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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했다고 그런데 모두 구조 되었다고 하는 기사를 보고 아이쿠 큰일이 일어날뻔했구나 했지만 모두 구조되었다는 기사에 크게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서 오보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도 넘게 침몰되어있는 배 안에 있다는 기사를 본 순간 tv의 뉴스를 계속 그저 하염없이 쳐다보며 금방 구해주길 바라며 기다렸지만 이렇게 아무런 힘도 안써보고 그들이 그렇게 물속으로 떠나야했다는 그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대처와 엉망진창의 구조로 배안에서 애타게 기다리며 어떻게든 나오려 했지만 물속에 가라앉을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지금도 그저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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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시간들그 시간들 내내 먹먹했었고 코가 찡했었다티비에 나오는 영상들을 보며 설마 라고 생각했고 처음엔 우리나라 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믿기지 않았다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믿겨지지 않았다속이 타들어갔다그 차가운 물 속에서 어른들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만 생각하면 울컥울컥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뉴스를 통해 전해오는 아이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박수치며 다행이라고 안심했었는데....오보에 오보.... 어이가 없었다시간이 더 많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어른들에 무능함과 무지와 이기심에 화만 싸여갔었다끝내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영정시진들그 속에서 조차도 변명과 이기심만 가득 차 있던 어른들그 어떤 더러운 욕지거리를 해도 그년놈분들에겐 아까운 말들이었다세상 그 어떤 것 보다 예쁘고 사랑스러울 아이들7시간그 이상의 모든 시간들 나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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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다.내 아아이들을 보면서 울고 너무 허망해서 울고, 왜! 구하지 않는지 답답해서 울었다잊지않겠다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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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에 사고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가 그래도 전원구조 라는 뉴스를 보고 안심하며친한 언니와의 점심 약속으로걱정없이 장소로 갔었는데...ㅠㅠ돌아와서 그게 오보였다는걸 알고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르겠다.그래도 전문가들이 투입됐으니까 조금 다치긴해도 모두 구조될꺼라 믿었는데며칠 지나면서도 아무도 구조 되지않아단 한명이라도 구조해주길 바랬는데...안그러면 이 나라를 믿지 못하겠다고그런데 정말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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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늦은 아침을 먹고 여느때처럼 TV를 보다가 속보로 배가 기울었다는 뉴스와 함께 전원 구조라는 묽은 자막을 보고안도 했는데 오후 1시~3시 사이 방송 헬기는 생중계을 하는데 아이들을 구하는 헬기나 큰배가 안보여서 안타까워 했었지요.저희 아이 초등2학년 아들과 같이 배가 가라않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납니다.지금도 뼛속까지 아리는 느낌이네요.얼마나 무섭고 아팟을까?저는 아직도 그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억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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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을 다니던 중이라 평소와 같이 학교 내 카페에서 아침 스터디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어 단어 뜻이 생각이 나지 않아 검색창에 들어가보니 "세월호"가 검색어로 떠있고, 카페 안에 있던 텔레비전 속에 "전원 구조"라는 큰 글씨가 보이더군요. 함께 공부 하던 동기언니들과 "세상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타고 있었대! 전부 다 구했다니 얼마나 놀랬을까..." 하고 웃고는 11시 수업에 들어간 후 점심을 먹으러 나왔는데...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사라지고, 실종/사망/생존 수가 떠있었어요. 너무 놀라 옆에 있던 동기 언니에게 "언니, 사망자가 있대요! 아까 다 구조한게 아닌가봐요" 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점심을 먹은 후, 3시 수업에 들어 갔을 때는 사망자의 수가 계속 올라 가고 있었습니다. 그 날 교수님께서 "여러분,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던 건 보셨죠? 실종자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말씀 하셨구요. 집에 가는 내내 기사를 검색하면서 제발 한 명이라도 구조자가 나오길 기도했습니다. 그 날 밤, 실종자 숫자가 모두 사망자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저는 또 한번 좌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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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생이었어요. 수능 공부한답시고 매일을 독서실에 가고 핸드폰은 2G폰이라 쉽게 뉴스를 접할 수도 없었어요. 공부를 마친 밤 11시까지도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어요. 도서실에 대리러 온 엄마 차를 타니 엄마가 그러더군요.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되었다고. 큰일이 났지만 전원 구조했다니 다행이다 하고 자고 일어나서 인터넷을 켜보니 전원구조가 오보였대요. 아이들이 그렇게 되어가던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서 너무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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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 큰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 있는데.. 박근혜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하루종일 뉴스를 보며 다른 일은 못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박근혜는 기억해야 합니다. 국민 눈에, 마음에 피눈물을 냈다면 박근혜 당신은 목숨으로써 죗값을 치루길 ... 아무생각 없다는 듯이 원고만 띄엄띄엄 읽고 들어가는 그 모습... 역겹습니다. 화가치밉니다. 분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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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회사에서 일하다 점심을 먹으러 순대국집에 갔어요. 일상적으로 밥 나오길 딱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느낌이란 게 이상하더라구요. 옆 테이블 사람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티비 화면을 보니 바다 한 가운데에 배가 기울어져 있었고 저게 뭔일이야? 하고 어리둥절.그러다 밥이 나와서 받고 있는데 자막에 "승객 전원 구조"를 읽고 무슨 일인지 파악도 하기 전이지만 "어~ 다 구조했대~" 이러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죠.근데 저 큰 배의 승객이 많을 텐데 다 했다네?이런 생각은 했어요. 나중에 그 자막의 진위를 알고 나니 소름이 끼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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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린이집에 보내고 동생과 점심을 먹으러 들른 동생이 일하는 전자용품점에서 큰 여러개의 티비속에서 나오던 전원구조라는 뉴스..그때는 전원구조라고 해서 우와 다행이다 하며 동생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느즈막히 집에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아이들이 아직 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요..그날, 그시간을 기엇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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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이 안난다고 인두겁을 쓰고 말을 할 수 있을까그 날 유난히 약국에 손님이 적어뉴스특보 뜨는 순간 세개 PC 중 가운데 PC에 실시간 생중계틀어놓고 손님들과 도대체 이게 무슨일이냐며대화했던 것 까지 정확히 기억난다얼마 안지나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듣고다행이라며 신경을 끈것도 잠시오보라며 아직도 수백명이 배 안에 갇혀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구명조끼를 낀 상태라도 옆에 약사님이저체온증이 빠져나와도 더 위험할거라고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며했던 대화까지 기억난다 이 나쁜 양아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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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입니다. 출간을 앞두고 교정을 보고 있었어요. 진도는 잘 안 나가고, 틈틈이 인터넷 뉴스를 보는데, 속보가 떴습니다. TV를 켰죠. 배가 뒤집힌 채로 바다 위에 떠 있고,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라며 다시 PC 앞으로 돌아와 일을 했습니다. 틈틈이 궁금해서 인터넷 뉴스를 클릭했는데, 오보라는 소식이 뜬겁니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어떻게 교정을 봤는지도 모를 7시간이었어요. 그날 지인들과 카톡 대화를 나눴던 것까지 기억하는데, 왜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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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 9시 좀 넘은시간 후배가 메신저로 학생들이 탄배가 침몰중인데 전원구조래란 말에 그럼 날고 밝고 요즘같은세상에 전원구조가 당연하지란 대답을하고 내일에 몰두.10시 인터넷을보고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침몰하는 배속에 아이들이 있다는 말에. . . 난 생방송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봐야했다. 끔찍하고 소름이 돋았다. 내아이에게 어떻게 이 비극을 나라가 아무것도 안했다는것을 말했다 . 난 오늘도 그날 몸으로 느낀 소름돋는전율을느끼고 기억한다. 그날 우리는 같이 침몰했다. 하지만 우린 다시 일어나 너희를 기억해. 영원히 기억해. 잊지않아 내 눈물이 너희를 잊지않고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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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수요일.TV로 정오 뉴스를 보면서,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보았다. 정말 별일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구조됐다니까. 그런데 저녁 뉴스를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는 딸아이의 엄마여서가 아니라, 그냥 가라앉은 배 속에서, 그 배 안에서,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와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그 날의 비극적인 대참사 이후로, 난 부쩍 눈물이 더 많아졌다. "세월호", 이 세글자만 듣고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날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가방에 노란 리본 다는 것, 집 문과 차 유리창에 노란 리본 붙이기. 이것 뿐이어서 서럽다. 아무 것도 못하는 나여서 서럽다. 울기만 하는 나여서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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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같은 고등학생이라서 주변에 친구가 사고를 당하는 듯한 느낌일 정도로 슬펐습니다. 그 때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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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직 공부중이던 제가 2박 3일 다른 중학교 캠프에 일일 교사로 참여하던 마지막 날 아침이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 그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곧 전원구조라는... 기쁜 소식이 들려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가는 버스 안에사 학생들과 함께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왠걸 많은 학생이 배와 함께... 그 당시에 참담함이란... 이 사건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나라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게 된 사건입니다. 또 한명의 교사로서 학생들과 다른 교사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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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3중 추돌사고를 당하고 ,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병원 통원치료를 받으러다니던 때였습니다.병원로비에서 뉴스를 접했습니다.처음엔 전원 구조되었다는 말에 안심하고 집으로돌아간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워질줄 몰랐습니다.반드시 밝혀내야하고 정의는 이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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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서 업무를 마치고 다시 본사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첫 소식을 접했습니다. 여의도를 막 접어들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에 엄청 무거운 짐이 져진 듯 한 느낌이 들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마도 간절히 기도하도록 인도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불행한 첫 소식을 접한 그 택시 안의 기억이 강렬합니다. 누군가에 이끌려 기도하는 그런 느낌,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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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은 다 잊을거라고...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라고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그날의 잃어버린 7시간은 도데체 누굴위한 7시간이던가 반문을 던져본다. 뉴스 화면을 통해 산채로 수장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한탄을 금치못했다. 어부들은 배를대고 구조하는데 당신들은 당신 구조정들이 같이 빨려들어 갈까봐 지켜만 보고있다니....당신들 핏줄이 만약에 세월호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 했을까..명심해라 우리는 기억한다 그날의 그 사건을.시간은 기억을 흐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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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신교대에서 정신교육받고 있었엉세월호소식을 일요일에 교회가서들었다역시 닭이라 기억못하나보다그래도 다른닭들은 행복이라도주지청와대 닭은 에휴 몸에제일나쁜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