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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애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막내 아이랑 시간을 보내던 중 티브이에서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곧 전원 구조라는 희소식에 기뻐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뉴스 흐름에 하루종일 슬프고 우울하고 뉴스만 뉴스만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가와 함께 보내는 여느날과 같은 일상이었지만 하루종일 세월호에 관심이 쏠렸던 날이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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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입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 오전 9시부터 있었던 아침회의를 마치고 10시가 다 되어서야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와 기사를 보고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국가안보의 수장인 대통령이 처음 보고받았다는 그 시간이랑 같네요..) 1990년대 초반에 제가 초등학생일 때 있었던 서해훼리호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그런 큰 참사가 있었으니 이제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하고,, 기대를 했고,, 오전에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역시 이제 시스템적으로 대처를 잘 하는구나하고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전에 매일 헬스장을 가곤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헬스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풀고,, 샤워실과 가장 가까운 쪽의 런닝머신을 택하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할 때는 정오뉴스를 보곤했기 때문에 런닝머신 앞에 설치된 TV를 켰더니,,, 뱃머리만 떠있고 수장된 세월호의 참혹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면의 상단에는 구조자,,,수치가 나왔고, 아직 구조 못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나와 같은 그 하나하나의 생명과 인생과 세상이 티비 상단에 하나의 수치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호습이 멎었을지도 모르는 수몰된 학생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 건강을 위해서 땀흘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근무를 계속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았습니다. 세월호 내에 공기가 들어갈만한 공간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국가에서 나서서 먼가 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국가이니까요. 그런 국가를 믿고 저는 교육도 받고, 군대도 다녀오고, 그렇게 그날도 일하면서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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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날들과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고 근무를 하는중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는 배 한척이 기울어져 있고 전원구출에 성공 했다는 기사...하지만 얼마 뒤 전원구출이 아닌 생존자와 사망자 수가 보이는 기사를 또 접하게 되었습니다...만약 저 배에 내가 탔더라면 라는 생각과 부모님부터 떠오르게 되더라구요어린학생들이 그 배안에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잊지못할 4.16 기억이 없다는 우리나라대통령너무나 챙피하고 원망스러운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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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지인과 함께 웹사이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속보로 뜬 기사를 봤습니다. 화면상의 배는 약간 기운 상태여서, 큰 배니까 그렇게 빨리 가라앉지는 않겠지. 다 구조 되겠네.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다시 일에 몰두했죠. 오후에야 그 긴 시간동안 아무 구조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가 쏠려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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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시간 그날은 연구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내가 연구조사를 위해 완도 앞바다의 한 전복 양식장 에서 연구조사용 시료채취를 하고있던 시간입니다. 당시 전라남도 소속 연구선이 진도로 구조지원 가던중 우리 근처를 지나가기에 일행중 한분과 연구선의 선원분과 안면이 있어 잠시 정선한 후에 당시 세월호 상황을 들려줬던게 기업납니다. 당시엔 탑승객 전원구조라고 언론에 나왔으며 지원가시던분들도 대수롭지않게 현장 파악을 위해 지원 나간다 하였습니다. 여개선 침몰은 안타깝지만 승객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그래도 다행이다. 라며 대수롭지않게 여기며 본업에 충실했 습니다. 하지만 하루종일 바다위에서 쟉업하고 6시경 육상으로 올라와서 저녁식사하러 들어갔던 식당에서 봤던 뉴스에 경악을 금치 못했 습니다. 전원구조라던 뉴슨 최악의 참사로 보도되고있었습니다. 뉴슬 보던내내 무능력한 정부의 모습에 분노를 삭이지 못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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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출근였고 갑자기 나오는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으나 곧 모두 구했다는 보도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게 곧 오보라고 밝혀져 슬픔에 잠겨있던 하루죠.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조금씩 침몰해가는 배를 보며 빨리 좀 구하지 모하나 걱정하며 보낸 하루였는데 이걸 어떻게 기억을 못하는지... 온 나라가 다 슬픔에 빠졌던 날을...왜 기억 못하는지...선명하게 그날 있던일이 다 기억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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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나오는 속보를 보고 모두 구조가 되었다는 그 뉴스를 보고 안심을 했지만 ..오보였다는 사실에 너무 슬픈하루였습니다.당연히 모두 구출되어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지만 자기만 살겠다고 나왔던 선원들...너무 화가 나고 힘들더군요.미래를 책임져야 할 우리 학생들이 차갑고 짠 바다속에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는데요..대통령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우리 모두는 기억하는 그날을 잊었다니요..이 나라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런사람이라니 정말 화가 나네요..그날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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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백수였다.되지 않는 취업에 좌절하며 돼지마냥 잠만 처 자다가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 TV를 켜니여객선이 좌초됐다는 뉴스를 봤다.영상도 함께 나왔는데 , 다행히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고 헬기와 구조대가 이미 도착해 있길래, 아 그래도 사람은 무사하겠구나 싶었다. 곧 전원구조라는 뉴스도 들었다. 시간과 기상과 사람 3박자가 골고루 맞아서 큰 사고는 면했구나 싶었다.면접보러 오라는 전화가 오고, 씻고나서 면접을 보고 왔더니, 전원 구조가 오보였단 소릴 들었다. 뭔일인가 싶었는데배는 침몰해있고, 사람들을 못구했단다. 구명정이나 에어볼이랬던가 암튼 그거에 희망을 갖는단다..이건 뭔개소린가싶었다. 아니환한시간에 누군가 허리에 줄 하나 둘러 매고 하나하나 끌어내도 다 구할수 있는 시간에 한명을 못구했다니..순간 구역질이 났다. 이게 내가 사는 국가구나 싶었다. 내가 위기에 처했을때국가는 나를 구해주지 못하겠구나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는 유병언이란 놈의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쪽으로 언론이 몰아갔다. 1차 책임은 그놈한테 있을지 모른다. 그 사고는 물론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2차 책임은 국가에 있다. 멀쩡히 눈 뜨고도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다.천억번 양보하여 1차 책임자가 교통사고(높은 자리에 있는어떤개새끼들이 이 사건을 이렇게 불렀다지?)라고 치자. 2차 책임자들은 학살을 저질렀다. 죽어가는 것을 방관했다. 국민이 분노한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여야네 지랄맞은 소리말고,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거다.그때의 아픔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아픈데남을 아프게 한새퀴가 잊어버렸단다...그게 우리 사는 나라의 소위 윗대가리들의 머리속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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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당시 캐디였습니다. 첫 라운드를 돌고 점심식사를 하면서 보게 된 뉴스에서는 정말.. 영화에서만 벌어질 것 같은 소식을 듣게 됬습니다. 정말.. 제 주변 모두 걱정하면서, 동료들과 많은 사람들은 기도하며 울던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모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이게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됬죠.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곧 구조가 될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과학이 발전했고, 세상이 변했는데.. 하지만.. 끝내 구해지지 못했고. 우리 어린 학생들, 그 배에 타고 있었던 그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죄일까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많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그들 ..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겁니까.. 진실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엄중한 처벌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절대로 .. 절대로.. 이렇게 그냥 지나가면 안될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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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백수였던 저는하루종일 티비와 스마트폰만 쳐다봤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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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한 작은 장사를 하고 있었고,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속보를 듣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곧 딸아이를 만난다는 기쁜 기다림의 마음이 그날, 그 순간, 사라져버리는 순간 이었습니다.그날 저녁,생계를 위해 가게 문을 열고, 매장에 음악을 켜는 순간.."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장사를 하기위해, 손님을 위해, 즐거운 음악을 켜야 한다는 생각에.."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정말 몇 일이고 , 가게 문을 닫고 싶은 감정이 들더군요.저 역시 모든 국민들과 함께 우울증이 걸리는 듯 했습니다.임신중인 애기 엄마에게 우울증이 오는걸 막아 보려고 집에서는 아예 뉴스도 보지않았네요..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택시를 타도, 밥을 먹어도, 일을 하고 있어도모두가 TV 속 구조장면만 바라보고, 기도하고, 원하던 그 시간...그런데.. 어떻게? 그 시간이 기억이 나지 않을 수 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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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전원구조라고 하여.. 정말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사고당한 학생들도 일반인들도 정말 다 무사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번 수학여행은 절대 잊지 못하겠다고 웃어넘겼습니다.제가 세월호의 사고를 웃어넘길 수 있었던 건 정부가 발표한 전원구조라는 치명적 오보를 그 당시에는 한치의 의심 없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사람이라도 부상 당했다면 웃지 못했을겁니다. 한사람이라도 돌아가셨다면 더더욱 웃지 못했을겁니다. 제가 그 시간에 웃었던 게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생각납니다. 죄송스러워서요.배 안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난리가 났는데 그 시간에 속없이 웃던게 너무 죄송해서요..언론은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원구조라고....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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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입사한지 이제 6개월쯤 지났을 무렵여느날과 같이 교통지옥을 벗어나 사무실로 와 앉았다. 메일을 확인하고 녹색창 사이트를 열었는데 하나같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사건사고가 좀 많은 나라이던가..하루 달리 새로운 일들이 터지는 대한민국에서 대수롭지 않게 뉴스를 클릭했고, 전원구조 이야기에 안도하고 다시 업무를 보았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선배의 "헐"이라는 탄성을 듣기 전까지는 나에게도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여전히 같은 날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이 아니었다.그날 점심시간까지도 DMB를 틀고 다같이 돈까스를 먹었던 그 날은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잊지못할 다른 날이었다.노란색 리본에 대해 깨닫고카톡 프사를 노란리본으로 바꾸고페북 타임라인에 장식된 노란색 리본들을 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누군가 그랬다.대한민국은 국민정서가 냄비라고. "한 삼개월지나봐라..다 잊은듯 살거다.."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빡쳤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벌써 2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물에 갇힌 세월호는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 있고 누군가의 동생일, 누군가의 친구일 그들 중 몇명은 아직 얼굴조차 되돌려받지 못했다. 헬조선이 고조선이 된 지금나도 기억하고 그도 기억하고 우리도 기억하는 그날의 소중한 7시간을 고스란히 여기에 바친다. 있던 정 없던 정, 앞으로 생겨날 정도 다 없어지고 뭉개져버린 지금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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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산에 있었다. 아침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한다는 말을 듣고.. 뭐지... 라는 .. 나의 첫반응.. 곧 이어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는 "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구나" 라는 생각. 점심을 먹고 단원고를 지나오는데 이 세상 기자는 다 단원고에 있었던 것 같다.. 들어와서 들은 소식 어린 승무원과 학생이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뒤... 전원구조는 오보라는 보도... 눈물이 났다. 다음날 학생들이 병원으로 오기 시작했다. 싸늘한 몸으로 ... ....정신 없이 제자를 맞이하는 선생님,.. 친구를 맞이하는 아이들...언니.. 오빠를 보는 동생들... 밤새 오열하는 할머니................. 나중에는 눈물도 나지 않는 않았다.... 몇달뒤... 한 여학생이 부모님의 속을 오래 태운 뒤 수습이 됐다.. 그때 봤던.."돌아와서 고마워.. ㅇㅇ야." 잊혀지지 않는다... 잊을 수 없다... 안전한 사회가 되고 모든 어머니 가슴의 상처가 아물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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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매일매일 자소서와 시험에 치여 지내던 평소와 다를게 없던 날이었습니다 쉬는시간에 평소처럼 페이스북을 보다 세월호 사건을 들었고 다른 어떤 감정이 아닌 충격만이 같은 반 학생들을 느꼈습니다 정말 다를게 없던 날, 평소와 같은 그런 날 겨우 저보다 한두살 어린 학생들의 꽃이 꺾여버렸습니다 매일매일 길을 지나다니면 보이는 세월호사건에 대한 운동을 보면 그저 미안 할 뿐입니다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날 나는 무엇을 한 것 일까요 난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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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기억한다.출근을 한 뒤, 인쇄를 맡기러 근처 인쇄소에 갔었다.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뉴스는 생각보다 긴박하지 않았으며 나 또한 당연히 전원 구조가 될 줄 알았다. 너무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해지는 속보들은 점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기만 했다.도대체 왜? 라는 질문만 되뇌이며 답답해 했다.그리고 결국,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국민들은 모두 아팠다.당시 공연기획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세월호 참사 추모로 인해 모든 공연들은 연기가 되거나 취소가 되었다.몇일 남지 않은 공연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티켓을 구매한 분들 한분한분께 전화를 드렸다.천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 왜 미루냐며 원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렇게 대한민국은 아팠지만대한민국의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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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스마트폰으로 세월호 침몰, 승객 전원구조라는 내용의 제목 기사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월호가 원양어선 쯤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끔 나는 배사고...구했다는 사람이 수백명이나 될것이라 생각못하고 출근했다. 오전 근무 중 누군가 메세지 창에 배가 침몰해서 구조중이라고 했다. 모두 구조한거 아닌가? 하니 아닌것 같다고 했다. 다시 기사를 찾아봤다. 구조 기사는 오보였고 그 배는 여객선이었고 너무나 많은 인원이 타고 있었다. 점심을 보며 먹는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 줄 모르며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퇴근 후 티브이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정말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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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도덕수업 중이였는데 선생님끼서 큰 배사고가 났다고 했었다 나는 당시 별생각이 없었지만 학교수업이 끝나고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정말 큰사고여서 놀랐고 걱정했다 나랑 비슷한나이인데 그런 슬픈일을 당한 언니오빠들이 너무 안쓰러웠고 내가 대신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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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오보라는 소식에 믿겨지지 않던 기억점점 가라앉는 배 주위로 돌아만 다니는 해경에 답답했던 기억대통령이란 작자는 늦게 나타나 구명조끼 타령이나 했던 기억가슴 한켠에 깊은 상처가 났다.그 상처는 흉터로 남았고 볼때마다 상처의 기억에 아팠다.그래서 기억하길 피해왔다. 흉터를 보고 싶지 않아 덮어두었다.적어도 당신들은 나보다 큰 흉터를 상처를 가졌어야 한다.그런데, 기억나지 않는다고? 모른다고?백만개의 촛불로 달군 쇠도장으로 낙인 찍히면, 그때는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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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생자들과 같은 나이인 97년생이다 고등학교 2학년, 우리도 똑같이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고 그날은 음악 수행평가가 있었다. 평소 무음으로 해놓던 스마트폰이 그날따라 진동으로 설정되어있었는지 수행평가를 마치고 자리에 앉을때 지이잉 하고 울렸다 세월호 침몰 속보였다 그들이 배에 갇혀 살려달라고 외칠 때 나는 합창을 했다 대통령은 뭐하고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