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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꺼내기에도 마음 아픈 그 날. 저는 그때 고등학교에서 한창 수업중일 때 였습니다. 그리고 쉬는시간, 세월호가 침몰됐다는 뉴스를 보게되고 그 안에 일반인들과, 수학여행을 간 기대에 부풀었을 고등학생들이 타고있단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충격을 먹었지만 금방 구조되겠지. 하며 생각을 했고, 실제로 라이브 뉴스에는 전원 구조라는 글귀가 떠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부터 였습니다. 전원구조가 되지 않았고, 아직도 배 안에 학생들과 사람들이 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반 학생들은 쉬는시간을 반납하고 일제히 티비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전원구조의 소식이 없자, 너무 불안해지고 희생자 1명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지 생각을 하며 티비를 시청했습니다. 뉴스들마다 말이 다르고 오보가 계속 나와 어느것 하나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3년 뒤에서야 침몰한 배의 인양 작업이 시작되었고 애석하게도 희생자가 많아졌고 , 사회 전체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희 학교와 가까운 다른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세월호를 탈 계획이었는데, 취소가 되어 다른 배를 타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 지역에서 이런 가슴아프고 비통한 일이 일어나 충격이 정말정말 컸는데, 저희 지역에서 일어났다면 말도 할 수 없을만큼 슬펐겠죠. 꼭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밝혀져야 합니다. 지금도 깊은 바다 속 잠들어있는 아이들 9명. 금방 올라와 부모님 곁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미안해져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잊지않는 것, 그리고 이렇게나마 글로 남기는 것. 아직 꽃 피울수 있는 무궁무진한 나이에 이런 참담한 일을 겪고 시들어버린 학생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위로합니다. 부디 다음 생엔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길. 정말정말 가슴 찢어지는 일이에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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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넘어가더라그 날은 아침부터 하늘도 우중충했다.그 소식을 듣고 학교에서 학식을 먹는데 얹힐 것 같았고, 집에 오는 버스 안 사람들 모두, 정말 모두 다 계속 핸드폰을 확인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주변의 모든 사람이 길거리에서 슬퍼하는 걸 처음보았다.계속 마음이 아팠고 또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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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친구와 미용실에서 친구와 함께 머리를 손질하러 갔었습니다. 친구는 머리를 다듬고 있었고 심심했던 저는 티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근데 긴급속보라며 갑자기 뉴스가 방송되서 뉴스를 보는데 사망자 구조자 이런게 옆에 뜨면서 세월호라는 배가 가라앉았다고 보여주더군요 . 그 때는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고 뭐 다 구출되겠지라며 가볍게 여겼었습니다.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랐던거죠.. 그 일이 있은 후 학교에서 매년 이 날을 기억하려 다같이 영상을 보곤합니다 볼 때마다 너무 슬프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오려 하네요 부디 이제는 하늘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고 항상 이 일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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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니던 나는 없는 용돈을 끓어모아 너희부모님들이 있는 진도에 마스크를 보냈다... 나는 조그만한 힘이지만 도움이 될까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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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올해에 들어서야 15살이 됐으니... 5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 다녀오고 일주일 뒤에 배가 침몰 됐던 걸로 기억한다. 좀 많이 어렸던 것 같아 더 확실한 내용들은 몰랐었어도, 초반에 뉴스에 분명 대부분의 승객들을 구조했다 해서 그냥 배만 기울어져 있는 줄 알았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시간 뒤에 다 잘못된 정보이고 아직 구조하지 않은 승객들이 많다 라는 뉴스가 나올때도 조금 있다가 다 무사히 나오겠지 큰 일은 없을거야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이 생각을 했고.. 그 이후로 나오는 뉴스 화면 모서리에 뜨던 구조자 몇명 사상자 몇명 사망자 몇명 이걸 가장 유심히 보았다. 점차 구조자는 줄어들고 사망자 수가 구조자 수를 뛰어넘었을 때 아 이거 진짜 심각하구나 알아챘던 것 같다. 정말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길게 남을 사고인지 전혀 몰랐다. 주변에서 우리 사촌오빠 친구가~ 아는 사람이 사상자라더라 사망자라더라... 속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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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직장에서 근무하던 때 였고 점심시간쯤 밥을 먹으면서 뉴스에서 나오는 그 장면을 봤습니다. 일하고 있던 와중에 배가 가라앉는다는 이야기를 보았고 점심 때쯤은 아침에 보여주던 화면이 나오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오지 못했다는... 나는 벌써 3번째 직장을 다니고 어느새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제밥 그럴듯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좋은 어른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가는 과정에서 그 기쁨 슬픔 자랑스러움을 가지고 건강한 삶을 살수 있도록 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나라를 끌어안고 이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아지는 어른이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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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고 3이었던 나는 친구들로부터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친구가 뉴스기사를 보고 전원구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어떻게 저렇게 빨리 저 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을까 의심도 하지 않고 다 구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하지만 그 소식은 다 거짓말이었다.학교가 끝난 후,나는 집에 와서 TV를 틀었다.처음에는 생존자가 좀 늘어나더니 그 이후로는 사망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한사람이라도 더 살아남길 기도하며 집중했다.그 날만 생각하면 진짜 울분이 터진다.선장도 선장대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해경도 해경대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한편으로는 "내가 이 나라에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물론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무릎쓰고 하시는 분들도 많다.하지만 세월호 안에 있는 사람들도 구조되서 나온게 아니라 자신들이 알아서 구출한 걸 보면 우리나라에는 진짜 믿을 사람이 없다라는 인식이 내 머릿속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많은 사건사고들이 발생할 것이다.그때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서 구출하게 하지 말고 사람들을 구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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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어요. 친구들이랑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속보로 가라앉고 있는 배의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그 때 제 다른 고등학교 친구도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간다 했었기에 설마 내 친구의 일은 아닐까, 덜컥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전원 구조될 줄 알았고, 별 일 아니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수업하다가 중간에 전원 구조라는 검색어를 보고 안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네요. 20살이 되었던 작년, 광화문에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는 걸 봤어요. 나는 이렇게 스무 살이 되어서, 이 곳에 왔는데. 동갑이었던 그들의 시간은 이렇게 멈춰 버렸구나. 나름의 빛을 채워 갔을 그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간들이. 그렇게 멈췄구나. 마음이 복잡했어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왜 그렇게 멈춰 버렸는지 우리는 진실을 명확히 답할 수가 없구나, 싶어서요.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확실히 막을 수 있다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어느새 그날이 지난지도 1000일이 넘어갔네요. 물 속에서 올라온,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그 배의 모습을 보면서 그 배가 가라앉던 그날의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그 때의 점심을 먹고 있던 나와, 지금 뉴스를 보고 있는 나는. 개인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밝혀내지 못해서 미안해요. 잊지 않을게요,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그 진실을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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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제가 발목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고있었습니다. 치료를 받던중 갑자기 치료실 뉴스에 속보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죠. 사실 그때는 "뭐 금방 끝나겠지..."하며 그냥 누워있었습니다. 근데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켜보니 구조작업이 아직도 지대로 아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헐 뭐야 아직도 이 정도야? 이러면서 그때부터 진심으로 형누나들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꼭 그들이 다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 달라고..... 남편을 잃으면 과부 부모를 여의면 고아 라는 명사들이 있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는 그런것이.없습니다. 부모들의 슬픔을 표현조차 못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요.... 비록 살아돌아오지는 못한 형 누나들이 많지만 꼭 천국에가서 맘편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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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 오전교무실에 비치된 TV가 켜지고 뉴스가 나왔어요.프레젠테이션 용도만 하는 줄 교무실 TV가제 기능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지요.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중이라는 장면.헬기도 있고 기울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당연히 모두 구출되는 줄 알았어요.당연히 모두 살아 돌아오겠지만 ..늘상 그렇듯 이 사고로 안전규정이나 여러가지가깐깐해지고 피곤해지겠다고 ..속으로 앞선 불평을 늘어놓았어요.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는데이 일로 제약이 또 생기겠군. 하면서 ...하지만 그 불만 속에서도 "당연히 모두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누가 봐도 충분히 구할 수 있으니까...그리고 수업을 들어갔고,바쁜 하루를 보냈고 늦은 퇴근을 했어요.그런데 왜 어째서 ...왜 ...당연히 모두 구출될 줄 알고 늘어놓은제가 가졌던 불평들을이렇게나 미안하게 만들어버리죠?아침마다 뉴스를 보는 게 두려웠던 몇 주.온 국민 트라우마 .역시나 안전 제약은 깐깐해지고그 해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애도의 의미 보다는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겠죠?뭐든 사소한 것만 터져도 이슈가 될테니 .받아야 할 연수가 늘어났고학생 안전에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지만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마땅히 제 할일을 하고 있는 어른들에게는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말장난으로 문서화 시켰고강제화 시킨 내용.책상에 앉아 온갖 피해 갈 구멍만 파 놓은 제약.다만 저 위에 계신 당신들이 ..돈 많은 당신들이 바뀌지 않으면그 끝없는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우리 모두는 안전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안전하고 평등하고 정직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미안합니다.Remember 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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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생이라 그당시 학교에 있을시간이었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어요.. 뉴스에서도 구조중이라고하고 얼마지나지않아? 모두 구조해서 생존했다는 뉴스가떠서 그런줄로만 알고있었어요 근데 그 뉴스가 오보라고 뜨면서 각 방송사의 뉴스들은 침몰중인 세월호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사망자몇명 실종자몆명 구조자몇명 이렇게 명수가 나왔어요 근데 처음에 말했던 구조자들의 수보다 점점 줄어들었고 그걸 계속해서 보고있자니 너무 절망적이었고 우울했어요 그 선장이 자기가 제일먼저 탈출해서 돈말리고있었다는 말도 들었고 제가 정말 억장이무너지는거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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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냔 4월 16일, 제 나이는 17살 고등학생1학년이었습니다. 오전 9시 쯤 교실마다 있는 텔레비전에서 세월호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학교내 전교생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습니다.가는 교실 마다, 만나는 친구마다 세월호얘기 뿐이었습니다. 수업과 수업사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텔레비전을 틀어 생존자수를 확인하였고 시간이 지나도 좋은 소식은 없었습니다. 초조했습니다. 6시 40분쯤 급식을 먹으러 급식소 앞에 줄을 서있는데 모든학생들이 세월호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때의 등골의 서늘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야자시간에도 생각이 너무 많아져 집중하지 못 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왠지모를 묘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뭔가모를 찝찝함과 걱정,슬픔을 안고 집에 돌아오자 역시 집에서도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고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슬픈듯 한 목소리로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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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6처음엔 당연히 구조될거라고 생각하면서 학교를 갔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것도 하지않는 해경들을보면서 교수님도 학생들도 모두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어..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나는 여전히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서 미안해 얘들아.. 누구보다 설레는 수학여행이였을텐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어.. 2014년 04월 16일.. 이젠 날짜만 들어도 울컥하는 날이 되어버렸어.. 얘들아 그땐 아무것도 못하고 분노하기만 했었는데 3년이 흐른 2017년 봄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차갑게 돌아온 너희를 위해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게. "어두운 진실과 현실은 우리가 마주할게.너희는 그곳에서 그 누구보다 즐겁고 설레는 최고의 수학여행을 보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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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참사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를 보며 안에 갖힌 분들의 구조소식과 해경의 미흡한 대응등을 보며 하루빨리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같이 슬퍼했죠.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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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이 구조되었다는 말에 안심하고 신경을 안쓰고있던 그 날.분명 전원 구조라 하였지만 , 그 날 밤에 들려오는 소식은 달랐다. 고 2, 18살 . 이제 밝게 빛날 나이에 물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떠난 그 곳에서는 밝게 빛나길, 고통없이 행복하길진실은 분명 떠오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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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해병1183기로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있었고, 처음으로 돌격머리로 이발하는데 갑자기 뉴스틀어주고....그당시엔 외부소식이 완전단절된때라 가벼운사고인줄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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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그날, 제가 뭘 하고있었는지조차 기억이안날만큼 시간이 오래..많이도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날7시간의 가슴아팠던....사건을 뉴스로 보면서 내 가족일처럼 눈물을수없이 흘리면서 생존자들이 한명이라도 늘어나길 ..간절히 ..누구보다 간절히 빌었습니다.허나 늘어나는건 사망자수뿐이였고...도대체 그런 사건이 왜 일어나야만 했던건지 하늘이 원망스럽고 분통하고 ..너무 가슴이먹먹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너무 나는데 ..이제는 정말 우리 아이들을 편하게 보내줘야할때가 온것같습니다..가족분들 부디 마음 잘 추스리시고 슬퍼하는.국민 여러분들또한 우리 아이들 잘 갈수있도록 기도해주시고.,평생 가슴속에서 우리 아이들 잊지않겠습니다.세월호 피해자분들의 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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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캐나다온지 한달이 조금 지나서 오전 아니면 학교갔다와서인거 같아요 핸드폰으로 네이버를 들어갔는데 큰 여객선이 문제가있다는 기사를 보고 아이고 어떡해 이랬는데 조금 있다가 모두 다 안전하게 구조되었다고 기사가 떳더라구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갑자기 실종자도 뜨고 뉴스 속보뜨고 얼마나 놀랬는지...저랑 같은 또래의 친구들의 나이거든요 캐나다에 있어서 친구들이 수학여행가는거 부러워했었는데 그렇게 즐거워야하고 기대되야하는 수학여행에 이런일이 벌어져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또 그 시간에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대체 무엇을했는지 정말 떳떳이 말해줬으면 좋겠네요.. 뭐가 숨기는게 있어서 이렇게 얘기를 안하는지... 저도 기억하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을 못 할 수 있나 싶기도하고... 마지막 실종자분들까지 다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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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하는전철에서 처음 소식을 접햇어요 ..저는 그날아침 분명 기억합니다 ..날씨가 매우 흐렷습니다. 마음속으로 날씨가 밝아 지길 기도 햇엇습니다 .. 오후에 지쳐서 전철안에서 계속 뉴스를 봤습니다. 분명 처음 구조가 다 되엇다고 해서 안심할찰라 그게 오보엿다는게 나올때 쯤이였습니다 .. 그때부터 세월호 방송이 다 나올때쯤 배가 침몰되어가구 구조대가 오는데 왜.. 구조대가 저렇게 조금 올수 있나? 아니 저렇게 큰 배이고 많은 사람들과 학생들이 있는데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엇나? 하는생각으로 전철애서 내려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제가 아침에 날을 밝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서 이런일이 생긴것 같구 너무 미안함 마음이 들엇기 때문입니다.. 그후 과제를 하면서 계속 보구 있었는데 배는 잠겼구 그이후 배를 들어 올릴수 없다는 말에 우리 나라가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에 짜증이 났고 창피 했습니다.. 그 이후에 물안에 들가서 구조작업 했었을때도 왜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내지 못하나 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엇던 제가 너무 짜증났습니다. 저는 이날을 아직도 잊을수 없습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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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국땅 멀리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부모님들, 유가족을에게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아무것도 할수없어서.. 이 먼 미국땅에서 그저 화면으로만 바라볼수 밖게 없어서.. 너무나 미안하고 어린나이에 차가운 바다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아직도 이글을 쓰고있는동안 손이 떨립니다.. 기억합니다.. 2014년 4월 16일.. Remember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