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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같은 아파트 큰 아이 학부모와 숯골원조 식당에서 냉면을 먹으며 tv로 배가 침몰 하는 장면을 봤다.아이들 엄마였던 우리는... 아이들 금방 구할거야~~~ 하면서 점심을 먹었다그날 이후...아이들 수학여행, 소풍에 엄마들이 예민해졌다.아이키우는 부모로 인 나는 세월호 동영상은 피하게된다.내 가슴이 꽉 막혀 숨쉬기 힘들 정도의 슬픔과 아픔이 느껴지기에......나도 이런데... 부모님 마음은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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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당시 장애인대안학교 교사였습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수업중이었는데 쉬는시간 동료교사로부터 사고소식을 들었습니다. 둘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전원구조"소식을 나누었기 때문이죠. 다시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데 오보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한뒤 뉴스 몇개를 찾아읽고, 영상을 보고 심장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제 눈앞에 있는 아이들과 똑같이 해맑았을, 수학여행에 신났을 아이들이 바다에 묻혔다니요.... 아이들에게도 이소식을 전했습니다. 지체장애 정신장애가있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했습니다. 몇몇아이들은 같이 울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본인들이 미안하고 꼭 살아돌아왔음좋겠다고 기도를 하더라구요.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정말 .... 하지만 잊지않을게요. 영원히요. 미안해요 지켜주지못해서. 좋은곳에수 친구들과 오래토록 행복하길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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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던 중에 배 침몰 했다고 근데 전원 구조라고 해서 믿고 그래도 다행이다 애기들 놀랐겠네... 하고 밥 먹고 다시 일끝나고 핸드폰 보니까 이미 난리 났던거... 버스에서 질질 짜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집 와서 씻고 밥먹고 침대에 누워서 다시 울었지 그날은 하루종일 무겁고 눅눅하고 먹먹했다.그날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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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8년차 였던 2014년 4월 16일 오전 열시경, 같은 학교의 한국인 친구를 연구실 앞 까페에서 만났었어요. 집에서 칠인지 접착제인지 냄새가 나서 괴롭다는 친구에게 제가 쓰지 않는 향과 향 받침대를 건네주기로 했거든요. 친구가 먼저 인터넷에서 사고 소식 들었냐며 말을 꺼냈죠... 아직 다 구하지 못한 것 같더라며 고개 숙이던 친구의 얼굴... 불행을 입에 담고 싶지 않아 그저 긴 한숨만 내뱉던 그 때의 답답함에 지금도 가슴이 조여옵니다. 연구실에서 흘끔흘끔 인터넷 뉴스를 체크하다가, 저녁 기숙사방에서 새로운 뉴스는 없는지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지며 받았던 충격과 당황스러움... 그 힘든시간 한국에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한국에 와서도 조그만한 힘 하나 보태지 못한 것이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에게 진 큰 빚, 오래오래 갚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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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뇌종양 수술 2주차...였네요...병원에서 아침밥 먹고, 티비에 서 뉴스가 나오는걸 봤죠무슨일인가...침몰??전원 구조? 다행이네......뭐 아직 사람들이 배속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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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그당시 회사는 바쁜 철도 아니었는데 바로 뉴스를 보진 못했었다.그러다 누군가가 배가 침몰해서 아이들이 갇혀있다는 얘길했고뉴스를 보았다. 다행히 전원 구출이란다.하지만 아니었다. 모든 국민들은 그렇게 초조하게 새로운 희망적인 뉴스만을 기다렸을 것이다.그 날이 7시간동안 회사에서 불안해하며 일도 손에 안 잡히며 떨었던 게 생생한데,왜 그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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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그 시간 차디찬 진도 맹골수도 앞바다에서 침몰된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들은 금방 구조될거라고, 아니 이미 벌써 구조되었다고 큰소리 뻥뻥 치던 경기도교육청과 정부는 이제 와서본인들의 책임이 없는 냥 인하무인으로 행동합니다.반드시 올바른 진상규명과 성역없는 책임자 처벌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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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하다 감기 기운으로 간 병원 대기석에 앉아 티비로 소식을 접했지 학생들 가득 태운 배가 뒤집어졌는데, 전원 구조됐단다아이고.. 수학여행가는데 고생하네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부모님 걱정하시지 않게 얼른 연락하길아픈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지 줄은 줄어들지 않았고속보가 속보를 누르며 전해지는 소식들은 가장 절망적인 뉴스만 알려준 채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지병원을 나오는 길나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들어가질 못했어 허무하더라고 그냥, 이깟 감기에, 살려고 아둥바둥 거린다는게의사쌤도 그냥 좀 쉬면시간이 지나면 나을거래그래서 그런가나는 지금까지 너무 아파그 때 나는 아무것도 못했어그저 전해지는 소식들을슬프게만 받아들일 뿐이었지안 아픈 척 덮어두려고도 했어이제는 화가 나무엇이 너희를 그곳에 머물러있게 하니우리 모두는 너희를 기억해그 기억을 건져올리려우리는 끝까지 싸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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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이빨이 우수수 다 빠지는 꿈을 꿨다.그리고 학교에서 동기들이랑 같이 밥을 먹는데 세월호라는 선체가 빠졌다고, 그런데 전원이 다 구출했다는 소식이 들어서 다행이다..근데 정말일까 라는 추측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거 다 오보고 생존자수보다 희생자수가 올라갈때 아..우리나라는 가라앉고 있구나 라는것을 느꼈다.하지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밝혀낼것이다.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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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차려놓고 밥 먹으면서 보려고 TV를 틀었는데 뉴스가 나오고 있었어요. 순간 멍해졌죠. 배에 탄 사람들이 무사히 구조가 되길 바라면서 계속 뉴스를 봤어요.. 아침을 먹는둥마는둥 했던 것 같고 오전에 볼일이 있어서 외출해야했는데 나갈 수도 없어서 뉴스만 지켜보는데, 배가 침몰하던 모습, 가라앉는 배안에서 뭔가를 들고 창을 부수려하시던 분의 모습....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4월 16일을 잊겠어요? 전 그날 가족이나 지인들과 한 대화 말 한마디도 다 기억이 나요. 꿈도 꾸었어요. 얼마 전에도 꿨어요. 기억이 안난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들, 그 거짓말로 진실을 숨기고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화가 납니다. 고통 가운데 배안에서 돌아가셔야만 했던 분들께, 아직까지도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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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빠로서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에게 무릎꿇고 눈물의 사죄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 눈물닦고 눈 똑바로 뜨고 저 거짓말하는 악한놈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납시다 ! 후대에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꼭 남겨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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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었습니다. 큰 사건 앞에 그저 놀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전 간부가 상황실에서 상황대기 중이었습니다. 저 또한 상황병으로 동료 몇과 함께 있었습니다. 뉴스에 집중하는 가운데 세월호 전원 생존이라는 속보가 나왔습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다행이라고 서로 토닥였으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쉬면서 있었습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별일 없었던 듯이 이야기하던 차였습니다. 여단장이 덕담을 하고 마치려는 순간 여단장 뒤에 화면에서는 생존자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확인해!" 생존자는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다시 확인해봐!" 해당 지역 해군과 해경은 연락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똑바로 확인 안해? 이게 말이 돼?" "해경새끼들에게 전화해봐! 구조 안해?" "저런 배로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미치겠다."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생존자가 변할 수 있냐고, 이게 말이 되냐고, 언론은 확인도 안하고 이런 기사를 속보라고 보내냐고... 마셨던 커피가 위로 올라올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간 그 상태였습니다. 누구도 웃지 않았고, 입에 밥이 들어가도 토해내기 일수였습니다. 계속 바뀌던 숫자는 어느새 172명에서 변하지 않았습니다. 전원 생존, 400여명, 300여명, 250명, 232명, 197명, 185명, 172명...생활관에서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416, 304... 뭐라고 기억해야 할까요. 그 사이에 어떠한 공식적인 발표조차도 없고, 필요한 시간을 훨씬 넘겨서 구조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그건 그저 확인작업이었습니다. 얼마동안 정부가 침묵했었는지 저는 잘 몰랐습니다. 7시간은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했던 시간이었습니다.저는 커피를 마시지 못합니다. 볼 때마다 아직도 남아있는 9명의 미수습자들이, 실종자로 표현해놓았던 9명의 친구들이 여전히 기억납니다. 그 역겨웠던 쓴맛이 여전히 기억납니다.416, 304. 저는 이 사건을 숫자로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월호, 고작 배의 이름이 이들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직 마지막 인사를 못하고 바다 속에 남아있는 친구들의 이름으로, 그 친구들의 이름이라면 기억이 될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은화, 다윤이, 현철이, 영인이, 고창석선생님, 양승진선생님, 권재근씨, 혁규군, 이영숙씨... 그분들의 이름으로 이날을 기억하겠습니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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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가 심한 날이었다. 아이들과 도시락들고 긴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황사가 어느정도일지 안봐도 뿌옇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언제 걷힐지 보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고, 사고 소식을 접했다. 교사들에게 "배가 가라앉았대" 모두 놀랐고, 다시 확인후 " 다 구조했대"라는 소식을 들었다. 긴나들이의 아쉬움으로 아이들과 얼른 보물찾기만 하고 오자고 흥천사로 다녀왔다. 정말 황사가 심한 날이었고, 뿌연 공기가 그대로 전해진 그런 날이었다. 보물찾기만 얼른 하고 돌아와 어린이집 안에서 놀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에 다시 접한 소식은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교사들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서로 어리둥절 하였고, 퇴근 후 티비를 통해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아프고 아팠다.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던 것이.. 다 구조했다고 하고선 이게 무슨일인지.... 사람의 죽음이 생중계되는 것을 지켜보는 참담함을 느꼈다. 아프고 아팠다. 그냥 "다 구조했대"의 소식에서 마무리 되었으면 좋았을걸.. 그때로 다시 돌아가 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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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과 나역시 죄인입니다..애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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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와 함께 TV를 보던 중에 뉴스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전원구조했다는 이야기에 다행이라 여겼었는데 얼마 뒤에 다시 내용이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구하겠지..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나라는 세월호 안에 갖힌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점점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 위정자들을 국민들을 구하려 하지 않고 있고 온갖 핑계를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죄값을 치뤄야 합니다. 이미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이들을 위한 복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억울하게 끝나서는 안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 앞으로 커갈 세대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짐을 져야합니다.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써 계속 촛불을 들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미안합니다...아무것도 해준게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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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대학교 시험기간이었습니다.졸린 눈을 뜨고 공부하다가 기사를 봤는데, 곧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친구와 정말 다행이라며 문자를 주고받은 기억이 납니다.그러나 결국 오보로 밝혀졌던 그 기사...분노했지만 외국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탓에 한없는 무기력함과 슬픔에 묻혀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교내 상담소를 다녀야 했습니다.대체 우리는 이렇게 함께 괴로워하고 평생 잊지못하는 세월호를그들은 무슨 권리로, 얼마나 뻔뻔하기에 잊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는걸까요?저는 잊지않았습니다. 잊지않을겁니다. 모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책임있는 자들에게 벌주기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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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아직도 기업납니다. 그 날 하루 기분이 어땠는 지. 얼마나 우리가 무력감과 절망, 슬픔을 느꼈는 지.우리는 보통 지난 주에 먹었던 평범한 점심 메뉴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죠.그런데 저는 그 날 먹었던 점심 메뉴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친구와 함께 먹었던 제육볶음. 그 식탁에 앉아 우리는 식당에 있던 큰 티비에서 나오는 속보를 보고 있었죠. "뭐야 저거 뭐야" 하면서 우리는 보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우리는 공부를 마치고 핸드폰을 뉴스를 켠 순간, 느낀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에게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전해주었어야 할 "국가"는 없었습니다.그런데 "아직도" 없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를 지켜주어야 할 그 "국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7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지 않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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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하루종일 회사 행사로 휴대폰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바빴습니다. 점심때쯤 얼핏 학생, 유람선 어쩌고 얘길 들었지만 별일 아닌줄 알고 다들 넘어갔죠. 행사가 끝나고 4~5시쯤 동료 3명과 택시로 회사로 이동하면서 그때야 큰일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차가 유턴하던 지점, 동료들이 택시에 앉아있던 자리 배치까지 기억나요. 모두 황당해서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고는 말을 잃었던 것두요. 다음날에도 혹시라도 생존자가 나오지 않을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끊임없이 뉴스를 새로고침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억이 안난다구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그 충격이 2년이 넘게 지나도 가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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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운동을 갔다오고 나서 TV를 잠시 보는데 여객선 사고가 났고 전원 구조라고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보였어요. 천안함 사건이 먼저 생각났어요. 해상에서 대형 참사가 연달아 일어나는지 정부는 천안함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 이해가 안됐고 희생된 많은 이들이 나보다도 많이 어리다는게 믿을 수가 없었어요. TV를 통해서 봤던 구조된 아이들의 표정도 기억이 납니다. 자기들에게 도대체 무슨 사건이 일어난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서서히 정신을 차리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요. 오후에 일하면서도 계속 뉴스를 보면서 제발 한명이라도 구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날 이후에 정말 고등학생 무리가 지나가는 것만 봐도 그냥 예쁘고 단원고 학생들도 이렇게 예뻤을텐데라는 생각에 그냥 눈물이 났어요. 그때 느꼈던 한톨의 희망, 슬픔, 좌절, 분노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요. 세월호 진실을 향한 우리 모두의 싸움과 노력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그러면 진실은 꼭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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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6 수요일은 수업이 없었습니다. 목요일에 서울로 갈 말레이지아 수학 교수 두 명과 교직원 식당에서 12시 전에 점심 약속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수리과학과 교수 휴게실에서 컴퓨터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보다 속보를 보았습니다. 커다란 사고이기에 교수 휴게실의 TV를 켰는데 몇 사람의 교수가 들어와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말레이지아 교수들과 점심을 드는데, 계속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니까 식당의 TV는 무엇을 보도하는거냐 저거 한국 이야기냐 묻기에 영어로 간단하게 설명해 줬습니다. 전원구조 뉴스도 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한국 기준으로도 아주 커다란 사고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even in Korean standard. 저녁에 집으로 갈 무렵에는 아침에 TV 화면을 녹화해둘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