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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저는 어느때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수업을 듣는데 한 선생님께서 세월호 당시 상황을 뉴스로 접하고 오셔서 저희에게 말씀해 주셨고 같은 또래라 실시간으로 놀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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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열심히 일 하고 있었네요.독일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자신들에게 전달된 뉴스를 보고 분노하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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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사실 학기 초라 많은 친구들과는 친하진 않았지만 말도 많이하고 친해 질려고 많은 친구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쉬는 시간에 우리는 인터넷을 보았다. 실시간 검색어에 "세월호"라는 검색어가 떠 있었다. 내 친구는 그것을 검색 하였고 인터넷창 안은 배 사진으로 가득하였다. 기사는 많은 사람들과 학생들이 물로 가라 앉고 있다는 것이였다. 모든 아이들은 걱정을 하고 "안타깝다","우리도 고등학교 가서 제주도 가는데, 무섭다." 그 때 중 3이였던 우리는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사에 "모든 사람들 구출"이라는 문장이 올라왔고 그 때서야 우리는 안심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 많은 아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많이 공부를 한 후 하교 후 집에 갔다 . 언론은 여전히 바빴고 분주했다. 모든 사람들은 무슨 50퍼센트도 나오지 못 했었다. 난 그곳에 있지 않은데 더 불안한 마음이였다. 구명조끼가 없다는 말,친구들이 아직 안에 있다는 말,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말 등 많은 말이 나왔고 뉴스 상단에는 구출자가 몇 명인지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해경은 침입을 못 한다고 하였다. 배는 점 점 가라앉아 배 하단의 앞 부분만 보일 정도인데, 엄마와 할머니는 모두 마음을 아파하였고 내년이면 수학여행을 갈 나와 나의 친구들을 걱정하였다. 2년 사이 모든 것은 바꼈지만 나의 마음은 바뀌지 아니한 것 같다. 여전히 페이스북이나 기사을 보며 세월호가 연관된 기사들은 무조건 챙겨 본다. 그럴 수록 우리나라에 대한 불신은 커져 갔다. 난 아직도 단원고 학생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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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사고가 났다는 짤막한 속보 기사를 보았다. 얼마 후, 전원 구조라는 속보에 앞선 긴박하고 조마조마한 한 줄의 속보가 지워졌다. 그렇게 지워질거라 믿었다. 거대한 배의 사고가 일어났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길 바랐다기 보다는 확정되어졌다 라는 표현이 맞다고 해야 좋을 아침이었다. 이후로는 일상이었다. 그저 스치는 바람에 일상조차 스쳐 지나가 버린 하루하루였다. 열심히 사는 것, 한 사람의 몫을 오롯이 해내는 것. 그 모든 것이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한 줄의 속보를 읽고 또 한 줄의 속보를 믿고 스친 그날의 시간은 오늘도 여전히 스쳐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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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예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그 날은 어두운 저녁 하늘과 함께어두운 소식을 맞이했다입시에 떠밀려 불만에 가득차 집에 왔을 때그들은 떠내려 앉았다방 의자에 앉아 소식을 접하며바닷물에 한참 못미치는 눈물을 뱉었고티비를 보며 구조인원의 숫자가 올라가길하염없이 기다렸다마지막 문자를 보며그들을 기억하겠다며 다짐했는데어느새 그 날은 잊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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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4월 16일 .새벽2시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월호 전원구조소식으로 운을 띄우며 수줍게 여자친구에게 사귀자 고백.16년 4월 16일. 여자친구와의 연애한지2주년이자, 결혼한 날매년 4월 16일은 결혼기념일로 바뀌었지만끝내 돌아오지못한 304분의 세월호 희생자 분들을 저희 가족들은 꼭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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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미안합니다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혹시라도 보고있다면 당신들을 당신들 가족들...국민 모두 가슴 찢어지게아프게한 나쁜사람들....엄벌받고 죽을때까지 고통받을수있게꼭 벌받고살게 도와주세요평생 그대들 잊지않고 살아가겠습니다지켜주지못해 미안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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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이전 빵을 먹으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긴급 뉴스를 들었습니다. 친구들이랑 카톡을 하면서 제가 했던 말은 뉴스를 보니 큰 배이기도 하고 침수되기까지는 시간도 있을테고 벌써 안전매뉴얼이라던가 시스템이 가동되서 안전하게 구해지고 있겠지? 해군이라던가 해경이라던가 근처 어민도 있으니... 수학여행인데 안됐네 저 학생들.. 이정도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 중에 아마 전원구조 뉴스를 들었을겁니다. 그래서 봐라 시스템이 갖춰진 나라는 다르지 않느냐 라는 치기어린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들이랑 점심을 먹고 뉴스기조는 달라졌습니다. 오보에 이은 선수만 달랑 올라와있는 배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설마 설마 했었던 그 날의 기억 지금 저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저에게 그런 불행한 재난이 닥친다면 저는 지금의 국가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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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던 일상의 시작.일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던중 긴급속보로 보도되었던, 세월호 침몰과 전원구조 되었다는 자막에조금의 의심은 들었지만 설마 설마 하였던 그 시간..의심이 현실로 다가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슬프고 아파하였던 그 날을 언제까지고잊을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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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상실의 시대.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지만, 마음속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꽁꽁 얼어붙은 세상으로 나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하나 되어 진실의 인양을, 부정의 종말을, 추운 겨울이 지나 따듯한 봄이 오리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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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4년 4월 16일 시험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기 위해 TV를 켰습니다 속보라고 적힌 뉴스 속엔 잠겨가는 배의 모습이 있었고 저는 그 날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난 왜 도움이 되지 못 하는가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때14살이었던 저 또한 쉽게 잠들지 못했고 쉽게 밥을 넘기지 못한채 7시간 동안 괴로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광화문에 들려 꽃 한 송이 두고 오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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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 세 글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고1 수업시간에 학교 선생님께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친구들은 어떡하냐며 다들 걱정했어요 그리고 조금 뒤 모두 구조됐다고 뉴스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고 친구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찍히 추억 아니야? 어차피 아무도 안죽었고 보험금도 나올거고 나중에 친구들끼리 만나서 우리 수련회 가다가 배 침몰했었잖아ㅋㅋㅋㅋ 하면서 웃을 거고, 그런 추억 쉽게 생기는거 아니잖아" 하지만 또 조금 뒤 구조된게 오보라는 소식이 들렸어요 방송에선 하나 둘 죽은 사람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식은땀이 났어요 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건지 죄책감이 들었어요 하루 종일 뉴스만 보고 있었습니다 제발 제발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지만 해경은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고 시체만 건저 올렸습니다 그 날의 기억은 제 자신에게 가장 실망한 날이고 후회스러운 날이며 악몽입니다 희생자 분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해서,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서 괴로웠을때 약속했습니다 끝가지 싸우겠다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잊지 않을게 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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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후 좋은 세상 만들겠노라 다짐 했거늘 아직 세상은 여전히 부패하고 불의에 타협하는자가 웃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촛불 하나하나 모여서 큰 빛이될거라 믿는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봄은 꼭 온다는것을잊지 않겠다 그때 그 시간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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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뉴스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세월호 소식을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전원 구출이라는 잘못된 소식에 안도하고 맘편히 의경으로 입대를 했던 저는 자대에 도착해 뒤늦게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경이 된 이후로는 집회관련 교통 통제나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의경으로서 매주 광화문에 가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만 하는 신분으로서 저는 노란 리본 하나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 21개월간 비록 전 여러분들의 맞은 편에 서있었지만 제 마음만은 그 반대 방향에서 함께 소리치고 있었다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저와 함께했던 수많은 의경분들도, 지금 이 시국에서 폴리스라인을 치고 질서유지에 힘쓰는 수많은 경찰분들도 마음만은 저희와 함께하고 있다고 믿고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의 잃어버린 7시간을 돌려받을 수는 없겠지만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부끄러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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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립니다2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지금도 아파서, 무서워서 당시 사진도, 영상도 보지 못합니다그러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 그날의 기억들은 너무 또렷합니다그렇게 쓰러져간 내아이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에게 무거운 빚을 주고 떠났습니다 다시는 정말이지 다시는 이 땅에서 자신들과 같이 스러지는 아이들이 없게 해달라는 빚을 주고 떠났습니다미안합니다 하지만 희생으로 남겨준 그 무거운 빚.. 결코 잊지않겠습니다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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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수업시간엔 조는둥 마는둥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오늘 세월호가 침몰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몰....?"정말 일상생활에선 자주 들을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그 세월호 안에는 관광객분들과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2학년들이 타고있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솔직히 처음엔 실감이 안나서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않았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구조가 되었다길래 아.. 다행이다..라고만 느꼈었는데...학교 안에 티비가 있었습니다. 공중파만 연결되어있는 학습용 모니터. 그걸로 매 쉬는시간마다 친구들끼리 옹기종기모여 뉴스를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구조된 사람들이 3분의 1조차 되지 않은 것을보고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깐 분명 전원 구조가 됐다고 했는데.... 그럼 구조가 안된 아이들은..? 아직도 배안에 있는건가? 못빠져나온건가? 배는 이미 다 가라앉아가는데? 그때 그 뉴스 장면들을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절대 잊을 수 없으니다. 모니터 가장자리에 적혀있던 구조된 숫자들.. 더이상 늘어나지않았습니다.제 나이 20살 이제 성인입니다. 하지만 저 아이들은 아직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같은 날 수능을 보고 같은 날 성인이 되어 꽃길만 걸어야 했던 아이들이 아직도 물 속에 잠겨 깰 수 없는 잠을 자고있습니다.비록 아이들은 잠들었지만 우린 아직 깨어있습니다. 4월 16일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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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가다 들린 식당에서 세월호 침몰소식을 처음으로 알게되었습니다. .이미 가라앉아 뒤집혀 있는 배모습만 볼수있었습니다. 섬 앞바다에 좌초된 여객선에서 어떻게 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그 의문이 시간이 갈수록 분노로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모두 느끼고 있을 그 분노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글을 남기며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깁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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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반차를 쓰고 이사를 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정신없이 이사를 끝내고 뉴스를 보는데 그 안타까운 현장....뉴스를 보면서 한참을 울었고,그 슬픔에 잠 못이루었던게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아이가 태어나기 한달 전이어서..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서 많이 슬퍼했습니다.비록 그 날의 제 기억은 희미해지고슬픔이라는 감정만 남았지만,14년4월16일 그날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결코 잊지 못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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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도 연구실에 나갔습니다.출근하면 습관처럼 이메일을 확인하고, 자주가는 블로그, 사이트들을 돌면서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그때, 자주가던 커뮤니티에서 한 여객선이 사고가 났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저희 학교는 안산 단원고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은 옆동네였습니다.그때부터 모니터 한쪽에는 뉴스를 틀어두고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를 볼 때만해도, 침몰이 크게 진행되지 않아서 별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고, 곧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배는 점점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날의 촛불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슬펐던 그날 써내려간 글을 같이 올려봅니다.-------------------------------아름다운 꽃이여햇빛이 따스한 봄 날에 차가운 비가 내린다떨어지는 빗방울은 바다를 울리고그대들의 눈물이 우리를 울린다차가운 그곳에서 우리들의 이름을 불렀을 아름다운 꽃이여우리는 그대의 부름에 답하지 못하였구나사랑한다... 미안하다... 살고 싶다...마지막까지 외친 부름에 답하지 못하였구나아직 피우지 못한 아름다운 꽃이여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져버린 꽃이여그곳은 따뜻합니까저 높은 그곳에서 아름답게 꽃피우소서평생 지지 않는 꽃이 되어 이 세상을 밝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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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신입생이었습니다. 1학기 차.. 세미나를 하다가 잠깐 쉬는 타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안심하였는데 세미나가 끝나고 오보였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습니다. 그 날 그 시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응당 그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