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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인턴 중이었습니다.점심 먹기 전에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반에서 누군가가"지금 배 사고 났다던데?"라며 사고 소식을 알렸습니다.하지만 머지 않아포털 홈에서 "전원 구조" 라는 키워드로많은 기사들이 올라왔습니다.다행이다 라며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TV에서는 뉴스 속보가 나오고생존자의 숫자는 올라가지 않고사망자, 사상자, 실종자 숫자만 변동이 생겼습니다.심지어 탑승인원 조차 파악이 안되어몇 명이나 배 안에 갖혀있는지도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결국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지금까지도 말입니다.학생들의 7시간은 공포였고우리들의 7시간은 충격이었습니다.언론의 7시간은 방황이었고대통령의 7시간은 미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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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배가 가라앉고 있을 그 시간, 나는 영화비평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을 커피로 근근히 버텨가며. 강의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서 본 핸드폰에는 세월호가 가라앉았지만 전원 구조하였다는 기사가 쓰여있었고 난 그 기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가라앉았지만 아이들은 다 구조가 되었다고 했으니. 점심 식사 후에도 남은 한 시간 공강은 강의실에 먼저 도착해 잠을 청했다.정말로 이걸 내가 앉아서 듣고 있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딱딱하고 지루한 라디오 개론 수업을 들으며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있었다. 어차피 교수님은 프린트 내용을 참새처럼 읽어주시기만 하니까. 시험문제는 알아서 찝어주시리라 하는 믿음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시간을 보냈다.강의가 다 끝나자마자 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친구와 시청역까지 걸어가는 데이트를 했다. 얼굴 보는 시간도 적은데다, 중간중간 들러서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기에. 그 날은 유난히 산낙지가 먹고 싶어 근처 횟집에 들러 산낙지와 개불을 시켰다. 개불을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오늘은 꼭 먹어보라는 얘기와 함께 시선은 티비로 돌아갔다. 티비에서는 "어? 분명 전원 구조라고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눈 앞에 있음에도, 먹으면서 미안한 감정이 든 것은 분명 태어나고 처음이리라. 정작 그들을 구조해야하는 것은 나라고, 지켜줘야하는 것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방관만 했다. 자그마치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먹은 산낙지는 아직 내 속에 들러붙어 내려가지 않은 것만 같이 너무 답답하다. 난 그 7시간을 이렇게 생생히, 어제일 처럼 기억하건데 당신들은 왜 기억을 못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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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고 기사가 나왔고, 이내 "전원구조"라고 속보가 나왔길래 다행이다.... 하며 다시 업무에 집중했었습니다.그런데... 얼마 후 다시 접한 기사는 너무 충격이었습니다.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정말 나쁜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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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가 실검 속보를 보고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랬던 마음조차 너무 미안합니다ㅜㅜ 설마 설마 라고 생각하며...제발 제발 이라고 기도했는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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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저는 달라스에 한가한 가게에 서 일하고 있었기에 인터넷을 끼고 살았습니다.달라스 오후 다섯시 넘어서쯤.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7시가 넘었을때이죠...어디선가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가 올라와서 부랴부랴 라이브 뉴스같은것을 틀었습니다.배가 살짝 기울어져만 있었지 아직은 대부분이 물 위에 있었습니다.당연히 ! 다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계속 지켜 보았습니다.이상한것은 배 주변 바닷물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것입니다.배가 저렇게 기울어 가라앉고 있는데.. 왜 아무도 나오지 않지?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나와서 아... 다 구조 되어서 물에 사람이 없었던거구나.. 하며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와서 재차 확인을 위해 다시 티비를 켠 순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원구조가 오보라니... 오보라니...믿을수가 없어 각 방송국 라이브를 링크마다 다 열어 놓고 여기서는 무슨말 하나 저기서는 무슨말하나 다 틀어놨습니다.구조자는 초반 몇십명.... 배가 물위에 한참이나 둥둥떠있는걸, 나는 봤는데.... 왜 우리는 한명도 구하지 못한건지... 살겠다고 나온 칠십여명말고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우린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고 그것만 봤기에 너무 생생합니다.물위에 떠있던 배 부터 꼬리만 남았던 배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잊지 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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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지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네요.그리고 학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었죠.중학교, 고등학교 은사님들이 계신 곳 이었으니까요.모두가 나왔다는 소식에 안도함에도 잠시점점 실종자가 늘어나더니 말도 안되는 숫자가 뉴스에 표시가 되더군요...참담했습니다.저의 윤리쌤이였던 교감선생님은 스스로 아이들의 곁으로 떠나갔습니다.참으로 유쾌하신 분이었는데 그리 혼자서 책임지셨어야 했었는지진짜 책임질 사람들은 멀쩡히 저리도 돌아다니고 해서는 안될말도 저리 내뱉는데....왜 아직도 2년여나 지난 지금도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뭐가 그리 꺼림칙한게 많아서 이리도 숨기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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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뉴스를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평소처럼 씻고 등교를 했습니다. 고2, 학교는 기독학교였고 수요일은 항상 예배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예배준비를 하던 중 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흘깃 들었지만 너무 바빴기에 잘 구출이 됐으리라 생각하고 1교시를 끝내고 나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나가면 다 모두 세월호 이야기 뿐이었고, 다 구조가 되었다고 했다가 오보라고 밝혀졌습니다. 저와동갑인 친구들포함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했는데,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이 되었지만, 다 구조가 될 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리고있었죠. 그런데 어쩐지 싸하던 느낌에 직접 검색해봤습니다. 기사에는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 라고 언급되었고, 점점 불안했습니다. 초6때 전학갔던 학교에서 친했던 친구들, 반 친구들...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사실을 알게됐을 때부터 눈물만 계속 쏟았던 것 같습니다.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기사를 찾으며 실시간으로 뜨는 속보를 보고, 집에서는 뉴스보면서 차라리 이게 오보이기를... 이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주저 앉아서 꺽꺽울고,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와 전화하며 불안에 떨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구조가 될 거라는 믿음보다 불안함이 더 커졌고, 쉽게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제 친구들이 그 자리에 있었기때문에 물론 더 힘들어하고, 불안했지만 아마 그건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그랬을겁니다. 다만, 중요한 건 배가 가라앉는 시간동안 저를 포함해 온 국민이 모든승객의 구조를 염원하고, 믿고, 또 걱정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친구들을 포함한 배에 있던 모든 승객들은 두려움에 떨고, 힘들어했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구조도 제대로 이뤄지지않았을 뿐만아니라 정확해야하며 사실을 보도해야하는 언론이 오보를 했으며, 위급한 순간에 대통령께서 사라졌습니다. 7시간, 저에겐 당황스럽고 믿고싶은 시간이었고, 불안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는지 그로부터 계속되는 논란이 일고있습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집니다. 진실을 원해서 촛불을 밝히는 국민에게 진실을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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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복판에서 와인에 건배를 하며 신문 속보로 온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당연히, 곧 모두 구출되었다란 뉴스가 나오겠지"란 생각에 같이 출장 온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이후 매시간, 매분 마음 졸이면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란 생각...마음 졸이며 애타게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란 생각.. 지금까지 한 시도 그런 생각 놓은 적 없습니다. 어떻게 그 날을 잊습니까.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그 날은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됩니다. 그 날의 기억은 항상 제 기억 속에,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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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를가봤습니다 어렸을때 살던 그곳 그곳은 그대로인데사람들은 변했다하네요왜변했냐고묻거든그건 묻는사람이 더잘안다고 해주세요그렇게나마 하루하루를 쉬고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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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첫 뉴스를 수학여행을 끝내고 버스를타고 학교로 가던중 들었다. 뉴스가 뜨고 버스에선 친구들의 부모님과 우리부모님의 전화가 계속 왔던거같다. 수학여행이라는 공통점에 나도 모르게 무서웠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계속 봤다 . 계속 구출중이라 떴던 뉴스에 안심했던거같다 그땐 몰랐었지 그 구출중으로 인해 구출됨 사람은 많지 않다는걸 집에도착한뒤 티비로 다시한번 뉴스를 보며 알았다 정말 아직도 그 버스에서의 충격이 잊혀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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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사는 교포예요. 그 때 다라 잠시 한국 방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채널이 있었어요. 어느 방송사였더라. 각자 방에서 컴퓨터하고 핸드폰 만지기 자쁜 세 식구 인데.. 아버지가 속보를 보시고 소리치셔서 세식구가 거실로 뛰어가서 뉴스를 보던 기억이 나네요. 오보를 보며 엄마랑 부둥켜안고 울었지요. 시차때문에 여긴 이미 저녁이었는데.. 나중엔 다행이라며 세식구가 술도 한잔 한 것 같아요. 점점 뉴스가 앞뒤가 안맞는 것 같았지만 다음날 알았죠.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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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물에 잠기는 작은 유리창을 보며, 아무도 없나요, 하고 뉴스를 보며 수십 수백 번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왜 아무도 구해주지 않나요. 저기 사람이 있는데..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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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합니다.대학생 1학년, 4월.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가기 위해 여느 때와 같이 그 시간에 하는 뉴스를 틀어두고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속보가 떴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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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선생님이였던 우리언니. 이 소식을 접한 우리는 아이들 걱정에 밤새 대화를 나누고 이 썩어빠진 우리나라를 더 원망할 수 밖에없었습니다. 언니 학교 학생들도 수학여행 떠나기 직전의 시기라 더 걱정할 수 밖에 없었던 언니와 나. 같은해 12월 언니는 다른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그 다음해 회사 막내로 들어온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친구, 알고보니 단원고를 다니다 의정부로 전학왔는데 우연히도 언니네 학교 학생이였더군요. 세월호로 친구들을 잃은 우리 막내.. 우연한 기회로 친구가 되었네요. 더욱이 언니를 잊지못하고 세월호 사건을 잊지못하기에.. 간간히 광화문 세월호 미사에 참여하고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이 시국에 별이 된 아이들을 함께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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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2학년때였는데..배가 물에 빠졌다길래 뉴스 계속 틀어놓고 숫자만 보고 있었던...아니 당장 해경이랑 구조대 119 출동해서 건져내야지 뭐야... 그것도 대낮에;;;라고 하며 점점 소름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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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춥지 않던 날 학교 앞 싸구려 밥집에서 친구랑 점심을 먹고 있었어요. 동생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게 너무 부러워 친구에게 동생이 내 옷을 훔쳐 갔다며 험담인 척 자랑을 하고 있을 때 였어요. 제 이름을 부르며 친구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낡은 티비가 있었고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지금 어디냐는 문자를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동안 전원구조라는 소식과 오보였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제주도에 잘 도착했다는 답장을 받기까지 지옥에 있었어요. 동생이 탄 배의 바로 다음 배, 동생과 같은 해상에 있었던 그 아이들. 저는 그 지옥같은 순간을 잊어가고 있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에 살고 있겠죠.밥대신 눈물만 한가득 삼켰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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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며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는 아이들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설마 저렇게 바닷속으로 가라앉나 싶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구조하지 못한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공범인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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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7시간 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하교 할 때에는 전원 구조 기사를 접했습니다. 함께 하교하시던 선생님께서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오보였음을 알게 되었고, 순간 눈물을 글썽이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 속에서 울부짖었을 언니, 오빠 분들, 그리고 교사분들과 다른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모습이 하루종일 눈 앞을 아른거렸습니다.959일이 지난 지금, 저는 아직도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으려 매일 날짜를 셉니다. 그래서 더욱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 2014년 4월 16일, 7시간의 침묵의 까닭을, 그 7시간을 숨기려 하는 까닭을, 잊으려고 노력하시고 계신 건 아닌지.그리고 세월호 "사고"가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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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하다 11시경 뉴스를 접했어요.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사고가 났다고..모두 다 구조될거라 생각되어 뉴스를 접고 다시 일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길고 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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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아침, 남편이랑 같이 자가용을 타고 가고 있었어요. 남편이 라디오 뉴스를 듣고 "큰 배가 침몰했다는데?" 라고 말했고 저는 믿기지가 않아서 "(GPS며 휴대폰이며 요즘 같은 21세기에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그런 구시대적인 사고가 났다고?) 설마.... 금방 구하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뉴스를 들으면서 왔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방송을 보는데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제가 생각했던 21세기 IT 강국 대한민국은 탑승객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락가락 숫자만 계속 바꿔댔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계속 흘려보냅니다. 결국 저녁에 배가 뒤집어지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더군요. 보는 내내 "대체 왜......?"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니 위치를 못 찾은 것도 아니고, 소식이 늦게 전달된 것도 아니고, 뭐가 부족해서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머릿 속을 맴돌았습니다. 제가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에 4월 15일이 생일이라며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글을 올린 학생에게 "제발 무사하다고 글 좀 남겨줘요!" 라고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저도 아... 제발... 그 배가 아니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어요. 결국 그 학생의 누나분이 한참 후에 글을 올리셨지요. 가족의 곁으로 시신으로 돌아왔다구요. 정말 너무 너무 슬펐습니다. 아이가 고작 4살, 1살인데도 아이가 없다는 걸 상상도 못하겠는데 18년을 키운 아이를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잃은 부모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요. 감춰진 진실을 꼭 알려서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