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4월 16일 첫아이가 태어난지 281일째였습니다.발달이 빠른 아이들은 벌써 걷기 위해 물건을 집고 일어나 한발짝씩 걷기 연습을 할때 우리 아이는 기어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아이에게 용기를 주며 박수를 쳐 주던 날이였습니다.아이가 늦는것이 걱정스럽던 그날에...... 300여명의 학생들이 배에 갇혀있는데 단 한명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황당했습니다! 어떻게!! 인공위성을 쏘아내고 우주여행을 다녀오는것이 가능하다는 현재의 기술에 이런 말도 안되는 사건이 터지고 무능력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이 정부에 화가 났습니다! 난 겨우 281일째 아이 엄마로 살면서도 아이가 잘못될까 걱정하는데 그 300여명의 아이들과 가족들의 마음은 어땠을런지..... 사람이라면 가족이 있다면 이 끔찍한 기억을 잊을수가 있을까요? 오늘도 한 남학생의 생일이였습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주인공없는 미역국을 끊이고 가족들은 눈물이 담긴 미역국을 다 먹지도 못하고 하루를 보냈을겁니다. 미안하고 억울하고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을겁니다. 사람이라면 뇌가 있고 가슴이 있는 인간이라면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인양되지 못하고 2년이 넘게 차가운 바다속에 있는 이 불쌍한 아이들을 잊으면 안됩니다!!
-
회사에서 처음 소식을 접하고 꼭 모두 다 구조되길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오보가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고 팩트는 정말 아니길 바랬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너무나 소중한 생명으로 보여주신 분들. 잊지 않겠습니다. 너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
8시에 돌반 된 딸 아직 10개월된 아들 둘을 도우미이모님께 맡기고 아침에 회사 출근해서 회사직원한테 수학여행가던 배가 난파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몸이 약했던 첫아이 걱정에 자다가도 수시로 잘자고 있나 잠을 설쳤던 터라 차가운 물속에 있는 아이들이 남일같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날의 분노와 슬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내아이도 이렇게 소중한데...
-
정말로 그럴줄은 몰랐어요. 분명히 구조됬다고 믿었어요. 나는 그때 아직 어렸었지만 그것은 알 수 있었어요. 이 일이 평생 우리 가슴에 아로새겨질 상처라는 걸요.그날의 그 떨림이 아직 생생해요. 잊지 말아요. 언제까지고.
-
아무 생각 없이 평범히 지내던 나날 중 하루였습니다 딱히 불편한것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일부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평범히 학교에 가고 평소와 다름없이 별 쓰잘데기 없는 화제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집에 와서 뉴스를 봤을때 제일 처음 접한 소식은 "전원 구조했다 "는 소식 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줄만 알았습니다 그냥 수많은 사건중 하나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가볍게 여겨서 죄송합니다 당신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채 그저 7시간을 허비해버려 죄송합니다.사죄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겟습니다
-
친구들에게 연락을받고 말도안되는 거짓말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그 큰배가 침몰하는 동안에 아이들을 구조못했다는 말을듣고 상식적으로 말도안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는 잊지말아야 합니다. 이 어이없고 기막혔던 기억들을...어른으로써 창피하고 미안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
나는 그 날 집에 침대에 누워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자살기도를 하고 등교거부를 한지 한달째 되던 날이였다. 부모님이 하는 잔소리를 한 귀에 흘리고 있었는 데 뉴스소리가 났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 앵커의 소리를 들었고 곧 전원구조라는 속보에 "별거 아니잖아.."하고 잘려는 순간 엄마 아빠의 탄식이 들렸고 거실로 나가니 침몰하는 배와 탈출하는 사람들 나와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보였다. 너무 충격적이 였다. 저들은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나와 같은 또래들은 꿈도 못피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텐데...그날은 하루종일 뉴스만 보았다.또래 친구들의 부 모님이 울고 계셨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울어줄까...4.16일 그날은 내가 이때까지 살게해준 날이였다.
-
그 날 저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세월호가 뒤집어진 모습부터 가라앉아 뱃머리만 보이던 모습, 그리고 마침내는 물 아래로 완전히 침몰한 모습까지 그저 TV 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지금도 그 날 본 그 세월호의 모습들은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날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아와 제 아이들을 돌보았던 것을 알고 있지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세월호의 모습 뿐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이 다하는 날까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
내가 대단하지 못해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그 곳에서는 아픔 없이 나쁜 사람 없이 지내요우리의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봐 주세요우리는 언제까지나 외칠게요정말 미안해요당신은 제일 아름다워요더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 하늘이 데려갔나봐요하늘을 더 파랗게 하고 밤을 더 빛내라고 데려갔나봐요 아름다운 이들을 잊지 않을게요 기억할게요2014.04.16. 그 날의 일을......
-
뉴스를 확인했어요.수유쿠션에 아이를 눞히고 한손에 스마트폰을 든체 시간도 재고 뉴스도 보던 때였죠.아이는 이유식을 시작해서 수유 전에는 이유식을 먹였어요. 아침마다 하루에 먹을 이유식을 마련해서 매일 야채를 바꿔 주던 때였구요. 아이는 이유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서 밥알의 굵기가 작았어요. 고기는 굵게 간 소고기를 넣었죠.뉴스에서 배가 침몰 되었다고 하니 너무 놀라서 기도하며 페이스북에 공유 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보고 놀란 가슴을 가라 앉히고 도대체 왜 이런일이 발생했나 화가 났죠.그런데 아니 라니...봄인데 한동안 추웠다가 그날은 날이 꽤 따뜻했어요. 저는 서울에 있었지만 오늘 같은 날씨면 바다가 덜 춥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서 사람들이 구조되길 바랬어요. 그해는 벚꽃이 일찍 폈어요. 원래 예정된 벚꽃 행사보다 일찍 펴서 여의도에 벚꽃도 미리 보러 갔었어요. 따뜻했어요. 하늘이 맑지는 않았는데.하루종일 스마트 폰으로 소식을 확인했어요. 수유를 하고 나서 아이가 잠들때 저도 쉬어야 하는데 쉬지도 못하겠고, 밥도 못 먹겠고...아이의 다음 수유 텀까지 전원구조는 오보인게 확실 해졌고, 젖을 먹는 아이 몰래 숨을 참으며 울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아이가 커가는 게 너무 힘들고 지쳐있었는데, 이렇게 키운 아이를 잃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안되고 눈물만 나왔어요. 그 다음날 부터 추워졌어요. 비도 많이 오고, 벚꽃이 한창 필 시기에는 다 떨어졌던 기억이 나요. 그날이후 그 봄은 너무 추웠어요.
-
아침 출근시간이 8시30분 집에서 나오는 시간이 7시 50분 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보통 7시쯤 깨서 화장실 사용하고 씻고 하는동안 아침 뉴스를 틀어놓습니다. 얼핏6시 50분쯤 KBS 뉴스타임 날씨 나오기 전에 진도 부근에서 여객선이 멈춰 있다는 자막이 있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출근을 하고 9시쯤 간단한 스케줄 회의가 끝이났고 누군가 스케줄을 공유하는 카톡방에 10시경 전원구조라는 MBC뉴스를 전했습니다. 외근을 마치고 점심에 밥을 먹으려고 회사에 도착하여 여직원에게 몇명이나 구조되었냐고 묻자 아직 집계중이라 잘 모르지만 백명도 안된다고 아직 몇백명이 남았다고 뉴스를 전해서 그때부터 시시각각 뉴스를 검색하고 DMB로 방송을 들었습니다. 30분단위로 스케줄 공유하던 카톡방은 구조자가 몇명인지 물어보는 상태가 되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세월호의 안부를 묻는 시간들 이었습니다. 퇴근후 밤을 새가며 티비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
오전 9시, 10시즈음 연신 쏟아지는 속보들을 보며엄마와 이게 무슨일이냐고 어떻하냐고 수백명이 아직 배안에 있는데 지금 배가 다 가라앉는다고 손 붙잡고 발 동동거리며 뉴스를 봤어요. 수백명의 사람들, 어린 친구들이 아직 배 안에 있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구조를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건 사고가 오전에 발생한거니 구조작업이 순조로울 것이라 생각하며 속보를 지켜봤어요. 마음이 뒤숭숭해서 오후1시 전공수업에도 갈 엄두도 못 내고 티비 앞에서 기도하며 계속 속보만 지켜 봤어요. 다른일은 손에 놓은채 하루종일 전전긍긍하며 희망적인 소식을 들을수 있겠지 생각하며 인터넷과 뉴스속보에 매달렸는데.......그날은 잊을수가 없어요.
-
"진짜 익사이팅한 수학여행이그만, 그니까 왜 비행기를 안타고ㅋㅋㅋ"그래도 평생 말할 스토리는 하나 생겼네"모두가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제가 했던 말이에요.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말에 안심도 되고안산지역에 사는 사람이라그런지 괜히 타박도 하고그렇게 웃고 친구와 이야기 했던 걸로 기억해요.그리고는 점점 변하는 상황말도안되는 일이 하나 둘 전해오면서계속 뉴스를 확인하며 점점 공포에 떨었던거같아요.내가 무언가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가볍게 던진 말에 대한 가슴아픈 마음이한 명 이라도 더 구해지길 바라는 간절함이끝없이 몸을 휘감는 기분이였어요.
-
해외 인턴으로 몽골에서 소식을 접했습니다.한국으로 돌아오기 한 달전이라 다음 인턴 인수인계 준비도 하고, 마지막 웹진 작업 등을 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업무가 많아 정신이 없었는데 함께 일하는 친구가 "한국에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갔는데 배가 침몰했대, 근데 다 구했나봐~"라며 전해준 이야기에 "아, 그래? 다행이네" 라며 흘려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오후 근무를 했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남자친구와 톡을 하다 진도 여객선 뉴스특보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바로 이 세월호였습니다.그제서야 아침에 스치듯이 들은 수학여행 사고가 생각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늘이 무너졌을 사건사고에 내 얘기 아니라며 무심코 "어떡하니"라며 듣고 넘기는 제 모습을 본 순간 너무 무서웠습니다.반성하고, 반성합니다. 지금 드는 촛불이 진실을 찾는 데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95년 울릉도 채집을 위해 광주에서 포항, 포항에서 울릉도 까지새벽 6시에 출발해서 울릉도 숙소에 가니 밤10시였어요. 3학년 여학생들만 민박집에 티비가 유일하게 있던 안방을 내어 주시어 편안히 화장을 지우며 드라마보자하며 티비를 켰고 그 늦은 밤에서야 날벼락 같은 소식을 알게되었지요. 친구가" 울릉도는 드라마 안하나봐 다 똑같은 거 하는데 " 그러면서 "백화점이 무너졌데" "어느나란데?" "웃기는 나라네 백화점이 있을 정도면 잘 사는 나라겠네" 하며 비아냥 대며 사실 큰일 이라 생각도 못하고 모두 짐풀고 자기할일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우리나란가봐. 우리나라소방관인데 우리나라사람들인것 같은데 백화점이름이 삼풍인가봐." 2016년 4월 16일 아시는분이 겨울 옷들 물량이 밀려나온다며 세탁소 택붙이는 작업 좀 도와달라고라고해서 9시부터 두손 빠르게 일하고 있는데 11시쯤 지나가시는분이 "지금 애들 300명이 수학여행가다 배가 넘어져서 다 죽게 생겼는데 지금 일이되냐"며 핀잔하시더니 곧 "다 구했데 허허" 웃으시며 가시고 우리도 첨엔 "오메 오메 어찌까 어찌까" 하다가 농담이시죠 했더니 농담아니고 진짜라고 그런데 구했으니 괜찮을거라고 하며 가셨고 우리도 일 마치고 점심 먹고 집에 와서 티비켜니 . . . 그때가 3시 가까운 시간이였고"분명 다 구했다고 아저씨가 그랬는데 구했다고 전원구했다고. . ."혼자앉아서 되뇌이며 "세월호가 넘어진것도 사실이였고 수학여행가던것도 사실이였고 아저씨가 한말이 다 진짜였는데 왜 전원구했다는 말만 사실이 아닌가 " 전 집에서 학생 몇명을 가르치는데 김상만이라는 사람이 생각안난다고하는데 혹시 너희도 생각 안나니 했더니 무슨 과목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도 다 생각난다고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신 말씀이 진짜라면 당신들은 가족을 이뤄서도 안되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이거나 이 크나큰 국가적 슬픔을 한낱 가쉽으로 여기는 나만 잘살고 잘먹고 인 이기주의자인것이고 기억이 정확히 나는대도 거짓말을 하는거라면 저 하늘에 별이 된 아이들과 어른들은 용서한대도 5000만 국민이 아니지 여기서 4%는 빼야되지만 우리국민이 죽을때까지 죽어서까지 용서 하지 않을껍니다.그리고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 !!또 다시 여러분의 가슴을 후벼파는 이 기억들이 더욱 힘드시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이 아파하고 기도하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믿고 힘내세요. 법대로 하자는 사람 법으로 응징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지인 가게 놀러갔는데 아이들 탄 배가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를 봤죠. 조금 후에 전원구조라는 이야기 듣고 다행이다했죠 . 저녁 뉴스는 완전 다른 이야기더라구요. 저에겐 그 별이 된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은 늘 한쪽에 있는 아픔입니다. 너무 미안하고 미안한 그런 사람들.그들과 늘 함께 할거란 다짐을 해 봅니다.
-
우리 아들도 비슷한 나이라 너무도 아픈기억.그러나 잊으면 안되는 기억
-
2014 0416 그날은 약속한 만남이 있어 오전 6시경에 일어났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티비를 보고 있었다.티비 자막에 여객선사고가 있다는 걸 보았다.. 큰사고 이니겠지 하고 집을 나셨다. 틈틈히 기사를 보며 사고가 켜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12시에 점심하면서 순대집에서 티비를 보니 전원구출이라는 자막이 보여 다행이다,하며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오보였다. 아직도 내기억에 그날의 기억들이 뚜렷한데 정부관계자들은 기억이 안난다한다. 왜? 이해할수없다. 지금 2016.1201현재 박근혜를 보니 기억이 안나다가 아니고 기억을 집단적으로 상실시키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세월호의 진실은 반드시 밝힐 것이다..뒷일을 부탁한 사람들이 있기에~
-
설마 설마하다가 생떼 같은 아이들 수백명을 잃었습니다.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무척 아픕니다. 이유와 사죄 결단코 받아내야 합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음을 믿습니다.
-
그날도 출근을 했고점심 식사를 하러 가서야 그 소식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이미 그 때는 세월호가 뒤집힌 후였습니다 오전에는 몰랐습니다 그 아찔한 긴박함을 말에요우리는 기억합니다김관홍잠수사가 남긴 그 부탁"뒷일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