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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나도 너네와 같은 고2였었어학교에서 수업듣는데 그 얼름장같던 국어쌤이 우시던게 기억나. 학교에서 핸드폰을 걷어가서 우린 밖과 연결이 차단되어있었는데 국어쌤이 울먹이면서 너네랑 같은 나이인데 얼른 구조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수업이 진행되지않았고 우린 심각성을 몰랐지... 1000일이 지난 어느날 아직도 사회는 혼란스럽고 어질러져있지만 나는 아직은 바꿔나갈 힘이있을꺼라고 믿고 있어. 어질러진 상황이 정리되고 처벌받아야할 사람이 처벌받고 공정해져서 너네에게 사과아닌 사과, 속죄아닌 속죄 하고싶다.같은 나이의 나는 이렇게 잘먹고 건강해서 미안해.복에 겨운 나날을 살고있어서 미안해. 너무 깊은 푸른바디 밑에 있어 춥고 따뜻한 햇살이 비춰 주지 못하겠지만 진실을 밝혀 진심이란 촛불로 너네에게 보내주는 하나의 손길로 남길 동갑내기 친구로써 기도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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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선생님 께서 전원 구조를 이야기 하던 날이었어요. 대단하다고. 그 큰배에서 어떻게 전원구조가 날 수있냐며 칭찬하셨죠. 애들도 다들 다행이네~ 하면서 점심밥을 먹었어요.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탔던 버스의 라디오에서 그 말이 거짓말인걸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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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으로 친구들과 학교식당에서 라면 두 개에 참치김밥 세 줄을 시켜서 먹었어요. 내가 무슨 밥을 먹었는지,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진 친구가 누군지, 친구가 무슨 옷을 입었었는지, 그 채널이 YTN 뉴스였다는 것도 정말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2014년, 아니 거의 모든 해를 통틀어 이렇게 상황 전체가 정확하게 떠오르는 날도 그 날 뿐이에요.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그 날 저녁은 굶으면서 계속 뉴스만 찾아 봤던 기억도 나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동생도 다 세월호 얘기 뿐이었고, 그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생겼습니다. 저는 제가 운이 좋아서 살아 있는 국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나라라면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기억하는 그 날을 도대체 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는 당신이, 대체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그 날을 잊어버렸나요? 제발, 제발, 인간 대 인간의 감정으로 호소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남은 염치가 있다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제발 시인하고 죗값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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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였습니다. 학교에 갔다와보니 뉴스에선 배하나가 침몰되었다고하며 생존자와 비생존자의 수를 띄웠습니다. 어린마음에 저런것쯤 기적적으로 다 살아날수있을거란 생각으로 뉴스만 지긋이 볼 뿐이였습니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 아직도 인양되어지지않은 세월호와, 차디찬바닷속에서 구조되지못한 9명의 희생자들...왜 우리는 이 참혹한현실을 자신자유대로 표현하지못하는건가요?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세월호의 정확한 침몰 년도모른채, 살아갑니다... 재빨리 대한민국의 평화가찾아왔으면좋겠습니다.. 그리고 부디 희생자들에게 말하고싶습니다, 언니오빠의 잘못이 아니라고... 무능한나라와 우리 국민들의 잘못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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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대들이 밝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수 있게 저 악마같은 그대들의 원수들을 처참하게 벌할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아울러 그 추악한 비밀을 밝힐수 있게 도와주세요다시 만날것을 약속합니다.더 나은 미래의 대한민국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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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제 일도 깜빡 낌빡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다.포항친구랑 안부통화중에 스마트폰을 만지락 거렸는데 카카오스토리 친구의 게시글에 배가 기울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리모컨으로 티비를 켜니 배가 절반이 넘어가는게 보였지만 금새 복구 될거라 여기며 통화에만 열중했었다.통화를 끊고나니 졸음이 와 그대로 누워버렸다 눈 좀 붙이고 일어나 보니 배가 완전 침몰되고 조금만보였다 너무나 충격이었다왜 배를 가라앉히지?? 우리나라가 이것밖에 않되나? 나라의 무능함에 실망과 불안감에 눈물이 났었다 선장이 팬티만 입고 탈출하는 장면이 티비화면에 자주 비춰졌고. 그때부터 몇 날을 밤 낮으로 울며 생활했었다 저 배속에서 어린애들이 죽어갈때 난 편하게 오전잠을 잤었다는게 아직도 내자신이 용서가 안 되고 그날 일들은 몸속에 새겨진 영원히 지워 지지않을 문신으로 남아있는데... ***왜 기억을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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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12시에 가게 나와서 TV 켰는데 속보 계속뜨면서 진도 병풍도 앞바다라면서 밥도 먹는둥 마는둥 TV 만 보면서 눈물 흘린날어찌 그날이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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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동료들과 제주도가던 여객선에 사고가 났다고 웅성대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구조현황 봐야겠다고 TV맨 앞자리를 꿰차고 마음 조리면서 보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전원 구조라 보도가 떳지만 선체가 기울도록 나온 사람수가 적어서 이상하네 갸웃거리면서 의아해 하던 그날. 그날 함께한 사람들과 그때 먹었던 음식까지도 기억이 또렷이 납니다. 성신여대쪽에 있던 새로 생긴 부대찌개식당에서 회사동료들과 신장개업이니 손님이 적어 한산하다며 나누었던 잡담도 기억합니다. 점심을 함께하며 구조자가 무탈하게 생환하길 기원한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아직도 머리속에서 잊어지지 않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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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있었는데 사고난거 전해듣고 일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티비랑 기사확인하고 친구들이랑 걱정된다고 카톡했던거 기억나요. 세월호 인양 하루빨리 되서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세월호 인양과 7시간 규명이 제가 촛불집회 나가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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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은 내 생애 가장 충격적인날이라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는 저는 9시 출근하여영아들을 보육하던중 그 날은 안잔교육이 있는 날이라서 대형티브로 영상을 준비하던중 뉴스 속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처음에는 ""전원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다 생각하고 뉴스속보를 관심있게 보던중 계속 속보는 구조인원이 달라지고 사망인원이 늘어감에 무척 이나 가슴 졸이며 동료교사들과 많이울었습니다4세 밖에 안된 우리반 아이들도 언니 오빠들이 불쌍하다며 유는 친구들이 있어 꼭 안아 달래주기도 했습니다그날은 잊을수 없습니다그리하여 전 오늘도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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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등원해 놓고 설거지하면서 뉴스를 봤어요. 인터넷뉴스 읽다보니 티비 뉴스로만은 답답해서 처음으로 온갖 뉴스어플까지 깔아서 봤던 기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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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 바빠진 그날...짬을 내어 이른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믿기지않았고 충격이 너무 커 밥한술 못뜨고 나와 종일 휴대폰으로 뉴스만 보았었네요....다들 그랬을 겁니다. 일도 못하고..잠도 들기힘들고.,많은 날들을 하루 종일 먹먹하게 지냈다는 것을 압니다..노란리본을 나눔하며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 잊지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절대..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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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그러니까 2014년 4월 16일 오전에무심코 틀어 논 TV 에서 배가....큰 여객선이침몰 하는걸 보고 , 설마 달나라도 가는 요즘세상에 배안에 있는 사람들을 못 구학겠어? 더군다나 다 어린 학생인데 행동도 재빠르니탈출하라는 말만 하면 다 뛰쳐나올거야라며 내심 걱정스러운 맘 으로 하루종일 TV앞에 앉아 있었다.그런데......그 날의 그 참담한 상황에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그 상황에우리 꽃같은 아이들이 사라졌다.절대 잊혀질수 없는 그날...평생 온 국민의 트라우마로 남을 그 날의 진실을 꼭 밝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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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안좋아 요양차 시골집에있는데 그날새벽 태어나서 제일 안좋안 꿈을 꾸고 일어났지만 아팠던 몸이추스려지며 기분은 나쁘지않았습니다. 걸어서 팽복항 바로옆까제 운동갔다가 오는데 우리집위로 헬기가 한대두대세대네대 7대까지 날아가는걸 희한하게 바라봤었죠. 집에가 티비를 트니. 전원구조라서 안심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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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날 아침에 속보로 tv를 봤습니다.제기억으로는 오전 8~9시입니다그리고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있다는 소식을 들었죠..그전에 오보가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는것을배의 사진만 보아도 알수 있었어요점심때 약속을 위해 전철을 타고 가면서도계속 다음뉴스를 체크했죠분명 첫페이지의 속보는 계속 되었습니다.밝혀질줄 알았어요.최순실 사태이후 모든것이 드러나면서전 그날 온국민이 충격이었던 그날점심도 아닌 저녁 5시에 나타난 이유가 곧 밝혀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보고를 공지사항처럼 받고,아무런 응답도 없던 대통령은아직도 그날 5시 전까지 무얼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대답이 없는 집에서의 업무는 포장입니다.분명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져야이정부의 최악의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의최대의 악행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세월호는 너무나 아픈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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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로 늦게 알았다가 걱정과 우려로 일이 안되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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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유학을 하려 4월초에 지구 반대편 캐나다로 왔습니다. 시차적응이 될무렵 한국에서 큰 사고가 났다고 첨엔 구조소식에 다행이다.. 안심하고 나름 개인적인 일들을 하며 지내다가 모두 허위였고 정부의 무능함을 보며 분노가 끓어 올랐습니다. 마음 한편으론 애도하고 아직도 진상규명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박근혜정부가 개인사욕을 체우기 위해 생명의 소중함을 잊게 만들려 노력하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먼땅에서라도 세월호가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씀드리며. 저도 아이들 가슴에 같이 품겠습니다. 절대 다시는 이런 참극 벌어지지 않게 한 국민으로서 끝까지 기억할 겁니다. 힘내세요. 진실이 밣혀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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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르지 않았던 2014년 4월 16일,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TV를 보았다. 그런데 TV 상단에 생존자수와 사망자 수, 실종자 수가 나와있었고, 그 순단 온 몸이 굳어졌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장이 학생들을 버리고 도망쳤고, 대통령은 사건당일 머리손질하느라 바빴다는 것을 알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들은 인간도 아닌 것 같다. 국민의 생명권보장을 하지 않았다니 말이다.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의 선장과는 정반대닌것 같다. 나는 요즘도 촛불집회에 다니면서 세월호 리본을 만들고, 세월호 사진들을 보먀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달아 놓으면서 잊지 않을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도서관에 있는 세월호 관련 책들을 보며 나는 그 때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언제쯤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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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취업준비중이던 저는 외할머니께서 1주일전쯤 목욕탕에서 미끄러지셔서 수술후 입원중이셔서 병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 습니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저 뿐이어서 제가 주로 외할머니 간병을 맡았지요. 저에건 그날이 평범한 날이 아니라서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런 엄청난 뉴스를 보고 듣던 그 시간에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는게 정상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태어나서 그런 큰배가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걸 본건 처음이라서 너무 이상하고 충격적이었던 게 생각납니다. 뉴스에 연일 보도되고 있던 생경한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가슴아픈 역사ㅠㅠ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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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으로 바로 달려 갔습니다. 며칠을 그곳에서 sns를 통해 현장 소식을 전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했었어요. 그렇기에 현장의 답답한 모습도 다 목격 하였고, 유가족 분들의 가슴 아픈 모습도.. 물에 젖어 구급차에 옮겨지는 아이들까지 모두 보았습니다.그래서 더욱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 사회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세월호.. 마음에서 행동으로 오래도록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