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저는 대학교 시험기간이었습니다.졸린 눈을 뜨고 공부하다가 기사를 봤는데, 곧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친구와 정말 다행이라며 문자를 주고받은 기억이 납니다.그러나 결국 오보로 밝혀졌던 그 기사...분노했지만 외국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탓에 한없는 무기력함과 슬픔에 묻혀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교내 상담소를 다녀야 했습니다.대체 우리는 이렇게 함께 괴로워하고 평생 잊지못하는 세월호를그들은 무슨 권리로, 얼마나 뻔뻔하기에 잊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는걸까요?저는 잊지않았습니다. 잊지않을겁니다. 모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책임있는 자들에게 벌주기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2014년 4월 16일.아직도 기업납니다. 그 날 하루 기분이 어땠는 지. 얼마나 우리가 무력감과 절망, 슬픔을 느꼈는 지.우리는 보통 지난 주에 먹었던 평범한 점심 메뉴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죠.그런데 저는 그 날 먹었던 점심 메뉴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친구와 함께 먹었던 제육볶음. 그 식탁에 앉아 우리는 식당에 있던 큰 티비에서 나오는 속보를 보고 있었죠. "뭐야 저거 뭐야" 하면서 우리는 보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우리는 공부를 마치고 핸드폰을 뉴스를 켠 순간, 느낀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에게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전해주었어야 할 "국가"는 없었습니다.그런데 "아직도" 없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를 지켜주어야 할 그 "국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7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지 않을텐데요?
-
당일 하루종일 회사 행사로 휴대폰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바빴습니다. 점심때쯤 얼핏 학생, 유람선 어쩌고 얘길 들었지만 별일 아닌줄 알고 다들 넘어갔죠. 행사가 끝나고 4~5시쯤 동료 3명과 택시로 회사로 이동하면서 그때야 큰일이 났다는 걸 알았습니다. 차가 유턴하던 지점, 동료들이 택시에 앉아있던 자리 배치까지 기억나요. 모두 황당해서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고는 말을 잃었던 것두요. 다음날에도 혹시라도 생존자가 나오지 않을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끊임없이 뉴스를 새로고침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억이 안난다구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그 충격이 2년이 넘게 지나도 가시지 않습니다.
-
오전에 운동을 갔다오고 나서 TV를 잠시 보는데 여객선 사고가 났고 전원 구조라고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보였어요. 천안함 사건이 먼저 생각났어요. 해상에서 대형 참사가 연달아 일어나는지 정부는 천안함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 이해가 안됐고 희생된 많은 이들이 나보다도 많이 어리다는게 믿을 수가 없었어요. TV를 통해서 봤던 구조된 아이들의 표정도 기억이 납니다. 자기들에게 도대체 무슨 사건이 일어난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서서히 정신을 차리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요. 오후에 일하면서도 계속 뉴스를 보면서 제발 한명이라도 구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날 이후에 정말 고등학생 무리가 지나가는 것만 봐도 그냥 예쁘고 단원고 학생들도 이렇게 예뻤을텐데라는 생각에 그냥 눈물이 났어요. 그때 느꼈던 한톨의 희망, 슬픔, 좌절, 분노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요. 세월호 진실을 향한 우리 모두의 싸움과 노력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그러면 진실은 꼭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믿어요.
-
2014. 4. 16 수요일은 수업이 없었습니다. 목요일에 서울로 갈 말레이지아 수학 교수 두 명과 교직원 식당에서 12시 전에 점심 약속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수리과학과 교수 휴게실에서 컴퓨터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보다 속보를 보았습니다. 커다란 사고이기에 교수 휴게실의 TV를 켰는데 몇 사람의 교수가 들어와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말레이지아 교수들과 점심을 드는데, 계속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니까 식당의 TV는 무엇을 보도하는거냐 저거 한국 이야기냐 묻기에 영어로 간단하게 설명해 줬습니다. 전원구조 뉴스도 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한국 기준으로도 아주 커다란 사고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even in Korean standard. 저녁에 집으로 갈 무렵에는 아침에 TV 화면을 녹화해둘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는 그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 많은 18살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많은 학교가 수학여행이며, 체육대회며, 많은 행사들을 앞두고 있거나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 역시 그랬고 저와 저의 친구들은 곧 있을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설렘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날 역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야, 지금 배 침몰한대!"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저희는 곧 배를 타고 있던 모두가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오늘 있었던 뉴스를 보는데,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그 날 같은 반 친구들의 설렘의 목소리, 행복의 목소리, 그리고 소식을 접한 후의 우려의 목소리, 안도의 목소리 기억합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모두 기억할 것 입니다. 그런데 왜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 저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었습니다. 희망이었고 꿈이었습니다. 저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의 모습들, 대한민국의 모습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밤새 뜬눈으로 지켜보며 곧 구조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주위에 작은 고깃배들 몇척만 보이고 예상과는 다르게 시간만 흘러서 아침을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 타이타닉을 봐도 배위에 아수라장처럼 사람들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정적만 ㅠㅠ문제는 "가만히 있으라"......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
송도로 외근을 나갔다 동료들과 점심 먹으면서 TV 봤다. 애들이 탄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무사히 구조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오보였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아직도 그 때는 이상한 꿈같다.
-
평범한 15살 중학생입니다. 저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의 철부지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날은 학교에서 소풍을 갔던 날이었어요. 그저 철없이 친구들과 놀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의 티비에서 저랑 얼마 차이 나지 않은 언니오빠들이 그 배 안에 갖혔다고 하도군요. 처음 뉴스를 봣을때는 많이 안가라앉았었어요. 집에와서 확인해 보니 더 가라앉아 있었고 그 좋아하던 만화도 보지 않은채 뉴스만 봣었어요. SNS에 올라온 언니 오빠들. 다른 분들의 마지막 문자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기도 했어요.2년이 지났지만 그때 이후로 저는 소풍을 갈 때면 항상 뉴스를 켜보고 책상 위에 노란 리본을 걸어놨습니다.2년 동안 4월 16일이면 기도를 하고 있고, 그 희생자 분들을 떠올리고 있습니다.아직 어린 저도 이렇게 기억이 또렸합니다. 2년이 지나던. 20년이 지나건. 죽고 나서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저는 그날의 기억을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평생 어린 꿈들을 짖밟았던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던 사회를 기억할 것입니다.
-
그때 학교수업중에 갑자기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고 학생언니오빠분들이 구조되고있다는 글을 보고, 아무일이 일어나지않고 다같이 집으로 돌아갈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어요 정말 너무 안타깝고 기사를 보면서 얼마나무섭고 집이 그립고 어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보고싶으셨을까 하는 마음에 진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힘드셨고 무서운시간을 보내신 언니오빠분들을 잊지않을것입니다
-
세월호7시간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ㅠ 모두 기억해요 ㅠㅠㅜㅠ !
-
바빠서 회사에서 핸드폰도 못보는데 누가 제주도 가는 배가 침몰했다고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니 전원구조했다던데 다 거짓말이더군요전 국민이 기억하는데 청와대 관련된 사람들만 기억못하는건 단체로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었나요?누구보다 똑똑한 당신들 부끄럽지 않나요?공무원으로서 의사로서 군인으로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자식들 앞에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마세요
-
전 그날 우리 아들이 2박3일 학교에서 단체로 수학여행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답니다너무나 거짓말같은 일이라 뉴스를 보면서도 꿈처럼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한나라의 국민으로서 스스로도 부모인 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들에게 향한 우리의 분노도 멈추지않을것입니다~자식에게 부끄럽지않은 부모가 되세요!
-
잊혀지지않는 슬픈기간을 어찌그리 지웠다 말할수 있을까요~ 무엇인가를 배우려 다니던중이였고 구조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가슴이 요동치던 그순간을 . 기억합니다. 전원구조라는 오보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가 잘못된 보도라는 사실에 텔레비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영화처럼 그 며칠동안 어딘가에서 살아돌아올수있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목이메입니다.
-
18개월 아들을 업고 뉴스를 봤는데 배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업고 뉴스를 보며 어쩌노 어쩌노 아이들 어쩌노..부모는 소식을 들었을까 하며 같이 울고 있었습니다.경남사천 살았는데 날씨가 그렇게 맑지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
2014년 4월 16일...그날 전 아니 저희 가족들은 세월호 사건 시간에 병원에 있었습니다...그날 이른 새벽 친정 아버지께서 119에 실려서 병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그날 모든 가족들이 병원 응급실에서 날을 샜고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을때 저희는 중환자실옆 보호자 대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뉴스를 보면서 모두 구조 했다는 오보를 직접 봤고그 후로도 계속 뉴스를 보고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원에 드나들었습니다...세월호의 비극과 친정아버지의 비극이 같은날 벌어졌습니다...내 평생 잊을수 없는 하루입니다....
-
대전에서 아들 유치원에 보내고 오전 급하게 기차표 예매하고 서울로 가면서 핸드폰으로 실시간 상황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바다위에 엎어진 배를 조면서 구조가 되지 않는 답답함에 많이 분노하고 어이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기억합니다. 아주 또렷히.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요? 누가봐도 거짓말인데. 정말 뻔뻔하기 이를데 없네요. 하루 종일 핸드폰 실시간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우리 외할머니 돌아가신날... 그래서 더 슬펐던 날. 저는 기억합니다.
-
학생이라 핸드폰을 내는 상황이어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확인을 했습니다. 방과후 수업을 하러 교실로 올라가던 중 한 친구가 수학여행 가던 배가 빠졌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놀라고 당황스러운 어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음 해, 저희 학년이 수학여행을 갈 때, 저희는 그때의 아이들과 같은 제주도에 갔습니다. 제 수학여행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날도 함께 떠오릅니다. 어떻게, 잊으실 수 있나요.
-
교실 앞 큰 티비로 반 아이들과 함께 뉴스를 보았습니다.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친구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수업 분위기가 침울했고 집중도 안되고 슬퍼지고 마음이 칙잡해졌습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에 집중하시기 힘들어하셨습니다. 유가족들이 울면서 팽목항을 지키는 모습, 체육관에서 시신이 발견되길 기다리며 울고있는 가족들의 모습등을 쉬는시간마다 보며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7시간만이 아닌 지금까지도 세월호에 대해 명확한 발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왜 죽었어야 했을까요 ? 실제 침몰이 있고 몇시간동안 아무도 구조를 하지 않았고 구조요청까지 취소했습니다.일부러가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친구들과 학교에서 나눠 단 노란리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발 명확하게 해결해주세요
-
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고3의 봄날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반 아이들 다같이 모여 점심시간에 음악방송을 보려고했을때, 기사를 처음 접했습니다. 반아이들 모두 경악을 금치못했지요, 그러나 전원구조소식에 "와 다행이다..."라며 모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모두 끝나고 휴대폰을 받아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자, 그것이 오보라는 것을 접했습니다. 야자시간에도, 학원에서도... 제 눈길과 마음은 온통 한살어린 동생들에게 가있었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결국 제게 다 잘될테니 이제 공부하자고 말씀하실정도로 집중하지못한 하루였어요. 저는 고3이었는데, 금요일에 (사설이지만) 모의고사가 있었는데도 아무생각도 들지않았어요. 다음날 모든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언급하셨어요. 상황은 날로 안좋아지고, 그날은 마침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라디오 DJ를 하던 날이었어요. 저도 용기내 처음 사연을 보내보았습니다. DJ가 제 사연을 읽어주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 사연이 읽히지 않았다면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연이 시간을 되돌려 하루전날로 가고싶다는 사연이었거든요. 생생히 그날의 기억, 감정 모두 살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