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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해병1183기로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있었고, 처음으로 돌격머리로 이발하는데 갑자기 뉴스틀어주고....그당시엔 외부소식이 완전단절된때라 가벼운사고인줄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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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그날, 제가 뭘 하고있었는지조차 기억이안날만큼 시간이 오래..많이도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날7시간의 가슴아팠던....사건을 뉴스로 보면서 내 가족일처럼 눈물을수없이 흘리면서 생존자들이 한명이라도 늘어나길 ..간절히 ..누구보다 간절히 빌었습니다.허나 늘어나는건 사망자수뿐이였고...도대체 그런 사건이 왜 일어나야만 했던건지 하늘이 원망스럽고 분통하고 ..너무 가슴이먹먹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너무 나는데 ..이제는 정말 우리 아이들을 편하게 보내줘야할때가 온것같습니다..가족분들 부디 마음 잘 추스리시고 슬퍼하는.국민 여러분들또한 우리 아이들 잘 갈수있도록 기도해주시고.,평생 가슴속에서 우리 아이들 잊지않겠습니다.세월호 피해자분들의 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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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캐나다온지 한달이 조금 지나서 오전 아니면 학교갔다와서인거 같아요 핸드폰으로 네이버를 들어갔는데 큰 여객선이 문제가있다는 기사를 보고 아이고 어떡해 이랬는데 조금 있다가 모두 다 안전하게 구조되었다고 기사가 떳더라구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갑자기 실종자도 뜨고 뉴스 속보뜨고 얼마나 놀랬는지...저랑 같은 또래의 친구들의 나이거든요 캐나다에 있어서 친구들이 수학여행가는거 부러워했었는데 그렇게 즐거워야하고 기대되야하는 수학여행에 이런일이 벌어져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또 그 시간에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대체 무엇을했는지 정말 떳떳이 말해줬으면 좋겠네요.. 뭐가 숨기는게 있어서 이렇게 얘기를 안하는지... 저도 기억하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을 못 할 수 있나 싶기도하고... 마지막 실종자분들까지 다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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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하는전철에서 처음 소식을 접햇어요 ..저는 그날아침 분명 기억합니다 ..날씨가 매우 흐렷습니다. 마음속으로 날씨가 밝아 지길 기도 햇엇습니다 .. 오후에 지쳐서 전철안에서 계속 뉴스를 봤습니다. 분명 처음 구조가 다 되엇다고 해서 안심할찰라 그게 오보엿다는게 나올때 쯤이였습니다 .. 그때부터 세월호 방송이 다 나올때쯤 배가 침몰되어가구 구조대가 오는데 왜.. 구조대가 저렇게 조금 올수 있나? 아니 저렇게 큰 배이고 많은 사람들과 학생들이 있는데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엇나? 하는생각으로 전철애서 내려서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제가 아침에 날을 밝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서 이런일이 생긴것 같구 너무 미안함 마음이 들엇기 때문입니다.. 그후 과제를 하면서 계속 보구 있었는데 배는 잠겼구 그이후 배를 들어 올릴수 없다는 말에 우리 나라가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에 짜증이 났고 창피 했습니다.. 그 이후에 물안에 들가서 구조작업 했었을때도 왜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내지 못하나 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엇던 제가 너무 짜증났습니다. 저는 이날을 아직도 잊을수 없습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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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국땅 멀리에서도 세월호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부모님들, 유가족을에게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아무것도 할수없어서.. 이 먼 미국땅에서 그저 화면으로만 바라볼수 밖게 없어서.. 너무나 미안하고 어린나이에 차가운 바다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아직도 이글을 쓰고있는동안 손이 떨립니다.. 기억합니다.. 2014년 4월 16일..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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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해도 목이 메고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파요.뉴스에서 소식을 접하고 sns에 많은 얘기들이 퍼졌을 때 무사히 구조되겠지 라며 했던 그때의 제 모습이 너무 죄스럽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을 때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별거아니라고 구조될거라고 생각했던 제 가 너무 바보같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는 이 현실이 원망스러울뿐입니다 진실은 꼭 밝혀질것이고 어서 빨리 9명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유가족분들 모두 힘내시고 여러분 모두 잊지않고 기억해주세요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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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때 티비 아래에 속보가 하나 떴습니다. 바다에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은 많았으니까요. 근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300명 정도 타고 있답니다. 그래서 준비하던 것을 멈추고 티비 앞에 앉아 뉴스 속보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곧 승객 전원을 구출했다는 것을 보고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알았습니다. 그게 오보였다는 걸요. 아직 학생과 일반 시민 300명이 배 안에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수업 내용이 뭐였는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고 정신 차려보니 또다시 티비 앞이었어요. 아침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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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였지만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재학중이었으며, 직접적이진 않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교실이 아닌 다른곳에서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는 쉬는시간에 알게 된 세월호 사고.... 그 직후에 들려오던 전원구조 소식과 모두 오보였다는 뉴스.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서 믿기지도 않는 맘을 추스르고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겠지, 괜찮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바라던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울다가 쓰러지는 친구, 밥을 한끼도 못넘겨 탈진하는 친구... 온통 주변은 우울로 가득찼습니다 한동안은 저 또한 매일 눈물을 흘리며 눈이 퉁퉁 부은채로 학교에 등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날이 벌써 3년이 지나 21살이 된 지금의 시점에도 여전히 세월호는 너무 아픈 기억이고 눈물이 흐르는데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합니다. 대체 뭘 그만해야하고 그들은 뭘 했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미수습자 9분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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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역사시간에 처음 들은 세월호 소식그때까지만 해도 사망자는 없던때라 ""에이 설마 죽겠어?" "당연히 전부 다 구조하겠지 뭐" 이런 생각뿐이였다. 생각했던대로 뉴스에선 전원구조라는 말이 떴다. 결국 오보였지만 이건 정말 당연한 결과이여야했다. 그러나 첫 사망자가 나오고 사망자 수가 점점 올라가고 실종자 수가 점점 줄어갈때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건지 정말 믿기지않았다. 어떻게 한명도 못 구해낼수가 있는지 우리나라가 이정도밖에 되지 않았는지 박근혜는 이 부분에서 자괴감을 느껴야한다. 하루가 갈수록 달라지는것은 없었다. 사망자수만 늘어가고 나라에 대한 믿음은 줄어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9분구조도 제대로 안했으면 시신 수습이라도 잘해야했다. 이나라는 도대체 잘하는게 뭘까?돈도 없으면서 돈으로 덮을려하고 사건에 대해선 회피만 한다. 유가족에 대한 진심있는 사과도 반성도 없다. 다 똑같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날이 잊혀지게 하는것이다. 우리는 그 목적이라도 이룰수 없게끔 그 날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혀야한다. 드디어 미루던 인양에 성공했다. 정부는 이제 더 이상 덮지말고 끝까지 밝혀야한다. 왜 잘못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는지,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않았는지, 인양은 왜 계속 미뤘는지, 모두가 알아야한다. 기다릴수없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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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사고가 낫던날, 저는 학교에 잇엇고 쉬는시간중 속보로 세월호가 사고 낫다는 소식을 들엇습니다. 그때는 사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잇엇죠. 그리고 몇시간뒤 전원구출이라고 해서 다행이네~ 하고 넘어갈려햇는데 마음에서 뭔가 찝찝하고 그런기분이 들엇습니다. 결국에 세월호가 가라앉고.. 많은 아이들과, 민간인분들, 선생님들 또한 길고 긴 여행들을 끝마치고 돌아오셧죠...정말 마음이 아팟습니다. 기적이 일어낫다면 좋앗겟다고 자는밤마다 빌고 빌엇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더군요... 지금이라도 세월호 배가 인양이 되어서... 다행입니다.부디 모든분들 하늘나라에서 잘지내시길 바라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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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그 날을 절대 잊지 않겠다 다짐 했었는데 바쁜 일상이란 핑계로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날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또 미안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REMEMBER 2014 0416 진실이 반드시 수면위로 떠오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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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싶지않은.. 그날을 조심스레 떠올려봅니다. 저는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야자가있던 저는 친구들과 석식을 먹는 중이였습니다. 한 친구가 뉴스기사를 보고 저희들에게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됐대!" 라고 전해주었고 이 말을 들은 저는 별 일 아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업데이트되는 기사들을 읽으며 거짓말인줄 알았습니다 아니 거짓말 이어야만 했습니다. . .. 사실임을 안 저는 너무 황당하고 또 너무 화가났습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채 혼자 빠져나온 선장 , 7시간의 비밀을 갖고있는 대통령 그외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많은 사람들. 모두 벌받을겁니다 반드시.유가족분들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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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러 세월호라는 배를 타고 갔다. 그런데 세월호라는 배에 있었던 선장과 그 선원들은 배에서 뛰어내리고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그리고 학생 선생님들만 빼놓고 갔다.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학생 선생님들은 그걸 모르고 어떻게해야할지모르겠다고 방황하고있다.세월호 선장과 선원들..도망가니까 기분이 좋겠습니다? 이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갔는데 말입니다.하지만 거의 3년만에 세월호 배는 빛을 보게되었습니다. 세월호에 탔던 모든 분들이 조금이나마 빛을 바라보게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그리고 이걸 이제 기억속에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이있지만 저는 이 사건을 계속 생각하겠습니다. 정말 국민으로써 죄송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세월호라는 배에 있던 사람들 학생 선생님들 추웠던 3년이라는 기간에 이제는 따뜻하게 지내시고 하늘나라에 가서 좋은 것들로만 보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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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와 제친구들은 중학교 2학년 이었고 저희는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을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전날 충분히 잠을 자서 그런지 집가는 버스 내내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심심해하며 버스내의 티비를 보게 되었습니다.2년전이라 그런지 제대로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학여행가는 배 침몰했지만 전원구조 되었다 이런내용이었습니다 저와 제친구들은 전원 구조되서 다행이라고 그래도 나중에 저것도 추억일것같다며 그런 농담아닌 농담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왜 대체 그런말했을까 철없구나 생각없구나 하는 생각만 떠오릅니다. 전원구조라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소식은 잘못된것이라고 들려왔습니다 실종자의 수는 점점 늘어나갔어요그리고 결국 2017년 3월 아직까지 미수습자 9분이 남았습니다. 말도안되게 많은 18살의 피지못한 꽃들과 그 꽃들을 피우기 위해 지도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가족단위의 희생자들 , 제가 기억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다른 세월호의 희생자여러분 3년이 지난 이제서야 여러분의 생에 마지막 장소였던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던 세월호가 인양되었고요 한분이라도 더 구조할수 있었던 그 7시간의 책임자가 구속되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여러분 진실은 이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떤말로도 그 비극에대해 위로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여러분 뒤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습니다 남은 진실 또한 하루빨리 밝혀지길 빌어요하늘나라로 간 언니오빠들 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제가 18살이 되었어요 거긴 어때요? 언니오빠들이 왜 죽어야했는지 왜 물속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되어야 했는지 아직 우린 알지 못했어요 누구의 책임인지 침몰한 원인은 무엇인지요..하지만 이제서야 한걸음 다가간것 같아요여러분의 시간은 18살에 멈춰버렸지만 진실의 시계는 이제 돌아가고있어요세월호 희생자여러분 하늘에서는 편히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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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된, 해프닝으로 지나갈 사고인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자는 도통 늘지 않았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7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나는 비오는 4월 16일이 다가올 때면 꾸역꾸역 올라오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당신은 그때 교회는 어디에 있었단 말입니까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습니다.나는 세월호 세대입니다. 이날의 무기력함을 나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날의 고통을 내 몸에 새겨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에 떳떳하게 마주하는 세상을 꿈꿀 겁니다. 정의가 강 같이 공의가 물 같이 흐르는 세상을 꿈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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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았던 일상, 등교한지 얼마되지 않아 발생했던 세월호 사건.. 우리는 곧 구조될거라 생각하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쯤 모두 구조 되었다는 속보에 안심하였다. 그때 부터 난 대한민국의 언론은 믿지 않았고, 고발뉴스 등의 언론만 믿게 되었다.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났다. 대한민국의 구조체계는 과거, 백화점이 무너졌을때나 다리가 붕괴되었을때와 다르지 않았다. 중2의 나는 인터넷을 뒤져서 실시간 해역방송만 찾았고, 유가족들을 보며 너무나도 울었고, 그곳엔 나와 함께 커뮤니티를 했던 형이 있었고,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미치는듯 했다..그 후 당연스럽게 대한민국은 침울했고 모든 수학여행등이 취소 되었다. 나와 친구들은 분향소를 다녀왔고, 수학여행의 짜증을 부렸던 친구들과는 달리 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좌절할 틈이없이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변분들의 만류에도 노란리본을 준비했고, 그들은 나의모습에 변화했다.다시 생각해보니 2014년은 정말 침울하게 지냈다. 너무 미안했던 내마음에 그땐 안산근처로 갈생각도 못했고.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으면 울곤했으니.. 그후 햇수로만 3년동안 난 성장했고 당시의 형,누나들과 동갑이 되었다. 그 선배들과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에서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으리라.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세월호가 인양되는 이 시기에 노란리본을 만들고, 촛불시민혁명에 참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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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점심때쯤 출근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느긋하게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근을 했는데 직장 동료분이 사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도 타고 있던 배라서 다들 무사히 구조되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죠. 전원구출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리 큰 일 일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저녁이 되고 나서야 그게 오보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생존자가 제발 1명이라도 구조되길 바라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누군가의 시간은 그 이후로 계속 멈춰있었겠지요. 진실은 절대 멈추지 않고 잊혀지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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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전역을 3월에 하고 복학준비를 하던 때입니다. 4월 16일에 아침에 뉴스를 보는데 수학여행 가던 세월호배가 기울어졌다는 소식을 봤고 이미 뉴스 속에는 구출자몇명 이렇게 표시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출자가 계속 증가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11시인가?10시쯤에 전원구출 기사가 났었고 그 후 오보기사였다고 정정되면서 사태가 심각하다는걸 알게 되엇습니다. 그 후로 세월호관련 뉴스를 집중해서 보았고 정부의 무능함을 다시 한번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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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 때와 똑같이 평범하게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근무를 하던 중 학생들이 많이 탄 배가 침몰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걱정하다가 점심쯤 대부분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외근을 다녀오니 구출 소식은 오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아직 갇혀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원하면서 뉴스를 보았지만 바라던 소식은 결국 나오지 않았습니다.가슴 아프고 안타깝고 분노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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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때 학원에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그리고 저는 학원끝나고오면 항상 티비를켜는 습관이있는데 오자마자 티비를 켰더니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그당시에는 뉴스에 모두 생존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오보라고 떠서 너무 안타깝고보는 나는너무답답하고 차라리 제가 들어가서 구해주고 싶은마음뿐이였습니다... 그날 그사건만일어나지않았다면 지금쯤 단원고학생이였던 분들은 모두 대학생활을 하고있겠죠... 제가만약 과거로 돌아갈수있다면 2014년 4월 15일에 돌아가서 그배에 탔던 모든사람들에게 그배를 타지말라고 하고싶습니다.. 4.16 잊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