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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해도 목이 메고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아파요.뉴스에서 소식을 접하고 sns에 많은 얘기들이 퍼졌을 때 무사히 구조되겠지 라며 했던 그때의 제 모습이 너무 죄스럽습니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을 때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별거아니라고 구조될거라고 생각했던 제 가 너무 바보같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는 이 현실이 원망스러울뿐입니다 진실은 꼭 밝혀질것이고 어서 빨리 9명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유가족분들 모두 힘내시고 여러분 모두 잊지않고 기억해주세요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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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때 티비 아래에 속보가 하나 떴습니다. 바다에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은 많았으니까요. 근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300명 정도 타고 있답니다. 그래서 준비하던 것을 멈추고 티비 앞에 앉아 뉴스 속보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곧 승객 전원을 구출했다는 것을 보고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알았습니다. 그게 오보였다는 걸요. 아직 학생과 일반 시민 300명이 배 안에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수업 내용이 뭐였는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고 정신 차려보니 또다시 티비 앞이었어요. 아침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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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였지만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재학중이었으며, 직접적이진 않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교실이 아닌 다른곳에서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오는 쉬는시간에 알게 된 세월호 사고.... 그 직후에 들려오던 전원구조 소식과 모두 오보였다는 뉴스.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서 믿기지도 않는 맘을 추스르고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겠지, 괜찮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바라던 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울다가 쓰러지는 친구, 밥을 한끼도 못넘겨 탈진하는 친구... 온통 주변은 우울로 가득찼습니다 한동안은 저 또한 매일 눈물을 흘리며 눈이 퉁퉁 부은채로 학교에 등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날이 벌써 3년이 지나 21살이 된 지금의 시점에도 여전히 세월호는 너무 아픈 기억이고 눈물이 흐르는데 주변에서 그만하라고 합니다. 대체 뭘 그만해야하고 그들은 뭘 했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미수습자 9분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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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역사시간에 처음 들은 세월호 소식그때까지만 해도 사망자는 없던때라 ""에이 설마 죽겠어?" "당연히 전부 다 구조하겠지 뭐" 이런 생각뿐이였다. 생각했던대로 뉴스에선 전원구조라는 말이 떴다. 결국 오보였지만 이건 정말 당연한 결과이여야했다. 그러나 첫 사망자가 나오고 사망자 수가 점점 올라가고 실종자 수가 점점 줄어갈때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건지 정말 믿기지않았다. 어떻게 한명도 못 구해낼수가 있는지 우리나라가 이정도밖에 되지 않았는지 박근혜는 이 부분에서 자괴감을 느껴야한다. 하루가 갈수록 달라지는것은 없었다. 사망자수만 늘어가고 나라에 대한 믿음은 줄어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9분구조도 제대로 안했으면 시신 수습이라도 잘해야했다. 이나라는 도대체 잘하는게 뭘까?돈도 없으면서 돈으로 덮을려하고 사건에 대해선 회피만 한다. 유가족에 대한 진심있는 사과도 반성도 없다. 다 똑같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날이 잊혀지게 하는것이다. 우리는 그 목적이라도 이룰수 없게끔 그 날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혀야한다. 드디어 미루던 인양에 성공했다. 정부는 이제 더 이상 덮지말고 끝까지 밝혀야한다. 왜 잘못없는 사람들이 죽어갔는지,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않았는지, 인양은 왜 계속 미뤘는지, 모두가 알아야한다. 기다릴수없다 이미 충분히 기다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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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사고가 낫던날, 저는 학교에 잇엇고 쉬는시간중 속보로 세월호가 사고 낫다는 소식을 들엇습니다. 그때는 사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잇엇죠. 그리고 몇시간뒤 전원구출이라고 해서 다행이네~ 하고 넘어갈려햇는데 마음에서 뭔가 찝찝하고 그런기분이 들엇습니다. 결국에 세월호가 가라앉고.. 많은 아이들과, 민간인분들, 선생님들 또한 길고 긴 여행들을 끝마치고 돌아오셧죠...정말 마음이 아팟습니다. 기적이 일어낫다면 좋앗겟다고 자는밤마다 빌고 빌엇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더군요... 지금이라도 세월호 배가 인양이 되어서... 다행입니다.부디 모든분들 하늘나라에서 잘지내시길 바라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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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그 날을 절대 잊지 않겠다 다짐 했었는데 바쁜 일상이란 핑계로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날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또 미안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REMEMBER 2014 0416 진실이 반드시 수면위로 떠오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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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싶지않은.. 그날을 조심스레 떠올려봅니다. 저는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야자가있던 저는 친구들과 석식을 먹는 중이였습니다. 한 친구가 뉴스기사를 보고 저희들에게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됐대!" 라고 전해주었고 이 말을 들은 저는 별 일 아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업데이트되는 기사들을 읽으며 거짓말인줄 알았습니다 아니 거짓말 이어야만 했습니다. . .. 사실임을 안 저는 너무 황당하고 또 너무 화가났습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채 혼자 빠져나온 선장 , 7시간의 비밀을 갖고있는 대통령 그외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많은 사람들. 모두 벌받을겁니다 반드시.유가족분들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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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러 세월호라는 배를 타고 갔다. 그런데 세월호라는 배에 있었던 선장과 그 선원들은 배에서 뛰어내리고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그리고 학생 선생님들만 빼놓고 갔다.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학생 선생님들은 그걸 모르고 어떻게해야할지모르겠다고 방황하고있다.세월호 선장과 선원들..도망가니까 기분이 좋겠습니다? 이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갔는데 말입니다.하지만 거의 3년만에 세월호 배는 빛을 보게되었습니다. 세월호에 탔던 모든 분들이 조금이나마 빛을 바라보게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그리고 이걸 이제 기억속에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이있지만 저는 이 사건을 계속 생각하겠습니다. 정말 국민으로써 죄송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세월호라는 배에 있던 사람들 학생 선생님들 추웠던 3년이라는 기간에 이제는 따뜻하게 지내시고 하늘나라에 가서 좋은 것들로만 보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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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와 제친구들은 중학교 2학년 이었고 저희는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을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전날 충분히 잠을 자서 그런지 집가는 버스 내내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심심해하며 버스내의 티비를 보게 되었습니다.2년전이라 그런지 제대로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학여행가는 배 침몰했지만 전원구조 되었다 이런내용이었습니다 저와 제친구들은 전원 구조되서 다행이라고 그래도 나중에 저것도 추억일것같다며 그런 농담아닌 농담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왜 대체 그런말했을까 철없구나 생각없구나 하는 생각만 떠오릅니다. 전원구조라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소식은 잘못된것이라고 들려왔습니다 실종자의 수는 점점 늘어나갔어요그리고 결국 2017년 3월 아직까지 미수습자 9분이 남았습니다. 말도안되게 많은 18살의 피지못한 꽃들과 그 꽃들을 피우기 위해 지도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가족단위의 희생자들 , 제가 기억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다른 세월호의 희생자여러분 3년이 지난 이제서야 여러분의 생에 마지막 장소였던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던 세월호가 인양되었고요 한분이라도 더 구조할수 있었던 그 7시간의 책임자가 구속되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여러분 진실은 이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떤말로도 그 비극에대해 위로가 되지 않으시겠지만 여러분 뒤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습니다 남은 진실 또한 하루빨리 밝혀지길 빌어요하늘나라로 간 언니오빠들 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제가 18살이 되었어요 거긴 어때요? 언니오빠들이 왜 죽어야했는지 왜 물속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되어야 했는지 아직 우린 알지 못했어요 누구의 책임인지 침몰한 원인은 무엇인지요..하지만 이제서야 한걸음 다가간것 같아요여러분의 시간은 18살에 멈춰버렸지만 진실의 시계는 이제 돌아가고있어요세월호 희생자여러분 하늘에서는 편히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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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된, 해프닝으로 지나갈 사고인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자는 도통 늘지 않았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7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나는 비오는 4월 16일이 다가올 때면 꾸역꾸역 올라오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당신은 그때 교회는 어디에 있었단 말입니까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습니다.나는 세월호 세대입니다. 이날의 무기력함을 나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날의 고통을 내 몸에 새겨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에 떳떳하게 마주하는 세상을 꿈꿀 겁니다. 정의가 강 같이 공의가 물 같이 흐르는 세상을 꿈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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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았던 일상, 등교한지 얼마되지 않아 발생했던 세월호 사건.. 우리는 곧 구조될거라 생각하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쯤 모두 구조 되었다는 속보에 안심하였다. 그때 부터 난 대한민국의 언론은 믿지 않았고, 고발뉴스 등의 언론만 믿게 되었다.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났다. 대한민국의 구조체계는 과거, 백화점이 무너졌을때나 다리가 붕괴되었을때와 다르지 않았다. 중2의 나는 인터넷을 뒤져서 실시간 해역방송만 찾았고, 유가족들을 보며 너무나도 울었고, 그곳엔 나와 함께 커뮤니티를 했던 형이 있었고,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미치는듯 했다..그 후 당연스럽게 대한민국은 침울했고 모든 수학여행등이 취소 되었다. 나와 친구들은 분향소를 다녀왔고, 수학여행의 짜증을 부렸던 친구들과는 달리 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좌절할 틈이없이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변분들의 만류에도 노란리본을 준비했고, 그들은 나의모습에 변화했다.다시 생각해보니 2014년은 정말 침울하게 지냈다. 너무 미안했던 내마음에 그땐 안산근처로 갈생각도 못했고.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으면 울곤했으니.. 그후 햇수로만 3년동안 난 성장했고 당시의 형,누나들과 동갑이 되었다. 그 선배들과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에서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으리라.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세월호가 인양되는 이 시기에 노란리본을 만들고, 촛불시민혁명에 참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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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점심때쯤 출근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느긋하게 일어나서 준비하고 출근을 했는데 직장 동료분이 사고 얘기를 해주셨어요.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도 타고 있던 배라서 다들 무사히 구조되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죠. 전원구출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리 큰 일 일거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저녁이 되고 나서야 그게 오보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생존자가 제발 1명이라도 구조되길 바라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누군가의 시간은 그 이후로 계속 멈춰있었겠지요. 진실은 절대 멈추지 않고 잊혀지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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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전역을 3월에 하고 복학준비를 하던 때입니다. 4월 16일에 아침에 뉴스를 보는데 수학여행 가던 세월호배가 기울어졌다는 소식을 봤고 이미 뉴스 속에는 구출자몇명 이렇게 표시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출자가 계속 증가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11시인가?10시쯤에 전원구출 기사가 났었고 그 후 오보기사였다고 정정되면서 사태가 심각하다는걸 알게 되엇습니다. 그 후로 세월호관련 뉴스를 집중해서 보았고 정부의 무능함을 다시 한번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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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 때와 똑같이 평범하게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근무를 하던 중 학생들이 많이 탄 배가 침몰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걱정하다가 점심쯤 대부분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외근을 다녀오니 구출 소식은 오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아직 갇혀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원하면서 뉴스를 보았지만 바라던 소식은 결국 나오지 않았습니다.가슴 아프고 안타깝고 분노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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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때 학원에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그리고 저는 학원끝나고오면 항상 티비를켜는 습관이있는데 오자마자 티비를 켰더니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그당시에는 뉴스에 모두 생존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오보라고 떠서 너무 안타깝고보는 나는너무답답하고 차라리 제가 들어가서 구해주고 싶은마음뿐이였습니다... 그날 그사건만일어나지않았다면 지금쯤 단원고학생이였던 분들은 모두 대학생활을 하고있겠죠... 제가만약 과거로 돌아갈수있다면 2014년 4월 15일에 돌아가서 그배에 탔던 모든사람들에게 그배를 타지말라고 하고싶습니다.. 4.16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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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살고 있습니다. 그날은 늦잠을 잔 탓에 뉴스를 보지 못하고 급히 학교에 갔습니다. 늘 그랬듯 쉬는시간이 되어 학교 앞 카페에 몰려가 커피를 마시는데 친구가 와서 어깨를 툭 치며 위로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잊지 않았습니다.잊을 수가 없습니다.멀리서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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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에서 학원을 가기위해 준비하던 친구를 기다리고있었다. 할개없어서 친구집에있던 티비를틀었는데 아래자막에 뉴스속보가 떠서 곧바로 뉴스를 틀었는데 사망자가 나왔다는걸 보았다 다들 안전하게 구출될줄 알고 학원르로 갔지망 점점 사망자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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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저는 중3이였습니다. 학교에서 오전에 전원구조 성공이란 말에 안심을 하고 집으로 하교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책상앞에 앉아서 티비를 켜놓았었는데요 세월호 뉴스만 계속 나왔습니다. 뉴스내용을 듣고 보면서 공부는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고 한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구조자분들의 인터뷰와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보는데 너무 울컥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제 짧지 않은 인생동ㅇ안 계속 기억하며 살다보니 그 꽃다운 나이도 제가 지나고 고3이 되었네요. 이젠 더이상 추위에 움추리지 말고 따뜻한 봄날의 날씨처럼 포근한 가족의 품으로 돌와주세요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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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침, 뉴스를 보던 엄마가 사고가 났다고 외쳤습니다. 배가 침몰했다고... 반쯤 잠겼던 배라 모두 무사할줄 알았고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전원구출은 오보였고 사망자가 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결국 학생들과 선생님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참사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엄마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선장과 일부만 탈출했다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내리고 탈출했다는 믿기 힘든 뉴스를 접하고 또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믿기힘든 뉴스들로 우울한 4월이 3년째 지속됩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해도 아픈데 유가족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잊으라고 악을쓰는 입과 펜을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처벌받는 그 날까지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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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봄 울진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버스로 작업현장으로이동하며 늘 보던 바다가 그날은 언제 더 파도가 거세 보였다. 그때 동료 중 한명이 진도 앞 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고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라고....모두들 웅성였지만 곧 구조가 될 거라는생각에 생계가 걸린 작업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날 퇴근 후부터 일어난 국가라는 조직의 행태는 실로 분노를 일으켰다.그 후 내 마음속엔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세월호 이야기만 뉴스만 나와도 눈 앞이 흐려지고 가슴이 먹먹해 온다. 2명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니 그 어린 생명들이 국가에 의해 차가운 바다 속에서 ...부모가 아니더라도 친척이 아니더라도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고푸르고 푸른 동해의 바닷물이 깊고 깊은동해의 바다 속이...아직도 그날의 바다는 눈 앞에 펼쳐진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의 자책감 때문에 찾아뵙지 못했지만 용기내어 3주기 추모행사에 다녀왔다. 그때 그 바다는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