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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가려고 느즈막히 일어나서 티비 틀었는데뉴스에서 침몰하는 배 화면 나오면서 자막에 여객선 침몰 전원구조 뜬거 보고와 큰일날뻔했다 하고 알바하러 갔는데 그게 아니였음 일하러 가서 애들이랑 계속 그얘기 하고어떤애는 핸드폰으로 뉴스 켜놓고 밥먹고 야구장알바여서 그날부터 한동안 앰프 사용 안하고 집가서 엄마아빠랑 어쩜좋냐고 얘기하고 동생이랑도 얘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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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초 6이였고 수학여행 출발 당일이였습니다. 저희 학교는 경주로 가기로 했고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서 밥을 먹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휴게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뉴스에서 세월호 얘기가 나오더군요. 이때까지만 해도 죄송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사고인지 몰랐고 그냥 사고났나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근데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잘 갔다 왔냐며 걱정을 하시더군요.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건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사실 저희 학교가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갈지 경주로 갈지 투표를 했었는데 애들 대부분이 제주도에 투표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경주를 택하셨고 저희는 엄청 교장선생님 욕을 했었습니다. 근데 어머니께서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제주도를 택하셨으면 저희는 그 배 안에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일에 탈수 있는 배가 세월호밖에 없었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갈 여건이 안됬어서 무조건 배를 탈수 밖에 없었거든요.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아니,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도 않을것 같네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서울 ㅇㅅ초 교장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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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함께 일하던 분의 한마디 말씀도 기억납니다.그날 외근이라 충무로역으로 출근했었고뉴스를 접할 환경이 아니라 오전에는 소식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다만 함께 일하던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어 선박 사고가 있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충무로역에서 외근할 때 가끔 들르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사고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만 해도, 아직 구조 중이라고 하니 저녁쯤엔 다들 구조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퇴근하고 집에 들어가 TV 뉴스를 켰을 때 첫 화면이 뒤집어진 채 잠겨가는 세월호의 모습이었습니다.충격으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뉴스만 봤습니다.우리 국민 중에 그날 4월 16일의 일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자들이 있다면 기억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들이 죗값을 치러야만, 아직까지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한 분들이 온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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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취방에 있었고 그날은 아침부터 부모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부모님이 아침일찍 오셨고 그 와중에 네이트앱에서 속보가 떴어요. 세월호가 침몰했으나 전원구조했다고.. 부모님과 안심하며 얘기하고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다시 속보가 떴어요. 전원구조 오보라고... 그리고 하루종일 티비와 핸드폰만 들여다봤습니다. 마침 그즈음 있던 일들이 모두 취소되어서 일주일 내내 집에서 뉴스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전원구조라는 속보와 오보라는 속보는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그때 고2였던 제 동생 친구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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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방과후 ucc 시간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모르다가 컴퓨터를켜 인터넷을보니 세월호가 실시간검색어에 올라있더라구요. 기사를 봤더니 400여명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고...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다행이라고하며 안도했습니다. 방과후시간이끝난뒤 집에와서 다시 컴퓨터를키니 오보다 뭐다 말이 많더라구요.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실제로 구조된사람은 아직 40여명남짓.. 나머지는 실종상태라고 다시 기사가 나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몇시간이 지나고 하루 이틀이지나도 더이상의 구조자소식은 들려오지않고 사망자의 시신을 찾았다는 뉴스만 뜨며 세월호 실시간페이지에는 사망자수만 점점 늘어가더군요.... 유가족분들께서 가슴이 찢어져라 목놓아 우시는 모습을보고 저도 많이울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다온 딸.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상처가 깊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후 광화문 합동분향소에 친구들과 다녀왔는데, 하얀 국화를 놓고 절을하다보니 눈물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언니오빠들이 죽어가는동안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하였고, 어떤지시를 내렸는지 아직도 알수가 없다는사실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유가족분들께서 원하는것은 몇억의 돈이 아닙니다. 그저 왜 사랑하는 자녀분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어야하는지, 어째서 구하지 못한건지에대한 진상규명을 원할뿐이십니다. 진상규명은 어려운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7시간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어떤일을 하고계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국민들이 듣고싶은것은 변명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를 회상하며 눈물흘리고있습니다. 양심이 있으시다면 400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신것에대한 책임, 나라를 이토록 망쳐놓은 책임, 국가의 위상을 낮춘 책임, 국민에대한 믿음을 저버린 책임을 지십시오. 명예를 죽도록 중시하는 대통령님이시라면 탄핵보다는 하야하시는것이 좋을것으로 판단됩니다. 반드시 하야하십시오. 하야하시지 않는다면 기다리고있는것은 탄핵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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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출근전 아침 TV를 보며 마음조렸던..전원 구조라는 뉴스에 안심했었던그러나....기억합니다...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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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뉴스를 보게 되었죠.. 화면에는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올라와 있어서 다행이구나 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얼마후 그 소식이 오보라고 해서 기가 막혔고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왜 침몰하는 배의 사진만 나오고 아이들이 구출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그 후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과 정부, 언론 , 인간이기를 포기한 댓글들...울분이 일었지만 해소할 데가 없었죠 . 그날 이후. 단원고를 다녀왔고 .....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여러 의혹들을 접하며 그 의혹을 풀어주기는커녕 유가족들을 함부로 대하는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어찌 세월호를 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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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밤새일하고 일어나 뉴스보던어머니 통해서봤습니다 첨에 다들 큰문제없이 해결되겠구나 했죠 밥먹고 그후 일상이 달라졌어요... 이게아닌데? 거의 1년을 거기에 빠져살았네요 그후 얼마전 다이빙벨 이란영화를 보면서 다시 눈물을 흘렸네요 아이고 그자슥들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금도 눈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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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고통받고 계시는 유가족 여러분 국민의 한사람으로 가슴 아픔니다. 진상규명과 모든 의혹이 해소되는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희생자 여러분의 고통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하며 함께 하도록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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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합숙연수 중이었는데 임신 초기인데다 기침감기에 심하게 걸려 내내 약도 못먹고 잠도 설치며 힘들게 교육받고 있었습니다. 바쁘게 자료만들고 과제하던 중에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는데 처음엔 그렇게 엄청난 사고였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전원 구조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알게 될때까지 정말 아무것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제 출근가방과 유모차에는 노란 리본이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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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울고 있는것을 알고 있나요하늘이 지켜보고 있습니다지금이라도 욕심이 아니라 양심으로 용서를 구하세요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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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거 없을것만 같았던 그날 날씨가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그날 또렷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지금은 두아이의 엄마가 된 저도 세월호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하염없이 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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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첫 현장학습 날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말았고, 아이가 버스 타는 모습을 보려고 추레한 모습으로 학교 정문에서 손을 흔들었습니다.미세 먼지가 많다고 해서 아이에게 마스크를 전해 주려고 교문 앞까지 따라 들어 갔으며, 우연히 마주친 교장선생님께 추레한 차림을 들켜 민망했었습니다.집에 돌아오는 길 핸드폰 포털 싸이트를 통해 소식을 보았고, 그 이후 부터는 tv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너무도 신기하게...다...기억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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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2014년 2학년 남학생 담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과 같은 학년이지요. 그 날 아침 카톡으로 소식을 들었고 배에탄 아이들이 부모에게 보낸 카톡 내용들도지인들이보내주어 읽었습니다. 배가 기울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 등의 내용이었는데 아이들은 신고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당연히무사할거라고 생각하는상황이었습니다.이후 바쁜 일과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티비에서 일부만 남긴채 잠긴배를 보았습니다. 아침이후 더이상의 생존자는없었습니다. 그런데배는점점사라져가는데구조대는 주변에없었고배에 접근하려는시도도없었습니다.다음날아침출근하여교실에 들어갔는데늘떠들고돌아다니며교사를지치게했던저희반아이들이말도없고움직이지도않은채앉아있었습니다.한아이가 "선생님어떻해요?"라고물었을 때 제가 무슨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후배는바다속으로사라져버렸고하루그리고또하루가흐르며납득하기어려운정부의대응속에그대로주말이되었습니다.사고당일이후스마트폰을손에쥐고뉴스를검색하다잠이들고새벽에깨서무슨소식이라도있을까검색하다다시잠들고아침에밥하면서도씽크대에폰을두고보곤했습니다.하지만며칠후결국첫아이의시신을수습했다는소식을접했습니다.그날뿐아니라다음날금요일,그리고더이상희망하기어려워진토요일까지선명하게기억합니다.평범한시민이이러한데그날을기억하지못하는자들은기억하고싶지않은것이라고생각합니다.제가그해맡았던아이들은올해대학신입생이되었고일부는재수를해서결과를기다리고있고또일부는나름대로의길을찾아일을배우고있습니다.저마다의고민과어려움을갖고있으나너무나아름다운청춘들입니다.바다에묻힌300여명의소중한생명들에게"잊지않겠다는는다짐"으로작은위로를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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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준비를 하러 미국에서 돌아온 동생을 맞이하러 공항에서 뉴스를 보고!,집으로 돌아와서 돌도 안 지난 딸아이를 꼭 안고서,이런 나라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아가하고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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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그날을 어떻게 잊을까요,,그 날 날씨가 흐렸어요 그 날 아침도 여느 날과 같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뉴스를 보려고 TV 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들려 온 소식은 세월호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 하지만 "사람들은 다 구하겠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 하면서 나갈 채비를 하며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그래도 걱정되서 눈은 계속 TV에,,,그러다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봤고 "아~ 역시,, 다행이다" 하며 집을 나왔네요. 하지만 오후에 오보라는 걸 알고,, 말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어요. 그 슬픔은 몇 일,, 몇 주,, 몇 달이 갔네요 3년이 되가는 지금도 아이들 생각만 하면 울컥합니다 그 날을 어떻게 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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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이 육아휴직 마지막달이라서 초등1학년 아들데리고 대만 자유여행중이였습니다. 우연히 호텔에 틀어둔 대만TV에서 이상한 뉴스가 들리길래, 저는 제 중국어 실력이 낮아진줄 알고 마음속으로 "다시 공부해야겠구나" 했습니다. 그 때 본 화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지나서 앵커가 모두 무사하다 했을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 역시 그 회사 배를 타고 제주도를 학생들과 다니던 교사였기에 그 일이 남의 일만은 아니였습니다. 어떻게 그날을 잊을수가 있을까요?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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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세월호 뉴스 보느라 집안 일을 하면서도 티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계속 안타깝게 왔다갔다 하던중 전원구조 했다는 속보를 보고 환호성을 치면서 좋아했었다. 그리고는 집밖으로 나가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던 세월호가 물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장면을 보면서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 밖에 없던 그 날. 지금도 생각하면 슬프고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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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고통스러웠니 얼마나 무서웠니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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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인터넷창에 순간 속보라는 단어에 클릭하고서 기사를 봤었네요설마 진짜야? 에이 진짜일리가 하면서 뉴스기사를 봤었어요그날 기억이 저는 아직도 생생한데..날씨도 기억나요 흐렸던 그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