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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고된 나날들을 보내던 날이었습니다. 4월 16일 같은방을 쓰던 룸메이트 친구가 저에게 세월호 사건이 났다고 얘기해주었고 저녁내내, 새벽까지도 잠에 못들고 핸드폰으로 네이버 뉴스만 본것 같습니다.그배에는 제 고2때 담임선생님 양승진 선생님이 계셨고, 제가 다니던 교회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사실 양승진 선생님이 타고 계신지는 알지도 못했는데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가 말해주어 알았습니다. 제가 수능 본 곳은 단원고 였습니다. 아직도 전 안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4년 4월 16일 저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모두가 뉴스만을 바라보면서 제발, 소중한 아이들이 살아돌아오기를,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살기를 기도하고 염원했습니다.저는 그날 새벽 잠에 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잠에 들었습니다. 아니 잠에 들수조차 없어서 중간 중간 깨서 살아돌아온 아이들이 몇명인지만 바라보았습니다. 7시간동안 저는 그렇게 사람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도하며, 함께 아파하며 보냈습니다. 그래서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마땅히 나라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은 그때까지 나타나지 않고서, 어디에서 뭘하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고 진실만을 알게되길 응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입에서 세월호가 나오는게 혐오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문자, 영상, 음성 모두가 당신에게 진실만을 요구하며 쓰러져 갔습니다. 세월호를 간단히 말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세월호 아이들과 사람들을 간단히 언급하며, 그날의 아픔을 공감하는 척 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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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들어가기전에 네이버뉴스로 소식을 들었는데. 그 수업이 마침 시사다루는 수업이라서 네이버뉴스를 켰는데 세월호 사태가 단순하지 않다는걸 깨닫고 교수님도 학생들도 함께 걱정했죠.. 그뒤로 계속해서 올라오는 속보들... 하루가지나고 이틀이지나고 구조소식과 더불어 날아드는 사망소식들... 유가족의 절규...그 악몽과도같던 시간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아직 채 펴보지도못한 날개들을 각자 간직한채 물속으로 들어간 천사들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습니까? 비록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으로써 갖게되는 감정들이 북받쳐올라 눈물도 많이 흘렸었습니다. 여전히 광화문 공원에는 노란리본이 보입니다. 지하철, 길거리, 버스 에서 누군가의 가방, 휴대폰, 등에서도 노란리본이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글들을 보며, 또 글을 작성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마음 깊숙히박힌 노란리본들이 환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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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이침 일찍 사장님 보고가 있는 날이어서, 여의도로 출근을 했습니다..처음에 뉴스 속보를 듣고,,요즘 얼마나 기술이 발달한 세상인데,,금방 구출하겠지 했는데,,구조가 진전이 없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납니다.그 곳 바닷물이 얼마나 거세길래, 요즘 기술로 빨리 대처를 못하나,,우리 기술이 부족하면, 글로벌 시대에 다른 나라의 도움이라도 빨리 받을수 있지 않나 했던,,믿기 어려운 상황이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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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기억하고있습니다.여느날처럼 출근해서 일을하고있었는데 다들 소란스럽길래 무슨일인가 확인하러 탕비실에 들어갔고 남들보다 늦게 인터넷 기사로 소식를 접했습니다.초중고를 안산에서 나왔고 바로 옆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친구들 사촌동생등 주변 사람들중에 단원고등학교를 졸업한사람도 많아서 같이 소식을 접한 다른 직장동료들보다 충격이 컸습니다.혹시나하는 마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고 친구의 동생도 그배에 타고있었으며 지금 연락이되지않는다고 혹시나 구조되는걸 본 친구나 함께있는사람은 꼭 연락달라고 남긴글을 보고 일을 할수없을정도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결국 친구의 동생은 몇일뒤 천사가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잊고싶지도 잊을수도없는 일인데 왜 누군가에겐 지겨운일이며 누군가는 기억이 나질 않나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하고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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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별이 되어버린그 날...2014. 416우리는 별을 보면서그 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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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수요일 13시 20분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바로 제 아들 건호가 태어났기 때문이죠..안산 우성병원 가족분만실에서 아내의 출산진통을 위로해주면서 , 핸드폰을 봤는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탄배가 침몰했다는 속보 소식을 봤습니다. 제발 모두 구조되길 바랫지만..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안산은 20년 넘게 살아서 제 고향같은 곳인데.. 안산시는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 저는 기뻐 할수가 없었습니다. 산후조리원 직원분 자녀가 실종된 상태여서 산후조리원 분위기도 기뻐 할수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모든게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의 업무태만이라면.. 정말 희생자 수 304번은 사형 시켜야지 분이 풀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두번 다시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월호 진상규명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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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제가 야간에 일하는 주였습니다. 대기업 공장에서 파견근로를 하면서 살아가던 저에게 세월호의 침몰은 마치 제 삶이 침몰하는걸 지켜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제발 저 배가 다 가라앉기 전에 전원 구조를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침몰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또 다른 세월호가 없길 바라면서 기도했지만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수백, 수천만의 세월호는 그날 침몰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7시간 동안 무엇을 했고, 또 해야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밝히는 것이 또 다른 세월호를 막는 길입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또 한번 기도하며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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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근무하던 시간이었어요. 사무실에 틀어둔 티비들로 처음 뉴스를 접하고 어쩌나 어쩌나 했었는데.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보진 못했죠. 퇴근하고 돌아가는 버스 창가에 앉아서 뉴스를 보는데 그제서야 상황이 잘못 돌아가도 한참 잘못 돌아가는 걸 알겠더군요. 무슨 노래를 들으면서 뉴스를 읽어나갔는지도 생생히 기억나요. 비가 왔었던지 하늘도 많이 어두웠던 날이었어요. 그게 벌써 2년이 넘었네요... 아직도 추운 바닷물속에 있는 학생들이 하루라도 빨리 각각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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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소식에 힘겹게 점심밥을 삼키던 그날, 저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많은 군인 중 한명이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기쁜 소식에 미소 지으며 식당 의자를 박찬 한명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헌데, 업무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그 소식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티비에서 울려퍼지는 유족들의 탄식과 절규만이 그 공허함을 천천히 삼켜가고 있었습니다.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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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저의 예쁜 딸이 제 뱃속에 있고, 저는 서울스퀘어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이 탄배가 전복됐지만 무사히 전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 식사는 했는데.. 이게 웬걸 아이들은 너무 차가운 물속에서 하나 둘 씩 주검이 되고 있었네요...지금 세살 딸아이를 생각하며 아직 피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 마음아프고, 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리고 싶네요.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 아픈, 안타까운 맘이 가시기는 커녕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우리 아이들 부디 그 세상에서는 이런 세상을 다시 겪지 않길....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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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오전, 저는 친구들과 중국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게에서 틀어준 티비 안에서는 승객 300여명을 싣고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지만 전원 구조를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잘못된 보도를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배 안에 남은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갔습니다. 그날 저와 친구들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대참사 앞에서 저와 친구들은 무기력했습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시스템과 7시간 동안 사라진 대통령, 무엇을 해야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날 이후 친구들과 국화꽃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100일, 1년, 2년이 흘렀습니다. 날짜는 좋은 일에만 세는 줄 알았다던 유가족의 말이 생각납니다. 결국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2016년 4월 16일 그날 아침에 머무른 채 남았습니다. 여전히 저와 친구들은 대통령이 사라졌던 그 시간,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는지 조차 모릅니다. 여전히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광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와 친구들은 그 날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합니다. 여전히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에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 투쟁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억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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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병간호하기 위해 병실에서 환자들과 티비 보던 그때 그져 무사히 모두 구조 될거란 생각으로 정말 구조될거란 믿음으로 있던 그순간 배가 바닷속으로 들어 가더군요ㅜ ㅜ꿈일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오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닐거라 생각했습니다 내새끼같은 아이들이 바닷속에 있을거란 생각 못했습니다기억하면 할수록 그저 눈물만 납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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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을 해서 얼마후 수학여행을 간 아이들의 배가 사고들 당했는데 전원구조라는 말을 듣고 다행이다. 며 별생각없이 업무에 열중했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틀어놓은 뉴스를 보고 이게 뭐지 싶었다. 그때 메뉴도 기억난다. 매운칼국수... 뉴스를 보느라 다 먹지못하고 남기고 나왔었다.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뉴스에서 관심을 돌릴수 없었다. 또 믿었다. 구조하고 있다는 소식을..몇일동안 생중계되고 있는 안까타운 소식에 계속 편히 잠을 잘수 없었고. 무서웠다.나는 지금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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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우리회사사람과 같이 회의실에서 실적회의를 하고 있었다.점심시간 TV의 전원을 켠 순간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 말았다.가슴으로 빌었다. 모두 무사하길.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뭐하고 있었는지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나는 기억한다.더러운 당신의 권력욕을...나는 기억한다.더러운 당신 주변의 개들을...나는 나의 자식에게 전해 줄꺼다.저런 인간들이 나라를 어지럽게하였지만,96%의 국민들이 바로 잡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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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주에서 4월 15일밤 늦게 일을 마치고 잠시 숙소에서 눈을 부치고, 4/16일 아침 일찍 자동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다 휴계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서,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서을에 도착하면 모든 승객들이 모두 구출 되겠지 하며 올라 왔다, 그러나 구출이 안 됐다는 저녁 뉴스를 보고, "아니 이럴수가 있나 , 그 소중한 생명들이, 딱 우리 딸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가슴이 먹먹한 기억이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정확한 이유를 규명하고, 박근혜는 직무유기&& 국민 모두에게 아프게한 죄를 물어 내란죄 적용하여, 당장 체포, 구속 수사하고, 전재산 몰수하고, 무기징역을 구형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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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출근 후 일을 하다 폰으로 수학여행 학생들을 탄 배가 사고가 났다는 속보를 보았다 놀랐지만 전원구출이라는 소식에 다행이다 생각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죽음의 공포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그 시간에.....정부의 거짓 발표들 ...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믿었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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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게 없는 아침이었고 뉴스에 나온 자막에 참.. 어이가 없었으나 곧 모두 구조될 것이라 믿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이도 전원구조라는 소식도 봤고 안심했었는데.. 다시 오보라는 말에 기운이 빠졌습니다. ㅠ 뽐뿌라는 사이트에 단원고 2학년 현탁군이 남긴 세월호 출발 사진을 보며 제발 좋은 소식으로 현탁군의 글이 올라오길 바랬던 기억이 나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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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로 가는 도중에 뉴스를 들었습니다.어머머.. 이런일도 일어나는구나.. 너무도 놀라 운전하는 남편에게 뉴스를 거진 생중계하다 시피 했더랬죠.그러다 침몰한 배에서 전원 다 구조됬다는 뉴스가 올라오고..어머 정말 다행이다 싶었는데.몇분이 지나지 않아 오보였다는 뉴스가 올라왔답니다.어찌나 가슴이 철렁 내려 앉던지....더군다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이 탔다는 소식에... 전부 구해낼수 있을꺼라고 확신했답니다.그러나..점점 시간이 지나도...그 어떤 뉴스에서도....들리지 않았습니다.무사히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배 밖으로 무사히 구조됬다는 소식은그 어디에서도 .. 들리지 않더군요.. 뱃속 아이의 태동을 느끼며 만삭촬영을 하던 중간중간에도 제 손에서는 핸드폰을놓지 못했답니다.그리고, 그날 이후...이 나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걸......이 나라 국민이.. 외국이 아닌 이 나라에서어려움이 처한다 해도 나라는 국민을 지켜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내 아이에게...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가르쳐야 할지 하루하루 뉴스를 보며지금 이순간도 막막하기만 합니다.제발...우리 모두가 기억하려 애쓰는 그날의 7시간을....... 청와대 그 분도 기억하길 바랍니다. 만약 2014년 4월 16일 그 날...그 세월호에최순실의 딸이 탔더라면....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그랬다면....지금 이 순간 그 날의 아픈 7시간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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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늘 꿈꿔오던 어학연수를 가겠다며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외국에 있었거든요.아마 그 일곱 시간 동안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푹 잤겠지요.나중에 배가 가라앉았다는 소식을 듣고, 배 안에 있는 사람 대다수가 아직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 어린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저의 시간들이 너무도 미안했습니다.그들보다 더 많이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모든 시간들이, 마치 나만 누리는 특권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많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여전히,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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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네요전원구조! 라는 선명한 속보도 기억나구요...마지막전화를 못받았다는 어느부모의 인터뷰ㅠ배는 기우는데...창문으로 물이차오르는데아이가 밖을보고있는데해경은 그 주위를 맴돌뿐 아무것도 안하더라구요정말 아무것도 안하더라구요왜그렇게 할수 있는게 없었는지반대편에 줄이라도 매서 더 기울지않게 붙들어주면 안되는지...헬기 수십대 동원에서 줄에걸어 배좀 안넘어가게하면 안되는지...기우는배를 계속 보는것 외엔 할게없었던정말 그누구도 아무것도 안하고수많은 어린목숨을 생중계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