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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생님이 되기위해서 임용시험을 공부하고있었습니다. 공부하다가 세월호 사건 뉴스를 보고나서부터는 집중이 잘 안되었습니다. 좀 충격적이기도 했고 마침 공부도 하기싫어서 친한 친구집에가서 아이스크림에 소주나 섞어서 만들어먹자고하고는 티비뉴스를 보며 술 한 잔씩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솔직히 금방 구조될 줄 알고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티비 뉴스만 틀어놓고 친구랑 수다나 떨었어요..대구지하철참사처럼 그렇게 많은 목숨이 희생될거라는걸 모르고 있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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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해 대학생이 된 저는 강의실에서 친구들이랑 놀던 중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봤습니다. 하지만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기사를 본 후, 전부 구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강의를 들었고, 그 후엔 우리가 아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아파서 되돌아볼때마다 눈물이 나지만, 잊혀져서는 안 될일이기에 이렇게 다시 한 번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봅니다.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실종자분들의 귀환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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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습니다근처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뉴스를 봤는데사고가 발생한 날은 조금 멍했지만 단 한명이라도 구조가 안되는 학생은 없을것이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다음날 부터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매일 울며 티비를 봤던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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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의 시작은 평소와 다르지 않던 평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오전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위해 직원식당에서 줄을 서는데 그 앞에 있던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처음엔 어느 정도의 사고인지 제대로 파악을 못하였습니다. 기울어진 배를 보고 배가 가라앉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금방 구출을 가능하겠지, 인명사고가 크지 않겠지 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내 학생들이 갇힌 상태에서 배가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에는.. 사실 그 날 세월호 사고 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어릴때부터 안산에서 10년 넘게 자랐고 현재도 부모님이 살고 계십니다.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더불어 부대끼며 살던 이웃들이 그런 참사를 겪었다는 사실에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속보로 뜨는 뉴스를 확인하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어떻게 나라에서 이렇게밖에 대처를 못하나 분노했던 그 날의 감정들만 기억이 납니다. 한달 넘는 시간동안 유가족분들에게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제게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아팠던 기억이었고 그 후 세월호 사건이 정치계로 넘어가면서 점점 진흙탕 싸움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애써 그 분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며 살아왔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하고 죄송하고 또 반성합니다.. 지금이라도 그 날의 시간들이, 사건의 전말이 상세히 밝혀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외면하지도 않을겁니다.조금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무고하게 희생된 아이들에게 최소한이나마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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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구하겠지..저 큰 배에 안전장치 하나 안되어 있을까..싶은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었습니다.그 큰 배는 너무나 쉽게 넘어졌고 가라앉았습니다.책임자라는 사람은 제일 먼저 탈출하고못다 핀 꽃들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소문이 무성하여도 분명히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습니다.우리는 잊지 않을것이며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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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거 운동원이었습니다.당시를 떠올려보니, 또렷하게 기억이 나네요.예비후보님을 모시고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메뉴도 기억나요. 저는 콩국수를 먹었었어요.속보에 속보가 더해져갈때마다구해냈다, 아니다, 침몰중이다, 다시 구해냈다.아이들의 목숨이 일부 어른들의 무책임함에 스러져 가던 그 시간, 예비후보님과 저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티비 앞에 앉았습니다.간절한 마음을 더해 아이들을 구조해달라고 빌었지만... 벌써 2016년의 끝자락이 보이네요.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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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4.16일자 기록입니다.09:00 ~ 09:30 오전 시스템 점검, 10:00 ~ 10:30 개발자 문의사항 대응..11:00 ~ 12:00 WAS 업그레이드 환경구성, 13:00 ~ 15:00 2014년도 1/4분기 장애보고서 작성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록을 보니 평소와 같이 그냥 일을 하고 있었네요.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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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조난 뉴스를 보고, 모두 구조되었다는 뉴스도 보았고, 그것이 오보라는 말도 들었고...가까운 근해에서의 좌초라 별 걱정하지 않았었고 직장 동료들과 무난히 전원 구조될 것라 얘기도 나누었었죠..오후에 미팅을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어처구니 없게도 많은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음에 안타까운 마음, 황당함, 분노 등 심한 충격에 빠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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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배였는데, 다행이도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라고 놀랐겠지만 다행이라고...그런데 잘못된 뉴스, 점차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 왜 구하지 않고 그냥 지켜만 보는건지 , 왜 처음엔 전원구조라고 했을까. 우린 아직도 체계가 없는 곳에서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는 나라에서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곳에서 홀로 남겨져 사는구나. 그 누구도 날 보호해주지 않는 내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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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입시를 앞둔 때의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에 교실 안에서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스마트폰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사고가 터진 지 얼마 안 되어 교실 전체에 소식이 퍼졌습니다. 딱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친구들이 그것도 수학여행 가는 길에 그렇게 되었다는 소식에 다들 웅성웅성댔지만 곧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이게 무슨 일이야...그래도 다행이다-이런 류의 말을 하면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후 집에서 본 뉴스는 그게 아니더군요. 시험기간이니까 공부는 하러 독서실에 갔는데 공부는 안 되고 계속 뉴스만 들여다보면서 안 되는데...하는 생각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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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 강의 중간에 침몰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고 있으나 곧 구조되어 괜찮아질 거라는 보도들을 접하며 다행이다, 저 녀석들 크게 고생했나보네하고 괜찮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밥을 먹으면서 전원 구조 소식이 오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반에 잘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던 구조가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불안하고 흥분되어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소식이 있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마지막까지 아무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 내 주변에 버티고 있던 껍질이 딱, 사라져버렸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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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험기간이였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시험에 들어가야 했다.아침에 공부하고 있을때는 모두가 구조되었다고 했다.시험을 보고 나왔다.살아있던 아이들이 모조리실종자가 되어있었다.잠시 눈을 뗀 내 잘못인 것같다.다음시험은 어찌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그날이후로 거기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슬픈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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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은 하루였고, 그렇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어야 할 위치에서 제가 해야할 일을 했지요. 그러다 인터넷 기사로 사고 소식을 들었고, 그때부터는 계속 중간중간 기사 체크하면서 일했습니다. 당연히 모두 구조될 거라 믿었고,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걱정이 되면서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큰 슬픔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기본적인 것 조차 하지 않아서 우리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아 가 버렸네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이 당연한 사실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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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이 출근하고, 점심 시간이 되면 뭘 먹을까 고민하며 동네 식당 몇 군데를 돌아가며 다닙니다.언제 뭘 먹었는지, 고작 일주일 전 메뉴도 기억나지 않지만..2014년 4월 16일 그날만은 점심에 어디서 뭘 먹었는지.. 너무 충격받아서 기억납니다..할매순대국밥에서 국밥을 먹으며 티비로 생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어떡해... 어떡해.. 배가 기울어 가는 모습이 계속 나올때마다 왜 못꺼내나.. 유리창이라도 깨지...동료들과 계속 얘기하고 안절부절 했습니다...기억할게요.. ㅠㅠ 의지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기억하게 되네요....에쁜 세월호 아이들아..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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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산실에서 인강 듣기 전 포털뉴스로 소식을 접하곤 놀랐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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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나는 첫 직장에서 근무중이었다. 오후에 사고 소식을 듣고 해결될거라 막연히 믿었지만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 구조 소식에 회의와 야근을 하는 내내 세월호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업무 회의 중에도 사람들은 수학여행을 갔다던 아이들이 왜 사고를 당했는지 답답해했고, 빨리 구조되지 않아 분노하고 있었다.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고 우리 모두는 업무 이야기보다 그들이 구조되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이쯤에는 구조 관련 뉴스가 있겠거니 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귀가한 후에도 몇 시간을 더 뉴스를 살펴보다가 잠이 들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생각날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지체되는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을 사람들이 걱정되어 밥도 먹기 힘들었던 그 날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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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사용하던 강의 시간이라, 수업 시작 전 인터넷 서핑 중이었습니다...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동기들과 충격에 빠져 있던 중에,다행히 전원 무사 구조라는 속보가 떠서안심하고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아니었더군요...전원 무사구조는 커녕, 아이들을, 그 많은 사람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가두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더군요...나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똑같은 일상 속에서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그 캄캄하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당연히 누군가가 구해주겠지, 하며 서로를 붙잡고 기다리고 있었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할까요...나는 아직도 매일매일을 살아가는데, 그 아이들은 그 날 그 시간, 그 바닷속에 멈춰있네요.스러진 꽃들을 어찌해야 좋을까요.긴긴 시간이 더 지나도 잊지 않겠습니다.부디 저 먼 곳에서 아이들이 울고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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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 종일 현장에서 시험을 하느라 소식을 접하지 못하다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야 뉴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저걸 어쩌나 걱정만 될 뿐이 었습니다. 누군가 빠른 의사결정을 해서 배를 파손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한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날이었습니다.무능한 정부와 의사 결정자들이 원망스러운 하루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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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은 촛불과 함께 우리 곁에 있을 친구들과 같은 나이 입니다97년생 당시 고2 2014.04.16 수요일까지 정확히 기억납니다 그때 동아리 시간이라 제출한 핸드폰을 받아점심을 먹으면서 기사를 보고 있었습니다에이 설마 300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타고있는데 구출할수 있겠지 가볍게 생각했습니다하교후 집에돌아와 티비를 트니 정말 할말을 잃었습니다 우리학교도 몇주뒤 제주도 수학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고 그 티비에 나오는 부모님들 누나 형 언니 오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가족이라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말도안되게 적은 구조자 숫자거짓말 같은 실종자 숫자소름돋는 사망자 숫자믿기지도 않는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는 돌아오자 못한 9명...7시간은 그렇게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데 어떻게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그 친구들이 무사히 돌아 왔다면 나처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을 거고 4월달에는 첫투표라라며 기뻐했을 거고 대학도 다니며 20살을 만끽했겠지난 아직 이렇게 생각만해도 눈물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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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요일이었던 그 날에는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 였습니다. 평소와 다름 없이 학교에 갔고,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평소와 다름 없이 노트북을 켰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을 때, 한 배가 사고로 침몰중이지만, 모든 탑승자들 전원을 구조해냈다 라는 뉴스가 떠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학교에 같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적지 않았기에, 친구들과 얘기를 하던 중에, 오보였다고, 구조된 인원이 많지 않다는 얘기를 다른 친구가 전해왔고,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 배, 세월호에 탑승했던 대부분의 승객은, 저와 같은 고등학생이었으며, 누구보다도 들떴을 같은 학교의 친구들과, 그리고 선생님들과 같이가는 추억이 소중한 추억이 됐어야 할 시간이 무서운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고, 너무 놀랐었습니다. 그 배 안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함이 엄습했었고, 없다는 것에 안도감과 안도한 저 자신에 죄책감을 느꼈었습니다. 그 날은, 해외에 있었던 저에게도, 그리고 많은 주변인들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입니다.해외의 신문등 뉴스 보도에서 나오는 세월호 사건과, 해외에 있었던 비슷한, 하지만 다른 결과의 사건들의 비교에 대한 뉴스등을 보며, 많이 발전했다 배워왔던 한국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던 2년을 넘는 날들을 기억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 대책과 법이 생겨야 한다는 걸, 정부에서도 제발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건과 비슷한 다른 세월호 사건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부터 무너질 징조가 보였던 백화점과 다른 많은 사건사고들.. 안전불감증에 의해 대책과 예방법안이 나오지 않는 이 이상한 나라를 제발 이 슬픈 비극으로 다들 알아주셨으면, 그리고 지금도 귀를 눈을 닫고 있는 그 사람이 알아줬으면 합니다.