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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였는데 처음에는 전원구조라고 떠서 강의듣다가 다행이라고 애들이랑 얘기했었어요.근데 오보라고 침몰하고 있다고 했을때 사실 그 때까지는 설마 요즘 세상에 승객들을 못구할까 그런 생각도 했었죠. 근데 점점 배는 가라앉고 한 명 한 명 사망자가 나오고 뉴스에 사망자 수 실종자 수가 위에 뜨는데 믿을 수가 없었어요. 멍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2014년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밤 새 뉴스보고... 2016년의 끝인데 아직도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는 숨기기만 하고 수많은 의혹들.. 2017년에 모든 것이 다 풀리고 희생자분들이 편안해졌으면...실종자분들도 부디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절대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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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이 끝난 후 식사를 하려고 선후임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tv에서 보도합니다. 별일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제 친동생과 같은 나이인 고2라고 합니다.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에 선거 외에 정치적 의사표시를 할 수 없습니다. 외출을 받으면 혼자서 몰래 광화문 광장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유족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지켜보다가 서명운동에도 동참하지 못하는 현실을 자책했고, 서러운 마음을 친구에게 고백하였습니다. 친구 왈 군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잘 안다. 안타까운 마음 가지고 영원히 잊지말자..미안합니다 나라를 지키고 있던 사람으로써 미안합니다. 그대들의 안타까운 희생 기억하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민간인이 된 지금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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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회사에서 유튜브였나..인터넷으로 YTN중계를 보았습니다.화면속 뒤집어져서 가라앉은배와 경악스런 실종인원에 간절히 모두 무사히 구조되길 빌었습니다.그 실종이 고스란이 사망자가 될줄을 그날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했는지 알지못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유족들뿐만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모든 이들또한 아직고 절망과 고통속에 있습니다.사회가 진실히 밝혀지고 죄가 있다면 그 죄값을 치르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여전이 무력하게 조명탄을 쏘아대던 그날 밤바다 위에 표류하게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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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내려와서 식당에서 확인하였습니다.아이들이 전원구조되었다고 보았는데, 다시 실종이라는 것을 확인 하였지요. 정말 절망적이더군요.. 나중에 전원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는 방송을 보고 더욱 끔찍하였고요. 그런데, 대통령은 2014년 7월 8일 국회의원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 7시간에 대한 행적 공개를 요구하였음에도 지금 2016년 12월 30일 기억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과연 2년 6개월 동안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국민들은 그 희생자들을 잊지 못하고 있지만, 국가의 지도자인 대통령은 그 사건을 잊으려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있습니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신뢰를 스스로 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어둠은 빞을 이길수 없고, 거짓을 참을 이길수 없으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세월호는 침몰하였어도 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레테의 강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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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7개월쯤 친정엄마가 집에 오셔서 티비보시면서 큰사고가 났다고 하셨어요.설거지를 하다 급하게 뛰어나갔는데 전원구조 자막이 뜨고 구조자들 화면이 나오길래 정말 다행이라고 얘기나누고 남은 일을 했지요..점심쯤 다시 티비를 봤는데 구조/실종 400 명 이런식으로 뜨고 뱃머리들려있고 이런상황이라..마음이 급해지더라구요그래도 다 구조할줄 알았어요..배가 다 가라앉은것도 아니고..그럴줄은 몰랐어요..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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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tv를 틀었는데 사고가 났다고 한다. 배사고가.... 출근하는 신랑에게 소리쳐서 신랑을 불러 tv를 같이 봤어요. 신랑이 출근하고 배가 뒤집혀가는 tv를 보며 청소기를 밀었고... 애동지라 아이들 사고가 많다는게 정말인거냐 그런게 정말 있는거냐 엄마와 통화를 했어요. 저 부모들 어쩌면 좋냐...눈물을 흘렸고 아이들이 왜 바다로 헤엄쳐 나오지 않는거냐 언니와 통화도 했어요.그날은 하루 종일 tv를 켜두었고 점심을 먹지 않았어요.2014년 4월16일 그 한달 후, 1년 후...아니... 2016년 4월16에도 전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날 만은 2014년 4월 16일 만은 기억해요. 그날은 그냥 일상이 아니 었으니....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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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아침 회의 끝내고 나오는데속보로 나와서 대화창마다 세월호소식 링크 받고,놀래서 폰으로 뉴스 본 기억 생생합니다!!어쩌지? 뭐지 ㅠㅠㅠ 나도 배타고 고등학교때 수학여행갔었는데??? 까지 생각했었어요!그러고 퇴근할때까지, 담날 출근할때까지 ㅠㅠ 그 소식뿐 ㅜㅜㅜㅜㅜㅜㅜ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입니다 이건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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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접했었고, 오보가 나오고, 오보를 정정하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아직까지 팽목항에는 당신들의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정권의 희생자가 단원고의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일반 승객이든. 세월호 인양은 최대한빨리 무조건 돼야하고, 그 속에 숨기려는 사실이든, 숨겨진 사실이든 밝혀야하고, 밝혀질 것이고, 밝혀져야 합니다. 항상 그리고 영원히, 응원하고 작은 목소리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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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일찍 모 거래처에 출장가서 그 곳 사내 식당에서 점심 얻어 먹던 중 직원들이 하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원 구조 되었다는 말에 가볍게 넘겼는데 오후에 복귀해서 인터넷으로 세월호의 실상을 확인한 후 망연자실하였습니다어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일을까 하루종일 울분에 찼었습니다이런 일을 기억도 안하고 기록도 안하는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악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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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막막한 입시 날 중 하나, 여느때와 다름 없던 아침 막막한 날은 한순간 먹먹함으로 바뀌었고 누구에게 지지않는 나의 대학 합격의 간절함은 너의 살고자하는 간절함에 비교도 할 수 없게 되었어 너가 있다고 배가 점점 가라 앉는다고 누군가 크게 외쳐도 미국의 도움을 받는다 카더라 인양작업을 한다더라 못한다더라는 추측성 이야기만 떠돌뿐 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확신하지 못한채 마치 아무도 없는 암흑에서 홀로 소리 치는 것 처럼 메아리만 크게 울릴뿐 그 외침이 야속하게도 너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내려만 갔어 내 나이 19살, 2014년 4월 16일의 난 어른이 대단한건 줄 알았어 너의 손톱이 다 빠질 정도로 배를 긁기 전까진 말이야. 하지만 어른은 대단하지 않았고 몇몇의 영웅들이 장렬히 전사하시고도 너는 나오지 못했어 세상이 그렇게 시끄럽고 부모님들의 원망과 애절함과 슬픔은 귀를 막아도 외면하지 못할 정도 였는데.. 너가 믿던 어른은 어디서 뭘 했을까 애초에 너가 믿던 어른이 존재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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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저희 아들 공개 수업날이었어요.. 장래희망으로 파워레인저 앤진 블루가 되고 싶다는 저희 아들의 그림도 보았고, 축구선수가 되고싶다는 같은반 아이의 축구장 잔디의 색을 다르게 표현한걸보고 감탄도 하고 했더랬어요. 공개 수업이 끝나고 같은반엄마들과 학교근처 카페에가서 샌드위치도 먹고 커피도 마셨어요.그 카페에있는동안 스마트폰으로 - 오보로 밝혀졌지만- 수학여행간 단원고 아이들의 전원구조기사를 보며 엄마들끼리 다행이라고 얘기도 나누었지요.. 전 그날 무슨옷을 입었는지, 무슨 가방을 들고,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옆에앉은 엄마는 누구이며,어느 카페에갔는지, 제가 어디에 앉았는지 다 기억이 나요..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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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함양 백두대간 자락에서 아내와 함께 소규모로 유정란 농장을 하고 있습니다.세월호 사건 4월 16일을 분영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닭들에게 사료를 주고나서 알을 수거합니다. 그리고 그 알들을 닦기 시작합니다.보통 TV를 켜놓고 보면서 일을 하는데 시작하자 마자 세월호 속보 자막이 뜨더군요.그러다가 얼마 후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뜨길래 그렇게 생각했죠.조그만 배도 아니고 큰 배니까 금방 침몰하지는 않으니까 충분히 구조 했겠지 나고 생각했습니다.그러다 나중에 침몰 중인 배 영상이 속보로 나오고 전원구조는 오보라는 뉴스도 나오더군요.그날 내내 작업을 하면서 한시도 TV를 끄지 않고 비참한 현장을 목도했네요.이날의 일이 기억 나지 않는 대한민국 사람은 아마도 약물중독으로 인해 정신이 피폐한 사람이나 치매환자 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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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친구들이 초대됐던 날 7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면서 티비를 켰습니다 8시 되기 전이었어요 자막에 세월호 침몰에 관한 메세지가 나왔고 전원구조라고 해서 안심하며 음식 준비를 했습니다 4시경 파티를 하는데 구조가 안됐고 구조자와 실종자 숫자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던 날... 저는 죄인이 된 기분으로 몇해를 살았습니다. 제발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고, 자격없는 자는 물러나며, 양심은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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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한 용산 대참사의 현장!그들이 버려둔 4월16일의 세월호 ! 사무실8:30분 업무개시. 뉴스에 뜨는 세월호침몰!2번째모니터에 뉴스현장을띄워놓고 울분이치솟는사후대책/또!오보들/ 누가 이시간을 기억못한다하는가?오직 강남아줌마 아바타만 그러는가? 그들의부역자들만 *천인공노할 인간들만 <기억이 안남니다>잊지않을겁니다.그들의만행을/잊지않도록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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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날 나는 동료와 담당하는 학교에 전달할 물건이 있어 아침부터 한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 라디오뉴스를 듣고 있다가수백명을싣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중이라는 속보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전원구조라는 뉴스속보를 듣고 기쁜 마음에 동료에게 했던 말들이 똑똑히 기억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다 됐나보다.이런 큰 사고가 났슴에도 불구하고 전원구조하는 걸 보니 말이다"그렇게 기분좋게 업무를 처리하고 점심 때쯤인지 오보라는 뉴스가 나오고 얼마나 분노하고 황당해 했는지...모든 이들이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박그네 당신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고 지휘자이면서 그날 기억이 안난다라니..기억보다 기록으로 남겨야 할 당신의 행적이 없슴은 정말 인두겁을 쓴 짐승으로 밖에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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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tv를 켜니 배 한 척이 바다에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날 4월 16일 뉴스가 나오고 밥을 먹는둥 마는둥 tv 앞을 떠날 수가 없어서 방에서 주방으로 수도 없이 들락날락하면서 그릇을 심하게 덜거덕거리면서 설겆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접하고 일면 안심했다가 다시 오보로 밝혀지면서 계속 tv 앞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수업이 오후 2시 30분에 시작 되는데tv앞을 도무지 떠날 수 없어서 주저하다가 2시 20분까지 학생 데리러 차를 몰고 나가야 했기에 3,4 분 지각을 하면서 학생 집 앞에 도착 했던 기억 아직 선명합니다.그 날 의 기억은 아직또 그 학생과 공유하고 있습니다.마치 얼마 전 경주지진 났을 때 함께 수업하던 학생과 아직도 그 날 지진 났을 때 얘기를 가끔 씩 떠올리며 주고받고 있듯이 말입니다.배가 점점 가라앉아 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정말 저라도 달려 가서 배를 건져 올리든지, 들어 올리든지 하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못 구조를 못하는 건가?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가? 왜 점점 배가 잠겨드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정말 가슴이 터질듯.. 미어질듯 하였고.. 지금도 그 날의 아픔은 점점 또렷하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기억이 안 나다니요!!자기 최면이며 자기기만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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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억합니다저희 회사에서 일을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뉴스를 보았을 때는 저와 회사 선배는 정제업을 하고 있었죠.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건 쉬는 시간 회사 선배가 뉴스를 보고 전원 구조하는 오보를 보고 저앞에서 약간 비웃었죠. 이후에 심각한 뉴스를 보고 선배가 저에게 웃은 이유에 대해 해명하고 오해하지 말아달리고 말했습니다.그게 제가 기억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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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문화센터를 갔죠... 그림 그리다 핸드폰 뉴스를 보게됬어요....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 타고 있던 새월호가 침몰 한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다같이 그림그리다 말고 걱정을 하다가..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안심하고 다시 그림을 그렸어요!! 12시30분쯤 수업이 끝나고.... 나니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그뒤로 멘붕이 와서... 집에도 못가고 삼삼오오 모여 뉴스를 계속 지켜봤어요!!그뒤로도 계속 뉴스에서 눈을 못떼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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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현장(경기도 이천)에 출방을 나가 일을보고 있는데 오전 10시경 집에 있던 와이프가 전화를 걸어와 지금 진도 앞바다에 배가 침몰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도 곧 바로 "전원 구조했데"하는 문자도 보내 왔습니다. 아! 다행이다 했는데.........우린 아직도 세월호를 들어 올리지 못했습니다.시간당으로 이야기 하라 해도 어디어디 있었는지 그날의 통화 내용도 다 기억할수 있습니다.어떻게 그날의 기억이 없을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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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승진교육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8시에 버스타고 교육장으로 가서, 교육이 시작되기 직전 속보에 여객선 침몰중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동료와 교육은 듣는둥마는둥 계속 기사 새로고침만 하던중, 전원 무사구조라는 기사가 떳습니다. 안심하고 남은 오전 교육을 마치고, 점심 먹으러 가며 동료에게 다 구조됐다는 기사를 봤다고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식당 TV에서는 해당 기사가 오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고, 동료와 다시 걱정을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오후내 교육은 듣는둥마는둥 휴대폰으로 기사만 검색하며 남은 오후 일정을 보냈습니다만, 교육 내용, 저녁까지이어진 조별 토론 일정 하나하나 모두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