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지 한달이 조금 더 지난 날이였습니다.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눈뜨자마자 이별의 아픔에서 허우적 대다가, 속보를 보게 되었습니다.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제가 좋아하는 제주 근처 어딘가에서 벌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대처는 더 영화같았습니다.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운 일이지만, 계속해서 뉴스를 찾아보고, 또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고 하면서, 저는 이별의 아픔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죄스럽습니다.)........그래서 저에게는 세월호의 그 날이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
종례시간에 우연히 핸드폰을 보다가 세월호에 대한 뉴스가 나왔습니다. 다행히 탑승객들 모두 구조가 되었다고 하여 큰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녁에 뉴스를 본 저는 종례시간에 본 내용과 사뭇 다른 내용의 뉴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원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오보였습니다. 저는 중학교 졸업여행을 앞두고 혹여나 가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마음이 점차 그들을 구조하지 못한, 아니 구조하지 않은 듯한 해경들과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기억을 잘 하지 못한 나이지만 그 때의 기억은 선명히 납니다.
-
수학수업듣는중에 선생님께서 다 전원구조 됬다고 하셨다.그런데 몇 시간후 그 기사는 오보였고..집에서 속보를 보며 구해주지못하는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
쉬는 시간이 되어 잠시 교사연구실에 들렀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사고가 났단 소식 들었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히 전원 구조 됐대요. 뭐, 별 일이야 있겠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그날은 너무 바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다음, 집에 들어와서 그것이 오보였음을 알았다. 당황함과 서글픔에 펑펑 울고 다음날 출근하자 선생님들은 거의 넋이 나간 채였다. 구할 수 있겠지, 설마 큰 일이야 있겠어 하던 기다림은 어느새 몇 년이 되었다. 마치 트라우마처럼 남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울컥 눈물이 난다. 그러니 어떻게 그 날을 잊을 수 있을까. 그건 사람이라면 잊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
그날은 회사 연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같이 교육받은 동료들과 오전 일정까지만 하더라도 전원 구조 기사를 보고 괜찮겠지 하고 안심했었는데, 오후 일정 끝나고 서울로 복귀하는 열차를 기다리다 보니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직 4월이라도 추운데 계속 구조가 안되면 어떡하나, 하며 대합실에 모여 다같이 걱정을 했던 기억이 아주 또렷합니다. 결국 저녁에 서울 도착하니 배는 완전히 침몰해 있었고, 저는 뉴스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하다가 잠이 들었죠. 그 날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기억을 못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책임자 격인 청와대에서 기록과 기억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길 바랍니다.
-
2014년 4월16일 고등학교2학년때였다 컴퓨터실에서 수업중에 인터넷을보다 속보를보고전원 구조 완료라는 또다른기사를보고 다행이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않좋은 내용의 기사가 되풀이되었다. 그이후 나의 동기들이. 아름다운 별이 되었다
-
저는 포도과수원을 합니다. 그날 아침 뉴스 속보로 여객선이 침몰했고, 몇 명이 타고 있는지, 또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라는 끔찍한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농사의 시작 단계에서는 일정을 정해놓고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해야 1년 농사의 결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 날 오전 내내 TV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모든 방송사에서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에 점심을 조금 빨리 먹고 밭에 일하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오후까지 일하고선 집에 들어와 TV를 다시 켰는데, 구조 된 인원이 하향되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뭔가 싶어 인터넷에 그 몇 시간 동안 나온 핵심 기사를 찾아보기까지 했네요. 혼선에 혼선이 .. 구조 인원을 부풀린 이유가 되었음이 목격 되고...... 그렇게 며칠을 주경야독 하듯 뉴스를 보았고, 또 슬퍼했고, 분노했습니다.그렇게 나간 세월호 추모 첫 집회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라고 외치니 주변 분들이 그래도 그건 아니냐..시길래.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게 당연한거고 박근혜는 노력조차 않했으니 퇴진이 맞다..말해봤지만 그때까지는 많은 분들이 퇴진은 아니라고... 진짜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은 너무 착한거 같습니다.아직도 제 방에는 세월호 집회 때, 사 온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고 적혀진 노란 바탕의 걸개 현수막을 걸려 있습니다. 늘 보고 인터넷에 유가족분들과 망자가 된 아이들 기사가 날 때마다 시체팔이 운운하며 인신공격하던 많은 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라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미미한 싸움이지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모든게 명명 백백 밝혀져도 이 현수막만은 떼지 않겠습니다.시대가 낳은 불순한 정부.그 시대를 막지 못한 철없는 어른으로서늘 보며 이와 같은 시대적 착오가 없게행동하며 살겠습니다.
-
얼마 남지 않은 중간고사를 위해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뉴스를 읽었다. 지금은 21세기니까, 당연히, 큰 사고가 아닐거라 생각했고 이내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폈다.점심을 먹으며 보게 된 뉴스는 처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사망자 수와 변함없는 생존자 수를 보면서 절망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내 동생과 같은 나이였고, 죽음과는 너무나 먼 나이였다.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희망이 있을거라 생각했기에 열심히 공부했다. 그날도 나는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그때까지 믿어왔던 희망이 무너져 가는 것을 느꼈다.2016년 현재에도 나는 공부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희망을 빼앗기는 중이다.
-
그날, 생애 가장 지독한 몸살에 걸렸어요. 걱정이 되신 친정부모님이 4시간을 운전해 오셔서, 6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갔지요. 병원에 갔는데 tv에서 전원 구조라고 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그날, 그들은 300여명의 목숨은 물론, 300명의 부모님, 조부모님, 형제들의 삶까지 빼앗았으며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는 우리들의 숨통도 언제건 조여올 수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있었고 그날 데이오프여서 난 침대위에 누워 폰을 만지작거리고있었다. 세월호침몰 전원구조 속보를 보고 마음을 놓았으나 몇시간 뒤 다시 본 기사내용은 내 눈을 의심할정도로 바뀌어있었다......
-
2014년 4월 15일, 4월 17일은 누구랑 밥을 먹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4년 4월 16일...그날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대학생인 저는 평소와 같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책을 사물함으로 넣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책을 사물함에 넣고 과실로 들어가던 찰나, 한 친구에게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작은 어선이 침몰한줄만 알았지만 인터넷 기사를 보니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었다는걸 보고 너무 놀랐지만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마음을 놓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모두 잘 구조되겠지 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어 인터넷 뉴스를 보는데....제가 낮에 본 기사와 너무 달랐습니다. 배는 선수부분만 남은채 가라앉았고, 애타는 부모님, 가족들의 모습만이 기사에 남아있었습니다. 구조를 왜 하지 못할까라는 원망과 더 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못한 정부에 분노했습니다.저는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 그날의 기억을 잊지못합니다. 부디 희생자분들이 편안히 쉬셨으면 좋겠고 무능한 정부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0416
-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일주일쯤되었는데 항상 그 사람만 생각나던따뜻한 봄날이었어요수학여행가던 아이들을 태운 배가 가라 앉았다는소식을 듣고 시련이고 뭐고 회사 동료들과 하루종일 애들 걱정했어요전원 구조에 안도했는데...
-
그 날 오전, 2~3교시 법과정치 시간에 선생님과 수능특강을 풀고 있었죠.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 되었다고요. 저희 반 친구들이랑 다행이라며 안도했죠. 야자 끝나고 핸드폰으로 확인해보니 선생님께서 보신 그 기사는 오보였더라구요. 집가는 봉고차 안에서 기사 하나하나 읽으며 눈물이 글썽글썽. 결국 내리자마자 마중나온 엄마를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죠. 나오지 얼마 안 된 악동뮤지션의 "작은별"이란 노래가 있었는데 가사가 마치 어두운 배에 갇힌 단원고 친구들이 하는 말 같아서 들을 때마다 울컥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구요. 잊지 않을거에요. 반드시 기억할겁니다. 내가, 우리 모두가 기억할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해내는 모습을 따뜻한 그곳에서 꼭 지켜봐줬으면 좋겠네요.
-
학교끝나고 엄마와 전화통화하면서 집에오는 길이였다. 엄마가 배가 침몰했다는거 아냐구 하시길래 놀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원구조 되었다고 하셔서 오 다행이다.. 하며 별 신경을 쓰지않고 집에 돌아왔다. 리모컨을 잡고 티비 뉴스를 트는 순간 생존자: ~명 사망자:~명 이렇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뉴스를 보자마자 당황하였다. "엄..엄마 전원구조아닌가봐..." 말도 안돼.. 배가 저렇게 갈아앉고 있는데 전원구조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거고..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가는 학생들떠올리기가 겁이났다.
-
중학교 1학년때였고, 항상 하던 것처럼 카카오스토리를 즐겨하다가 카카오스토리에 세월호 소식이 알려지고 카카오스토리친구나 친구의 친구들 중에 유족이나 세월호 희생자의 지인들이 글을 올리며 많이 걱정을 했던게 기억에 납니다.
-
이날 새벽에 퇴근하고 자다일어났는데 뉴스가..하루종일 뉴스에서 시선을 못떼고 일하는도중에도 눈물이 계속 나던데..아직도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개인적으로 바다에 빠져서 구조된적이 있는 사람인데 사고의 기억으로 바다뿐만이 아니라 물에 대해 공포가 생겼다.근데 앞이 막힌상태로 의지와 상관없이 갇혀있었던 그분들의 고통이 상상됩니다ㅠ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오전 회의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 하려 하는데 속보가 떴어요.. 무사구조가 오보 였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서 하루종일 뉴스를 보며 심지어 뉴스를 틀어놓고 회사 사람들과 입응 모아 걱정 했어요..그 날을 어떻게 잊겠습니까못 잊습니다.. 생떼같은 아이들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만 봐야함이 그토록 발을 동동 구르게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고 제발 제발 하며 퇴근 후에도 몇날 며칠을 티비앞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고 거짓말 처럼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직장인의 평범한 아침이었습니다. 급한 일들을 하느라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었고 동료가 얘기해서 사고를 알았고요. 모두 구조했다는 기사를 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줄 알고 또 일을 하다가, 오보였다는 걸 확인했고 너무 놀라고 화가 났습니다.얘기해준 동료도 잊지 않고 있고 다른 동료에게 화를 냈던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기사를 보다가 화를 냈네요..) 그날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갔고 뉴스를 보면서 울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
2014년 4월 16일 참사 당시 대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보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tv를 통해서 참사 소식을 들었습니다뉴스를 보다가 전원구조 소식을 들었을때안심한 마음이 들어 시험을 준비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전원구조가 아니였고 오보였고구조되길 살아있길 물살이 잠잠해지길 바랬지만 우리의 바램과는 다른 소식들에 모두들 아파하고 슬퍼했습니다지금도 958일째 세월호는 바다속에 있습니다9명의 사람, 우리의 가족이 있습니다미수습자 가운데 한분이 제가 다녔던 학교 선배님입니다.미수습자 9명 모두 하루 빨리 가족분들의 품으로 돌아오고반드시 인양 되어야하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304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끝까지함께 하겠습니다
-
그 날은, 학년 전체가 수련회를 갔던 날이었다.부모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신나고 재밌는 2박 3일을 보낸 후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어렴풋이 잠이 들었었다.이윽고,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바로 뒤에 있던 TV를 쳐다보았다.TV에서는 어느 전문가와 뉴스앵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처음엔, 그저 사고일 줄 알았다. 몇시간 뒤면 모두 빠져나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줄 알았다.그저 대한민국의 12살 아이였던 난, 그렇게 알았다.집에 도착해 인사를 하고 잠에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엔, 내 휴대폰에는 수많은 알림이 와 있었다.내 카카오스토리에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만이 가득 차 있었다.나는 두려워졌다. 이 사고로 하여금 꽃다운 나이의 언니 오빠들이, 목숨을 지게 된다는게 화가 났다.왜 tv와 라디오에서 떠드는 어른들은 왜 그들을 돕지 않았던걸까? 왜 꽃이 지는것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7은 행운의 숫자라면서요. 대통령님?7시간동안 과연 무슨 일을 하신건가요? 그 청춘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들이, 우리 언니오빠들이 숨이 가빠올동안 대체 어디에서 뭘 하시고 계셨던건가요. 왜 그러신거에요.나는, 이윽고 시간이 흘러 14살이 되었다.난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못한다. 다른 이들도 그럴것이다.세월이 흐르고 내가 17살이 되어도, 18살이 되어도 자신의 꿈 한번 펼치지 못한 언니 오빠들을 위해 대신 힘쓰고 일어날것이다.난, 그들을 위해 촛불을 들었다. 세월호의 사람들을 위해. 내가 살아갈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