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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지 까마득하다. 학교에서 우연히 네이버 실검 1위가 배 침몰 사건인걸 확인했다. 글쎄,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몰랐던 때라 그랬을까, 어떡해 어떡해 해대면서도 별로 관심깊게 담아두지도 않았다. 하교하고 나서 집으로 왔는데, 온 곳에서 그 얘기만 나오더라. 시간이 밤으로 갈수록 그들의 슬픔은 짙어지고 희망은 떠내려갔다. 우리가 이불 속에서 편안하게 그들의 사건을 볼 동안 그 들은 어디선가 차갑게, 아주 오랫동안... 저절로 침묵하게 된다. 아직도 그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뭐라도 했다고 나와야 할 뉴스에 좋은 말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고에 그리 슬프게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후에 이렇게 기억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며칠 지나면 금방 해결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멍청하게도 관심이 없던 탓이다. 그리고 정부의 눈속임에 넘어간 탓.그들은 잘못이 없다잊지말자, 그들의 아픔을. 올라갈 수 없었던 그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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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아요. 절대 잊지 않아요. 잊을 수가 없잖아요.故 김관홍 잠수사의 얘기가 저의 폐부를 찢습니다. "잠수사 이전에 국민이기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신들 차례입니다."이제 "왜" 꽃같은 아이들을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시켰는지 밝혀집니다. 감추려는 자, 숨기려는 자들 그들을 엄중히 단죄하고 처벌해서 "진실"을 수면 밖으로 끌어올릴 겁니다.위대한 대한국민은 비폭력 시민혁명을 완수해 갈 겁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이제 다시 쓰여집니다. 곪고 썩었던 부역자들을 깔끔히 도려내고 새 살이 돋게 치유할 겁니다.이제,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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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선생님께 어렴풋이 배 사고가 났다더라. 전부 구조됐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흘려넘겼습니다.집에 와서 핸드폰을 켜고 SNS에 접속하니까 다들 난리가 났었지만 두개를 연관짓지 못하고 시간이 늦어 학원으로 달려갔었습니다.학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아침에 그 얘기 들었었어? 근데 그거 오보라더라ㅡ 어떡하지, 진짜. 학원이 끝나자마자 저는 다시 예의 SNS에 접속했고,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뒤 늘어나는 사망자의 수를 반쯤 울며 계속 친구들과, 지인들과 세었습니다.다들 괜찮을거야.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이 구조될거야. 라며 애써 긍정적인 말을 했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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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날은 저희 학년 수학여행 간날 이였을거에요 그때 당시 폰은 아예 가져오지 말라하였고 세월호가 터진걸 알게되었던건 아마 휴게소에서 얘들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때 딱 휴게소 티비 화면 에 반쯤 가라앉어 버린 세월호와 빨간색깔의 자막이 뜨더라고요 그리고 주변에 있는 분들도 그냥 별인 아닌듯이 쑥 보고 가시길래 저희도 아무런 피해 없겠구나 했었고 수학여행때문에 정말 들떳기에 그대로 버스를 탔죠 그리고 숙소에서 티비를 켰는데 아침에 봤던 그 반넘게 가라앉은 세월호와 실종자 명단이 티비밑에 막 지나쳐 가더라고요 딱 드는생각이 큰일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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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는데 구조된 사람이 많아서 앞으로도 많이 구조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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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방에 들어왔을 때 선배가 세월호속보를 얘기해 주셨어요. 전 당연히 빨리 구출 될 거라 생각하고 딱히 관심을 두진 않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네요. 그날 나는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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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난 중학교3학년 이었다. 1교시 화학수업을 듣다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처음엔 별 것 아닌줄 알았던 사고가 이후 2교시때 담임선생님이 보여주신 뉴스를 통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 할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한교시가 끝나면 컴퓨터 실로 뛰어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보며 참 많이 울었다. 그러다가 에어포켓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속보를 보고 제발 그안에 있길, 숨이라도 제대로 붙이고 있길 기도했었다.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친구들도 많이 울었다. 나의 일곱시간은 그렇게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눈물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날 차가운 바다밑으로 가라앉은 아이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것은 같지만 감회가 새롭다. 수학여행을 가며 얼마나 설렜을지, 또 점차 잠기는 그순간 얼마나 무서웠을지 너무 잘 알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해줄수 있는게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우리가 해줄수 있는것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그 아이들을 기억해주고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진상규명을 할수 있게 , 가라앉은 진실을 밝힐수 있게 만들어 주는것이다. 기억하자 그리고 밝혀 내자. 진실과 아이들이 가야할 죽음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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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중에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들었고,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울기 시작했죠. 다 구조됐다는데 왜 우냐고 울지 말라고 달래주면서도 이상하게 친구들의 울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았었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참담한 뉴스가 흘러나오더라고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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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곧 중간고사가 있어서 시험공부를 한창 하고있을 때였습니다. 여느때 처럼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알려줘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보니 1살 언니 오빠들이 뱃속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배는 점점 기울어져가는데 사람들은 뭘하나... 안절부절 못하면서 지켜보고 또 빨리 구조학생 숫자가 늘어가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집에와서 내눈으로 직접 뉴스를보니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온몸이 떨리면서 티비앞에서서 눈을 못떼고 멍하니 뉴스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우리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함께 울어주고 영원히 기억하며 유가족분들과 함께 싸워서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모두 잊지말 고 기억합시다. 4월 16일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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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년전 4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연구실에서 처음 인터넷으로 뉴스를 봤고 곧 구조가 될거라는희망을 가지고 저녁에 집으로 갔는데, 오보였다는 소식에 너무 눈물이 났습니다. 밤늦게까지 뉴스를 보다가 자고 일어나면 좀 더 나아지겠지, 생존자가 꼭 발견되겠지, 구조 방법이 나오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며칠간 좌절이 계속되고 지금까지도 좌절의 반복이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미안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끝까지 수많은 촛불 중 하나가 되어 유가족 여러분께 힘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힘내십시요 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힘든 시간 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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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쁜 업무로 인해, 근무 시간엔 인터넷 뉴스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던 시절이네요.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동료로부터 배 사고가 났는데 다행히 모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행이네" 라는 혼잣말과 함께 잊었는데, 밤에 300명 넘는 인원이 그대로 침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었기에 세월호 안의 그 학생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팠었던 기억이 너무 생생합니다. "이게 나라냐!"라고 분노하면서도 너무도 무기력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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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었고 내아이도 수학여행을 준비하고 있던터라 수학여행간 학생들이 탄 배가 난파되었다라는 빨간색 뉴스 속보에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었던 날입니다. 아무일도 못하고 하루종일 채널을 이쪽, 저쪽 돌려가며 손에는 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봐가면 아이들이 무사히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바랬는데~~팽목항에 달려 가지는 못했지만...한명이라도 무사히 살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밤을 새운 날이였습니다.결국 바다에서 하늘로 가버린 우리 예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요즘은 매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갑니다.그때 팽목항에서 함께하지 못하고...구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지금이라도 꼭 진실을 밝혀아이들이 하늘에서 웃을수 있기를 바랍니다.미안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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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어 처연하게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그 날 이후 tv를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당일 스마트폰에서 침몰 뉴스를 보고 너무나 놀라 계속 지켜보던 중 11시 이후 전원 구조 뉴스를 보고 남편과 통화했어요. 그럼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 대낮에 그렇게 큰배가 사고가 났지만 당연히 구조돼야지. 애들이 수학여행 망쳐서 속상하겠다 했어요.그날의 오후는, 그리고 공기를 주입하던 뒤늦은 장단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그 희생양이 되다니, 그때 촛불을 들지 못한 점 죽을 때까지 스스로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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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핸드폰을 아침에 걷어서 종례때 주기 때문에 난 인터넷을 확인 할 수 없었는데 핸드폰을 안낸 반 친구 중 한명으로 인해 그날 일을 반 전체가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고 금방 구조 되겠지. 많이 무섭고 힘들겠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 뒤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뜨고 난 후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원구조는 무슨 허위기사라는 것을 알고 매우 화가났다. 친구들 중에는 원래 자기 친구가 타기로 한 배인데 갑자기 단원고로 바뀐거라면서 소름돋는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학교에는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본인 친구가 타고있다 라는 글을 보았다. 나와 동갑인 친구들,지금쯤 캠퍼스를 누비고 있을 친구들이 거지같은 윗대가리들 때문에 그 고통을 받았다는게 너무 분하고 꼭 진실이 밝혀져서 죄인들이 마땅한 죄를 받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또 그 모습을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른 죄밖에 없는 너희들이 볼 수 있게 우리가 많이 노력할게.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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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을 기억합니다.제주도를 향했던 여객기가 침몰 했지만전원 구조 되었다는 뉴스에 안도 했던 그날.기쁨도 잠시 안도가 지금도 악몽으로 남아 있습니다.무기력 했던 정부.,아무것도 못하는 정부.누구도 잘못을 인정 안 하는 정부 이제야 비밀의 문이 열리려나..슬픈 영혼들 아직도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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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구조되었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는건 잠시...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물속에 있는데 구조를 제대로 하기는 커녕 같은 방송만 무한 반복하고 언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현장 소식을 아프리카TV나 팩트TV, 고발 뉴스에서 찾아보고..허루하루 밤새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쳐가며 소식을 기다렸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날의 트라우마로 매일 술이 아니면 잘 수 없었던 그날들.. 반드시 진실을 밝시겠다며 평생 나가지 않았던 집회를 찾아가고 SNS기사를 찾아보고 배에 대한 전문적 기술을 배워가고 천만 서명을 길거리에서 받고..아이들이 편히 잠들 수 있게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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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 본 세월호 침몰..기사로만 접했던..일끝나고 집에서 뉴스를 보는데 어찌나 걱정되는지..주변에 배들이 많은 영상을 보고사람들 다 구했겠지..하며 계속 보는데..그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뉴스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네요..뉴스로만 보던 저도 이렇게 힘든데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지 감도 잡히 않던..세월호를 계기로 집회라는 것을 처음 가보고 정부의 어이없는 일들을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7시간이 밝혀질때까지잊지않고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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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우리 이제 더 열심히 살아보자며 내일부터는 다른 하루가 되자고 잔을 부딪혔다. 늦은 아침을 먹었다. 지금은 없어진 상수동 기사식당 에서 육개장을 먹으며 뉴스를 지켜봤다. 커다란 배가 바다위에 기울어져 떠 있었다. 함께 밥을 먹던 친구와 얘기했다. " 빨리 다 구조하면 좋겠다. " 그리고 오후에 수학여행을 위해 배에 올랐던 단원고 학생들은 일단 다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보였다. 그날 밤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하루 하루 죽어 올라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밤마다 꿈에 나타났다.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을지를 생각하면 눈물만 났다. 할수있는 것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잊으라" 했다.일상으로 돌아가라 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못했다. 그래서 노래를 만들었다. 죄책감은 가시지 않았다. 늘 아이들이 내게 말을 한다."제대로 살아" 달라고.2014년 4월 16일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미안하다면 잊지않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한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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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게도.. 그날 저녁까지 사고소식을 하나도 접하지 못했어요. 하필.. 그날은 너무 바빠서 핸드폰을 들여다 볼 시간도 없었기에.. 늦은시간 퇴근을 하면서 그제서야 뉴스를 접하고 뭐지..?? 저게 진짜 일어 난 일이야?? 믿을수가 없었기에 그냥 멍 하던 기억만..그시간... 함께 아파하지 못한 그 미안함이 지금까지 계속 세월호를 지켜보게 만들어주는 것 같네요.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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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일하면서 몰래 SNS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는 속보가 나왔습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안산의 학교가 나와서 더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엔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전원 구출되었다는 속보를 보고 "다행이다. 아이고 애기들 무서웠겠네." 라고 웃었습니다. 네, 나는 오보 하나에 안심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 후 정정보도가 나오고 그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는 그 날 동안 뭐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일을 하다가 퇴근했을 겁니다. 계속 나오는 속보를 보면서 제발 살아있기를 기도했을 겁니다. SNS에서 나오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연을 보고 울었을 겁니다. 반나절동안 보이지 않았던 대통령을 찾았을 겁니다. 그동안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왔다는 현실이 무서워서 사건을 외면했었습니다. 그래도 오보를 보고 안심하고 웃었던 나 자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제는 진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