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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실 책상에 앉앉아 있었고 전원 구조가 됐다는 기사에 안도하며 책을 폈습니다. 1시간쯤 지난 뒤 어려운 철학용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검색페이지를 열었고 그때 아직 구조가 되지 않았다는 정정보도를 보게 되었죠. 그때부터 연구실 다른 동료들과 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실시간 중계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밥을 먹으러 나가지도 못하고 간단히 간식거리로 끼니를 떼우며... 완전히 잠긴 후에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훔치고 애를 태우며 기도 했죠.. 10시가 넘어 집으로 향하기 전까지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하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는 새벽까지 뉴스를 보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더군요. 그날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연구실을 왔다갔다 하며 우리끼리 나눈 대화며 몸짓, 동작까지 모두 또렷해요..대통령은 저보다 훨씬 더 선명한 기억을 지니고 있겠죠. 또 당연히 그래야 하구요.참모진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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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사가기 전,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집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에서 세월호 소식을 봤는데 "전원 구조"됐다고 하더군요.가슴을 쓸어내리며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판교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아이랑 종일 즐겁게 놀았습니다. 2014년 5월에 저는 무사히 제주도로 이사를 왔고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오지 못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매일 보지만 한동안 바라보는 것조차 죄스러웠습니다. 저,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어갔을 수많은 생명들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그토록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끝까지 살아남아 밝힐 것입니다. 그게 제주도에 무사히 와서 살고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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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여행을 마치고. 연도라는 섬에서 배를 타고 여수로 가기위해 아침 짐을 싸면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곧 배를 타야하기에 그 소식은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짐을 싸고 분주히 항구로 가는 동안.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며. 일행과 함께 대원사라는 절을 거쳐 집으로 오는 긴 하루였습니다돌아와보니 .... 그날 당일 그리고 몇일동안 뭔가 비현실적인 것만 같고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슬픔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눈물도. 짙어가고....우리 마음속 응어리는. 반드시 풀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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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9시조금 넘었던시간양평 에서 지인이 주사맞는 다고 따라갔다가무료함을 달래기위해 핸폰을 켰는데배가 조금 기울어졌더군요티비를 틀었더니전원구조라고 나와거기있던 사람들 다 안심하고티비끄고 다시 주사맞는데나는 계속 핸포으로 뉴스보고 있었네요전원구조에서 오보라고 나오고다시 티비를 켰는데배는 점점 기울고타이타닉에서 봤던 상황들을 연상하면서왜 탈출을 못하는걸까왜 해경들은 배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거지???참으로 안타깝고 또 절망하고~~그날일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데세월호가 대책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정말 개미오줌만큼의 희망으로아이들이 꼭 나올거란 희망으로 두손모았던 그날어찌 잊을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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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떠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ㅜㅜ그래서 외면 하려고만 했습니다.하지만 그날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날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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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한창 바쁠시기여서 정오쯤 점심식사하면서 뉴스속보를 보고 처음 사고내용을 알았습니다.. 12시쯤이었고 어느식당에서 뭘먹었는지도 엊그제 일처럼 머리에 선명합니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들었고.. 그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오보라는 속보를 들었고.. 그속보를 보던 제모습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날 저녁 자정이 넘을때까지 TV채널을 바꿔가며 구조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엊그제 일처럼 머릿속에 선명해서 언제나 그날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영화처럼 그당시 제모습과 그당시 느꼈던 제생각까지 모두 재현되어 보이는데 왜 정작 기억해야할 사람들은 망각의 시간을 보내버린건지... 믿을수가 없습니다.그들은 기억하지 않기위해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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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선생입니다.뉴스를 보고 집에서 나왔고 학원으로 갔습니다."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듣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수업이 끝났을 때... 삼백여명이 갖혀있는 뒤집어진 배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이게 우리 모두의 기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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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그 시절 저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할 때 입니다. 강의를 시작할 때 늘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곤 했었습니다.그 날도 강의를 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참 다행이라며 강의를 시작할 때 학생들과 여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것도 웃으면서요~ 다 구조되었으니 별 의미 없이 그렇게 얘기를 나누었습니다.그리고 강의가 끝난 후 다음 강의까지 시간이 남아 카페를 갔습니다. 그 후 휴대폰을 보고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경솔했는지...... 늘 뉴스는 대중을 혼란에 빠트린다는 생각에 잘 믿지 않았었는데, 왜 그 뉴스는 믿었을까... 지금도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웃으며 학생들과 얘기를 나눌 때 그 아이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그리고 그날 있었던 다른 강의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오늘 이런 실수를 했다고.....너무나 부족한 인간이라고...... 이런 나에게서 배우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 다음주 처음에 세월호 얘기를 꺼냈던 분반으로 돌아가서 그 학생들에게도 사과를 했습니다.하지만 정작 사과를 해야 할 단원고 학생들에게는 아직 사과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를 보다 이 사이트를 알고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내가 정말 미안했다고......아직도 늘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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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날 잠시 백수여서 뉴스보고 쉬던중에 속보를 듣고 계속 상황을 밴드를 통해 뉴스를 보지못하는 동창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너무 가슴 아팠던 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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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입니다..그날쉬는 수요일 버스를 타고 창원으로 이동중에 사고소식에 무척 놀랐고 전원구조소식에 기뻐하다 오보라는 소식에 하루종일 발을 동동굴리고 눈물나던 날이었지요. 저녁외식하는데 눈물이 나와 밥을 못먹었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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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에 있었어요. 오전에 부모님 심부름으로 약국에 갔었어요. 아마 12시 좀 안됐던가...점심시간 전에 갔으니까요. 약국에 tv가 있었고 세월호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배가 가라앉고 있고, 아이들이 타고 있다. 빨간색으로 속보가 계속 떴었고 전 당연히 다 구했겠지 하고 약을 사고 나와서 집으로 갔죠. 엄마한테 전화해서 애들이 타고있는 배가 사고가 났대. 다 구했겠지? 이러면서요. 그리고...저녁 때 쯤 뉴스를 봤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멍했고, 우울했고, 슬펐어요.4월 16일에 뭘 했을까...그제까지만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조여옥 대위 청문회보고 갑자기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약국을 간 건 정말 소소한 일상인데, 그 때의 풍경, 느낌...다 기억납니다.아이들이 평안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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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 이곳에 들어온순간 눈물이 먼저 말을 합니다...미안하고 부끄럽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눈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전 네명의 아이들을 키우고있는 어머니입니다.사실 그날 처음 그 소식을 접한건 오보였습니다....별일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큰배가 가라앉는다는건 가벼운일이 아니기에 계속 상황을 지켜보았죠...너무나 어이 없었습니다...제대로 된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요...해경은 뭐하지...저럴거면 도대체 경찰이 왜 필요한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어요...지금도 자료화면에서 세월호가 뒤집히는 장면 나오면 보지 않습니다...그 안에 있을 아이들이 생각나 가슴이 찢어질거 같아서...저희 사랑스런 큰딸이 그때 그 아이들이랑 동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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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학교갔다가 똥을 누면서 인터넷을 하는데 300명이 갇힌 배가 잠수함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 티비를 켰습니다. 뉴스 속보가 나오더군요. 그거 보고 학원엘 갔는데 선생님이 전원 구출됐다고 해서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짐에 와서 보니까 측덩이 잘못됐다고 하며 이직도배 안에 300명이 갇혀있다는 기사를 읽고 어이가 없어서 라면먹고 바로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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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50분에 뛰어내려으면 304명 다 죽지 않았을텐테 반에 뒤집어 있을때도 말이지매뉴얼 없어길 때문이다. 있어도 교통 위반 잘 지키지 않으면서 1초 빨리 갔으려다 먼저 저세상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장점 보다 단점이 지금처럼 둔화 되어서 선진국보다 1~10년이 뒤져저 있다. 기술력 초반 앞서다 있다가 점점 밀려있다. 원격조종 자동차 IT 강국 옛날이고 인터넷만 강국이면 뭐하나. 의학, 문화 등 노벨상 후보조차도 없는데.. 기초조차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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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신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출근하여 오전 근무를 하던중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다행히 전원 구조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이후 환자들이 기사가 오보였데요 학생들이 많이 죽었을거 같아요 라는 말에 티비를 확인하였고 실종자 사망자 수가 카운트 되고있었습니다. 전국민이 슬픔에 빠진 그 사건으로 저희병원은 며칠후 예정에 있었던 워크샵 밎 아웃팅 활동을 전부 취소하고 애도를 했습니다. 7시간 직장에 있었고 환자분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잊지않았고 지금도,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볼것입니다.절대로 절대, 단 한시도 잊지 않습니다.기억하고 기억할겁니다. 아이들을 죽인 사람이 누군지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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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둘째뱃속에 임신중이였다 7월2일날 낳았으니 4월이면 7개월쯤‥친정가게에 가서 카운터를 봤다 뉴스를 보며 전원구조래서 다행이다했다거래처아저씨들이 물건넣으며 라디오들으며 왔는데 어떻게됐냐고 난다행이다라고 했고 나중에 보니 거짓이였다어떻하냐고 아이들,사람들 어떻하냐고말도안된다고 울었던기억이 난다난그날 검정색 무릎까지내려오는 옷을 입고있었다난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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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 정신없이 장사하던 시기 그래서 관심을 가질수 없었던...그러나 지금 이순간까지 아이들을 생각하면 결코 잊어선 안됩니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고 처벌하고 용서해선 안됩니다그 어느 누구도 ..목적을 가지고 이런 참극을 저지른 자나.. 그리고 우리들도 다 죄인이고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어른들 모두가 죄인입니다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낼수 없습니다 꼭 밝혀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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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티비를 보다가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고를 접했고 바로 YTN을 틀었던 기억~상상할 수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계속 시간은 가는데 구조가 안되는 안타까운 상황들~배안의 유리창 너머로 밝은 황색 구명 조끼를 입은 아이들의 안타까운 손짓들~아무것도 진전 되지 않는 상황들~그리고 아무 것도 할수 없었던 나의 상태~9시 뉴스에서는 이젠 배의 밑바닥 도 보이지 않았고 풍선만 띄어 논 검은 바다의 그날~이민가고 싶다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슬픔과 분노를 넘어~내가 이나라에 살고 있다는 현실과 자괴감~2014년 4월 16일 ~온통 머리는 멘붕 상태의 그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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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인터넷과 뉴스를 켜놓고 온 신경과 촉각을 곤두세우며 세월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배가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온갖 말들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왔지만 내가 간절히 바랬던"아이들을 구조했습니다."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부모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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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모친상 소식에 그 쪽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세월호 침몰 소식을 그리고 전원 구조 소식을 내보내던 시간. 그러다가 아직 나오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는 소식이 전해졌고요. 택시로 장례식장을 이동하는 내내 라디오에서는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저보다 서른 살 정도 많은 분의 어머니. 치매를 오래 앓으셨던 분. 그래도 상주는 슬프게도 울었어요. 괜찮다가 울다가 했어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저 배에 탄 사람들을 구조해야 할텐데. 구조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도 했지요. 그렇게 그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