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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햇살이 따뜻한 평일 오전이었습니다. 간만에 휴가를 나온 외항선원인 친구와 피씨방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임신한 아내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지금 제주도로 가는 여객선이 침몰중인데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배에 갖혀있대요!"게임을 하던 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어서 서둘러 접고 뉴스기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객선이 반쯤 기울어진 상태의 속보가 떴습니다. 큰일이 났구나. 아, 어떡하지!걱정스러운 마음은 들고 아무것도 손에 안잡혀서 피씨방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속보가 다시 떴습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 전원 무사히 구출.""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역시 대한민국 만세, 최고야 정말!" 하며 친구와 얼싸안고 웃었습니다. 아내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화로 공유하며 사담을 나누는 사이, 다시 속보가 보도되었습니다. "전원 구조 기사는 오보. 현재 세월호 완전히 침몰중, 대부분이 배 안에 갖힌 듯"그 어처구니없는 기사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걱정스러운듯 울먹이며 제게 말했습니다. "여보, 저 아이들 구조할 수 있을까요? 잠수부가 있으니까 그래도 구조할 수 있겠죠?"저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 이제는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할거야"아내는 제 말을 듣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임신한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왜 나는 "그래, 끝까지 가봐야 알지. 다 살릴 수 있어" 라고 대답하지 못했을까요. 당시에는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그것이 더 큰 고문일 것이라 생각해서 차라리 마음을 비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참사를 한 번 더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비극을 육감으로 느꼈습니다. 바로 천안함이라는 사건으로 말이죠. 기억합니다. 저 추운 서해바다에서 장병들이 수장되는 동안 쥐새끼의 무리들은 지하 벙커에 들어가서 안보회의랍시고 틀어박혀있었고, 국방부는 새떼다 오인사격이다 우왕좌왕만 하고 있었죠. 사년이 지난 그 날, 희대의 비극에서도 그 후속정권인 닭대가리들은 그날 일곱시간의 행적조차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아이들이 다 수장되고 나서야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왜 발견하지 못하죠?" 라는 마약취한 잠꼬대나 하고 있는것이 지금의 대통령입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행적과 그날 언론의 보도들을. 저의 아내도 기억하며 우리 가족 모두가 기억합니다. 저의 친구와 친구의 친구와 또 친구. 그리하여 국민 모두가 기억합니다. 그 비극의 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이 나지 않는 저 친일파의 후예이자 역사의 쓰레기들이 하루빨리 저 권좌에서 내려와 자신들이 진정 있어야 할 자리로 가길 바라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국민의 분노와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할 영원한, 바로 감옥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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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6시에 kbs뉴스를 보며 아침을 먹고 있는데 배가 한참 앞 바다에 떠 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그리고 출근해서 일을 하다 세월호 소식을 듣고 가슴을 졸이며 설마 우리나라 정도 되는 나라가 그 배 하나 구조 못할까 하며 일을 했습니다.오후가 되어 세월호 아이들을 많이 구조하지 못했다는 뉴스와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집에 오자마자 뉴스를 보며 배가 침몰되는 과정을 보며 애타하고 있었습니다.그 날은 하루 종일 손에일도 안잡히고 얼마나 슬픔과 원망과 어른으로 죄스러움과 우리나라의 민낯이 이 정도 밖에 안되었다는 것에 절망에 빠진 하루였습니다.그리고 중대본에 나타난 대통령을 보는 순간 저건 무슨 시튜에이션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게 뭐가 크게 잘못 되었구나. 우리나라가 정말 잘못 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날 이 후 kbs뉴스는 보지도 않으며 대통령과 그 휘하 정권에 대한 믿음이ㅇ상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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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구조됐다는 기사를보고 정말다행이라고 댓글을 달았는데얼마후 오보라고....그리곤.... 이꼬라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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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무슨 일 일어났다는데?" 유럽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로마의 한 한인민박에 체크인 할 때이다. 주인장은 인터넷 뉴스를 보고 말했다. “배가 침몰 했다나 봐." 유럽에 체류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갈 때 쯤 들은 고국의 첫 소식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정말인 듯 한국에서 들려온 비보는 먼 나라의 사건 사고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 인 듯 했다. 그땐 그렇게 무심했었다. 그날은 피렌체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로마로 이동하던 날이었다. 전날 만나 같이 여행을 보낸 친구를 떠나 보내고 다시 로마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 여비가 거의 떨어져 고속열차가 아니라 값싼 레지오날레를 타고 이동했다. 뜨거운 햇빛에 열차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렸더니 옆에 있는 아저씨가 나를 애처롭게 쳐다 봤던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의 4월 16일은 지나갔다. 일주일이 지나 귀국했을 무렵 세상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보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여행이라는 환상에서 깨기 싫어 그 일들을 무시하고 살았다. 안타까운 죽음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는 분위기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건은 잊혀질 줄로 알았다.하지만 이 참사는 끊임없이 나에게 진실과 마주할 것을 요구했다. 귀를 닫고 눈을 닫으려 해도 그 날의 거대한 사실은 내 머리 속으로 하나 둘씩 쌓여갔다. 그 덕에 참사 후 일년이나 지난 후에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지 그날의 사실을 나열한 것 만으로 눈물이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잊혀졌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남은 듯 했다. 이제야 난 그 마음을 이해하겠는데 세상은 전혀 뜻밖의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사회는 그 참사를 언급하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듯 했다. 슬픔 마저도 통제 받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리고 동생으로부터 들은 그날의 이야기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그날 몇 시간 동안 세월호가 천천히 침몰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 되었고, 그렇게 오래 방송되는 동안에도 결국 구하지 못했음을. TV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느꼈을 국민들의 좌절감과 무력감, 그리고 상실감이 뒤늦게나마 깊게 전해지는듯 했다.난 그날을 기억합니다. 사실 참사때문에 기억나는 날은 아닙니다. 하지만 난 깊이 공감합니다. 만약 기억이 안 난다면 처음의 저처럼 이 사건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그 사건을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잊을 수 있겠지요. 모른다는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거기까지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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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날을 잊을수 있을까요. 매 시간 답답하며 눈물짓던 시간. 슬퍼서 가슴이 아리던 시간. 그리고 분노의 시간. 그리고 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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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아침 느즈막히 일어나친구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들었습니다.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던 중여객선이 침몰했지만 구조 중이라는 뉴스를 자막으로 보았습니다.그리고 몇 시간 뒤...상가집에 앉아 배가 침몰 중이고 배 안에 많은 사람이 갇혀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그 순간 난 이 날을 영원히 기억하겠구나, 하는 어두운 예감이 들었습니다.그리고 슬프게도 그 예감은 사실이되었습니다.2014.4.16이후그 친구의 어머니 기일만큼은 챙기게 됩니다.전화를 하기도 하고성당에 연미사도 넣습니다.그래서인지기억은 점점 더 또렷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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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배가 침몰 어쩌구 하다가 전원구조라 하길래 그런가 보다 하면서 업무보다가 오후에 몇명구조 어쩌구 하길래 뭔일인지 갑자기 열받아 인터넷 계속 보았는데 저녁에 티비보면서 배가 서서히 침몰하는데도 해경이 멀뚤멀뚱 처다만 보고 있는 화면에 무지 열받아 밤늦도록 담배만 피다가 이후 한달 넘도록 티비만 보면 울화가 치밀어 무지 신경쓰여 밤마다 떠올리며 잠을 설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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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주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 날입니니다.여덜시에 일어나서 잠을 깨려고 tv를 보고있는데 세월호 속보 자막이 나왔고뉴스채널로 돌려 안타까운 마음으로 tv만 시청하였습니다. 만사 제쳐놓고 tv앞을 벗어날수 없었습니다. 저도 아이가 있는 부모인데 어찌 이런 아픔을 두고 볼일을 볼수 있겠습니까? 점심때쯤 전원구조라는 속보.. 좀이어 속보오보... 다시금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그런데 어찌 그날을 기억못할수 있을까요?기억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건 아닐런지요 그 어린 학생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미안하고 너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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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고3으로 학교 수업중이었습니다. 집에왔는데 갑자기 친할머니께서 전화하시곤 "배 안탔니?"하고 묻는겁니다. 너무 쌩뚱맞은 질문이라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리고 얼마 안있어 질문의 뜻을 알 수 있었죠. 그만큼 급박한 시간에. 왜.구하지.않았는지 작근혜는 답해야합니다!!! 자로님.말씀대로 강력한 제2의 특조위가.나와 기간, 권한 제한없이 모두 조사해야 진실을 밝히고 원혼들을 따나보낼수있다 생각합니다. 제 동생이 세월호 아이들과 동갑인데.벌써 대학교 2학년입니다 살아있었다면 대학생활 맘껐 누렸을텐데 귀중한 삶 빼앗은 나쁜놈들 엄벌하고 다시는 이런.비극이 반복되지않게 해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젝트에.동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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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이던 배를 부여잡고 하루종일 티비 앞에서 구조 소식 기다렸네요. 휴대폰으로는 포털 새로고침 누르며 구조 된 사람이 있나없나 그렇게 그 날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니요.... 저녁 밥은 도저히 먹지 못했었네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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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미국에 있었습니다. 잠을 자기 전 네이버 뉴스를 확인하곤 하는데, 네이버 뉴스에 "전원구조"라는 글을 보고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때 미국 동부시간 4/15/2014 저녁9 시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세월호 침몰 원인을 확인하려 네이버에 접속하니 300명 이상 실종이란 글을 읽고 제 눈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날 일을 갔더니 미국 뉴스에서 세월호 소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침몰한 배 위에 올라가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사람이 뭔가로 배를 두드리는 장면을 보곤 억장이 무너지는지 알았습니다. 그 중요한 시간에 잠수를 해서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배 위에 올라가 뭔짓을 하는지...그 날 무능한 대한민국 정부를 보고 창피하고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 날은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고 그 날을 생각하면 다시 분노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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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나도 아이들과 같은 고등학교2학년 이었어요. 학교에서 누군가가 배가 침몰했다, 그래도 전원구조! 라고 해서 다행이네..싶었어요. 그때의 저는 2G폰을 쓰고있어서 정보를 얻을길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왠걸, 점점 밀려오는 비극적인 소식에 저를 비롯한 몇몇 여학생들은 훌쩍였고, 남학생들또한 충격받았는지 조용해졌어요.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던 교실풍경.. 그리고 엄마와 몇번 문자를 주고받은뒤, 집에 와서 같이 울었어요. 어떻게 이런일이..제가 유독 세월호가 마음아픈 이유는 그 배에 제 대학 동기들이 됐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친구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고말아서에요.. 그리고 저또한 고1때 배타고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었구요.. 여러가지 감정들이 얽혀 지금의 저는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대통령님 그대의 7시간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모두가 그날만큼은, 아주 작은 기억조각이라도 기억할거에요.. 더이상 의미없는 답은 그만하시고 어서 잘못을 인정하십시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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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을 들었습니다. 점심은 교내 식당에서 친구들과 티비를 보면서 먹었구요. 여객선이 침몰했다, 전원 구조되었다, 여선생님 한 분이 사망하였다. 자막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큰일날뻔 했는데 다행이라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또 각자의 수학여행 얘기를 나누며 평소와 다름 없이 식당을 나왔습니다.3시간 정도 흘렀을까요. 시험 준비 때문에 스터디룸에서 폰도 제대로 안 보고 있다가 옆에서 친구가, 이것 좀 봐봐, 하면서 건네준 스마트폰 뉴스 페이지 속에는 여러 기사들이 줄지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전원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오보였다, 구조된 인원이 십수명에 불과하고 아직 인원도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그 날 저녁식사시간은, 그 이후로도 며칠째 계속된 다른 식사시간들과 마찬가지로,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특보를 쳐다보면서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조차 모른 상태로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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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닐거라 생각했다. 당시 난 군 복무 중이었고근무 중 뉴스 속보를 통해 참사 소식을 접했다.분명 거의 다 구조했다고 말했다.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은기다리고 있었다 가만히대기하라는 지시를 너무도착한 나머지 그들은 피어보지도못한 채 그렇게 물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무기력했던건 우리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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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저희 학교 2학년 수학여행 둘째날이었습니다. 수업이 없어서 선생님들과 같이 공문처리를 하다가 뉴스를 봤지요. 처음에는 전원 구출이라기에 다행이다 싶었는데 잠시 후 오보라고 뜨더군요. 곧 학교로 학부모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배를 타는 코스를 취소해달라는 전화도 있었고 당장 차를 타고 돌아오게 하라는 학생 삼촌이라고 밝힌 사람의 전화도 왔었고요. 그래서 학생들에서 전부 집으로 전화를 하게 하라고 담임선생님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시간은 흘러만 가고 구조소식은 없었지요. 당신은 그때 뭘 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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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술이 발전했으니까 저런 사고 나도 다 구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거짓말처럼 다음날 사고가 나서 전원 구조 오보 떴을 때도 역시 기술이 발전했다고 혼자 흐뭇했어요. 그때 지하철 역사에서 지하철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봤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오보라면서 생존자 수와 실종자 수가 카운트되기 시작했어요. 그 안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며칠 동안 에어포켓이 있네 마네 하면서 구조도 안 하던 게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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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너무나 선명한 그 날9개월 만삭의 몸으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9시까지 출근을 했습니다.바쁘게 일하다 옆자리 언니가 선박 사고가 났다며 네이버 뉴스를 보여주기에 같이 보다가 별 일 아니겠지, 하며 계속 일을 했습니다.조금 이르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사내식당 티비에서 전원 구조됐다며 속보가 뜨기에 참 다행이다 생각하며 웃고 떠들었습니다.한시간쯤 지났나, 주위가 시끌시끌 다들 얘기들을 하길래 물어보니 전원구조가 아니었다고,아직 바닷속에 아이들이 있다며.. 그래도 저희는 다들 구조 될거라 믿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배안에 공기주머니가 있어서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빨리 구조해주길 기다렸는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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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세월호 사건이 있던 8시 45분 저는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서, 지하철에 올라탔었습니다. 정확히 8시 45분 쯤이면 종로3가 언저리 쯤에 있었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 단어장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침 9시부터 시작하는 1교시 수업을 3시간 여동안 듣고, 처음 세월호 사고를 접하게 됩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배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슷한 시기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제 친구를 떠올리면서 가까스로 시간이 해결해주었던 PTSD가 다시 재발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인 오후1시부터 다시 2시간짜리 수업을 들은 이후에 학교 상담실을 찾아서 과거에 경험했던 일과 PTSD를 앓았던 사실을 이야기를 하면서 심리상담을 1시간 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속해서 뉴스를 접했고, 돌아오니 대략 오후 8시경이 었고, 그 뒤에는 일상생활을 했지만, 살아난 PTSD때문에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흘러나왔고, 계속 아파오는 머리를 싸매고 잇었던 건 확실하게 떠오릅니다. 박근혜 씨,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날은, 모든 사람들이 PTSD를 경험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당시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십시고, 진실을 밝히시기를 바랍니다.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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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2014년 4월 16일 아침 7시 30분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세월호 여객선 침몰이라는 뉴스속보를 보고 출근한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러다 단원고 학생 모두 구조 됐다는 속보가 떠서 역시 대한민국 짱이라 했는데... 나중 오버라는 기사를 보고 실망한데다 선장은 탈출했는데 배선상은 아무도 없고 차츰 가라앉는 세월호 보며 애들은 어떻게ㅠ?? 하며 컴퓨터 기사에 눈을 떼지 못한 하루였습니다. 나중 생각이지만 내가 단원고에 전화를 왜 안했는지. 애들 나와야 되지 않냐고 학교에 전화해볼걸 하고 못한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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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아침7시50분 출근길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속보는 다름 아닌 세월호가 좌초되었다는 속보와함께 출근했다.그후로 계속 손에 일이 잡히지 안아 인터넷 기사에 집중했지만 계속 우울한소식들뿐 ...저렇게 큰배가 어떻게 저렇게 될수있을까....가라않고있는 배를보며 무서움에 떨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무도움도 못주는 나한테 너무화가났습니다.너무너무미안하고 죄송합니다.이글을 적어면서도 가슴이 너무아푸네요.2014년4월16일 그날의 아픈기억을 영원히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