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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살고 있습니다. 그날은 늦잠을 잔 탓에 뉴스를 보지 못하고 급히 학교에 갔습니다. 늘 그랬듯 쉬는시간이 되어 학교 앞 카페에 몰려가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가 와서 어깨를 툭 치며 위로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잊지 않았습니다.잊을 수가 없습니다.멀리서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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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에서 학원을 가기위해 준비하던 친구를 기다리고있었다. 할개없어서 친구집에있던 티비를틀었는데 아래자막에 뉴스속보가 떠서 곧바로 뉴스를 틀었는데 사망자가 나왔다는걸 보았다 다들 안전하게 구출될줄 알고 학원르로 갔지망 점점 사망자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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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저는 중3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오전에 전원구조 성공이란 말에 안심을 하고 집으로 하교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책상앞에 앉아서 티비를 켜놓았었는데요 세월호 뉴스만 계속 나왔습니다. 뉴스내용을 듣고 보면서 공부는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고 한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구조자분들의 인터뷰와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보는데 너무 울컥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제 짧지 않은 인생동ㅇ안 계속 기억하며 살다보니 그 꽃다운 나이도 제가 지나고 고3이 되었네요. 이젠 더이상 추위에 움추리지 말고 따뜻한 봄날의 날씨처럼 포근한 가족의 품으로 돌와주세요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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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침, 뉴스를 보던 엄마가 사고가 났다고 외쳤습니다. 배가 침몰했다고... 반쯤 잠겼던 배라 모두 무사할줄 알았고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전원구출은 오보였고 사망자가 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결국 학생들과 선생님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참사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엄마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선장과 일부만 탈출했다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탈출했다는 믿기 힘든 뉴스를 접하고 또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믿기힘든 뉴스들로 우울한 4월이 3년째 지속됩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해도 아픈데 유가족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잊으라고 악을쓰는 입과 펜을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처벌받는 그 날까지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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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봄 울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버스로 작업현장으로이동하며 늘 보던 바다가 그날은 언제 더 파도가 거세 보였다. 그때 동료 중 한명이 진도 앞 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고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라고....모두들 웅성였지만 곧 구조가 될 거라는생각에 생계가 걸린 작업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날 퇴근 후부터 일어난 국가라는 조직의 행태는 실로 분노를 일으켰다.그 후 내 마음속엔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세월호 이야기만 뉴스만 나와도 눈 앞이 흐려지고 가슴이 먹먹해 온다. 2명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니 그 어린 생명들이 국가에 의해 차가운 바다 속에서 ...부모가 아니더라도 친척이 아니더라도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고푸르고 푸른 동해의 바닷물이 깊고 깊은동해의 바다 속이...아직도 그날의 바다는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의 자책감 때문에 찾아뵙지 못했지만 용기내어 3주기 추모행사에 다녀왔다. 그때 그 바다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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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저의 휴가신고하는당일이었습니다.신병위로휴가를뺀 진짜 첫번째휴가날. 기쁜마음으로 나왔지만 급히 뉴스를보고 깜짝놀랐습니다. 더군다나 집앞이 바로 단원고였었기때문에..진짜 놀랐죠..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보고 다행이구나 했지만 오보였다니.. 너무나 화가났습니다 두번죽이는구나 아주 나라가 미쳐가는구나. 그주휴가는 계속 기사만보면서 보냈던기억이나네요. 친구들이랑 만나도 세월호이야기만 했었죠. 하루빨리 미수습자분들이 돌아왔으면좋겠고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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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마지막 밤.믿기지 않는 소식에 치를 떨었습니다.그 후 제주도 여행을 얼마전 하던 중, 박근혜가 구속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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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아침에 출근하며 배가 침몰중이라는 뉴스를 보며 출근하였습니다. 물론 구조중이라는 뉴스도 보았고요. 별일 아니겠지 하며 출근했고 그 후 몇시간은 업무로 매우 바쁜 시간이었기에 사실 업무 하던 기억만 있습니다.그 당시 저희 회사에 탕비실에 테레비전이 있는데, 게임회사이다 보니 정기점검 시간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중간에 탕비실에서 테레비젼을 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9시 반정도 10시 사이 정도 였을 겁니다.그 당시 지금은 퇴사하신 과거 팀장님과 그때 겨우 머리 부분만 떠 올라 있는 배 모습을 보며 저거 어쩌나, 빨리 건져내야 하는데 안그러면 다 죽겠다며 걱정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정말 침몰하지 않았어야 할, 충분히 구조가 가능했을 배입니다. 그때 누군가가 제대로 지시만 하고 국정만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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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골프장에서 일을 했는데 마침 아침 출근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스마트폰으로 네이버에 접속했는데 검색어가 심상치 않아서 와이티엔을 검색해서 뉴스를 틀었고 하루종일 눈을 뗄 수 없었어요.전원구조라는 오보에 마음을 쓸어내리다가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울면서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다 첫 희생자가 나왔고 일이고 뭐고가족 친지랑 통화하며 서로 다른 내용을 아는 건 없는지 공유했죠. 많이 울었습니다.울고 또 울고 목이 쉬고 눈이 안떠질만큼 죽도록 울었어요. 그러다 박근혜가 중대본에 나와서헛소리를 했죠.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그날의 날씨와 내가 입은 옷까지 선명해요.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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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미안하고 미안합니다작년 4월16일에 제가 살던곳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못한 분들의 슬픔인걸 알기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았어요이제라도 모두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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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근무. 아침퇴근하고 집에 누웠습니다.잠들면서 기사를 접하고 처음 전원구조 소식에다행이다고 잠들었었는데....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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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나왔죠. 하지만, 모두 구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다행이네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취업때문에 교육을 받으러 갔었죠. 그리고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걸 알고 말이 안나왔습니다. 더 황당한건 세월호가 침몰되어 넘어가고 있어도 정부가 한게 없다는겁니다. 진짜 무서운기억이지만, 잊지 않습니다. 아직 세월호에 미수습자분이 계시고, 세월호가 왜? 넘어갔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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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처음으로 학교에서 아는언니와 영어선생님의 대화를 통해 세월호사건을 접했다. 처음에는 세월호가 뭐지..?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영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니 할머니께서 yt* 뉴스를 틀어놓고 계셨다. 나는 쇼파에 앉아서 뉴스를 같이 보았다. 뉴스에는 총 인원 수 , 사망자 수, 실종자 수 가 표로 이루어져 위에 떠있었고 침몰해가는 배가 나오고 있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 언니, 오빠들이 그 배에 타있다는 정보도 알게되었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 가방을 정리하면서 울었다. 정말 나도 뜬금없이 울었던것 같다. 나중에 울고나서 티비를 보니 사망인원 수만 늘어갈뿐 생존자는 희박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느꼈고 그 당시 나는 5학년이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고, 매년 나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비난을 받고 있는 세월호 사건은 영원히 기억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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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염을 걸리는 바람에 외출증을 끊고, 학교 근처에 있는 병원 안이었어요. 아마도, 그 기사는 학교에서 제가 제일 먼저 봤을 수도 있겠네요.학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병원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던 생각이 납니다.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어요.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날씨가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그 날씨 좋은 날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잊을 수가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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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29일 남은 고3 학생입니다. 문득 제가 이 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놨다는 것이 기억나서 들어와 봤네요. 저는 오늘 참회록을 쓰려고 본명을 적었습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단원고 희생자분들보다 제가 한 살 더 많아졌어요. 10대의 마지막생활을 보내면서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들을 경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참. 답답하네요. 이 페이지에서 글을 3번 정도 쓴 것 같습니다. 사라져 버린 7시간, 아니 7시간 30분을 되찾기 위해 국민들은 많은 노력을 하였고, 또 기억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마음 속으로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왜 윤동주 시인이 그토록 부끄러워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저는 윤동주 시인보다 더 부끄러워 해야합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만 외쳐서 죄송합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어딘가에 있을 단원고 희생자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저를 용서하지 말라고. 저는 오늘 여기 참회록을 쓰며 항상 반성할 것 입니다. 소극적이었던 저의 태도를. 그리고 이 글을 항상 기억하며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7시간 30분, 제가 1초라는 작은 시간이라도 되찾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는, 저는, 2014년 4월 16일 그 날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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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음악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가니깐 담임 선생님이 배가 가라앉았다고 말하셨떤게 기억이 난다. 처음엔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몰랐는데 곧 나오는 뉴스를 보니까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였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면서 무사히 구출되길 바랬던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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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수학여행을 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서 교실 여기저기서 수학여행 때의 이야기가 오고가던 때였다. 2교시 문학시간에 문학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너희랑 동갑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났다더라, 근데 다 구조가 됐다더라 하시면서 기사를 보여주셨다. 우리는 다행이다, 하면서 넘겼다. 학원에 갔다가 어둑해진 밤에 집에 왔는데 부모님께서 초조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그러셨다. 다 구조가 됐다던데? 하면서 텔레비전을 봤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아니었다. 오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때 그 문학시간을, 그리고 밤에 와서 본 텔레비전 뉴스를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잊을 수 없는데 어떻게 그 날을 윗 사람들은 다 잊어버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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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저는 육군훈련소 입소대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입대한 지 이틀이 됐을 때, 아침에 지휘통제실로부터 방송이 나오더군요. "훈련병들 중에 안산 출신 학생" 또는 "단원고등학교 출신 학생" 이 있거나 "잠수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면 지휘통제실로 와보라고.. 왜 특정 학교와 지역 그리고 육군에서 이런 자격증을 찾고있는지 그 때 저는 몰랐습니다.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입소대대에 있다 연대로 넘어가면서 처음 맞은 주일날에 그 진실을 알게되었죠. 연무대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틀어주신 영상에서 그 참혹한 실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에 많은 학생들이 갇혀있다고.. 실종자를 수색중에 있다는 말을 듣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슬픔에 잠겼고, 소식을 전하던 기자와 아나운서는 속에 쌓여가는 눈물을 흘리며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써 할 수 있는게 없어 마음이 쓰였고 괴로웠습니다.. 할 수 있는것이 기도였고,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죠... 하나님, 이 아이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더 이상 슬픔이 이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한 줄기의 빛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어둠 뿐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7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난 대통령. 사태 파악을 전혀 모른 채 국민들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대통령의 태도에서 실망을 감출 수 없었고 , 세월호에 얽힌 비리들이 줄줄이 터지며학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어른들의 이기심에 분노했으며 전역 이후에 인양이 되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며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겨가려는 503정부의 태도에서 암울함을 봤습니다. 결국 국민들은 빛으로 그 어둠과 맞서 싸웠습니다.. 어둠에 갇혀 방치되었던 그 아팠던 기억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어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했습니다. 국민들이 든 진실이란 빛은 아픔과 절망을 비추어냈습니다.. 그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10년이 지나도 후손들이 기억해야할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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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이었을때, 수학시간에 수업 대신에 영화를 보려는 중이었습니다. 영화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 짤막한 여객선 사고에 관한 뉴스 제목을 봤지만 별일 아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이 끝나고 보니 우리의 수많은 친구들이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뉴스 제목을 보고도 별 생각하지않고 지나쳤던게, 그들이 고통에 잠겨있을때 교실에 앉아 영화를 보면서 웃었던게 너무 미안합니다. 저는 그 때 그 기억 절대 잊지 못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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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2교시 수학 시간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서해안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뉴스를 봤다." 언제 보았냐는 질문에 방금 교무실에서 보고 내려오던 참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알아서 잘 해결될테니 공부나 하자고 하셨다. 그 이후로 들어오는 선생님들께 우리 반은 모두 배에 대해 질문했고,몇 명은 구했고 몇 명은 아직 못 찾았다고 답 하셨고, 집에 가서 뉴스를 확인할 때 까지도 실종자 수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한동안 같은 뉴스 같은 장면만 반복되었고, 부모님은 실종자 유가족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훌쩍거리셨다.한창 즐거울 때, 행복할 때, 똑같이 사고가 났어도 모두 살아서 우리가 예전에 그랬지 하면서 웃을 수 있었을텐데, 영원토록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