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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우나에서 티비보고있은데 속보 뉴스가 떴습니다. 오전 10시쯤 이었던것 같습니다. 첨엔 깜짝 놀라 사우나에 모든사람들이 모여서 뉴스에 집중했습니다. 곧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떴고, 다들 안도의 숨을 내셨습니다. 그러나 오보였고, 그 이후로 몇날 몇일 뉴스에서 내보내는 보도들이 몇번이나 번복 되었습니다. 갈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내 친구, 내 지인,내 가족이 세월호에 타고 있을수도 있었고., 제가 타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세월호에 타고있지 않아 지금 살아있습니다. KBS, MBC, SBS 편파적인 방송들 해경이 몇명 출동했고 헬기가 몇대며 잠수부 몇명투입. 기사들 다 거짓이었습니다. 똑똑히 기억합니다. JTBC에서 유일하게 진실만을 보도했습니다. 그때부터 jtbc만 저는 뉴스로 인정합니다. 그 조마조마한 순간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허비했던것을 보았고. 똑똑히 기억합니다. 우리는 세월호 7시간을 꼭 밝혀내야하고. 잘못된것들은 바로 잡아야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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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이었고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주행연습하려고 기다리는데, 뉴스에서 사고가 났고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승객 구조소식이 나올 때 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모두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부의 늦장대응으로 많은 학생들이 갖혀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안타까웠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이 꼭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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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Oxford 대학 출판부가 주최하는 presentation 이 목동 방송회관에서 있었다. 11:30 쯤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아는 언니와 얘기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다른 층에서 탄 사람들이 "단원고" 라고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무슨 일이 있는 듯 그 말을 한 사람들은 급하고 걱정스러워 보였다. 언니와 간단한 점심을 먹고 헤어져 사무실에 들어와 PC를 켠 다음 "단원고" 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다. 오후 내내 틈날 때마다 뉴스를 보며 아이들이 제발 무사히 구조되기를 빌고 또 빌었었다.퇴근 무렵 뒤집어진 세월호의 사진을 보며 PC를 껐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신호등을 제대로 지켰는지 모르겠다. 운전대를 잡고 큰소리로 엉엉 울면서 갔다. 집에 가서 TV를 켰을 때 내가 봤던 그 배가 제대로 떠있기를 바라며..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신에게 매달려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안되면 시간이라도 돌려 달라고.. 그 후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의 사연들을 접하면서 결심했다. 누가 그랬는지 잘못이 밝혀질 때까지 반드시지켜보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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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지나 3년이 다되는데도그날만크은 아직도 뇌속에 각인되어 있어요이침에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침몰소식 동료에게 첨한말 , 전원 구조, 오보...그리고 ㅠㅠ하루종일 택배일을 하며 어떻게 배송했는지 집에와 티브이를 보며 참담한 맘 이었는데인간이라면 잊을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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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수업을 하나 끝내고 웅성거리는 교무실에서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몇십분 후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를 보고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 거짓말이 무색해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의 아픔은현재 진행형이다.알고 있었다. 그 나이에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꿈이 많은 지.자식을 잃은 절망을 옆에서 본 적이 있다.일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그 고통을 안다.그래서 그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슬픔이라는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다만,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질문조차할 수없었다.며칠 후에야, 친구랑 통화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 이후 다들 잊었다고 말하지만, 잊지 않고있었다. 다만 용기가 없었다. 저항하고 분노를 외칠 용기가 없었다. 그 죄책감과 비겁함을 이 글을 쓴다고 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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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억합니다.그날 평창동 모처에서 따뜻한 봄볕아래 지인과 시간을 보내던중 뉴스속보를 보았고 계속 안타까워하면서 속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군출신이던 지인은 배가 가라앉기시작하면 안에 있던 인원이 나오기 힘들다며 걱정을 했구요, 저도 많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왜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까요..이렇게 안타까운 일을....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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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그냥 멍했습니다.현실인가 현실이 아닌가 충격이 컸습니다....한 아이 엄마가 "아들아, 내가 구하러갈께..."하면서 우는 장면을 보고는 아들 둘을 둔 같은 엄마로써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기억해야죠.......잊혀지면 안됩니다.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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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로 괴로웠던 계약끝물에 요청사항과 추가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팀장과 외근중 오전 10시쯤 택시에서 배가 가라 앉는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아이고 얼른 아이들 구출해야지.. 언제나처럼 인간 승리로 구해낼거야. 한국은 그렇잖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밥먹으려 이동하던 11시반쯤 배가 가라앉았다고? 구출했다더니 오보라고? 이것들이 아이들 가지고 장난하나.. 얼른 구해내야 할텐데... 어쩌려고..그 이후 업무 때문에 쉬지않고 이동하고 업무하고... 퇴근시간도 훨씬 지난 이후에야 온 나라가 어둠으로 뒤덮인 것을 알았습니다. 뉴스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미... TV를 고의로 꺼버리고 아침에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하도 많은 사건 사고로 우리는 새로운 더큰 사고로 이전의 사고와 사건을 잊어갔습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울고나면 저의 이 슬픔이 해소되어 하루라도 빨리 잊게 될까봐 아직도 생각하면 흐르려는 눈물을 이를 꽉 깨물고 참습니다. 가슴으로 웁니다. 아이들아 잊지 않을께.. 그 시간을 어떻게 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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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일어나 뉴질랜드에사는 가족을 방문하러 인천공항에 가는 리무진속에서 티비에 뜨는 속보를보고 많이 놀라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 얼마후 속보에 단원고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듣고 아 다행이다!! 하며 세상모르고 자버렸습니다.그런데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그 속보는 거짓이었고 구출자 숫자가 안느는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고있구나 생각하고 출국하였습니다.뉴질랜드에 도착해 집에 가서부터 오는날까지 온통 세월호뉴스에 집착하며 눈물과 안타까움에 잠못이루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지금도 그때일만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옵니다.애들아 미안하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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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한시도 tv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읍니다. 한명이라도 더 살아돌아오기를 그렇게 고대했는데....내자식을 내가족을 내생명이 죽는것같아서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습니다.오늘 현재끼지도.....진실을 밝혀져야 합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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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몸으로 참담한 뉴스를 접합니다.세월호 전체가 침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존자수가 오보였고 수백명의 학생들이 실종자로 기록될 때,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진통간격이 빨라질 때, 출산후 모두 구조되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출산준비물을 챙기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우리 아들이 나올 것 같아 빨리 와줘"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도 아이들의 태어난 날을 뚜렷히 기억하실겁니다. 그 조그만 아이가 숨쉬고있다는 게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공감하실겁니다. 꽃같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너무나 슬퍼 진통의 아픔이 가려질 정도였습니다. 제 아들의 생일은 2014년 4월 17일입니다. 저는 살아있는한 평생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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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겠습니까! 전원 구조라는 허위 오보에 쓸어내렸던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며 304명의 내 자식 같은 생명들이 이 나라 같지 않은 거짓된 나라의 무책임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현장을 잊지 않으려 두 눈 부릎뜨고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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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진도 앞바다 여객선 승객 전원 구조 "라는 해드라인 뉴스 였습니다. 아침부터 특별하지도 않았고 그저 평범하게 일과를 시작 하던 그때..전원구조 소식에 다행이라고.. 잠시 꺼두고 일에 몰두 하고 있었습니다.몇시간 뒤 제눈을 의심해야 했습니다.승객들은 구조 되지 않았고.. 학생들이 배속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이토록 처절하게.. 이토록 가슴깊이 모순되고 뒤틀린 사실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에 너무 괴로웠습니다.현실과 비현실의 공존그날 이후 평범이라는 단어는 미안함과 반성이라는 글자로 우리 일상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아직도 외곡하고 회피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 하고 여전히 군림 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목격자 입니다.그리고 방관자 일지도 모릅니다.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괴로워 할줄 모르는 사람들의 비양심을 두고만 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고 있고 앞으로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7시간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그리고 우리는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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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에 안심헸던 제. 모습을 기억합니다.그러나 3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9명이 뭍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날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억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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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단전호흡을 하러 동네 주민센터를 갔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단전호흡을 마치고 집에서 옷 갈아입고 동네 특성화고등학교에 상담 자원봉사를 갔다. 옷 갈아입으면서 방송을 통해 사고 소식을 알게 되었고 곧 구조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학교에 도착해서 선생님들과 "올 해 수학여행은 못 가겠네요. 우리나라는 사고 한번 나면 몇 년은 금지 하잖아요.."라고 가볍게 대화를 하고 상담을 했다. 오후 3시쯤 상담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을 기대하며 TV를 봤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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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임신하고 6개월이 지나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아침상을 받고 뉴스를 보는데 300여 명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그때 가슴이 쿵 내려앉고 곧바로 배 속 아기가 놀랐을까 봐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사 구조됐다, 아니다 오보였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평안한 감정을 유지해야 했는데 거듭되는 보도를 인터넷 창으로 쓸어보며 속이 몇 번이고 요동쳤어요. 내 배 속엔 한 생명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날 그 학생들, 그 승객들은 배 안에서 물속으로 잠겨 가는구나... 어머니가 아기 생각해서 뉴스 보지 마라, 감정 추스려라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아이가 태어난 해가 2014년이에요. 나는 죽을 때까지 2014년 그날을 잊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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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오전에 일이 없어 집에 있었습니다.아침에 TV로 뉴스속보를 접했습니다.큰 배가 점차 기울고 있어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도 아니고 영해 내에서 일어난 사고이니 속히 구조 절차가 진행된다면 전원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습니다.학생 전원 구조 등의 속보가 뉴스 자막으로 뜨기 시작하여, "아, 이제 한숨돌려도 되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리고 외출하여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오후 넘어서 다시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뉴스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더군요. 그러면 도대체 오전의 뉴스는 뭔지...너무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고 슬펐습니다. 벌써 2년 8개월이 넘어가고 있지만, 사고의 원인을 비롯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유가족이 납득하지 못하고, 국민이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2일도 아니고, 2주도 아니고, 2년, 아니 3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규명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세월호는 아직도 그 바다 아래에 있습니다.빨리 진상규명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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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같이 출근을 하고 조례를 마치고 1교시 수업을 하고 2교시를 하고 나왔다. 우리반 말썽쟁이 한녀석 때문에 그날도 씨름하고 있었다. 참 정신없는 하루였고 어느때 누군가 배가 침몰되었는데 아이들은 다... 구했다며 했고 나는 불행중 다행이라며 수업을 하러가고 아이들과 하루를 마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미리 약속된 모임을 가지는데 티비에서는 연신 배의 뒤집힌 영상이 흘러나오고 실종된이들의 수는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수학여행을 떠난 우리학교 다른 학년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여전히 티비에서는 배의 모습이 슬프게 나오다가... 어느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내시간은 이렇게 기억하는데 왜 그녀는 자신의 시간을 모르나? 나는 아직도 이렇게 슬프고 미안한데 그녀는 이런 감정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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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개나리가 피어 오르면 늘 떠났던 붕어낚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던 4월의 하루였지만, 아직도 기억합니다.그 날 역시 지인들과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다 보게 된 속보...놀라긴 했지만,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다니던 시대도 아니고 모두 구조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그 때는 몰랐습니다.승객을 방안에 몰아넣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구조 콘트롤조차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정부의 존재.대통령의 7시간...말 못 할 짓을 했던 7시간...나는 멍하니 속보만 지켜봐야 했던 7시간...remember_416같은 참사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잊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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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날이었죠. 그때의 업무달력을 봐도 그냥 반복되던 일상만 기록되어 있는 평범한 날.그 업무달력에는 세월호는 한 글자도 안 적혀 있네요. 단지 보고하고 업무내용 서너개.. 그게 다입니다. 구조됐다는 뉴스에 잘 됐네. 하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구조된 게 아니라는 뉴스에 인터넷으로 생방송 기사를 보다가 "아.. 난 지금 사람들이 생으로 죽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거야.."라는 인식에 소름이 쫙 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뉴스에 속아서 사람들이 구조하러 간다는 소식에 안도했는데.. 저녁뉴스에 하나도 못 구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그 이후로 몇일을 뉴스를 보다 안 보다.. 하면서 우울하게 지낸 듯 해요. 꿈같이 지나고.. 평범한 날이었어도 그날 내가 가졌던 생각 한 자락은 기억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걸 기억 못한다는 게 말이 안돼요...ㅠㅠ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