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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는 운동을 위해 스포츠센타에 도착해서 배가 침몰 한걸 들었고 11시 30분에 씻고 나왔을때 배는 거의 침몰 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소리에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가 티비를 틀었습니다. 게다가 내딸 아이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이라는 소식에 티비에 매달려 어서 빨리 구해내길 바라던 시간들이 하루하루 흘러 가며 내나라 에 대한 실망감은 분노로 바뀌고 벽에 막힌거 같은 일련의 후속 조치들로 인해 너무나 큰 아픔과 절망을 느껴야 했습니다.뉴스화면 한쪽에 마치 수능 디데이처럼 혹은 선거날 카운트다운처럼 숨진채 발견된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더이상 찾지 못한 인원이 줄어 가는걸 보던 날이 수일 수달이 되어가니 이제 그만 해야 한다는 주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게 참 가슴 아프더이다. 아직도 뉴스에 그날의 자료화면이 나오기만 해도 명치끝에 뭔가 얹혀 있는듯 숨이 차고 가슴이 아파 채널을 바꾸는 저로선 참 매몰찬 사람들이었습니다.그들은 그날의 진실을 은페하려는 정부의 사람들이 아닌 매일 보는 내주변의 이웃과 지인들이었기에 한번은 그러지 말자 말싸움도 해보았지만 한번 빗나간 시류는 돌아오지 않더이다. 원하지 않던 대통령이었기에 눈을 더 크게 뜨고 지켜 보고 있었는데도 뭐 하나 나아지는 것이 없고 다른게 아닌 틀린 것임에도 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는 현실에 한동안 뉴스를 멀리하며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그당시 시류에 편승해 그만하라며 이제 그만 됐다며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줬던 내이웃과 지인들이 이제 그날의 진실에 관심을 보이네요. 촛불은 들지 않으며 시류를 따라 온갖 말들을 해대는 저들을 보며 또다른 실망감이 몰려 오지만 저들의 관심과 지지가 남아 있는 바로 지금 그아픈 날의 진실을 밝혀야 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거짓과 불법이 판치는 우리나라가 상식이 통하는 나라, 거짓과 참을 구별 할수 있는 올바른 위정자가 통치하는 나라가 되길 너무나 간절히 원해 광화문에 열심히 나가려고요..이게 꽃다운 나이에 바닷속에서 아프게 죽어간 그아이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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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밤, EBS스페이스 공간 전인권 공연이 있었습니다. 지인과 생생한 라이브공연을 즐기고 파리바게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새날을 맞아 상쾌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양재천을 건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침 일찍 두 아이 학교 보내고 피곤해 잠들었다가 10시반 쯤 폰을 켜니 세월호 전원구조 뉴스가 떠있었습니다. 큰일날뻔 했구나하며 안심하고 다시 누웠다가 일어나니 세상이 발칵 뒤집혀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간 한가하게 낮잠 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남아있습니다.. 전인권씨 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구요.. 우리가 환호성 속에서 공연을 즐기는 시간에 아이들은 선상 불꽃놀이에"아!예쁘다!"탄성을 지르고 있었더라구요. 비극이 코앞에 다가온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 . ..그냥 그 장면들이 교차되면 말할수없는 비애감과 죄책감이 들어 얼른 다른 생각을 하며 피하게 됩니다. 며칠전 광화문에서 전인권씨를 봤을때도 묘한 감정이 일어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인권씨도 저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월호의 모든 의문과 박근혜의7시간은 반드시 밝혀져야합니다.대한민국이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안전하고 살만한 나라로 다시 태어나는 중심에 세월호가 있습니다. 유가족 여러분! 힘내세요. 큰 도움은 못드리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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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머리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바다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우리는 너희들의 엄 마.아빠다!!어찌잊을수 있겠니!!그날을 우리는 볼것이다~촛불의 정의가 세워지는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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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시간 울산 중학교를 다니는 제 딸도 수학여행중이었습니다. 세월호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철렁.. 딸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지만 걱정이 되어 급히 통화를 했습니다.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마음이 찹찹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했구요. 우리 딸이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면...여러번 생각하니 가슴이 멍멍해서 아무일도 못했습니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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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슬픈 한해였습니다.나도 이런데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들은 어떻게 살까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그날은 오전에 그냥 일반적인 해상사고인줄로만 알고 당연히 구출되려니 하고 생각했어요.바보같지만 배가 금방 가라앉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저는 그렇겠지만 구조할 분들은 배가 가라앉기때문에 빨리 구조해야 한다는걸 알았을테죠.그런데도 구조를 서두르지 않고 가라앉는걸 온국민이 보게 만들다니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무능한 시스템을 증명하는 일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죠. 솔직히 세월호를 잊은적은 없습니다. 단지 하도 어이없는 절망적인 일들이 계속되어서 어느것을 먼저 한탄해야할지 선택하지못했을 뿐입니다. 약사라는 직업을 갖고있어서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한 메르스사태. 의료기관을 병균의 온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온 국민이 서로를 경계하게 만든 저질스런 정책말곤 내놓지못하는 정부. 소설 페스트를 다시읽고 몇백년전과 비슷한 수준이라 더 어이없었던 기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우리를 하나되게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저 나쁜정권.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점인 할수있다는 긍지를 빼앗는 저들이 세월호를 농락하지 못하도록 지금 또 우리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기위해 눈 크게 뜨고 두번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힘내요 우리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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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이 침몰했다는 뉴스속보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던 종편을 통해전국민이 배가 전복되는 현장을 지켜봤다.속히 구조될 줄 알았는데...무사히 구조될 줄 알았는데..그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별의 별 얘기가 많았다.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왜 구조하지 못하는지7시간만에 나타나서는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을 찾기가 어렵냐는 칠푼이 같은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왜 진실을 숨기려는지, 왜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하는지그때는 몰랐다.단지 뭔가 있을꺼란 생각만 있을 뿐.아직도 미수습자가 있다.아직도 배가 그 자리에 있다.정말 몰랐다.박근혜는 대통령 껍떼기라는 걸.국가를 지들 대로 운영했다는 걸.대한민국이 이럴 줄 몰랐다.정말 나라가 이럴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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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70년 후반에 태어나 고등학생 시절에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 사건을 생생히 보고 자랐고 20대 후반에 유럽으로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세월호가 발생한 그 날은 평소 같이 회사에 출근했는데 아침부터 들려오는 참담한 소식에 일이 손에 안잡혔습니다저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그 가족들의 아픔이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그 후 한 두 달동안은 그 소식에서 벋어나질 못했던것 같습니다. 비록 멀리 나와 살지만 우리 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잊지 않고 살았는데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보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박근혜가 7시간의 행적을 자백하는 그 순간까지 이 날은 절대 절대 잊을 수 없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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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고 남편에게 문자를 받았다. 큰일났어! 로 시작하던 그 문자. 곧 전원이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문자로 소식을 보내주었는데... 당연히 큰 사고가 되지않고 수습되겠지, 라고 믿고 직장인학교에서 하루를 여느때처럼 수업하고 아이들 지도하며 보냈는데....퇴근할 무렵쯤 배가 침몰 수준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짜 놀라 뉴스를 봤다눈 앞에 두고도, 다 알고도 구하지 못한 무력감....믿기지 않는 현실....누가 그것을 단순히 여객선 사고라고 부를 수 있을까그건 나의 사고이고 나의 고통과 공포였다그것은 언제라도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세월호는 내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 될 것이다그 고통을 가늠하기조차 두려운 유가족들의 슬픔,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추모하며 같은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그 아픔을 아주 좃금이나마 위로하는 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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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동포입니다.뉴스를 거의 안보는데 외국인 친구가 현지 뉴스를 보고 한국의 여객선이 침몰한다고 알려줬어요.뉴스 화면을 보니 사망자가 없다길래 다 구조됐나보다하고 별로 신경을 안쓰고 다음날 예정되어있던 멕시코 휴양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인터넷이 호텔 로비에서만 겨우 터졌는데 밤마다 로비에 앉아 끊기는 화면으로 계속 한국뉴스를 봤습니다.골든타임안에 구해내겠지..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캐리브해에서 수영하고 스노클링하기에 물이 무섭고 끔찍해서 그리고 너무나 미안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우울해했어요.남편이 캐나다인인데 만약 이곳에서 그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100프로 구조했다고..미안한 말이지만 그후로 한국이 얼마나 위험하고 말도 안되는 구조 시스템을 갖췄는지 한동안이나 제게 놀려댔었지요.이곳에서는 정치인들이 자국민의 보호나 생명을 어떤 사상이나 이념보다 소중히 여깁니다.국민들은 국가를 그만큼 믿고 있구요.세월호 참사는 100프로 인재이고, 후진국스런 면모를 보여줬고, 국민들이 참고 넘어가서는 절대 안되는 일이었습니다.지금이라도 끝까지 파헤쳐서 직무유기한 사람들 중형에 쳐해야할것입니다.한국밖에서 바라다보는 한국 정부는 너무나 말이 안됩니다.권리를 포기하면 안됩니다.끝까지 싸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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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요.그날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고 점심이 되어서야 소식을 접하고 인터넷으로 속보를 보며 옆자리 직장동료가내가 숨이 막히는것 같아, 내가 서있는 여기 지금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 , 라는 말을 했습니다.이것도 기억나요.퇴근하는 길 버스에서 인터넷 기사를 보며 울었지요, 제 앞에 나란히 앉은 모자쓴 두 아주머니가애들이 그 배에 다 타고 있었담서?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아 이것도요.저녁준비를 하는 어머니가 뉴스속보를 틀어놓고 TV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어떻게 됐대? 계속 물었습니다 . 그날 저녁에 우리가족은 TV를 보며 칼국수를 먹었습니다.그리고 저는 그날 뉴스를 보느라 늦게 잤지요. 부디 아이들이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기를 바라면서요.저는 그날의 모든것이 기억납니다. 심지어 저녁메뉴까지도요. 여느 평범한 날과 똑같은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이념과 사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었던 어린 국민들을 위해 그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물론 분명히 어떤 노력이든 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의, 그리고 그날 스러져간 그 아이들의 대통령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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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습니다.오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사라져간 것을... 출장을 가려 차에 올라 라디오를 켰을 때 알아습니다.얼마나 무서운 일이 일어났는지 가슴이 떨려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눈물바보가 되었습니다길거리를 웃으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아도,.고1 이 된 딸아이의 학교행사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뉴스를 보면 가슴에서 분노가 솟아 오릅니다. 누군가는 트라우마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날의 일을 영원히 잊지는 않을 수 있으니까요, 잊지 않습니다. 가슴이 너무 시려서...너무 아퍼서... 너무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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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회사에서 핸드폰으로 배가 침몰되었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기사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 식당에서 본 뉴스는 전원 구조가 아니라 배 안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뉴스였습니다. 회사 분들과 계속 인터넷 속보를 보면서 모든 아이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 날은 적어도 정부가 최선을 다해 구조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전원 구조가 힘들더라도 정부가 끝까지 단 한사람이라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었던 어리석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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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날 뉴스를 계속보면서 출근을 하지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한행동을 알지는 못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구조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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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했고, 동료들과 계속 세월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원 구조했다는 것이 오보였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간 부모님들이 찬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그럼에도 아이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희망만은 놓지 않았습니다. 스무해도 못 채운 아이들과 수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구조 소식을 듣기 위해 계속 뉴스를 봤습니다. 혼자 구조된 어린 아이 소식에 안도하기도 했지만, 오빠가 구명 조끼를 주고 구조되지 못했다는 소식에 결국 목 놓아 울었습니다.생각하면 아직도 슬픕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그 날을 생각하면 슬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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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합니다.애도할수 있는 자유로 우리곁을 떠난 그들과 남겨진 우리를 위해 마음껏 슬퍼합니다.그리고 비로소 한발 앞으로 나아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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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을 기억합니다. 오전 내내 일하느라 인터넷을 보지 못한 채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세월호가 침몰중인데 다행히 전원 구조되었다는 얘기를 동료에게 듣고는 "참 다행이다"했는데 저녁시간에 이런 비극이ㅠㅠ ... 참 나쁜 대통령과 나쁜 사람들.. 왜 기억이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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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처음 뉴스를 접하고 그날 이후 너무나 큰 슬픔과 분노가 마음속에서 자리잡고 있었나봅니다. 그날 이후 너무나 가슴이 아파 우리 아이의 얼굴을 한없이 보고 또 보고 그러면서 눈물을 흘린적이 수없이 많았는데...또 눈물이 나네요....결코 잊지 않을겁니다..... 꼭 7시간의 비밀을 끝까지 찾아내서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천벌을 받게끔 해야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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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기억을 지울수 없습니다. 4월 16일 오전... 저는 논문 심사로 인해 밤을 세웠고 뉴스를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심사 전에 잠시 짬이 나서 배가 침몰했으나 전원 구조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별일 아니구나 했었습니다.. 하지만 심사 이후 탑승자 수나 구조자수... 계속해서 다른 수치가 발표가 되고 아직도 학생들이 차가운 물속에 있다는 기사가 계속해서 올라왔지요... 도대체 그날 윗분들은 뭐하고 있었는지... 국민들은 빨리 구조를 원하고 있으나 윗분들은 그렇지 않은 듯한 행동들.. 그러고 나서... 학생들이 부모님 또는 자매형제들에게 보낸 문자들이 공개 될 때마다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미안해.. 사랑해.. 보고싶어... 등등등어찌 이런 문자를 보고도.. 그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발.. 이번엔 제발.. 희생자들이 살아돌아올 수 없더라도 편안히 눈 감을 수 있도록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250만의 촛불이 5000만의 촛불로 번져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우리모두 지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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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남양주시 오남읍에 있는 서일대학평생교육원에서 세용형,윤기 셋이 캐치볼과 펑고를 받았습니다.휴대폰으로 진도부근에 선박이 좌초 됐다는 속보가 띄워져 있었습니다.전원 구출 했다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다 했지만 집에 와보니 오보였고 배가 가라 앉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글썽 거리면서 안타까워 미친줄 알았습니다.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기득권이 없어지길 바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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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동료들과 만났죠.남편이 애들이 탄배가 침몰했다고 문자가 왔어요. 회사 TV를 보는데 전원 구출이라고 나오더군요... "아 다행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더군요... 어떻게 그 날을 그 시간을 잊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