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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제 일도 깜빡 낌빡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다.포항친구랑 안부통화중에 스마트폰을 만지락 거렸는데 카카오스토리 친구의 게시글에 배가 기울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리모컨으로 티비를 켜니 배가 절반이 넘어가는게 보였지만 금새 복구 될거라 여기며 통화에만 열중했었다.통화를 끊고나니 졸음이 와 그대로 누워버렸다 눈 좀 붙이고 일어나 보니 배가 완전 침몰되고 조금만보였다 너무나 충격이었다왜 배를 가라앉히지?? 우리나라가 이것밖에 않되나? 나라의 무능함에 실망과 불안감에 눈물이 났었다 선장이 팬티만 입고 탈출하는 장면이 티비화면에 자주 비춰졌고. 그때부터 몇 날을 밤 낮으로 울며 생활했었다 저 배속에서 어린애들이 죽어갈때 난 편하게 오전잠을 잤었다는게 아직도 내자신이 용서가 안 되고 그날 일들은 몸속에 새겨진 영원히 지워 지지않을 문신으로 남아있는데... ***왜 기억을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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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12시에 가게 나와서 TV 켰는데 속보 계속뜨면서 진도 병풍도 앞바다라면서 밥도 먹는둥 마는둥 TV 만 보면서 눈물 흘린날어찌 그날이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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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동료들과 제주도가던 여객선에 사고가 났다고 웅성대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구조현황 봐야겠다고 TV맨 앞자리를 꿰차고 마음 조리면서 보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전원 구조라 보도가 떳지만 선체가 기울도록 나온 사람수가 적어서 이상하네 갸웃거리면서 의아해 하던 그날. 그날 함께한 사람들과 그때 먹었던 음식까지도 기억이 또렷이 납니다. 성신여대쪽에 있던 새로 생긴 부대찌개식당에서 회사동료들과 신장개업이니 손님이 적어 한산하다며 나누었던 잡담도 기억합니다. 점심을 함께하며 구조자가 무탈하게 생환하길 기원한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아직도 머리속에서 잊어지지 않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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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있었는데 사고난거 전해듣고 일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티비랑 기사확인하고 친구들이랑 걱정된다고 카톡했던거 기억나요. 세월호 인양 하루빨리 되서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세월호 인양과 7시간 규명이 제가 촛불집회 나가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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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은 내 생애 가장 충격적인날이라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는 저는 9시 출근하여영아들을 보육하던중 그 날은 안잔교육이 있는 날이라서 대형티브로 영상을 준비하던중 뉴스 속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처음에는 ""전원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다 생각하고 뉴스속보를 관심있게 보던중 계속 속보는 구조인원이 달라지고 사망인원이 늘어감에 무척 이나 가슴 졸이며 동료교사들과 많이울었습니다4세 밖에 안된 우리반 아이들도 언니 오빠들이 불쌍하다며 유는 친구들이 있어 꼭 안아 달래주기도 했습니다그날은 잊을수 없습니다그리하여 전 오늘도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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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등원해 놓고 설거지하면서 뉴스를 봤어요. 인터넷뉴스 읽다보니 티비 뉴스로만은 답답해서 처음으로 온갖 뉴스어플까지 깔아서 봤던 기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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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 바빠진 그날...짬을 내어 이른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믿기지않았고 충격이 너무 커 밥한술 못뜨고 나와 종일 휴대폰으로 뉴스만 보았었네요....다들 그랬을 겁니다. 일도 못하고..잠도 들기힘들고.,많은 날들을 하루 종일 먹먹하게 지냈다는 것을 압니다..노란리본을 나눔하며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잊지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절대..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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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그러니까 2014년 4월 16일 오전에무심코 틀어 논 TV 에서 배가....큰 여객선이침몰 하는걸 보고 , 설마 달나라도 가는 요즘세상에 배안에 있는 사람들을 못 구학겠어? 더군다나 다 어린 학생인데 행동도 재빠르니탈출하라는 말만 하면 다 뛰쳐나올거야라며 내심 걱정스러운 맘 으로 하루종일 TV앞에 앉아 있었다.그런데......그 날의 그 참담한 상황에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그 상황에우리 꽃같은 아이들이 사라졌다.절대 잊혀질수 없는 그날...평생 온 국민의 트라우마로 남을 그 날의 진실을 꼭 밝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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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안좋아 요양차 시골집에있는데 그날새벽 태어나서 제일 안좋안 꿈을 꾸고 일어났지만 아팠던 몸이추스려지며 기분은 나쁘지않았습니다. 걸어서 팽복항 바로옆까제 운동갔다가 오는데 우리집위로 헬기가 한대두대세대네대 7대까지 날아가는걸 희한하게 바라봤었죠. 집에가 티비를 트니. 전원구조라서 안심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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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날 아침에 속보로 tv를 봤습니다.제기억으로는 오전 8~9시입니다그리고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있다는 소식을 들었죠..그전에 오보가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는것을배의 사진만 보아도 알수 있었어요점심때 약속을 위해 전철을 타고 가면서도계속 다음뉴스를 체크했죠분명 첫페이지의 속보는 계속 되었습니다.밝혀질줄 알았어요.최순실 사태이후 모든것이 드러나면서전 그날 온국민이 충격이었던 그날점심도 아닌 저녁 5시에 나타난 이유가 곧 밝혀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보고를 공지사항처럼 받고,아무런 응답도 없던 대통령은아직도 그날 5시 전까지 무얼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대답이 없는 집에서의 업무는 포장입니다.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져야이정부의 최악의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의최대의 악행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세월호는 너무나 아픈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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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로 늦게 알았다가 걱정과 우려로 일이 안되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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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유학을 하려 4월초에 지구 반대편 캐나다로 왔습니다. 시차적응이 될무렵 한국에서 큰 사고가 났다고 첨엔 구조소식에 다행이다.. 안심하고 나름 개인적인 일들을 하며 지내다가 모두 허위였고 정부의 무능함을 보며 분노가 끓어 올랐습니다. 마음 한편으론 애도하고 아직도 진상규명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박근혜정부가 개인사욕을 체우기 위해 생명의 소중함을 잊게 만들려 노력하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먼땅에서라도 세월호가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씀드리며. 저도 아이들 가슴에 같이 품겠습니다. 절대 다시는 이런 참극 벌어지지 않게 한 국민으로서 끝까지 기억할 겁니다. 힘내세요. 진실이 밣혀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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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르지 않았던 2014년 4월 16일,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TV를 보았다. 그런데 TV 상단에 생존자수와 사망자 수, 실종자 수가 나와있었고, 그 순단 온 몸이 굳어졌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장이 학생들을 버리고 도망쳤고, 대통령은 사건당일 머리손질하느라 바빴다는 것을 알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들은 인간도 아닌 것 같다. 국민의 생명권보장을 하지 않았다니 말이다.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의 선장과는 정반대닌것 같다. 나는 요즘도 촛불집회에 다니면서 세월호 리본을 만들고, 세월호 사진들을 보먀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달아 놓으면서 잊지 않을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도서관에 있는 세월호 관련 책들을 보며 나는 그 때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언제쯤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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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준비중이던 저는 외할머니께서 1주일전쯤 목욕탕에서 미끄러지셔서 수술후 입원중이셔서 병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 습니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저 뿐이어서 제가 주로 외할머니 간병을 맡았지요. 저에건 그날이 평범한 날이 아니라서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런 엄청난 뉴스를 보고 듣던 그 시간에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는게 정상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태어나서 그런 큰배가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걸 본건 처음이라서 너무 이상하고 충격적이었던 게 생각납니다. 뉴스에 연일 보도되고 있던 생경한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가슴아픈 역사ㅠㅠ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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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으로 바로 달려 갔습니다. 며칠을 그곳에서 sns를 통해 현장 소식을 전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했었어요. 그렇기에 현장의 답답한 모습도 다 목격 하였고, 유가족 분들의 가슴 아픈 모습도.. 물에 젖어 구급차에 옮겨지는 아이들까지 모두 보았습니다.그래서 더욱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 사회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세월호.. 마음에서 행동으로 오래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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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한가로이, 게임을 할때에네이버에 실검 "세월호"가 올라오고.또. 티비를 틀어, 뉴스에도세월호 사건 언급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중. ]왼쪽 상단엔.[사망자 0명 ][ 생존자 400명. ][ 실종자 0명. ]이라는 숫자가 보였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안심하였는데.시간이 갈수록.숫자가 하나씩 줄어들면서,또 하나씩 올라가고.유가족들 오열하는거,참으로 괴로운거, 자식을 잃은부모의 슬픔은 절대로타인은 느끼지 못합니다,하루마다, 매일 매일.뉴스를 틀어.세월호 뉴스를 찾아서 확인하며.불쌍해서, 눈물도 흘렸습니다.마음도 아프고.가슴도 아프고.오랜시간이 지난 후.세월호가 뉴스속에서 사라지고,잊혀질때에.저는. 2014년 4월 16일을아직도 잊지 못합니다.티비로 보이는,화장터.그 안에서 울고있는유가족들, 또. 생존자들.오늘날까지.계속해서, 저는 세월호를잊지 않고 있습니다.1달에 3번씩은.유튜브에 세월호를 찾아.기사를 보고, 영상을 보며.볼때마다 눈물이 납니다.3년이나 지났네요,3년 전.저도 18살이였는데,어느새. 21살이 되어있습니다그 당시.이런 사고가 없었더라면,나랑 같은 나이대일텐데.얘들아.박근혜 정부의 탄핵이 이루어졌고.이제는 세월호의 진실 규명만이남았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겠지?매일마다.친구들과 어울려.노래방도 가고,당구도 치고.커플들은 데이트도 하고,살면서 못 했던거 모두 해봐야될텐데.전 세계는.너희들을 평생 잊지 않고있어.얼른. 다시 태어나서이제는 추운 바다말고,따뜻한 집안에서,가족들이랑 편히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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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이었던 전 그날 교양수업 을 듣고 있었어요.교양수업이라 몰래몰래 핸드폰하며 시간을 축내고 있었는데 사고소식이 네이버 메인에 속보로 뜨더군요.곧 전원 무사히 구조됐다는 속보도 올라왔습니다.안심하고 잠깐 졸았던 것 같아요.한시간이 지나서 바로 이어지는 다음 교양수업을 위해 강의실을 옮겼고 그 곳에서 세월호 사고로 웅성웅성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자리에 앉아 네이버 메인을 눌렀는데 전원구조는 오보라며 실종자 수가 시시각각 올라오더군요.그 뒤로도 실종자 수는 여러번 번복되었습니다.시험기간이라 시험공부를 해야하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를 않았어요. 사고 그날 누군가라도 배에서 구조되길 간절히 바라며 밤새도록 속보를 틀어놓고 가만히 보고있었어요.시험기간이라 펴놓은 책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요. 결국 꼴딱 밤을 샐 수 밖에 없었구요. 그 날 아무도 추가로 구조되지 못했습니다.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는데.. 세월호는 아직도 3년전 그 날에 머물러있네요.하늘로 간 아이들이 부디 그 곳에서는 이 곳에서의 마지막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요.자신을 구조해줄거라는 믿음으로 가만히 안에서 기다렸던 그 억울한 많은 사람들이 별이 되어 그 곳에서는 너무나도 행복한 새로운 삶을 시작했기를..이 곳에서 유가족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얼마나 힘들어하시는지는 부디 모르고 있기를..세월호가 이제서야 멈춘 시계를 다시 돌려 수면 위러 올라옵니다. 유가족들분들이 이제라도 맘편히 지내실 수 있게, 그 동안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꼭 진실이 밝혀질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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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시 대학교2학년이었던 저는 12시수업을 듣기위해 오전에 기상을했고 평소와 같이 티비를 켰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배가 침몰하는 영상이 나와 이게뭐지..? 싶었죠. 옷을 갈아입고 학교갈준비를 하면서도 다들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동기들끼리 뉴스봤냐..가슴아프다..구조중이던데 무사히 구조됐으면좋겠다 라고 얘기했던 기억이나네요. 그리고 집에와서 다시 뉴스를 보는데 참....힘없이 배가 가라앉는 영상,우는사람들, 담요를덮은 구조된 학생들이 나오는데 말할수없는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생생히 기억납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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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실감이 안나던 사건이었습니다. 실감이 날 수가 없는 일이었죠. 중학생이었던 저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이해를 할 수도, 실감도 나지 않았습니다.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선생님들도 처음엔 그냥 "사고"가 생겼다고 말씀하셨죠. 선생님들도 이렇게 큰 비극으로 이어질 줄은 생각도 못하셨을 겁니다.배가 침몰했다. 그것이 전부 일 줄 알았습니다. 사고엔 당연히 구조가 이루어질 줄 알았고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가 있을거라곤 더더욱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교 후 집에 도착했을 때는 "사고"는 "참사"가 되어있었습니다. 한순간에 수백의 숫자가 실종으로, 실종에서 사망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아 더 실감나지가 않았습니다.저에게 7시간은 그냥 말이 안되는,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그들보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어느새 그들보다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동이 트기전 깊은 바다 속에 떨고 있던 그들이 이젠 집으로 돌아길 바라며 밤을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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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더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밤이었습니다.저는 그날 당일의 상황을 너무 생생히 기억합니다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장염에 걸려 병원에가서 링거를 꽂는와중에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세월호가 뒤집혔다고 저는 그 뉴스를 보고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럴수도있지 저희 그 안일한생각이 저는 아직까지도 속상합니다 저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된것같아 속상한것같습니다.링거를 다맞고 난후 티비를 보니 전원구조되었다고 티비에서 나오고있었습니다. 그봐 그럴줄알았어 잘됬네 이러며 넘겨버렸습니다.그때 당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걸 그 작은 관심이 지금 차디찬바다에 잠들어있는 언니오빠들을 구할수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3년이 흘렀습니다 3년이 흘르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차디찬 바다속에 잠겨있던 진실과 저희는 마주하게됬습니다. 누군가가 내려가자 바로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에도 할수있었고 저희는 더 일찍 진실과 마주 할수있었을것 입니다.하지만 저는 꽁꽁 감춰졌을 진실과 이제라도 마주 할수있다는거에 대해 감사합니다.가장 힘들었을 유가족분들 그리고 아직까지도 차디찬 물속에 잠겨있을 미수습자분들의 부모님 세월호에서 구조됬던 언니,오빠분들과 언니오빠분들의 부모님께도 봄이 오기까지 많은시간이 걸렸습니다. 3년이란 기간이 참 길었던것 같습니다.이제는 진실과 마주할 순간인것 같습니다 지난3년전 무슨일이 있었는지 배후는 누구이며 처벌받을 사람은 확실히 처벌받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디어 들어난 진실과 마주하는 우리들의 마음한켠이 유난히 더 아프던 밤이었습니다. 길고 길었던 여행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셔서 편히 잠드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