반드시 구조해줄거라 희망을 놓지않았는데 너무 분하고 분합니다지금도 아이들 생각하면 분노의 눈물이 흐릅니다지옥불에 떨어져 죽지못하고 영원히 뼈와살이 타는 형벌을 받는다해도 저는 박근혜를 용서 할 수 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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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맑은 그날.. 왜 인지 모르고무엇때문인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어머니와 누군가의 딸누군가의 아버지와누군가의 아들우리는 기억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우리는 답을 찾으려고 버티고 있는데... 왜. 무슨 이유로 도대체왜..그날.. 그 맑았던 그날.. 온 국민이.. 전세계가.. 그들이 그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던 그날.. 그 맑았던 그날... 4.16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T.V 를 틀고는 모두가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나오던 그때..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나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던 그날.. 그때... 난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게 그날 하루종일을 기억하는데.. 왜.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왜....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 걸까요? 그리 슬프고 간절했던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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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아니, 계획적으로 의도된 침몰..모두를 죽음으로 매몰기라도 하려는 듯누구도 아무도 구하지 않았던 최초의 시간들구하려는 이들조차도 막아섰던 보이지 않는 세력그러나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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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어김없이 저는 평범하게 직장인으로써 출근하여 정신없이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메신저에 뜬 세월호 속보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치만 업무 하기 바빴습니다. 별일 없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얼마 뒤 전원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했습니다 . 그리고 저는 다시 일을 했습니다.퇴근을 하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퇴근하고 집가는 길에 버스에서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제 동생과 비슷한 몇백명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속에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해경 그리고 정부가 너무나 밉습니다.시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세월호 우리는 꼭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님이 대한민국 영화관에서 다 거절당했던 영화 다이빙벨을 무료 공개 하셨더군요 많은 분들이 꼭 보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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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10시반쯤에 피부과에 도착했습니다.병원티비로 사고 소식을 듣고 조금 있다 전원구조로 안심하고 동생과 피부관리를 받았습니다.관리 후 말도 안되는 뉴스 오보!!그날 우리애들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던지그이후로 눈물은 시도때도없이 흐르고ㅜ전 그날이후 그 병원엘 아직도 가지 못합니다.그병원은 제게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그밖에도 세세한것까지 다 기억나는데 기억 안난다는 인간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무존재도 아닌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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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날들 중 한 조각이였을 거다.그런데 그 날이 정확히 기억이 난다.4월 16일이니까.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려고 안달이 났던 날이다. 나 살기 바쁘고 정신없고 새로운 정보에 힘이 들었던 그 날.... 나는 어떤 이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평범하게 살아있었다. 배사고났다. 전원구조했다. 다행이다. 이러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나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그럴 수도 있어하는 자위. 남의 일에 무관심한 추악한 나를 발견한 그 날 저녁부터 나는 시커먼 바다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함께 울었다.그리고 2년. 잊었다 다시 기억하고 또 잊었다 다시 떠오르고 다 지났어 하다 다시 울분이 터져오르는 세월호 416.앞으로는 잊었다 다시 기억하지 않을 거다.계속 기억하며 살아갈 거다.진실규명을 함께 해 나갈 것이고 진실이 다 밝혀진 후에도 기억할 것이다.뜻하지 않게 떠나가버린 가여운 영혼들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게 나도 행동하며 기억할 거다.그래 이거다. 기억하고 행동하자. 함께 갈 거다. 당신들도 함께 해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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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평범한 날이였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는데 마음이 답답해서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와 평소대로 티비를 켰습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단원고"라는 단어만 듣고 다시 티비 앞에 앉았어요. 그렇게 예은이 이름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습니다. 예은이는 제가 아르바이트 하던 학원생이였습니다. 수줍게 고개짓으로 인사하던 예은이였는데 학원을 다니면서 점점 활발하게 인사하며 들어왔던 예은이였습니다. 저는 예은이의 프로필 사진을 수정 해 준적도 있고, 오디션 연습 영상도 본 적 있는 아주 짧디 짧은 인연을 갖고 있네요. 많이 미안해요. 내가 먼저 안녕이라며 웃으며 인사해줄걸. 저는 이렇게 또 못난 어른 못난 언니가 됩니다. 이렇게라도 예은이에게 뒤늦게 다가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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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중2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해변에서 사진을 찍고 웃고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전해들었을때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와 동시에 살아있음에 고마웠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도 닥칠수있었던 ... 그렇게 그날은 영원히 기억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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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시 재수생이었던 저는 학원 선생님의 말을 통해 세월호 사고를 전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사고라는 생각을 했다가 점점 커져만 가는 의혹들, 차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은폐행위들.. 유족에 대한 모욕.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저는 무기력하게 일상에 휩쓸려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304명의 스러져간 억울한 생명들에게. 너무나 많이 미안합니다. 더 이상은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어떤 정치적 이해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가장 소중한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이런 당연한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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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치과의사입다. 진료 중에는 tv를 볼 일이 없는데 그 날은 대기실에 있는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화면에는 바닥색 파란 배가 넘어져 있었고 자막에는 침몰이라고 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 화물선인 줄 알았지 사람이 그렇게 많이 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러다 수학여행 가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뉴스 속보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전원구조란 자막에 "아 다행이다!!" 혼잣말을 했죠. 그러다 그게 아닌게 알게 되고 그 후엔 계속 맘만 졸였던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기술도 좋은데 구출되겠지 구출되야해 그러면서..아...그 후엔 진료하면서도 계속 기도했어요. 모두가 구출되길 무사히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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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참몰하지 않는다거짓은 참을 이길수 없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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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이 있었습니다. 오전 10시쯤 초등학교 교실에서 배가 가라 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마음이 놓였습니다.오후 또 초등학교 교실에 있었습니다. 며칠 후 있을 학교 행사를 도울 학부모교사들의 사전 교육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배가 가라 앉았고, 그 배 안에는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사고가 있던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일주일 뒤에는 중학생 큰 아이의 수련회가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내 아이가 돌아오지 못한 것 같이 지금도 아픔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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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침활동을 하고 1블럭 교과전담 시간동안 숙제 검사를 하고 있었다. 숙제검사를 하다가 눈을 돌렸는데 모니터에 띄워 놓은 포털 메인에 조그마한 사진이 보였다. 두 여학생이 담요를 덮고 앉아 있는 사진. "진도 앞 여객선 침몰, 전원구조""라는 기사 제목과 함께."침몰? 아~전원구조." 하며 하던 일을 계속 했다. 2블럭 수업, 점심 급식, 3블럭 수업을 모두 마치고 바로 퇴근시간까지 긴 회의가 이어졌다. 퇴근후 저녁을 급히 먹고 운동을 했다. 전원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본 후 그 사건을 잊고 바쁜 일상을 이어간 것이다. 운동이 끝나고, 같이 운동하던 동료가 먼저 휴대폰을 보다가"배가 침몰했는데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는데요?"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네?"라고 몇 번을 묻고서야 휴대폰을 확인했다. 분명 전원구조라고 했다. 그런데.뒤집힌 세월호의 모습. 어두운 바다. 2014년 4월16일.세월호의 첫 소식을 본 아침의 그 순간과 300여명의 사람들이 갇혀있다는 소식을 들은 저녁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그 순간의 나를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이후 촛불이 시작되었다.기다림과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미안함과 진실을 바라는 마음으로.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이 겪은 수모와 아픔도 지켜보았다.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저 머리 수만 채우는 나를 죄스러워하면서.기억이 나지 않는다니...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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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회사에 있었습니다. 오전에 선박 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봤는데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아, 다행이네. 라며 일을 하다가 오보라는 사실을 알았고, 배가 옆으로 누워있던 그때도 솔직히 다 구할 수 있을거라고 큰 사고가 아닐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선수만 물위로 떠있는 것을 보았고 점심을 먹으러가서 티비를 통해 배가 바다속으로 완전히 잠긴것을 봤습니다. 그 장면을 본 회사 동료가 "아.. 너무 .." 뒷 얘기는 적지 않겠습니다만, 바보같이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바다에 잠기면 안되는거냐고 되 물었고 그 동료가 "배가 잠기면 공기가 없는 거니까요"라고 짧게 대답 했습니다. 그때부터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종일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봤었습니다. 그 기억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날 그 뉴스를 접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절대 잊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