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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 구조소식의 오보에 인터넷 뉴스를 보고 또 보고 업무시간 중에 구조 되겠지 하면 계속 뉴스를 찾아보고... 임신 중이라 그런지 구조되지 못한 부모님들 걱정도 너무 되고... 그래도 구조 되겠지...하며 일에 집중 못하고 자꾸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눈물을 훔치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임신 중인데 자꾸 우니 옆 직원이 뉴스 그만 보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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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작년 4월에 하늘나라 간 우리 애기가 서울 삼성병원 서8 소아암병동 다인실에 입원중이라 뉴스를 텔레비전으로 보지 못하고 환아 엄마들 하는 수다속에서 세월호 침몰소식을 들었습니다.처음 들을 때는 당연히 구하겠지 신경도 쓰이지 않았어요. 세월호안에 갇혀있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환아엄마가 세월호 아이들보다 우리아이들이 더 불쌍하다고 건너들으며 혼자 생각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우리아이들이 더 불쌍할까...건강하게 살다 수학여행가다 갑자기 죽게된 아이들이 불쌍할까...사실 제게 결론은 이별을 준비하고 조금이나마 짐작이라도 하며 기다리는 우리아이들이 조금 덜 불쌍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특히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더더욱요. 생떼같은 건강하게 수학여행 떠났는데 하늘나라에 갔다니요.노란리본이 지겹다는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먼저 하늘로 보낸다는 것은 평생을 두고 행복은 커녕 죄를 짓는 기분으로, 많은 위로가 있어야 그나마 나머지 여생을 살아갈 마음이 나는 인생입니다.하늘나라에 먼저 간 우리아이들을 잊지말아 주세요..그 아이들도 당신 아이들처럼 내 옆에서 웃고 뛰어 놀던 나의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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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친정에서 조리를 하며 적응을 하고 있었어요. 두어 시간 간격으로 깨어 울어대는 신생아와 함께 있었는데 기사를 보고 놀랐다가 전원 구조를 보고 안심했는데 다시 번복되는 내용에 종일 TV를 틀어놓고 봤었습니다.기억나지 않을 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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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점심시간이었어요. 다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는데 식당 텔레비젼으로 사고소식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들 밥숟가락도 못들고 티비를 쳐다보며"사고가 났데 어머 어떡해"를 연발하고 있었어요.그러다 곧바로 나오는 전원 구조 소식에 "어휴...전원 구조했데~ 이제 우리도 밥먹자" 하고 평소처럼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올라왔습니다.오후 근무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파티션에서 들리는 오보 소식에 다같이 촉각을 곤두 세우며 뉴스를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지금도 가끔 점심시간에 그때 이야기를 합니다.우리 그때 뉴스보고 놀랬었는데...전원구조 소식 듣고 안심했었는데....이럴줄이야...그날 앉았던 식당 자리..내앞에 앉아있던 회사 동료..그날의 뉴스 화면... 아직도 생생합니다.생면부지인 저도 이렇게 기억하는데 부모님을 가족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수 있을지요..공포에 떨었을 아이들의 두려움을 어찌 헤아릴수 있을까요 ..그날의 기억을 잊을수도 잊어서도 안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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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선명한 그날의 기억이에요.정말 오랫만에 고등학교때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준비를 하고 있는데 뉴스를 봤어요.배기울기를 보고 당연히! 구조될줄 알고 나가서 친구와 백화점에서 밥을 먹고 나와서 호수라는 까페에서 마카롱과 커피를 먹으며 인터넷뉴스를 계속 보는데 300여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황당한 뉴스를 봤어요. 그러구서 바로 집에와서 계속 티비만 붙잡고 어떻게해 어떻게해 만 했던 아주 선명한 기억이에요. 그날 어떤 옷을 입었는지..어떤 대화를 했는지도 너무 선명해요 잊을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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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요. 내 생일 바로 다음날에 그런 사고가 있어서 "아이고 아이들 다 구조 되겠지." 했어요아직 두돌 안된 딸아이 육아하던 때라 아이 깨기 전에 뉴스속보 봤고전원 구조라고 해서 다행이라며 아이와 놀아주다가 오후에 정정 보도 보고는진짜 어이없어 했어요.딸아이 낮잠 재우면서도 아이 오른쪽에 누워계속 핸폰 놓지 못하고 뉴스만 보고있었어요.바로 그날부터 한달을 멍하고 우울하게 보냈네요기억이 선명해요그리고 매년 4월 16일은 저에게 너무아픈날이에요.생일날도 아이들이 별이되기 전날이라늘 마음이 아픕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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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날과 다름없이 집안일하고 출근해서수업을하고 있었어요. 수업중에 제 학생이 "선생님 !배 침몰했데요~!!"라고 외쳤어요.네이버 검색 1순위에 진도 세월호가 링크 되었고 저또한 수업 끝나자마자 부터 뉴스를 계속 시청했어요. 처음엔 다 구조했다면서... 구조인원수가줄고..정부의말....뻥이었지요..아이들이 설레임을 가지고 떠난 수학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되어버렸던....보통 사람인 저도 잊지 못하는데요..너무슬픈날이에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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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 구조 됐다는 소식에 안심을 했었죠.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속보에...대상없이 계속 누군갈 원망하고 원망하고...계속 살려달라고 기도했었죠.불면증... 처음 겪었던 사건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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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휴직중이라 아이와 함께 친정에 내려가 있었어요 거실에 티비가 틀어져있었는데 자막으로 속보가 떴어요 세월호가 침몰중이라는 서둘러 뉴스 채널을 틀었는데 보도하는 채널이 없어서 큰 사고가 아닌가 생각하다가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안심했는데 그 뒤는 더 떠올리고 싶지 않네요 그 날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한데 왜 그들만 아닌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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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 없었어요 출근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르신들 상태를 확인하고 간간히 틀어진 뉴스에는 별 다를바 없는 뉴스가 나올꺼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배가 침수 되었다는 뉴스가 뜨더군요 처음엔 전부 구조했다는 소리에 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차 상황은 바뀌어 가고 구조자는 늘지 않고 실종자 사망자만 늘어만 가더군요 아무것도 하지도 못한 채 ....그날은 정말로 평범한 날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이들은 즐거운 수학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가족들 품 안에서 돌아왔어야 하는데 ..저는 언제 까지나 이 날을 잊지 못할꺼 같습니다당연하듯이 제 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자리 집았습니다 지금도 세월호 기사를 보면 그 리본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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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세월호 침몰 뉴스... 집에 있었습니다. 다 구조되겠지 하면서 뉴스를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무도 구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가슴이 먹먹합니다. 너무나 미안합니다.기억하지 못한다는 그들의 머리와 가슴... 입을 다 찢어주고 싶습니다.그날을 저는 기억할 것 입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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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이사한 날이서 그날을 기억합니다.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는데 전원구조 했다고 오보된 방송을 보고 다행이구나 하고 넘겼는데 이후 보도를 접한후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후 잊고 있다가 그것이알고싶다를 통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년 반이 흐른 지금 아직도 인양도 되지 않고 의혹만 붉어지고 있습니다.개탄스럽기 그지 없고빨리 세월호 인양이 되서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문책 및 벌하여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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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어요. 핸드폰을 걷었기에 소식을 바로 전달받지는 못했지만, 뒤늦게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떨다 울었어요. 우리의 또래가,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큰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섭게 다가왔거든요.2014년, 17살이였던 저에게는 한 살 차이나는 언니 오빠였던 사람들. 이제 저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19살이지만 언니오빠들은 아직 18살의 시간에 갇혀있네요. 언제쯤 다시 시간이 흘러갈수 있을까요? 무사했다면 지금쯤 누구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텐데, 미안해요. 하루라도 빨리 편히 쉬게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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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날 손님들과 관광을 돌고 있다가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가서 처음 뉴스를 접했어요~ 그때가 11:30-12:30사이 였던거 같고 tv에서 배가 기울어 있었고 화면상 보았을때는 금방 구할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라 일본 손님들한테도 배사고가 났다라고만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어요~저녁까지 또 관광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본 뉴스는 좀 충격적이었죠~그리고 고등학생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과 배에 갇혀 있다는 이야기에 무척 놀랐었네요. 그후론 구출 소식보단 사망소식이 줄을 이었고 정부의 무능력함을 확인하는 실망적인 순간이었죠~ 엄마들은 그때 대부분 생각했을거에요~이런 나라에서 과연 아이를 키울수 있겠는가~? 예전에 씨랜드(?)화재사고 일때인가 어느 사망자 아이 엄마가 국가대표시절 땄던 메달 반납하고 이민갔다고 얼핏 들었는데 이게 현실이구나 싶더군요~세월호사건은 정말 잊혀지면 안되고 명명백백히 모든 진실이 들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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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7시간이 지난 뒤 그 허탈함은 이년이 지난 지금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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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도서관가서 책을 빌리기로 했던날입니다 외출 준비하면서 티비를 켰는데 배가 침몰했으나 구조중 300명 구조속보가 뜨고있었습니다 10시 전후였던걸로 기억하는데역시 우리나라 클라스 !! 라고 외치곤그러고 좀있으면 다 구하겠네 하고 집을나서서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커피숍가서 친구랑 대화를 나누던 중 오늘 아침에 선박사고났다 그런데 다 구했겠지라고 대화하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악했습니다..점심쯤에 집에 귀가하고 뉴스를 보는데...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내 현장 실시간뉴스만 찾아봤습니다방송 3사에서는 오전에 제가 집을 나서기 전에본 같은 화면만 계속 내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해가 뜰때까지 잠 한숨 자지못하고 에어포켓이 존재해사람들이 살아있길 구조되길 바랐습니다그 춥고 깜깜한 곳에서...대체 잘수가 없었습니다할수있는거라고는 기도뿐이였던 날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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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편입준비중이던 나는 낮에는 계약직 알바를, 저녁에는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오전중 스마트폰으로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뉴스알림이 떴다. 나는 미술학원을 다닌지 별로 되지 않아 기초드로잉을 음악을 들으며 그리고 있었다. 나는 악동뮤지션의 새 앨범을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같은 드로잉을 반복했다. 특히 악동뮤지션의 얼음들은 내 마음을 세월호에 풍덩 빠지게 할 만큼 우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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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있어 일찍 일어났던 그 날 아침 네이트 뉴스를 통해 사고를 알게되었고 얼마되지 않아 전원구조되었다는 기사를 통해 안심했었습니다. 그 뒤 아직 구조되지 않았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확인하니 구조되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날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구조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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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 그날은 오랜만에 휴일이었고. 집에서 오램만에 티비를 보며 휴식을 줄기고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속보로 전해지는 소식을 보며. 첨엔 눈을 의심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침몰하는 배를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에. "뭐라도햐보라고!! " 혼자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보고있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고 미안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분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ㅠㅠ 무관심속애 잊혀지지 않도록 그날의 일을 하상 기억할 것입니다. 비구름속에도 태양이 존재하듯 진실은 어둠속애서도 꼭 존재하며 드러날것을 믿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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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가 끝나고 다음수업자료 준비위해 1층 프린터 앞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며 줄서고 있었다 친구한명이 핸드폰하다 배가 침몰햇다는 얘기를 했고 내동생이 같은 나이라 내동생이 아니여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구출되겠더니 별신경안쓰고 강의를 계속들었는데 ....아는 애들도 있었고 한다리만건너면 다 아는사이라 눈물밖에안났다 시험기간이엿는데 툭하면 눈물이나와서 집에서는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