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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 한창 티비에서는 세월호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곧 뉴스에서 전원 구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서 안심했는데 그것은 거짓된 정보였다..사고를 처음 들었을 때 당시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내 또래의 학생들이 저렇게 큰일을 당하다니...사고 당일까지만 해도 모두 구출될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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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오전 가벼운 피부염 때문에 회사 근처 병원에 갔습니다. 진료 대기하고 있을 때 TV에서 침몰 소식을 들었어요. 그리고 분명히 봤습니다. "전원 구조 되었다"고.안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일을 하고 저녁엔 강남역에서 지인들을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술집에 있던 TV에서 구조 중이라고 나오더군요.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구조 되겠지? 다 무사했으면 좋겠다"라고 가볍게 얘기하며 밀린 수다를 나눴습니다.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일상을 즐기고 수다를 떨며 술을 마시는 동안 그 배 안의 사람들은 지옥을 느끼며 죽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이 생각을 하면 저는 큰 죄채감이 듭니다.기억이 나지 않는다니요? 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나요? 꼭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세월호는 어쩔 수 없었던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된 구조 지시만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왜 "가만히 있으라"고 했나요. 박근혜는 무얼 했습니까. 박근혜 정권은 국민을 기만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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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라디오 여성시대를 듣다 사고사실을 알았고 다행이 다 구조됐다는 제주도로 구출된 생존자 인터뷰를 들은후 안심하고 업무를 하다가 오후 4시쯤 다시 라디오를 켰다가 기겁을 했음. 안산 단원고 어린학생들이 구조가ㅈ안돼었다는.....무언가로 뒷통수를 맞은듯 띵~나 또한 안산 단원구에서 20년 남짓살았었는데 남일같지 않았다.. 그때 반나절이나 떠있던 배 안의 어린 학생들을 늦장부리다 다 잃은 우리국가 씨랜드 어린 아이들 시신도 못 찾게 다 타버린 사건으로 국가대표로 금메달까지 반납하고 해외로 이민가버린 아이 어머니.....우리나라는 왜 이럴까요? 국가 수반과 정치인들이 왜 있는건지 항상 불안합니다. 박대통령은 인간으로써 창피한 감을 느끼고 하루속히 하야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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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한국을 방문해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우뚱하게 기울어진 배가 보이고 구조 보트는 구조를 하려는 건지 아닌지 답답할 정도로 기울어진 배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기만 하더군요. 도끼로 유리창을 깨고 구조하지 않고 뭐 하는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다가 들어와서 보니 어이없이 죽어간 젊은 주검들 앞에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꼈었지요..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고국, 그래도 괜찮은 고국의 모습에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진실이 밝혀져서 ,처벌 받을 사람들은 그 경중에 따라 처벌 받는 보다 정의로운 한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서, 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는 작은 위로를,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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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청취하며 모두 구조 된것으로 알고 안도했었는데 나중에 TV로 자료화면 보면서 인근지역 어부들의 구조활동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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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 써서 법원에 제출해야 할 서면이 있어서 집에서 일을 했다. 12시 다되어까지 일을 하느라 뉴스도 보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바삐 사무실로 가자고 독촉하는데 기사 분이 수학여행가던 배가 침몰했다고, 아이들이 다행히 다 빠져나왔다고 하셨다. 어머 큰 일날뻔했어요 가슴을 쓸었더니 기사분도. 엄마들이 얼마나 놀랐겠느냐고 그 이야기를 하고 사무실로 왔는데 그날 따라 오후에도 바빠서 뉴스를 챙겨보지 못했다. 봄이었다 4시 무렵에는 선릉 산책 모임이 있어 총무라서 거기 가느라 바빴다. 300명의 아이들이 못 빠져나왔다는 것을 저녁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못구했다는 걸 생각도 못했다.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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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나는 날이었다. 지금도 달력에 일정이 적혀있다. 친구와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전원구조 속보를 보았다. 다행이다. 별 일 아닌가봐. 그렇게 꺼림칙한 마음을 밀어놓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전원구조가 오보라고 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오보는 있을 수 있고 금방 모두 구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구조자 명단이 백 명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늘어나질 않았다. 구조된 이들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산 채로 배 안에 갇혀있다는 것, 그들이 그대로 바다 밑에서 죽어가는 과정을 내내 지켜봐야 했다. 믿기 힘들었다. 마취라도 된 양 감각이 둔했다.무력감과 우울감을 끌어안고 살려고 노력했다. 잊으려고 발버둥쳤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해서는 안됐음을 알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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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학교가고 언제나와 같이 아침 먹고 PC에서 뉴스를 보았다. 제주도 수학여행가는 아이들이 타고 있는 배가 사고가 났는데 전원구조되었다고.아들이 바로 1년전에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기에 더 유심히 보았다. 부푼 마음으로 떠나 얼마나 놀랐을까.그리고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동네 슈퍼에서 보았다. 그 점점 기울어가는 배와 그 안에 아직 있다는 아이들... 집에 와서도 TV에서 눈을 뗄수 없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아직 내안에 있으며, 속절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던 무력감은 내내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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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 먹은 몇개 안되는 그릇을 설거지하며 티브이 소리를 듣고 있었다.속보하기전의 띠띠디하는 소리가 나길레 무슨 일있나하며 화면을 보았다. 커다란 하얀 배 에 사고가 나서 전원구조 중이라고 했다. 헬기가 사람을 끌어올리고 있었다.대부분의 승객들은 다 구조해갔는지 별로 없네하고 생각했다근데 구조요원이 배에 들어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나 어린이 장애인 중에 배속에서 분명 못나온 분들이 몇분있을텐데...너무 안일하게 구조하는 것 같았다.112에 전화해서 따져야하나 고민하다가 갓난아기가 우유달라고 울었다.그때 애기의 응애하는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그리고 그날도 청소 빨래 애기들 밥주고정신없는 하루를 보냈고남편이 퇴근했다.같이 저녁을 먹는데남편이 말했다.여객선이 사고가 나서 난리났다고.난리? 예상대로 몇명 못구해서 난리났구나하며몇명 이나 못 구했어?하고 물었다한 삼백명 하고 남편이 대답했다뭐? 내가 볼때 전원구조 중이라고 했다고그날 바로 112에 전화를 못한 나의 잘못인거 같아죄책감이 들었다.잠이 들기전 항상 세월호 뉴스를 검색해보았다.사고 원인도 모르겠고 사고 시각도 모르겠고왜 안구했는지도 모르겠고2년동안 봤는데도 모르겠다하지만 내가 그날 전화를 했더라도안 구해줬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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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아침방송을 보다 뉴스특보로 세월호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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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자리정리를 하던중 인터넷 실시간으로옆자리 차장님과 같이 뉴스에 집중했습니다실시간으로 아무일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서요정말정말 실감나지않고 배가 다 들어갔을때 그놈의 " 에어포켓 " 이란게 정말 존재해서 다 없어지기전에 애들을 구해낼줄 알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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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죄없는 아이들이 세상과 이별한 그날을 기억합니다.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시간을 두손놓고 그냥 흘려보내야만 했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런 아픈기억을 지금 누군가의 무리들은 기억하고 싶지가 않는가 봅니다.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든걸 기억할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진실을 덮으려고 하는자들도 평생 고통의 바다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살게될겁니다.언제쯤 올바른 세상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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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좀 늦잠을자고 일어나며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 시고 소식을 들었어요. 너무놀라 뉴스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곧 모두 구조했단 기사를보고 검색을 멈추며 다행이야를 계속 되뇌었던 그리고 안도감에 식사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그 얼마전 배를타고 저주도 여행했던 기억이 있어 정말 식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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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메일을 체크하려고 네이버에 접속했다가수학여행가던 여객선이 사고를 당했단 속보를 보고, ytn 실시간 뉴스를 계속 봤습니다.일하면서 계속 컴퓨터로 뉴스를 봤죠.사고 초기엔 별 무리 없이 다 구조할수 있을것 같이 보도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식간에 배가 가라 앉더군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전원구조라고 뜨더군요..직원들끼리 뉴스가 잘 못되었다고 흥분했어요..눈 앞에서 300명이 가라 앉는갈 우리는 다 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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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가라않고 있다해서. 설마했는데. 방송에서.모두구조 했다해서. 그럼.그렇치 했습니다..저는 저의회사에서 별다른일 없이 일을하고 있었어요. 그날 거래처에서 수금을하러 저희대리점을 방문했었어요..난리가 났다고 했었고요..저는 그날을 그렇게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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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실 책상에 앉앉아 있었고 전원 구조가 됐다는 기사에 안도하며 책을 폈습니다. 1시간쯤 지난 뒤 어려운 철학용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검색페이지를 열었고 그때 아직 구조가 되지 않았다는 정정보도를 보게 되었죠. 그때부터 연구실 다른 동료들과 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실시간 중계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밥을 먹으러 나가지도 못하고 간단히 간식거리로 끼니를 떼우며... 완전히 잠긴 후에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훔치고 애를 태우며 기도 했죠.. 10시가 넘어 집으로 향하기 전까지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하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는 새벽까지 뉴스를 보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더군요. 그날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연구실을 왔다갔다 하며 우리끼리 나눈 대화며 몸짓, 동작까지 모두 또렷해요..대통령은 저보다 훨씬 더 선명한 기억을 지니고 있겠죠. 또 당연히 그래야 하구요.참모진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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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사가기 전,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집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에서 세월호 소식을 봤는데 "전원 구조"됐다고 하더군요.가슴을 쓸어내리며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판교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아이랑 종일 즐겁게 놀았습니다. 2014년 5월에 저는 무사히 제주도로 이사를 왔고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오지 못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매일 보지만 한동안 바라보는 것조차 죄스러웠습니다. 저,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어갔을 수많은 생명들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그토록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끝까지 살아남아 밝힐 것입니다. 그게 제주도에 무사히 와서 살고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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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여행을 마치고. 연도라는 섬에서 배를 타고 여수로 가기위해 아침 짐을 싸면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곧 배를 타야하기에 그 소식은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짐을 싸고 분주히 항구로 가는 동안. 모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며. 일행과 함께 대원사라는 절을 거쳐 집으로 오는 긴 하루였습니다돌아와보니 .... 그날 당일 그리고 몇일동안 뭔가 비현실적인 것만 같고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슬픔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눈물도. 짙어가고....우리 마음속 응어리는. 반드시 풀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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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9시조금 넘었던시간양평 에서 지인이 주사맞는 다고 따라갔다가무료함을 달래기위해 핸폰을 켰는데배가 조금 기울어졌더군요티비를 틀었더니전원구조라고 나와거기있던 사람들 다 안심하고티비끄고 다시 주사맞는데나는 계속 핸포으로 뉴스보고 있었네요전원구조에서 오보라고 나오고다시 티비를 켰는데배는 점점 기울고타이타닉에서 봤던 상황들을 연상하면서왜 탈출을 못하는걸까왜 해경들은 배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거지???참으로 안타깝고 또 절망하고~~그날일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데세월호가 대책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정말 개미오줌만큼의 희망으로아이들이 꼭 나올거란 희망으로 두손모았던 그날어찌 잊을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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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떠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ㅜㅜ그래서 외면 하려고만 했습니다.하지만 그날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날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