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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소식을 어떻게 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친구와 메신저로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나눴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어요.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이 오보라는 것을 알았고, 시간이 지나도 늘어나지 않는 생존자수를 보며 너무 무서웠어요. 이게 현실이라니? 실종자가 몇 백명이라니? 더 이상 생존자가 늘어나지 않는다니? 내내 화면 위에 작게 떠있던 실종자/사망자/생존자 수가... 생존자는 늘어나지 않는 그 화면이 너무.... 절망적이었고 믿고싶지 않았어요.배가 점점 기울어서 가라앉는 모습, 물살이 빨라서 구조대가 접근할 수 없다는 이야기, 재난 컨트롤타워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 동안 아무 말 없었던 대통령..... 내가 사는 나라가 이렇게까지 싫어지기는 처음이었어요. 대통령의 무능력함이 치가 떨리게 싫었고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모두가 원망스러웠고 한없는 절망을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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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나는 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아침 컴퓨터 뉴스의 긴급속보를 통해 여객선이 바다에 침몰되고있으나 모든 탑승객들을 구조중이고 곧이어 구조가 완료 되었다고 기사를 접한 후 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중간지점에 다다랐을때 한 매점의 TV를 통해 전원구조가 아니라 사망자와 실종자가 구분되어있는 자막을 보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분명 구조했다고 두눈으로 똑똑히 기사를 보았는데.. 그럼 대체 2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기억합니다. 모두가 1년의 모든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자전거여행을통해 세월호 사건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자전거를 타기 전 기도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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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이 욕조 속 깊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들은 천천히 깊은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갔고 한번 떠올라 안도했는데 다시 깊이 가라앉아 꿈에서 너무 놀라고 가슴이 아파 고통스럽게 깨어났습니다. 그날따라 뉴스를 보지 않은 통에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 채 낮에 놀이터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 늦게서야 남편으로부터 세월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계속 티비 앞에서 마음을 조렸습니다. 안타깝고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시원스럽게 최선을 다해 구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화가 났습니다. 핑계만 대고 일부러 구조를 늦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화가 나고 답답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꼭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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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사고 소식을 접하고 일주일동안 공부도 잘 안되고 뉴스만 찾아보면서 엉엉울었던 기억이 납니다.유가족들 모습을 보는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과 제대로 처신하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이 너무 화가났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네요 2014년 4월 16일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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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기억합니다.우리가 어느 평상시의 날과 다를게 없었던웃고 떠들고 친구들과 재밋게 수업을 받던하나의 일상이엿던 날에나와 나이가 `한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형,누나들을 비롯해 일반인,승무원이 배에 갇혀잇다는건 솔직히 그때의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엿습니다.마음을 졸이며 어느 때와 똑같이 학교에 갔는데한 선생님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하셧습니다.선생님께서는 아이를 키우시고 계시는데 너무 공감이 되서 우시나 저도 울컥 슬픔이 몰려 왓던 날 이엇죠그런데 뉴스에서 골든시간은 존재한다, 구할수 있다, 구햇다 라는 말이 나왓을때 안심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보였죠 정상적인 선장이엿다면..적재물을 많이 안실엇더라면..가많이 있으라고 방송을 안햇더라면..수학여행을 가지 않앗더라면. 물론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죽을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거스를수 없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미연에 막을수 있엇던 살릴수 잇엇던 사건 아닐까요?왜 인간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 후회를 할까요? 아니겟지. 이정도 실어도 문제 없겟지. 언제나 우리 한국은 안전불감지대인걸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더불어서 구하려다가 돌아가신 승무원,민간 잠수사분들의 노력에 애도를 표하고 기억합니다.여러 정황을 모아서 그때 상황을 보면 단순 사고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선장? 배과적? 등등을 종합해보면 참.. 선장과 그 외 유병언에게 관심이 쏠려 추격전을 벌이다가 결국 죽엇다는데 시국이 이런 상황에 정말 죽은건지도 모르겟습니다. 그런데 슬픔을 뒤로하고오늘날 대통령과 더불어 속속히 의문이 현실이 되가고 있고 오늘 드디어 탄핵이 의회에서 통과되엇습니다.하물며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대통령이 언제나애매모호 하고 그냥 답이 안보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조차도 이런데 다른 재력가들 눈에 안보이는 비선 상상조차 되지도 않습니다. 억울하게 꽃다운 나이에 떠나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분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더 나은 대한민국의 내려 올사람은 내려오시길 바랍니다. 권력과 돈에 눈에 멀어 한순간의 결정이 당신뿐만아니라 다른 이에게 미치는 당신은 권력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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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지 까마득하다. 학교에서 우연히 네이버 실검 1위가 배 침몰 사건인걸 확인했다. 글쎄,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몰랐던 때라 그랬을까, 어떡해 어떡해 해대면서도 별로 관심깊게 담아두지도 않았다. 하교하고 나서 집으로 왔는데, 온 곳에서 그 얘기만 나오더라. 시간이 밤으로 갈수록 그들의 슬픔은 짙어지고 희망은 떠내려갔다. 우리가 이불 속에서 편안하게 그들의 사건을 볼 동안 그 들은 어디선가 차갑게, 아주 오랫동안... 저절로 침묵하게 된다. 아직도 그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뭐라도 했다고 나와야 할 뉴스에 좋은 말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고에 그리 슬프게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후에 이렇게 기억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며칠 지나면 금방 해결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멍청하게도 관심이 없던 탓이다. 그리고 정부의 눈속임에 넘어간 탓.그들은 잘못이 없다잊지말자, 그들의 아픔을. 올라갈 수 없었던 그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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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아요. 절대 잊지 않아요. 잊을 수가 없잖아요.故 김관홍 잠수사의 얘기가 저의 폐부를 찢습니다. "잠수사 이전에 국민이기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신들 차례입니다."이제 "왜" 꽃같은 아이들을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시켰는지 밝혀집니다. 감추려는 자, 숨기려는 자들 그들을 엄중히 단죄하고 처벌해서 "진실"을 수면 밖으로 끌어올릴 겁니다.위대한 대한국민은 비폭력 시민혁명을 완수해 갈 겁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이제 다시 쓰여집니다. 곪고 썩었던 부역자들을 깔끔히 도려내고 새 살이 돋게 치유할 겁니다.이제,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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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선생님께 어렴풋이 배 사고가 났다더라. 전부 구조됐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흘려넘겼습니다.집에 와서 핸드폰을 켜고 SNS에 접속하니까 다들 난리가 났었지만 두개를 연관짓지 못하고 시간이 늦어 학원으로 달려갔었습니다.학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아침에 그 얘기 들었었어? 근데 그거 오보라더라ㅡ 어떡하지, 진짜. 학원이 끝나자마자 저는 다시 예의 SNS에 접속했고,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뒤 늘어나는 사망자의 수를 반쯤 울며 계속 친구들과, 지인들과 세었습니다.다들 괜찮을거야.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이 구조될거야. 라며 애써 긍정적인 말을 했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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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날은 저희 학년 수학여행 간날 이였을거에요 그때 당시 폰은 아예 가져오지 말라하였고 세월호가 터진걸 알게되었던건 아마 휴게소에서 얘들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때 딱 휴게소 티비 화면 에 반쯤 가라앉어 버린 세월호와 빨간색깔의 자막이 뜨더라고요 그리고 주변에 있는 분들도 그냥 별인 아닌듯이 쑥 보고 가시길래 저희도 아무런 피해 없겠구나 했었고 수학여행때문에 정말 들떳기에 그대로 버스를 탔죠 그리고 숙소에서 티비를 켰는데 아침에 봤던 그 반넘게 가라앉은 세월호와 실종자 명단이 티비밑에 막 지나쳐 가더라고요 딱 드는생각이 큰일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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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는데 구조된 사람이 많아서 앞으로도 많이 구조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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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방에 들어왔을 때 선배가 세월호속보를 얘기해 주셨어요. 전 당연히 빨리 구출 될 거라 생각하고 딱히 관심을 두진 않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네요. 그날 나는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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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난 중학교3학년 이었다. 1교시 화학수업을 듣다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처음엔 별 것 아닌줄 알았던 사고가 이후 2교시때 담임선생님이 보여주신 뉴스를 통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 할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한교시가 끝나면 컴퓨터 실로 뛰어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보며 참 많이 울었다. 그러다가 에어포켓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속보를 보고 제발 그안에 있길, 숨이라도 제대로 붙이고 있길 기도했었다.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친구들도 많이 울었다. 나의 일곱시간은 그렇게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눈물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욱 마음이 아프다.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날 차가운 바다밑으로 가라앉은 아이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것은 같지만 감회가 새롭다. 수학여행을 가며 얼마나 설렜을지, 또 점차 잠기는 그순간 얼마나 무서웠을지 너무 잘 알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해줄수 있는게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우리가 해줄수 있는것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그 아이들을 기억해주고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진상규명을 할수 있게 , 가라앉은 진실을 밝힐수 있게 만들어 주는것이다. 기억하자 그리고 밝혀 내자. 진실과 아이들이 가야할 죽음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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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중에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들었고,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울기 시작했죠. 다 구조됐다는데 왜 우냐고 울지 말라고 달래주면서도 이상하게 친구들의 울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았었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참담한 뉴스가 흘러나오더라고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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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곧 중간고사가 있어서 시험공부를 한창 하고있을 때였습니다. 여느때 처럼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알려줘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보니 1살 언니 오빠들이 뱃속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배는 점점 기울어져가는데 사람들은 뭘하나... 안절부절 못하면서 지켜보고 또 빨리 구조학생 숫자가 늘어가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집에와서 내눈으로 직접 뉴스를보니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온몸이 떨리면서 티비앞에서서 눈을 못떼고 멍하니 뉴스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우리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함께 울어주고 영원히 기억하며 유가족분들과 함께 싸워서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모두 잊지말 고 기억합시다. 4월 16일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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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년전 4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연구실에서 처음 인터넷으로 뉴스를 봤고 곧 구조가 될거라는희망을 가지고 저녁에 집으로 갔는데, 오보였다는 소식에 너무 눈물이 났습니다. 밤늦게까지 뉴스를 보다가 자고 일어나면 좀 더 나아지겠지, 생존자가 꼭 발견되겠지, 구조 방법이 나오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며칠간 좌절이 계속되고 지금까지도 좌절의 반복이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미안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끝까지 수많은 촛불 중 하나가 되어 유가족 여러분께 힘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힘내십시요 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힘든 시간 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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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쁜 업무로 인해, 근무 시간엔 인터넷 뉴스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던 시절이네요.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동료로부터 배 사고가 났는데 다행히 모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행이네" 라는 혼잣말과 함께 잊었는데, 밤에 300명 넘는 인원이 그대로 침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었기에 세월호 안의 그 학생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팠었던 기억이 너무 생생합니다. "이게 나라냐!"라고 분노하면서도 너무도 무기력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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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었고 내아이도 수학여행을 준비하고 있던터라 수학여행간 학생들이 탄 배가 난파되었다라는 빨간색 뉴스 속보에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었던 날입니다. 아무일도 못하고 하루종일 채널을 이쪽, 저쪽 돌려가며 손에는 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봐가면 아이들이 무사히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바랬는데~~팽목항에 달려 가지는 못했지만...한명이라도 무사히 살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밤을 새운 날이였습니다.결국 바다에서 하늘로 가버린 우리 예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요즘은 매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갑니다.그때 팽목항에서 함께하지 못하고...구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지금이라도 꼭 진실을 밝혀아이들이 하늘에서 웃을수 있기를 바랍니다.미안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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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어 처연하게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그 날 이후 tv를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당일 스마트폰에서 침몰 뉴스를 보고 너무나 놀라 계속 지켜보던 중 11시 이후 전원 구조 뉴스를 보고 남편과 통화했어요. 그럼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 대낮에 그렇게 큰배가 사고가 났지만 당연히 구조돼야지. 애들이 수학여행 망쳐서 속상하겠다 했어요.그날의 오후는, 그리고 공기를 주입하던 뒤늦은 장단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그 희생양이 되다니, 그때 촛불을 들지 못한 점 죽을 때까지 스스로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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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핸드폰을 아침에 걷어서 종례때 주기 때문에 난 인터넷을 확인 할 수 없었는데 핸드폰을 안낸 반 친구 중 한명으로 인해 그날 일을 반 전체가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고 금방 구조 되겠지. 많이 무섭고 힘들겠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 뒤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뜨고 난 후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원구조는 무슨 허위기사라는 것을 알고 매우 화가났다. 친구들 중에는 원래 자기 친구가 타기로 한 배인데 갑자기 단원고로 바뀐거라면서 소름돋는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학교에는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본인 친구가 타고있다 라는 글을 보았다. 나와 동갑인 친구들,지금쯤 캠퍼스를 누비고 있을 친구들이 거지같은 윗대가리들 때문에 그 고통을 받았다는게 너무 분하고 꼭 진실이 밝혀져서 죄인들이 마땅한 죄를 받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또 그 모습을 어른들의 말을 믿고 따른 죄밖에 없는 너희들이 볼 수 있게 우리가 많이 노력할게.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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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을 기억합니다.제주도를 향했던 여객기가 침몰 했지만전원 구조 되었다는 뉴스에 안도 했던 그날.기쁨도 잠시 안도가 지금도 악몽으로 남아 있습니다.무기력 했던 정부.,아무것도 못하는 정부.누구도 잘못을 인정 안 하는 정부 이제야 비밀의 문이 열리려나..슬픈 영혼들 아직도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